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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 Letter(189) 2016. 10. 26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부부에게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1-4)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형제 자매들에게 안부와 소식을 전합니다. 고국은 이제 초겨울의 날씨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질서와 원리에서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불변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할 때 성실하심과 불변성과 지속성에 바탕을 두게 될 때 존경과 지지를 받게 될 것입니다. 현재 고국의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특히 국정의 중심에 서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습니다.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위기 상황이란 진단이 날마다 신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위기는 대통령의 도덕성의 위기입니다. 이제까지 신뢰와 원칙의 대명사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아 오던 모든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대통령과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한 여인이 국정에 개입한 사건)로 일컬어지는 국정개입과 농단으로 온통나라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 하야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며, 집회가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제까지 도덕적 우위와 청렴에 바탕을 두었던 대통령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결코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며 다른 사람을 공격하던 그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정부와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비판하거나 비난하기 보다는 국정의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정직하게 사과하고 대처방안을 통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나라 전체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 수 있는 위기를 맞게 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고요하고 평안한 중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이 필요할 때입니다. 고국의 안정을 위해 기도하여 주세요. ㄷ우리가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은 지도자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정직성과 투명성으로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신뢰를 잃게 되면 모든 권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도덕적 바탕위에 실격하지 않고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본이 되어야 합니다. 박남규 부부 서신
올바른 영적 가치관
<본문 말씀>
딤후4:1-8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단지 15분뿐인 인생>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단지 15분뿐’ (Just Fifteen Minutes)이란 연극이 있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이 젊은이는 어려서부터 그 총명함을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20대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고, 그의 뛰어난 논문을 보고 심사위원들은 격찬했으며, 이제 학위를 받을 날짜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고 본인도 자신감에 넘쳐 있습니다. 하루하루 장미 빛 미래만이 그에게 다가오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에 이상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정밀검사결과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이 나오고 그의 운명은 이제 1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죽음의 선고가 내려집니다.
15분! 그는 침상에 누워 있습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째깍째깍 흘러만 갑니다. 5분이 금방 지나고 남은 시간이 10분으로 줄어듭니다. 이 때 그가 누워 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듭니다.
“억만장자인 당신의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와서 상속 절차를 밞아 주시오.” 하지만 죽음을 앞둔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운명의 시간은 8분으로 줄었습니다. 그 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합니다.
“당신의 학위 논문은 우리 학교의 개교 이래 가장 훌륭한 논문으로 평가되어 통과되었으며, 올해의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러나 이 축하 전보도 그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운명의 시간은 마지막 3분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 때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옵니다. 그가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의 결혼 승낙입니다.
세 통의 전보들이 그 때마다 그에게 잠시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전보도 그 운명의 15분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15분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세 통의 전보를 손에 쥔 채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는 연극이 막을 내립니다.
1. 영적 가치관의 기초(우리의 진정한 세계와 신분은 무엇인가?)
The Foundation & Our Identity
(1)하나님 아버지(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진정한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나님 아버지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기초이다.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Our Father in heaven)라고 하였을 때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능력과 권능의 하나님,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내신 전능하신 하나님, 기사와 이적과 권능을 베푸신 능력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자녀이다.(요1:12) 그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니,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대로 갈 수 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 아버지 집에 갈 수 있는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3:26)
(illustration-요한이는 내 방에 자기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한다. 왜냐하면 아들이니까 아버지 사무실을 자기 방처럼 출입한다. 다른 형제 자매들은 허락받고 출입할 수 있지만 아들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서 엄청난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것은 우리 편에서 볼 때는 특권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엄청난 대가와 희생을 지불하신 사랑이다.(요3;16)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2)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바울은 우리의 삶의 최종 평가자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엄히 명하고 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셔서 자신의 속죄를 통하여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구세주이시다. 그러나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심판주가 되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롬14:11-12)
◾벧전4: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우리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입니다. 흔히 말하는 크리스찬입니다. 크리스찬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 소속해 있는 신분이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롬1:6)
그리스도인이란 헬라어는 ‘크리스티아노스’(christianos-라틴어)이다. 접미사 이아노스(ianos)는 누군가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뜻하는데, 로마제국의 명문가에 예속된 노예들을 가르키는 데 사용되었다. 황제 곧 가이사, 헬라어의 카이사르(kaisar)를 숭배하는 사람들, 카이사리아노스(kaisarianos)라고 불렀다. 카이사르의 추종자, 곧 카이사르에게 예속된 사람을 뜻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자 제국 내의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황제인 ‘카이사르’의 적수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안디옥에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크리스티아노스(그리스도인들) 곧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하나의 별명으로 비난하는 말이 되었다.
