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을 가까이 하고 아끼며 감상하면서 인연을 많이 생각한다. 우선 인연이라면 피하고 싶은 악연도 있고 고맙고 반가우며 미소가 번지는 선연( 善緣)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물론 좋은 인연을 말한다. 인연은 상호관계 속에서 은연중에 스며든다. 네가 있고 내가 있는 그런 관계속에서 주체는 당연히 내가되고. 그래서 인연은 나를 둘러싼 관계에서 형성되고 의미 또한 그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연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그것은 탄생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운좋게 만나는 관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그것으로 인연을 다 말했다 할 수 있을까.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적어도 불가에서는 사람의 인연은 전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원 이전의 일이니 설명은 불가하다. 그렇지만 존재론적으로 부정(父精) 속에서 일억이 넘는 동료와 함께 분출되어 하나의 생명체로 선택을 받았음을 생각할 때, 탄생은 인연이 아닐 수 없고 그것은 또한 우연아닌 필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온통 신비의 투성이다. 지구는 우주로부터 멀게는 700백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어서 그 거리도 무려 1억4천6백만 Km나 된다고 한다. 1광년은 일초에 빛이 30만 키로를 달려 약 9조4천670키로에 이르는 거리로서 상상을 벗어난 물리적 거리이다. 그런데 세월을 셈하는 수치로는 겁(劫)이 쓰인다. 대략 일겁은 50억년. 흰두교도는 86억 4천만년으로 본다는데 이것이 광년의 셈법보다는 단순하다 할지라도 결코 쉽게 가늠할 수 있을까. 지금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은 수억년 전에 출발한 빛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다시 보는 하늘의 그 별빛은 이미 사라진 별일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새로운 신성이 그자리를 지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별들은 모두 일조 개. 지금까지 측정한 것이 10억개라고 하니 우리 인간은 무지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영겁이니 무한대니 하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별 중에 인류가 사는 별, 생명체가 확인된 별은 현재까지 지구가 유일하다. 적어도 3천개 정도는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행성의 탐구는 물을 찾고 매탄까스를 탐색하는 정도에서 머물러 그야말로 그마져도 추측일 뿐이다. 지구에는 50억명의 인구가 모여산다. 1초에 한명이 태어나고 1초에 한명이 죽어가면서 유지한 숫자이다. 한데, 그 속에서 사는 사람이 일생동안 몇 사람이나 만나고 인연을 맺고 사는 것일까. 이름을 기억하며 때대로 생각하며 사는 것일까. 사람이 고정된 상태에서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움직이며 스치듯이 만나게 된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음으로서 만나서 안면을 익히고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나는 수석을 좋아하여 돌을 집어 들면서도 인연을 많이 떠올린다. 수많은 돌중에 내가 왜 거기에 갔으며 돌에 눈을 맞추고 집어들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그것은 인연이랄 수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오늘도 나는 관계 속에서 맺어진 인연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해본다. 기왕에 무심히 지나치거나 좋지 않는 쪽으로 기억되는 일은 어쩔 수 없다해도 앞으로는 말 한마디, 표정하나라도 따뜻하게 하면서 살고 싶다. 새삼스럽게 옷깃한번 스치는 인연이라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또한 나이를 먹어간 때문일까. 천명을 안다는 나이를 이미 지나고 귀가 순해진다는 나이를 넘어서 이제 며칠이면 시인 두보가 말한 고희의 나이에 들어서는 까닭이다.
(임병식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