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원문보기 글쓴이: 기라성
중국의 4대도시 |
1) 북 경 (베이징)
중국의 정치, 문화, 과학, 상업 등의 중심 도시이자 과거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어 관광 도시로서도 유명하다
수도 북경(베이징)의 역사
역사 화북(華北) 대평원과 북방의 산간지대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역사상에 등장하였다. 베이징은 처음에는‘계’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 고대취락의 위치는 현재 루거우차오[蘆溝橋]가 있는 곳, 즉 예로부터 융딩강의 도하지점(渡河地點)이 되어왔던 곳에 인접한 지추라는 작은 언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평야지대와 산간지대 사이의 교통이 빈번해지자 그 교통로의 요충을 차지한 고대취락이 점차 발전하여, 주대(周代) 초에는 연(燕)나라의 도읍(都邑) 계성이 그곳에 조영되었다. 진(秦)/한(漢) 이후 당(唐)나라 말기에 이르는 기간에는 대체로 유주(幽州)의 치소(治所)로서 동북변방(東北邊方)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다. 2차에 걸쳐 실패를 거듭한 한민족(漢民族)의 고구려(高句麗) 침략, 즉 수양제(隋煬帝)와 당태종(唐太宗)의 고구려 원정 때에는 다같이 계성을 그 원정의 전진기지로 삼았고, 당태종은 고구려에 패한 뒤 전몰장사(戰歿將士)의 넋을 애도하여 민충사(憫忠寺:지금의 베이징 외성에 있는 法源寺의 전신)를 건립하였다. 오대(五代)에 이르러 요(遼)나라는 938년에 이곳을 부도(副都)로 삼아 남경(南京)이라 하고, 요나라를 물리친 금(金)나라는 처음 연경(燕京)으로 부르다가 1153년에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도(中都)라고 고쳤다. 다시 몽골족이 남하하여 중도성(中都城)을 빼앗은 뒤 쿠빌라이(世祖) 때에 신성(新城)을 건설하고 국도로 정하여 대도(大都)라고 명명하였다. 몽골족이 중국을 통일하여 원(元)나라를 세우자 대도는 중국 전역을 지배하는 정치중심지가 되었고, 마르코 폴로는 칸발릭(Khanbalik)이라는 도시명으로 그 호화로운 번영상을 기록하고 있다. 명대(明代)에는 처음 국도를 지금의 난징[南京]에 두었다가 1420년에 영락제(永樂帝)가 이곳을 국도로 정하고 북경(北京)이라 하였는데, 베이징이라는 명칭은 이때에 비롯되었다. 명대에는 남문(南門) 밖에 외성(外城)을 구축하고 북부의 성역(城域)을 대도 때보다 축소하여 내성(內城)이라 불렀는데, 그 내/외성이 지금의 베이징성의 규모를 이루고 있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淸)나라도 1644년 이후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국도로 하였는데, 만주족과 한민족의 거주지역을 구분하여 내성에 만주족, 외성에 한민족을 살게 하였다. 중화민국(中華民國) 시대에도 계속 이곳을 국도로 삼았으나 북벌(北伐) 완성 뒤 난징으로 천도하여, 이곳을 베이핑[北平]으로 개칭하였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다시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모두 아는바와 같이 2008년 제29회 하계올림픽 경기대회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경제 종래 스징산 제철소의 중공업 외에 소비재공업이 활발하였으나, 역시 소비도시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공산정권 수립 후 계획경제가 실시되어, 시역(市域) 서부에 종전의 스징산 제철소 및 징시탄전[京西炭田]을 바탕으로 대규모 철강콤비나트가 형성되고, 동부/북동부/남부에도 새로운 공업지대가 형성되어 기계/전자제품/철도차량/전기기기/합성섬유/플라스틱 등 중화학공업, 면방직/모방직/식품 분야로 발전하였다. 경태람(景泰藍:七寶)/옥기(玉器)/상아조각(象牙彫刻)/칠기 등 전통 수공예공업도 이루어진다. 징시탄전은 매장량 20억t의 풍부한 무연탄전으로, 스징산에는 그 무연탄을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소가 있고, 또 융딩강 상류의 관팅댐 외에도 차오바이강 상류의 미윈댐, 원위강[溫楡河] 상류의 스싼링[十三陵]댐·화이러우[懷柔]댐 등 다목적댐 축조에 의해 건설된 발전소에서도 전력이 공급되고 있다. 교통 주요 간선철도의 기점이 되어, 그들 철도에 의해 티베트/윈난성[雲南省]을 제외한 모든 성(省)/자치구의 중심지와 연결되어 있다. 베이징을 기점으로 산하이관[山海關]/광저우[廣州]/바오터우[包頭]/청더[承德]/퉁저우[通州]/상하이[上海] 등지로 철도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한편 모스크바/울란바토르/평양(平壤)/하노이 등지에 이르는 국제열차가 있고, 둥청구 남동쪽에 1956년에 새로운 베이징역(驛)이 건설되었다. 공항은 시가지 북동쪽 50km 거리의 순이현에 있으며 국내선과 국제선이 열려 있다. 베이징의 외항인 톈진신강[天津新港]에서 중국의 연안 각성(各省) 및 아시아/유럽 제국과 해상교통이 열려 있다. 시내교통은 주로 트롤리버스와 버스에 의존하고 있는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1970년에는 전장 23km의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학술 중국 최대의 학술/문화 중심지이다. 