실제로 초대교회 당시에 로마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인사는 “가이사는 주님이십니다. 예 맞습니다. 나의 주님은 가이사입니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인사의 내용은 달랐다. 그들은 “가이사는 주님이십니다. 아닙니다. 나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이었다. 이와 같은 인사가 어떤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인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분명한 회심이 일어났다면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Christ, Messiah)로서, 또한 나의 주님(Lord)으로서 고백해야 한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Therefore let all Israel be assured of this: God has made this Jesus, whom you crucified, both Lord and Christ)(행2:36)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이시라면 “나는 더 이상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는 고백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의 구세주이면서 지금은 선한 목자가 되시며 장차는 우리의 삶의 최종평가자가 되실 심판주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우리가 서는 날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것(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40일 동안 함께 계시다가 저희 보는데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5년 전인 2011년 8월 발사한 목성 탐사선 주노(Juno)가 목성 궤도에 진입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 독립기념일로 날짜를 맞추려는 NASA의 시도는 불과 5분을 남기고 가까스로 성공했다.(7월4일) 5년 동안, 28억km를 날아갔다.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 행성인가?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의 생성과정을 이해하면 외계행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상상할 수 없다. 이런 행성이 태양계 안에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은하계와 태양계의 차이는 어떠한가?
은하계는 타원 모양인데, 단축(짧은 축)이 약 3만 광년, 장축(긴축)이 10만 광년 정도의 거리로 알려져 있다. 광년은 빛의 속도로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한다. 지구에서 달까지 1.2초로 가는 속도로 1년을 가는 거리이다. 그런데 10만년을 간다고 했을 때 그 크기를 우리가 가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즉 은하계의 체적(넓이와 높이의 용량, 부피, Volume)은 태양계의 체적에 25조*10조 만큼 큽니다. 태양계는 은하계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모래알에 불과하다. 너무 복잡한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살아가자.
◾ 예수님에게는 생애 4가지 목표가 분명하셨다. 일시적인 목표, 단기적인 목표, 장기적인 목표, 궁극적인 목표가 있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다시 재림하셔서 세상을 통치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것이다.(벧후3:8-13)
우리는 주님의 재림과 연관하여 볼 때 우리의 신분은 신부이다.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약혼하여 두고 이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준비를 하고 계신다. 천국에서 살 집을 준비하고 계신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밝은 등불 들고 나갈 준비 됐느냐? 그날 밤, 그날 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가 됐느냐?>
(4)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주제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선교의 목표도 동일하다.
