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25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 눅2:8-14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즐겁고 기쁜 성탄절입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인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어느듯 몸에 뵌 것 같습니다. 누군가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인사하는데 모른척 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이날은 웬지 기분좋은 날이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솔이와 찬이도 어린이집에서 선물을 받는다며 크리스마스 몇일 전부터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집도 머리를 잘 쓰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부모에게 그 선물을 사서 보내라고 합니다. 선물의 의미가 그런 것일까마는, 아무튼 아이들은 선물을 받는다는데 기뻐합니다. 교회 뿐만 아니라 도시곳곳은 트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직원인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번에 4천만원 들여 트리장식을 했다고 합니다. 놀랍고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화려하고 반짝반짝 형형색색의 조형물들, 웬지 이날은 마음도 열고 지갑도 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기분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연인등 서로 마음을 표현하며 우정과 사랑을 속삭입니다. 온 세상이 기뻐하며 지구촌에 축제의 날이 된 것 같습니다. 왜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일까요?
지난 주일, 그저께 주보 단상에 예슬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에 왜 교회에서 지루하게 예배드려야 하나, 빨리 놀러가고 싶고, 여행가고 싶은데 라며 과거에 힘들었던 부분을 회상하였습니다. 어쩌면 예슬님의 생각이 온 지구촌에 축제가 벌어지는 크리스마스의 이미지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분명한 가치전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에 자칫 오해의 소지를 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그릇된 해석일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나오는 천사의 말입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충분히 우려할 만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그래서 지구촌에 축제가 일어 나는 것입니까? 축제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의미를 알자는 데 있습니다. 단순히 놀고 먹고 즐기는 날이 아니라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이 어떻게 온 지구상의 축제가 될 수 있습니까?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의 탄생 소식은 그 지역에 밤에 밖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먼저 전해 졌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밤에 밖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자’, 이 일은 보통 고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시대로 보면 야간 노동자에 해당 될 것입니다. 또한 서민이 되며, 좀더 나간다면 보잘 것 없는 자, 가장 작은 자에 해당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인류의 구원자, 곧 메시야를 기다리고, 대망하는 많은 이들 가운데 먼저 전해 졌다는 것입니다. 메시야 탄생 소식은 그것을 기다리는 자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메시야 탄생 소식이 수많은 종교지도자에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밤에 밖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자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메시야까지 화려한 곳에서 태어나지 않고 구유에서 라는 사실입니다.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듯 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고 혹은 스스로 자신이 최고라 자부할 만한 사람에게 메시야 탄생 소식이 전해 진 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고 가장 약한 자에게 있었고, 나아가 탄생도 놀라운 신화나 전설 같은 일이 아닌 말구유라니 말입니다. 그가 과연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요? 누가 그런 일을, 그런 소식을 듣고 경배하며 엎드릴 수 있을까요? 이것이 비합리적이다 생각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역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 만으로도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에게 희망의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를 낮추시고 약한 자를 들어 높이신다는 말이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다시 본문을 보면, 밤에 밖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두루비추매 그들이 크게 무서워하였다고 합니다. 주의 영광을 보면 죽는 다는 전설을 알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상황과 현상에 무서워 할 수 밖에 없었을 듯 합니다.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 존재감, 압도하는 그 무엇, 그 느낌을 알수는 없지만 그들이 크게 무서워했다니 말입니다. 그렇게 크게 무서워하는 이들에게 천사는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며 이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어쩌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영광은 두려움으로 대변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판의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 이미지를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야, 구주, 그리스도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 된다는 것은 그 심판의 하나님에서 기쁨의 하나님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 된다는 방증이 될 것입니다. 그 기쁨이 무엇입니까? 천사들은 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나님께 영광이며 땅에는 평화, 이 말은 같은 말로 해석되어 집니다. 하늘에 영광이 곧 땅에 평화이며 반대로 땅에 평화가 곧 하늘에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방증일 것입니다.
얼마전 한 친구로부터 공의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배경은 제가 어떤 사람에게서 공의가 느껴진다고 하였던데 있습니다. 누군가에게서 공의를 보았다는 말에 공의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에게 공의가 뭐냐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사랑이라 대답하였습니다. 더 어려운 대답 같았습니다만 아마 그 친구의 생각이 인간의 개인 욕심을 부리는 자에게서 공의를 보았다는데서 기인 할 것 같습니다. 개인의 편의와 실리, 사리사욕에 따라 정의와 공의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주의가 아니였을까 생각됩니다. 그러고 보면 공의도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 질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잘 되어야 서민들도 잘 살 수 있다는 것과 서민들이 잘 살아야 대기업도 잘 된다는 것, 같은 말 같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전자에 초점이 맞춰진 현 시대에 얼마나 많은 특혜와 비리, 부정부패가 있었습니까? 그럼에도 서민들도 잘 살고 있습니까? 그런 것을 보고 공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구도를 공의라 말하고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그 세상은 행복이 넘쳐 날 것입니다. 그것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닐까요? 그것이 인류의 구원자 예수의 탄생이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땅에서의 평화가 될 때, 하늘에 영광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이 땅에 반목과 반평화, 반생명이 가득할 때야 말로 하늘에 전혀 영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 땅에 생명과 평화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메시야 탄생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있겠습니까? 메시야 탄생 소식은 밤에 밖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자에게 전해 졌습니다. 이는 가장 작은 자, 약한자, 가난한 자를 통해 우선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기쁨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생명과 평화는 무엇입니까? 모든 상황을 통틀어 자유와 해방일 것입니다. 얽매임에서의 자유, 갇힘에서의 놓임,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탄절의 진정성은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기쁨으로 인해 우리는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탄생을 통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저와 여러분, 온 인류, 지구촌에 전하고 있습니다.
기도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중재기도
온 인류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 탄생을 진심으로 감사와 축하드립니다. 갇히고 메이고 억압당하고 강압된 세상에 자유와 해방, 생명과 평화를 이루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약한자를 들어 강하게 하시니 감사드리며, 그 은혜를 생각하며 귀한 예물드립니다. 쓰이는 곳에 인류에 기쁨이 전해지게 하옵소서.
위탁의 말씀
여러분,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축제에 참여하십시오.
여러분, 세상은 메시야를 두려워합니다.
기쁨을 전하는 자 되십시오.
축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제는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메시야 탄생을 두려워하는 세상 가운데 평화를 이루고자 다짐하는
마가교회 머리머리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실지어다
121225 하늘에 영광 땅에 평화.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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