중국과학원의 각 연구소를 비롯하여, 베이징대학교/칭화[淸華]대학교/베이징사범대학/중국인민대학/중국민족학원 등 20여 개의 대학/전문학교가 있다. 또 전국 최대 규모의 베이징도서관/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 및 민족문화궁(民族文化宮)/혁명박물관/역사박물관/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많다. 고궁박물원은 옛 명(明)/청(淸)나라의 왕궁이었던 자금성(紫禁城)을 박물관으로 전용(轉用)한 것이고, 역사박물관/혁명박물관은 톈안먼[天安門] 앞 광장 동쪽에 1959년에 완공한 건물로, 같은해에 그 맞은편의 광장 서쪽에 건립한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국회의사당) 등과 더불어 중국이 자랑하는 10대 건축에 포함된다. 고도(古都) 1000년의 역사를 가지는 고도(古都)인 만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명승·고적이 시역 안에 산재한다. 성구(城區)의 중심을 이루는 옛 왕궁 자금성은 현재 박물관이 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고궁 안의 여러 전(殿)·당(堂)·궁(宮) 등이 진열실로 이용되어, 중국 역대의 채도(彩陶)/청동기/칠기/직물/조각/회화 등 예술품을 진열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그 문루에서 1949년 10월 1일 중공정권의 수립을 선언하였고, 또 1966년에는 홍위병(紅衛兵)을 열병한 바 있다. 외성 안 남동부에는 본래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는 장소였던 톈단[天壇]이 있는데, 현재는 공원으로 체육장, 기타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성내 북동쪽에는 현재 수도(首都) 도서관으로 이용되는 국자감(國子監) 및 공자묘(孔子廟)/융허궁[雍和宮:라마교 사원] 등이 있다. 이허위안[和園]·샹산[香山]공원·워포절[臥佛寺] 등은 특히 수려한 경치로 알려져 있고, 또 명(明)나라의 스싼링과 지하궁전도 유명하다. 북방의 만리장성(萬里長城)과 쥐융관[居庸關]·팔달령[八達嶺] 등의 유적지도 시역에 위치하고 있다. |
(구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평균기온(°C) |
-4.6 |
-1.8 |
4.7 |
13.6 |
20 |
24.5 |
26 |
24.7 |
19.8 |
12.7 |
3.9 |
-2.6 |
최고기온(°C) |
1.4 |
4.2 |
11.2 |
20.2 |
26.5 |
30.7 |
31.3 |
29.9 |
26 |
19.6 |
10.1 |
3.1 |
최저기온(°C) |
-9.6 |
-7 |
-.8 |
6.9 |
13.1 |
18.2 |
21.5 |
20.4 |
14.3 |
6.9 |
-.7 |
-7.2 |
평균강수(㎜) |
3.9 |
4.7 |
8.2 |
18.4 |
33 |
78.1 |
224.3 |
165 |
58.4 |
18 |
9.3 |
2.7 |
볼 만한 관광지가 무척이나 많다. 시간적으로 충분하지 않기도 하고, 중국에 가서 베이징만 돌아볼 수는 없으므로 욕심을 내서 무조건 다 보려고 하면 오히려 나중에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적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본인이 원하거나 관심있는 분야의 코스를 미리 정하여 보는 것이 좋다. 이때 자신이 관심있던 분야를 주로 돌아볼 수 있게 되면 독특한 관광이 될 것이다. | |
베이징의 시내는 18구(區)로 나누어 진다. 구내성(舊內城), 구외성(舊外城), 성외(城外) 지역 등이다. 그리고 베이징 시에서 가까운 교외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지역별로 관광명소가 많이 있으므로 골고루 돌아본다. 구내성 : 명(明)대에 완성된 자금성의 성벽 안쪽을 말한다. 지금은 도시개발로 성벽이 없어졌지만 그 흔적은 2환로라고 하는 도로로 남아 있다. 구외성 : 내성이 인구 증가로 팽창된 부분이다. 현재 첸먼의 남쪽 일대를 가리킨다. 성외 : 구내성/구외성 바깥을 가리킨다. 교외 : 위 세 지역을 제외한 베이징시의 외곽 지역 |
천안문 야경 |
천안문 광장 | |
북경 백탑사 | 백운관 패루 | |
북경동물원 | 광제사 | |
고관상대 | 북경천문관 | |
법원사 | 아운촌체육중심 | |
로구교 | 자죽원공원 | |
팔대처 | 원명원 | |
북경식물원 | 벽운사 산문 | |
팔당령 장성 | 수관 장성 | |
황제성 | 북해공원 |
만리장성 | 이화원 | 북경용경협 |
북경해정구 | 천단 | 명십삼릉 |
향산 | 북해 | 북경백조 |
고궁 북쪽에 있는 경산공원으로 간다. 경산을 올라가 보면 베이징 시내가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고궁이나 시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 빨리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상태라면 처음의 바람은 충족될 것이다. 이곳에서 일단 베이징 시내를 조망한 후에 베이징 관광의 하일라이트인 고궁박물관에서 천안문으로 가는 코스를 돌아본다. 천안문 광장에서 첸먼(前門)대가를 남쪽으로 약 30분 정도 내려가면, 천단공원에 도착한다. 밤에는 베이징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왕푸징(王府井)의 야시를 구경하면서 걸어보는 것도 좋다. 아침식사, 경산공원-고궁박물관-천안문-첸먼(前門)대가-천단공원 저녁식사-왕푸징(王府井)대가---->오른쪽 그림 : 경산공원 |
