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영화를 보러갔다. 오랫만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올해 보는 영화중에 두번째 영화가 아닐까
아마 이것도 착각때문에 두번째라고 할 지도 모른다 작년에 본 영화를 올해 보았다는
특정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단지 세시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갔으니.
내용이나 장르를 고르기보다는 어느 영화를 봐야 제 시간에 맞춰 다음 스케쥴을 진행할 것인가가
선택의 제일순위다.
열편 가까운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지만 딱히 봐야겠다는 영화가 없어 천박한 이유로 영화관을 찾은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이다.
시간에 맞춰 고르다보니 뽑혀 올라온 것이 <북극의 연인들>이란 영화다.
시간도 적당하고 설원을 배경으로 뛰어가는 여인의 모습이 나 잡아봐라 폼이지만 그래도 봐줄만하고
영원이 어떻고 하는 카피도 진부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랑영화를 말하기 위한 장치라 여기고
표를 끊는다
상영관에 들어가 푹신한 의자에 파묻혀 잠깐 눈을 붙일까 했는데 개관시간이 십분정도 남았다고
퇴짜를 놓는다.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관람객의 주머니를 최대한 훑어내기 위해 고안된 기념품 샵을 돌아본다.
젊은 연인들이 이거 어때 저거 사줄래 코맹맹이 소리로 한개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교태를 부리기도 하고, 이거 사줄까 저건 어때 헛힘이 들어간 낮게 깔린 목소리로 허세를 떨고 있다.
얼마전 본 미수다에서 외국 여자들이 가장 이해난망인 것중에 하나가 귀여움 떠는 코맹앰이 목소리로
말하는 한국여자라며 자기 나라에서 그랬다간 미친여자 취급받는다는 그 말이 생각나며
꼴을 떨어요 하는 마음으로 우웩하며 샵을 나선다.
상영관을 들어가니 그 넓은 곳에 나 밖에 없다.
혹시 혼자 보는 것 아니야 하는 특별한 경험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본다.
눈을 감고 편히 쉬는데 나처럼 시간 없는 사람 몇이 들어온다.
200석이 넘는 상영관에 열명이 채 안되는 인원이 보자니 오지랍넓게도 극장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몇편의 예고편이 끝나고 본 영화가 상영된다.
일단 영화는 화질이 이상하다.
핀트가 안맞는 듯 떨어지는 색감과 선명하지 못한 화면에 아니 얘네들 수준이 왜 이래
핀란드인지스웨덴인지 이 나라 영화 수준이 이렇게 밖에 안되나- 나는 이때 까지 이 영화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삼국중에 한 나라의 영화인줄 알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스페인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북극의 연인들이라면서 왜 이렇게 스페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그랬다..
이야기의 전개는 오토와 아나라는 두 사람이 보는 각각의 시각으로 전개된다.
한 때 인터넷 글쓰기의 유행이었던 그남자 와 그여자의 관점으로 동일 장면을 해석하는 그런 방식 말이다.
OTTO와 ANA라는 이름을 제일 먼저 말한다.
오토가 말한다.
"내 이름은 오토다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회문(回文)이다. 어떻게 보아도 오토다."
아나 역시 같은 말을 한다.
유태교에서 신비함을 강조하기 위해 경구를 짜 맞춰 어떻게 읽어도 같은 뜻이 되게 만들었다는 회문은
변함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순환하고 반복되는 살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름이 갖고 있는 암시는 영원을 뜻하기도 또한 두사람 삶이 독립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오토란 이름이 갖고 있는 역사성도 또한 운명의 순환과 윤회의 고리다.
둘에 첫만남은 사랑이 늘 그렇듯 불현듯 운명처럼 온다. 단지 그 시간이 너무 빨라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학교 담을 넘은 축구공을 쫒아가는 오토와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엄마에게 듣고 그 숲을 달리는 아나.
공을 쫒는 오토와 죽음에서 멀어지려는 아나의 달리기는 같은 곳을 보고 달리지만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이거 어때 저거 사줄까의 코맹맹이 소리도 아닌 또한 허세를 부리는 저음의 목소리도 아닌
슬로우 모션으로 팔을 나불거리면서 어정하게 달려가는 그런 모습의 '나 잡아봐라'가 아닌
절박한 질주 끝에 아나는 넘어지고 공을 쫒다 아나를 내려다 보는 오토와 그를 처다보는 아나의 눈에는
조금 전의 달리기에 대한 새로움이 솟는다.