해외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게 되면 두 종류의 여행객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은 비행기를 타자마자 가고자 하는 나라의 목적지 시간에 맞추어 시계를 조정하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여전히 떠나온 한국의 시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왜냐하면 되돌아갈 것이기에 한국의 상황과 시간에 맞추어 여전히 생각이 고정되어 있다. 여러분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한국을 떠나왔으면 여행하는 동안은 한국에 대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내가 여행하고자 하는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과 생각과 시간에 따라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슨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목적지에 가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옛 생활에서 떠났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시민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초점은 우리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Final Destination)에 맞추어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이제는 또 다른 세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하게 된다. 지나온 과거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가올 미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갈 때 우리는 보람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바라고 기도하며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와 지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비전과 부르심도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진보를 위해 있는 것이다. (Our calling is to advance the Gospel of Jesus and His Kingdom into the nations through spiritual generations of laborers living and discipling among the lost.)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때 이 땅에 사는 이 나라(대한민국)는 영원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그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살았다.(요3:3,5)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2)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 우리는 나그네이며 순례자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나그네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The 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 이라고 하는 불후의 명작 '기독교 강해'라고 하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는 십자가 앞에서 계속적으로 자기를 부정하는 삶이다. 자기 부정적인 생활은 십자가 앞에서 욕심도 버리고 질투도 버리고 시기도 버리고 절망도 버리고 명예욕도 버리고 다 버리는 것이다. 깨끗하게 버려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한다. 어디까지 버렸느냐 하는 것이 그의 경건의 모습이다.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순례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순례자는 나그네의 삶을 말한다. 그는 언제나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궁극적으로 종착지가 아닌 것이다. 지나가는 것이다. 하나의 필그림(Pilgrim), 순례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집이 있다고 내 것이 아니다. 돈이 있다고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이 땅은 결코 내가 머물 곳이 아니다. 다 버리고 다 떠나야 한다. 하나의 순례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며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욕심과 야망에 사로 잡혀 있으면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 우리는 어떤 일에 날마다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는가? 낢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그 사랑과 은혜를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원동력과 힘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것으로도 이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또한 하나님과 교제하는 즐거움, 말씀을 즐거워해야 한다. 기도생활을 즐거워해야 한다. 전도하는 삶을 즐거워해야 한다. 또한 주님의 제자로 따라가는 삶을 즐거워해야 한다. 즐거움으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사도신경의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고 하는 신앙고백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이 진술은 우리의 행복이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우리가 나그네처럼 이 낯선 땅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행하고 있다. 이 진술이 사도신경에 있는 것은 우리가 이 지상의 것을 무시하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도록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나그네이다. 행복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지상의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 뜻이 하나로 모여서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이 땅에 집착하는 생각을 다시 버려야 한다. 항상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이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다. 더 나은 본향(Better country)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나그네는 궁극적인 본향을 사모해야 한다.(히11:15-16)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할 영원한 삶의 기초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또한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과,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것,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한다. 또한 삶의 기초하여 연관된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주님의 제자이며, 주님의 신부이며,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할 나그네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2. (그렇다면)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 무엇이 영원한가? 무엇이 가장 가치가 있는가? 무엇이 우리의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가? 영원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람이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6:27)
(너희는 그렇게 썩어 없어질 음식을 얻으려고 힘을 허비하지 마라. 너희와 함께 있을 음식, 너희의 영원한 생명을 살지게 하는 음식, 인자가 주는 음식을 위해 일하여라. 인자와 인자가 하는 일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끝까지 보증해 주신다.-The Message,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애써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현대어성경)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9-10)
여기에서 선악이란 도덕적 행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가치 있고 영원한 것이 선이며, 악이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을 말한다. 즉 무가치 한 것이 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히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을 때, <구하라>(seek)의 원어적 의미에는 깊은 뜻이 있다. 히브리어 <제테요>는 ‘기도하라’, ‘목적을 삼다’, ‘온 정력을 다 기울여 힘쓰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삼아라는 것이다.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해 온 정열을 기울여야 한다.
(1)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치며 양육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딤후4:2vs) (벧전1:23-25)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복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이다.
(행5:20, 딤후3:15-17)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주님의 제자와 일꾼으로 성장한 영혼들만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진정 우리가 투자하고 헌신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하고 주님께 돌아온 영혼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영원하며 보람된 일이다.(요일2:15-17)
(2) 영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얻고 세우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만이 영원한 가치가 있으며 귀중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진다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하다. 모든 것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나 일꾼들은 영원하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된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2:19-20)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후1:14)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헌신과 투자가 우리의 삶의 재산이어야 한다.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는 투자이다. 하나님의 사람을 얻고 세우고 무장하는 일, 특별히 주님의 복음을 위해 기꺼이 함께 수고하며 헌신하는 일꾼들을 길러내는 일이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 되어야 한다.