|
일일 코스에다 하루를 더 플러스하여 북쪽 교외에 있는 만리장성을 관광하고 돌아오는 도중 명13릉을 돌아본다. 여기에 시간적 여유가 조금 더 있다면 이화원을 돌아본다. 그리고 저녁에 시간이 나면 베이징의 서커스쇼를 본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너무 욕심을 내서 모두 돌아보려고 하면 오히려 수박 겉핥기식이 되어 충실해야 할 여행 계획이 망쳐질 수도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는 적당히 가지치기를 해가면서 취사선택을 하는 것이 좋다. 제1일 : 아침식사, 경산공원-고궁박물관-점심식사, 천안문-첸먼(前門)대가-천단공원-저녁식사, 왕푸징대가 - 제2일 : 아침식사, 만리장성-명13릉-점심식사, 이화원 |
|
하루에 베이징의 유명한 요리를 섭렵할 작정인 사람은 우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珠市口西大街의 아침 시장에 가본다. 여기에 즐비하게 열려 있는 노점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먹고,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즐겁다. 점심은 첸먼대가로 옮겨서, 베이징오리요리 전문점인 전취덕고압점(全聚德火考鴨店)에서 독특한 맛을 감상해본다. 같은 거리에 있는 월성재(月盛齋)에서 오향장육을 사는 것도 괜찮다. 이후 다샤랄(大柵欄)의 육필거에서 물건을 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녁에는 정평이 나 있는 궁정요리집인 방선반장에서 하루의 관광을 끝맺는다면 베이징에서 유명한 요리는 맛을 본 셈이다. 주시구서대가(珠市口西大街)의 아침 시장-베이징오리 요리전문점-全聚德火考鴨店-月盛齋-궁정요리집-방선반장 |
|
쇼핑을 하기 위해서는 걸어다녀야 하므로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아침은 든든히 먹어두자. 시작은 첸먼거리에서 하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상품의 가격을 눈여겨 보면서 다시 다샤랄 거리로 가보자. 다음으로 류리창에서 문구류를 물색한 후에 왕푸징 거리를 가보는것이 좋다. 첸먼(前門) 대가-다샤랄(大柵欄)-류리창-왕푸징 대가-우의상점 |
|
베이징의 핵심인 고궁박물원을 관광한 후, 북해공원으로 간다. 그리고 나서는 베이징 서북쪽 교외에 있는 이화원을 돌아보자. 이렇게 하면 베이징에서 볼 수 있는 청조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코스이다. 고궁박물원-북해공원-이화원 |
|
각 종교의 특성을 비교하면서 사적들을 돌아보면 재미있는 주제 여행이 될 것이다. 삼장법사의 머리뼈 조각이 잠들어 있는 당대의 절인 법원사, 종의 여러 종류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콜렉션이 되어 있는 대종사, 석가열반상을 모시고 있는 당대의 고찰인 와불사, 명나라 때의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인 선무문내 천주당, 중국에 현존하는 최대의 도교사원인 백운관, 회교도 거리에 세워진 중국의 독특한 회교사원인 우가청진사, 그리고 베이징의 유일한 라마교사원인 옹화궁 등이 있다. 이것들을 둘러보면서 각 종교가 갖고 있는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
하루의 관광 선택은 일정과 관광할 명소의 위치를 생각해 설정한다. 베이징의 구역을 적당하게 나누어서 한 지역 안의 관광 명소를 효율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 . 베이징의 구분을 참고하여 이동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는 계획으로 시간의 손실을 줄인다 . 베이징 특유의 문화를 볼 수 있도록 구석구석 살펴서 골고루 보도록 한다 . |
2) 상해(상하이)
2003년 말 기준으로 18개區、1개현,118개의 진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해의 총면적은 6,184 ㎢이다.
상해시의 인구는 2006년 기준 : 1,815만명이다
GDP는 10296.97조 위안이며, 제1산업 증가치 93.81억위안,비상년증장 : 0.8%, 제2산업 증가치 4997.81억위안,
증장12.8%, 제3산업 증가치 5205.35억위안,증장11.5%. 제3산업 증가치 점전시생산 총치적비중위 : 50.6%이다.
6000 년의 역사속에서 중국의 어떤 도시보다 서양의 문물을 빨리 , 쉽게 받아 들인 곳이기에 중국의 다른 도시와는
색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며 , 다양한 볼거리 , 놀거리 , 먹을거리로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
상하이시(上海市)는 북위 31도 14분, 동경 121도 29분에 위치해 있으며,
창강(長江) 삼각주 입구에 놓여 있고 동쪽으로는 동해에 인접, 남으로는 항저우(杭州)만에, 서쪽으로는 쟝쑤성과 저쟝성(浙江省)이 인접, 북으로는 창강 입구와 맞닿아 있다.
중국 남북해안선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지역이 광활 하여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항구 도시이다.
상해의 평균적인 기후
(구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평균기온(°C) |
3.3 |
4.2 |
8.2 |
13.7 |
18.8 |
23.1 |
27.4 |
27.3 |
23.2 |
17.7 |
11.7 |
6.1 |
최고기온(°C) |
7.8 |
8.7 |
13.0 |
19.0 |
24.2 |
27.9 |
32.1 |
32.2 |
27.9 |
23.0 |
16.9 |
10.8 |
최저기온(°C) |
0.0 |
1.1 |
4.6 |
9.9 |
14.9 |
19.8 |
24.1 |
24.0 |
19.9 |
13.8 |
7.8 |
2.2 |
평균강수(㎜) |
46.9 |
61.4 |
84.5 |
94.8 |
103.8 |
173.6 |
145.0 |
136.8 |
138.2 |
69.2 |
52.3 |
37.3 |
상해는 석유, 에너지, 석탄, 수력자원 등이 자체 생산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필요한 에너지는 모두 다른 성 등에서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정한 수량과 품질의 "2차 에너지"생산력을 갖추고 있다. 주요 품목으 로는 전력, 석유 등 유류와 석탄가스(액화석유가스 포함), 점결탄 등이 있다. 기타 활용 가능한 에 너지로는 메탄가스, 풍력 에너지, 조력 에너지, 태양열 에너지 등이 있다. |
상하이 하천망은 대부분 황푸강 수계에 속하는데 타이후(太湖) 에서 시작되어 총 연장 113Km 이다. 시내를 관통하는 황푸강(黃浦江)의 폭은 300-770m 정도이며 평균 360m 에 달한다. 황푸강은 넓고 수심이 깊으며 결빙기가 없어, 상하이(上海)의 중요한 수상 통로이기도 하다. 연간 수자원 총량 27억 ton, 일인당 사용량 200ton 정도이다.. |
전국 중점 문물보호 지역으로 열거된 곳만 13곳에 달한다. 지금까지도 중국 당, 송, 원, 명, 청 이래의 고적과 특색있는 정원들을 보유하고 있다. 90년대 이후로는 국내외에서 이름을 떨칠만한 건축물을 구축하여 매력적인 도시풍경을 자아내고 있어 새로운 여행 관광지로 부상했다. 둥팡밍주 방송탑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도시의 녹색 폐"로 불리는 인민광장과 외탄 등 특색 있는 동서양 건축물등이 있다. | |
영국에의해 중국 최초로 개방될 당시 서양에 개방된 첫 항구도시. 오랜기간의 외국 조계지로 화려한 모습 속에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해는 1945년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로 재탄생한 이후부터 등소평에 의한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되기 전까지는 중국의 여느 도시와 같이 별 다른 발전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방이후 90년대 중앙정부가 이곳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서 동양의 또다른 홍콩을 꿈꾸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세계적인 경제중심 도시가 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
임시정부 27년의 역사 중 13년 동안 이곳을 청사로 사용했다. 중국당국에서 철거할 계획까지 세웠으나 중국과 수교후 우리나의 요청으로 그대로 남게 되었으며, 1992년부터 새롭게 단장되었다. 현재는 상해시에서 유적지로 지정하여 직접 관리를 하고 있다. 1층에는 회의실과 주방, 2층에서는 이승만, 박은식, 이동녕 등 요인들이 사용하던 집무실이 있고, 3층에는 요인 숙소가 있다. 그리고 3층 전시관에는 임시정부 약사와 대한독립 선언서,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여권,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사진, 독립신문 등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
|
상해박물관 |
중국 4대 종합예술박물관 중 소장품이 가장 많은 곳으로 1952년에 세워졌으며, 약 10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청동기, 도자기, 회화, 조각, 가구, 도장, 화폐, 불상 등을 테마로 전시하고 있는데, 유물의 가치나 전시기법 면에서 중국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1994년에 새롭게 건설된 박물관 건물 또한 현대적이다. |
|
상하이 도시계획전시관 |
상하이대극장과 높이가 비슷하며, 지상 6층, 지하 2층으로 되어 있다. 전시실에는 1930년대 상하이의 도시계획 모형 뿐만 아니라 '비약하는 상하이'를 주제로 한 상하이 모형과 도시계획 구역분할 모형 등이 진열되어 있다. 전시실 돔의 화살형 골조는 높은 곳에서 보면 정사각형이 망 모양으로 모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도시계획의 요소 중 하나인 '네트워크'를 강조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45m 길이의 지하거리가 있는데,2001년 2월 28일 개관함. |
|
용화사 |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삼국시대인 242년 오나라의 손권이 창건하였다. 태평천국의 난 때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청나라 말에 다시 복원되었다. 절 맞은편에는 상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높이 40.4m의 7층 8각탑인 용화탑이 있다. 벽돌과 나무를 이용해 만든 탑신은 짙은 갈색과 노란빛이 조화를 이뤄 차분한 느낌을 준다. |
|
베상양시장 |
베샹양시장은 판매되는 물건의 종류가 다양하여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또한 많이 찾는 곳이다. 1평 남짓한 상가들이 오밀조밀 붙어있으며, 이곳의 상가들은 마치 미로처럼 밀집되어 있어서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될 만큼 복잡하다. 이곳의 물건들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제품의 품질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너무 고가나 다량으로 많이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흥정을 통해 충분히 싸게 살 수 있음. |
|
상해동물원 |
위치 : 상해 홍차오공항 근처 상해동물원은 판다와 양자강악어, 금발머리 원숭이 등 진기한 동물이 많기로 알려진 곳이다. 원내에는 약 450종의 동물이 사육되고 있다. 비둘기,기린에게 먹이를 줄 수 있고 동물 쇼를 볼 수 있다. 동북 호랑이,양자강의 악어와 유명한 팬더 뿐 만 아니라. |
남휘구 | 포동신구 | 사산 |
예원 | 해양수족관 | 상해성시규화전시관 |
학명루 | 중산고거 | 상해동물원 |
송경령고거 | 양포대교 | 상해문묘 |
상해세관 | 황염배 고가 | 동평국가삼림공원 |
숭명학궁 | 금색탄도 | 광복사 |
금오산 | 상해남경로 보행가 | 흠사앙전 |
상해박물관 | 송강풍경구 | 금산구 |
주공관 | 상해해양수족관 | 인민광장 |
외탄관광수도 | 용화사 | 황포강유람개 |
3) 천진(티엔진)
천진은 북경, 상해, 중경과 함께 중국 4대 직할시 중의 하나이다.
북방 최대의 무역항구 도시이다.
천진이라는 이름은 천자(天子)가 이곳의 항구로 들어왔다 해서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위도 38, 동경 116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북 평원의 동북부, 황하 유역 하류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발해(渤海)에, 북쪽으로는 연산(燕山)에 접해 있다.
총면적은 11919㎢이며, 남북 약186㎞, 동서 약 101㎞이며 시 둘레는 900㎞미터, 그중 해안선이 153㎞이다.
시 중심에서 서북쪽 120㎞에 수도 북경이 위치에 있으며 동쪽 50㎞에 발해만이 위치에 있다
2006년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인구는 1,075만 명이다.