(3)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을 위한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딤후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5)
말세의 대표적 현상 중에 한 가지가 전도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바른 교훈-복음-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딤후4:3-5) 서울 광진구 교회들의 98%가 대학 청년부가 없다는 통계가 있다. 각각의 사욕,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게 된다. 병리적 사회현상이다. 인권이란 미명 아래 동성애의 축제, 동성결혼의 합법화, 불륜에 대한 무감각, 조장 등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환경과 세태 속에서 전도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전도하는 수고에 얼마나 큰 어려움과 고난이 따르는가!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전도인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딤후1:8,12, 2:3,9, 3:11, 4:5)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1:29)
(고난은 복음의 은혜와 함께 주어지는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자랑거리이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2)
지난날의 삶과 사역을 회고하여 볼 때 가장 보람되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하고 질문을 받는다면 ‘주님과 영혼들을 위하여 고난 받았던 것이라고 기꺼이 말하고 싶다.’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은 증거와 증표(marks)가 무엇인가? 바울은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한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
(이제는 두 번 다시 이런 문제로 나를 괴롭히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 몸에는 예수를 욕하는 자들에게 맞은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표적입니다.-상처자국이 있다)
바울의 최고의 본은 주님을 위하여 받은 상처자국이다.(고후11:23-28)
(4)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한다.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믿음을 지켰다는 것이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였다. 사역을 마쳤으니 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다. 사역을 마치는 것은 사명을 완수하였다는 것이다.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충성을 지켰다는 것이다. 물론 주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충성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신뢰이다. 전인적 신뢰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이다.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받았다.(엡2:8-9)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히11장은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인물들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가 믿음의 사람이었다. 능력의 사람이나 재능의 사람이 아니었다. 특별히 뛰어난 은사를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약속)에 대한 믿음의 사람들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믿음으로 행동하였고 믿음을 따라 충성하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생애를 마쳤다. 3.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전망
<바울의 가치관>
딤후4: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모세의 가치관>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상급에 대한 전망과 기대>
가끔 서울팀의 교제에 가서 하 선생님과 몇몇 스태프들과 함께 테니스 교제를 한다. 그 교제를 위해 대구 수성구민 테니장에서 테니스 연습을 한다. 대구에 있는 사람들과 운동을 할 때 때로는 잘못한다고 핀잔과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참는다. 최종 상대는 대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연습 상대일 뿐이다. 나는 당신들의 인정과 칭찬과는 상관이 없다. 오직 서울에 가서 하 선생님과 다른 동료 스태프들이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견딜 수 있다. 최종 평가는 대구에 있는 연습 파트너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오가는 사람들에 불과하며 훈련 파트너에 불과하다. 나의 평가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무시를 당해도 좋다. 그들의 칭찬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들은 나의 최종평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도 많은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을 둘 필요가 없다. 그들은 우리의 전도대상자이며 사랑의 대상자일 뿐이다. 결코 우리의 평가의 대상자가 아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바울은 얼마나 많은 고난과 고통과 모욕을 받았는가? 그것은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께서 인정하여 주실 상급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제는 주님께서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며 기대하고 있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이 도왔던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동일하게 면류관을 받을 것을 소망하고 있다.
◾ 핸리 모리스는 미국선교사로 아프리카에서 40년간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아프리카에서 자식도 잃어버리고, 건강도 잃어버리고 마침내 고국 미국으로 돌아오던 때의 일화가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한다. 마침 핸리 모리스 선교사가 타고오던 배에는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가 아프리카 코끼리 사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같이 배에 타고 있었다. 배가 미국 항구에 도착하자 레드 카페트가 깔리고, 군악대의 팡파레가 울려 퍼지고 미국 대통령을 열열히 환영하였다. 모든 환영인파가 빠져나간 후 핸리는 쓸쓸하게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항구를 빠져나오는데 마음이 편지 않아 하나님께 이렇게 반문하였다.
"하나님 이것이 전부입니까? 40년 선교여정을 마친 저의 초라한 모습이 전부입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핸리에게 말씀하셨다.
"My lovely Henry, you are not home yet. Here is not final home“
(나의 사랑하는 핸리야 너는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단다. 여기가 마지막 집이 아니란다), 네가 본향에 올 때 황글길에 천사장의 나팔소리 그리고 내가 너를 직접 환영해 줄게“
-끝-
Park-189(올바른 영적 가치관(2016)).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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