한족이 97.69% 를 차지하고 44개의 소수민족이 존재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회족이 제일 많고, 몽고족, 장족, 조선족 등의 순으로 인구가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13개 구, 5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5년 천진적 6대우핵산업공 완성공업 총생산 : 4851.4억위안,동비 증장23.4%,"규모이상" 공업총산치적비중달도 : 71.6%,
대전시공업증장적공헌솔달도78.6%;실현이윤 : 520.2억원,증장 : 27.2%
천진의 평균적인 기후
(구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최고기온(°C) |
1.1 |
3.9 |
10.8 |
20.0 |
26.6 |
30.5 |
31.5 |
30.4 |
26.3 |
19.7 |
10.2 |
2.9 |
최저기온(°C) |
-8.3 |
-6.0 |
0.0 |
7.7 |
14.0 |
19.2 |
22.5 |
22.0 |
16.5 |
9.1 |
0.8 |
-5.7 |
평균기온(°C) |
-3.9 |
-1.2 |
5.1 |
13.7 |
19.9 |
24.5 |
26.7 |
25.8 |
21.0 |
14.1 |
5.1 |
-1.9 |
평균강수(㎜) |
2.3 |
3.1 |
7.1 |
20.6 |
30.5 |
64.1 |
165.2 |
150.4 |
45.1 |
17.6 |
9.3 |
2.7 |
수나라 대운하의 개통 때부터 천진은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17세기 이래로 경제, 사회 방면에서 그 규모가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1900년대 초반에는 잠시 외세에 의해 자치권을 점령당했다. 이러한 외세의 영향은 아직도 유럽식 건축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천진은 비록 관광도시이기 보다는 경제 도시로 유명하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 요소를 지니고 있다. 현재 수도 북경과 바다를 이어주는 관문의 도시이기도 하다. |
발견된 금속, 비금속 및 에너지자원 등을 포함하여 약 30여종 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금속광물과 비금속광물은 주로 북부산악지대에 분포되어 있는데, 망간, 텅스텐, 몰리브덴 등 금속광물은 10여가지 종류가 매장되어 있다. 그 중 중국 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망간붕소광은 매장량이 228만 톤으로 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자원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비금속광물로는 백운압, 유화철광, 중수정석, 대리석 등의 다양한 종류가매장 되어있고 이는 천진 경제기술개발구 嘉泰도자기회사에서 紫砂陶土를 이용하여 생산 한 도자기는 세계에서도 높은 항압강도(抗壓强度)를 인정받고 있다 |
천연가스와 석유의 석탄 등의 에너지자원도 매장량이 풍부하여 전국적으로도 중요 한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渤海(발해)유전과 大港(대항)유전은 국가에서 중점적으 로 개발하는 석유, 천연가스지역으로 매년 생산량이 각 원유 500여 만 톤, 천연가스 6.5억㎥이다. 천진 동남부에 위치하고 1964년 개발된 大港油田(대항유전)은 중국의 유명한 유전의 하나로 면적은 8만여㎢, 원유매장량은 4.47억 톤, 천연가스 매장량은 140억㎥이다. 또한 渤海만에 위치한 渤海油田의 원유매장량은 10억 톤으로 추정된다. 풍부한 석유자원과 천연가스는 천진시가 석유공업과 석유화학공업의 메카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초가 되고 있다. 천진시에는 석탄 매장량도 풍부하여 대부분 평야지역의 지하 1000여m에 분포되어 있다. 석탄의 분포지역은 천진시 총 면적의 절반정도를 차지하며, 이미 발견된 蘇寶 지역은 면적이 145㎢이고 매장량이 5∼8억 톤에 달한다. 주로 고품질 무연탄과 肥氣 석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타 에너지 자원으로 천진 지역에 비교적 풍부하게 매장된 지열자원은 분포면적 800여㎢이고, 온수 총매장량은 200억톤, 수온은 30∼98℃정도이다. 현재 천진시에서는 10개의 투자 및 개발의 경제성이 있는 지열지대을 발견하였고 이는 천진시의 1/4을 차지하며 현 중국에서 제일 큰 중저온 지열지대이다. |
주로 소금(해염), 석유와 수산자원으로 구성되 어 있다. 천진시의 30여㎞에 이르는 해안선에는 막대한 해염자원이 있는데 이는 중 국 최대염전인 장로염전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품질이 우수하여 염화나트륨의 함량이 96-98%에 이르며 생산량은 연 2000여만톤으로 전국 소금생산량의 1/4을 차지하여 생산된 소금의 절반이상은 중국내 성, 시, 자치구에 공 급되며 해외에도 대량 수출된다. 발해어장으로 불리우는 연해지역은 면적 약 2100㎢ 로서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70여종의 어류자원이 있으며 양식업이 발달 되어있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왕새우와 바다게, 강게, 뱅어, 조기 등이 유명하다. |
중국 최대의 공업도시로서 제일의 인공항구를 자랑하는 천진은 역사, 문화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주은래의 모교인 남개대학이 있고 천진역사박물관, 자연박물관, 예술박람관 등 수많은 진귀한 보물과 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많다. 다른 도시에 비해 관광할 만한 명승고적은 없지만, 중국의 발달된 면모를 체험할 수 있는 산업도시로서 우리나라와도 많은 교류의 다리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고문화가(古文化街) 길이가 687m이며, 폭은 5m인 쇼핑 거리이다. 원나라 태정 3년(1326년)에 천후궁(天后宮)이 지어졌는데, 명대에는 상인들이 몰려 번영하기 시작했다. 건국 후에는 천후궁이 쇄락하기 시작했으나, 1989년 '고문화가(古文化街)'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활성화되었다. 거리의 양측에는 명청대의 풍격을 모방하여 만든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2층짜리 건물이 있고, 고문화가 안에는 80여개의 점포가 있다. 그리고 각 점포의 현판에는 당시의 서예가나 명인이 쓴 글씨가 씌여 있다. 1991년에는 천진 십대 명소 중 한 곳으로 뽑히기도 했던 유명한 곳입니다. | |
구불리 만두(狗不理飽子) 돼지고기와 각종 재료로 속을 만들고, 불완전 발효된 밀가루를 이용해 만두를 빛는다. 모양이 보기 좋고, 백색의 부드러운 표면과 풍부한 육즙이 배어나오는 음식이다. 청나라 시기, 고귀(高貴)라는 사람이 14세 되던 때, 천진으로 와서 만두집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고집이 남다르게 강했던 그에게 부모는 "구불리"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는데, 만두이름은 별명에서 유래하고 그 후 원세개가 태후에게 진상을 한 후 유명해졌으며, "천진에 와서 구불리 만두를 먹지 않으면, 천진에 오지 않은 것과 같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임 | |
스빠지에 마화(十八街麻花) 천진 대고(大沽) 남로(南路)의 18가에서마화(꽈배기)가게에서 만들어 팔았고 사람들은 가게의 이름보다는 가게가 있었던 18가를 따서 18가 꽈배기 즉, 스빠지에마화(十八街麻花)로 불렀다. 이들이 만든 마화에는 복숭아씨 알맹이와 매실, 물풀레나무 등 10여 종류의 재료들을 섞은 다양한 소를 넣은 흰반죽(시럽과 밀가루로 만든 반죽)과 마반죽(참깨를 뭍힌 힌반죽) 두줄기를 꼬아 5개 꽃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마화는 바삭하면서도 달콤할 뿐 아니라 몇달을 두어도 물렁물렁해지거나 상하지 않는다. | |
얼두어옌 튀긴 찹쌀떡이다. 햇 기장찹쌀을 물과 함께 갈아 발효 시킨 후 소다와 함께 반죽한 후 팥으로 만든 소를 넣고 참기름으로 튀겨 금황색을 띠는 얼둬옌 짜까오는 바삭바삭한 껍질과 쪽득쫀득하면서 달착지근한 단팥 속이 어떤 다른 짜까오와는 다른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한다. 청대1892년 천진에 살던 유만춘(劉萬春)이라는 사람이 이 맛있는 짜까오를 길거리서 만들어 팔다가 그 독특한 풍미와 맛이 점점 소문이 나면고 다른 곳과 달리 바로 만들어 바로 팔면서 그 고유의 신선한 맛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었기에 하루종일 가게는 문전 성시를 이루었다. 얼둬옌 짜까오로 불리면서 고유명사가 되었다. |
남시식품가 (南市食品街) |
중국고대 궁전 건축 양식을 채택하여 지어졌으며, 1989년에 남시여관가(南市旅館街)와 더불어 "雙城醉月"이라 하여 천진의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남시식품가는 성과 비슷한 구조로 4개의 문이 십자로 형태로 서로 통한며. 남시식품가를 성처럼 둘러싼 3층 건물, 외부는 고풍스럽게, 내부는 현대적으로 각각 특색있게 꾸며져 있다. 여기에서는 중국의 8대요리로 불리우는 사천요리, 산동요리, 광동요리, 호남요리, 강소요리, 절강요리, 복건요리, 안휘요리와 더불어 북경요리, 이슬람 요리 및 각종 구이요리는 물론 양식과 일식등도 맛 볼수 있다. 맛 볼 수도 있고, 선물용 포장으로도 구입할 수 있다. |
|
주은래기념관 (周恩來紀念館) |
전 중국 총리였던 주은래는 원래 북경에서 기차로 24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소흥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천진에서 학교를 다녔고, 이후에 이 도시에서 그가 다녔던 오래된 학교는 기념관으로 바뀐 것이다. 이 곳에는 천진, 일본, 유럽을 무대로 한 주은래의 활동을 4기로 나누어 그의 젊은 시절(1913-1917)을 엿볼 수 있는 많은 사진들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
|
독락사 (獨樂寺)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으로써, 천진에서 약 113㎞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당대에 지어졌으며, 산문(山門)은 독락사의 대문으로, 위에는 "독락사(獨樂寺)" 라는 세 글자가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명나라 관리 엄숭(嚴嵩)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관음각 내에는 16m 높이의 관음입상소조상이 있는데, 관음상은 머리에 10개의 작은 부처 머리가 있어서 '11면관음(11面觀音)'이라고 칭해진다. |
|
수상공원 (水上公園) |
천진의 남서쪽 올림픽 경기장 바로 옆에 위치한 수상공원은 공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큰 호수가 있다. 호수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 할 수 있다. 1951년에 세워졌으며 공원 내의 동물원에서는 팬더를 만날 수 있다. 공원 맞은 편에 위치한 천탑(天塔)이 위치 해 있고 새로운 볼거리인 올림픽 경기장 오른편에 있어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보는 관광지이다. |
|
천탑 (天塔) |
천탑호(天塔湖) 가운에 우뚝 솟아있다. 천탑의 높이는 415.2m로 세계에서 4번째, 아시아에서 2번째로 높으며 TV,방송 수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천탑은 크게 탑기(塔基), 탑좌(塔座), 탑신(塔身) ,탑루(塔樓), 천선(天線) 다섯 부분으로 나눠져 있으며, 248m~278m 사이의 탑루 내에는 전망대와 회전식 레스토랑이 있다. 2층의 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있어 반경 백리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으며, 회전식 레스토랑은 한번에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동시에 조금씩 돌아가는 레스토랑의 창밖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
반산 (盤山) |
판산이라 불린다. 천진 서북쪽에서 1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또한 북경의 동쪽에 위치해 있기도 해서 "경동제일산(京東第一山)"이라고 칭해졌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동한 말년에 전주(田疇)가 헌제(獻帝)의 상을 받지 않고 이 곳에 은거하였는데, 이 때부터 사람들은 전반산(田盤山)이라고 불렀고, 줄여서 '반산(盤山)'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동서의 20㎞이고, 남북의 높이가 10㎞이며, 중국내에서도 유명한 산으로 꼽히고 있다. |
천진개발구 | 천탑호 | 천진민간화회 |
대반산 | 독악사 | 천진수상공원 |
황애간장성 | 망해루 | 천진 장학량 고가 |
길홍창 고가 | 양류청삼림공원 | 리화대루 |
천후관 | 대비선원 | 각오사구지 |
원세개 고가 | 리숙동 고가 | 석취원 |
부의구가 | 천성사 | 태평채 |
계현백탑 | 천탑선운 | 천탑호 |
천탑호 | 천탑호 | 천탑호 |
천탑호 | 천탑호 | 천탑호 |
4) 중경(총칭)
총 40개의 행정구현, 15개의 구, 4개의 현급시,21개의 현 49개 민족, 총 시의 총인구는 2006년 기준 : 2,808만명이고,
2006년 발표자료에 의하면 중경시의 GDP는 3486.20억위안,2005년 대비 성장 : 12.2%
제1산업 : 428.54억위안
제2산업 : 1500.07억위안,증장16.8%
제3산업 : 1557.59억위안,증장13.8%
지형은 대체로 산지이나 남쪽부터 양자강으로 갈수록 낮은 지형의 구조이며 서북 및 중부는 구릉성의 산도 있다.
동남부는 대파산맥 및 무릉산맥과 접하고 있다
1997년 8월에 전국 4대 직할시로 지정됨.
중경의 평균적인 기후
(구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최고기온(°C) |
9.4 |
11.5 |
16.7 |
22.1 |
25.9 |
28.1 |
32.2 |
32.8 |
26.4 |
21.2 |
15.7 |
10.9 |
최저기온(°C) |
5.5 |
6.9 |
10.8 |
15.0 |
18.9 |
21.4 |
24.4 |
24.4 |
20.3 |
16.1 |
11.5 |
7.1 |
평균기온(°C) |
8.1 |
9.8 |
14.4 |
19.1 |
22.8 |
25.5 |
28.9 |
29.1 |
24.4 |
19.0 |
14.3 |
9.8 |
평균강수(㎜) |
17.9 |
20.8 |
37.9 |
94.1 |
147.9 |
173.7 |
150.9 |
127.6 |
143.8 |
103.4 |
49.0 |
22.5 |
3,0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역사 문화 도시이다. 1189년부터 현재의 중경이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다. 기원전 10세기경 巴人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이 중원과 다른 독자적 문화를 형성했던 곳이다. 따라서 중경과 성도를 포함한 지역을 巴蜀이라고도 한다. 秦대에 중국에 편입되었으며 남송 초기에 현재의 명칭이 확정되었다. 항일전쟁시기 국민당정부의 임시 수도였다. 중국 명, 청나라 때부터 물류집산지이며, 1891년 대외통상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중앙직할시로 지정되었다가 四川省 관할지역으로 편입되었고 이후에 위에서 밝힌 바 대로 1997년 8월 직할시로 승격하였다. |
삼협 수상 운수선의 시발점이며 수많은 삼협 유람선의 시발 및 종착 항구로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연평균 기온이 18℃이며, 가장 추운 1월 평균기온이 7℃로 춥지 않다. 단 여름에는 최고 온도가 43.8℃까지 올라가서, 무한, 남경과 함께 장강 유역의 "3대 화로"로 불린다. 면적은 8만㎢이며, 인구는 3,000만여 명이다. 사계절이 분명하고 자원이 풍부하며 교통이 발달되어 있어서 많은 관광객과 비지니스맨들이 찾는 곳이다. 또한 카르스트 지형으로 동굴, 온천, 협곡 등이 많다. 아열대 계절풍 기후로 연중 비교적 따뜻한 편이나, 습도가 높아, 겨울철에는 실제 체감 온도는 무척 추운편이며 여름철도 무척 더운편이다. |
소수 민족을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은 불교를 믿고 있다 청년 계층들 위주로 기독교와 천주교도 상당한 교세를 가지고 있는 추세이다 중경사람들은 북경이나 상해인에 비해 성격이 비교적 직선적이다. 체구는 왜소한 편이며 지역의식이 강하다. 현지 방언은 북경 표준어에 능통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 또한 중경 토박이들은 성격 그대로 매운 음식을 아주 좋아하며, 지방어를 많이 사용하여 보통어 수준이 낮은 편이다 |
장강(長江)과 가릉강(嘉陵江)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중국 서남지구의 중요한 공업기지이다 |
무산 ( 巫山 ) |
장강삼협 유람선은 이창을 출발하여 파동을 지나 무산을 향하게 된다. 전설로 가득찬 신비한 협곡이라 불리는 파동부터 무산간의 무협이 이곳에 있는데, 장강의 세 협곡 중 가장 아름답고 신미하다고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이곳 무산은 장강변의 작은 마을로 소삼협 유람의 거점이므로 여객선 모두가 이곳 무산항에 정박하고 무협 입구의 장강에 면한 종유동인 육유동과 명, 청시대의 명진인 대창고진이 있어서 잠시 머무르는 동안 들러봐도 좋을 것이다. 육유동에는 장강을 굽어볼 수 있는 곳에 차를 마실 수 있어 여행 중에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임. |
| ||
홍암촌 (紅岩村) |
중경 시내에서 8㎞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곳의 이름은 지질성분이 주로 쥐라기의 붉은 혈암으로 이루어진 데에서 연유된 이름이다. 주은래 등 유명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일찍이 이곳에서 생활했다. 1945년 8월 28일에는 공산당의 모택동과 국민당의 장개석이 '국공담판'을 벌이면서 41일을 이곳에서 지냈다. 관내에는 혁명 당시의 투쟁 상황을 반영하는 각종 유물, 사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
| ||
파만자묘 (巴曼子墓) |
파만자는 2천여년전 전국시대 巴국의 장군이다. 동주말기 파국 장군 파만자는 楚나라에 병사를 파견하여 내란을 평정하여 주면 3개 도시로 감사드릴것이라고 다짐하였다 한다. 내란이 평정된 후 파만자는 차마 국가를 분할하여 남한테 줄 수가 없어 "자살하여 골을 초나라 사신에게 바쳐" 초왕에게 미안함을 표달하였다 한다. 초왕은 이에 감동하여 上卿의 예의로 골을 매장하였으며 파국에서도 上卿의 예의로 그 몸을 매장하였다. 파만자묘의 건설년대는 이미 고증할 수 없으며 역대에 내려오며 계속 수건하였다. 충심을 기념하기 위하여 臨江을 忠州라고 고쳤다 |
| ||
비파산공원 (枇杷山公園) |
시내 복판 고대에 펼쳐져 있는 공원으로 이전에는 해질녘에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 야경을 즐기는 메카였다. 그러나 아령공원 산정에 전망대를 겸한 탑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그 주역의 자리를 물려준 꼴이 되고 말았다. 고대보다 조금 장강 쪽으로 내려간 곳에는 박물관이 있다. 이 공원의 박물관은 공업도시 중경이 많은 역사를 지닌 도시라는 것을 증명하듯 황하 유역 지대와는 또다른 고대문화의 유산을 볼 수 있다 |
| ||
북온천공원 (北溫泉公園) 남온천공원 (南溫泉公園) |
천진운산 기슭에 위치한 공원으로 소나무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온천, 오래된 절, 동굴 등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 공원 내에는 온천사 가 있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423년에 진운사(縉云寺)와 동시에 세워진 것으로 현재 건축물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온천의 온도는 32℃로 석회질이 함유되어 있는데, 그 안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닌다. |
| ||
해방비 (解放碑) |
충칭의 거의 중심부에 위치한 것으로, 27.5m의 탑이다. 항일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1950년에 만들어졌다. 주변은 충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대부분의 버스노선이 이곳을 지날 정도로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붐벼, 역시 중국내에서도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 이곳임을 실감할 수 있다. |
|||
지운산 |
9개의 봉이 높이 솟아 소아미(小峨眉)라 불리고 있다. 산에는 아열대 식물이 1,700여종 이상 있고 고목이 솟아 남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하고 비아수 등의 귀중한 수목도 있다. 최고봉인 옥첨봉은 높이 1,030m 정도되며, 높이 980m인 사자봉에 오르면 가릉강이 보이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
|||
중경박물관 |
일층의 전시실엔 중경의 현재, 공산당 혁명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일층과 이층 사이에는 한나라, 혹은 그 이전의 시대의 사료들 전시 되어 있다. 중경 박물관에서는 고대 병기류를 중심으로 파촉 문화의 출토물을 볼 수 있다 |
|||
대족석각 (大足石刻)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곳이며, 석각의 주 표현양식은 마애불상의 석굴양식이다. 문물보호 단위로 공표된 마애불상이 75곳에 이르며, 조각품은 5만여점, 비문은 10만여자에 이른다. 그중 북산, 보정산, 남산, 석전산, 석문산의 마애불상의 규모가 가장 크며, 내용도 풍부하고 조각 역시 섬세하며 우아하다. 대족석각은 초당부터 지어지기 시작하여 오대를 지나 양송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그리고 불(佛), 도(道), 유(儒) 세 종교의 조각들이 모여 이루어져 전기 석굴과는 다른 점을 지닌다. 선명한 민족화, 세속화, 지방화된 특색을 갖고 있어서 실물형상과 문자 사료 등으로도 많이 운용되며, 당송 시기의 석굴 예술의 풍격과 민간 종교신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9세기 말부터 13세기 중엽까지 세계 석굴 예술상에 가장 휘황찬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
중경대교 (重慶白沙陀) 인민대례당 (中慶市人民 大禮堂) |
중경시 남서쪽에 있으며 길이 820m. 양쯔강에 두 번째 놓인 다리로서 청두~충칭, 충칭~구이양의2개 철도가 접속되며, 이로써 특히 쓰촨-구이저우 2성 간의 물자교류가 촉진되었다. |
중경의 대표적인 건축물인데,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의 자태가 주랑과 양쪽의 날개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고, 탑의 꼬리부분도 입체적으로 각각 균형있게 짜여 있다. 옥색 유리기와의 대층정, 대홍랑주, 백색의 난간, 휘황찬란 금색의 연출 등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國泰民安의 의미가 담겨져있다고 한다. |
중경시 전경 | 산성 야경 | 중경시 인민대례당 |
삼협경구 | 대족석각 | 봉도귀성 |
사면산 | 황화성유지 | 류백승 고가 |
쌍계당 | 룡항 | 하빙동 |
홍지파고산초장 | 서하궁 | 천정협지봉 |
동온천 | 용수호 | 성수사 |
장비묘 | 백운죽해 | 자기구 |
비파산 공원 | 남온천풍경구 | 남온천 |
장강삼협 | 무산소삼협 | 소채천갱 |
소채천갱 | 장개석관저 | 정방쌍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