공대신 아나를 눈에 담은 오토와 아빠의 상실을 오토로 채운 아나 그렇게 둘 관계는 시작된다.
이후 둘은 법적인 남매가 되고 따로 살다 어느날 오토는 아버지와 같이 사는 아나의 집으로 들어오고
둘은 아빠와 새엄마 엄마와 새아빠 몰래 은밀한 만남을 갖으며 사랑을 키운다.
어머니가 죽은 후 자책감에 절망하며 자살을 시도한 오토는 아버지의 집을 나오고 그 후의 방황하는 오토와 안나는 서로를 그리워 하면서도 만나지 않고 몇년이 지난다.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 사랑의 감정은 그리움으로 남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 또는 필연을 가장한 우연처럼
만남은 간발의 차이로 어긋난다.
몇번의 신파같은 어긋남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두 연기자와 감독의 역량이다.
광장 맞은편에서 서로를 보고 걸어오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순간의 어긋남은 절묘하다.
같은 방향으로 서로를 의식하지 못한채 서로 다른 이유로 달려갔지만 결국에는 서로의 눈속에 그 둘을 담게 했던 운명은
이 광장에서는 같은 곳을 향해 마주보고 오면서도 서로를 몇년동안 잊지못하고 그리워하는 두사람을 어긋나게 한다.
바로 옆 테이블에 등지고 앉은 두사람
아나는 오토의 초등학교 선생에게 담배를 빌리면서 '우연한 만남을 좋아하시냐" 묻는다.
이 영화에서는 담배가 사람과 사람을 소통하게 하는 장치로 쓰이는데 오토 할아버지가 스페인내전 당시의 독일군
전투기 조종사 오토를 구해주고 담배 한대를 나눠피고, 오토와 아나가 담배를 나눠피며 기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게된다.
담배 한대를 돌려가며 나눠피는 관계와 한개비를 빌려 피는 행위를 다르게 연출하고자 했는지는 모르지만
입과 입을 통해 전이되는 담배는 키스와 같은 의미로 소통의 매개체였다면 그 피워 없어지는 연기와 형체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중성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이 우연한 만남 이후 아나는 선생과 몇년간의 동거에 들어가고 이별후에 스토킹을 피해 북극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아나는 오토의 할아버지가 만난 오토를 만나게 되고 그 오토의 별장에 머문다.
북극은 백야가 시작된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 북극은 영원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북극이 갖는 상징또한 변함없음이라면 백야 또한 같은 이미지다.
아나가 북극을 가고자 했으며 백야를 보고싶어했던 것도 또한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지난한 삶에서 변함없는 것은 오토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을 해가지지 않는 북극에서 만나고자 하는 염원.
할아버지 오토처럼 운명처럼 파일롯이 된 오토는 자기가 몰던 수송기로 아나에게서 편지가 왔다는 것을 알고
북극의 그 주소를 찾아간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밖에 없다는 것을 말함인가.
신파같은 우연은 또 다시 서로를 엇갈리게 하고 그 엇갈림의 끝은 영원이다.
1998년 딱 10년전에 나온 영화란다.
그러니 화질이 그럴수밖에
훌리오 메뎀 감독은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감독중에 한명이란다.
어느 신문에서는 금세기 최고의 천재감독이라는데 이건 오바 아닌가
그렇지만 영화가 작위적이며 인위적이라고 느낄만한 많은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그런 것들이 전혀 신파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이다.
진부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갖고 있는 관계속의 소외감을 잘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 또한
진부를 모던으로 바꾸고 있다.
악연인지 선연인지 모를 그 질기고 질긴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신파 같은 소재를 가지고
전혀 신파스럽지 않게 만든 영화다.
첫댓글 이것은.................이런...청한....................
술먹고 쓴것이 아니고 카칠스런 청한이 매우 감성적으로 올린것에 놀라고, 지난영화를 어디서 보았을까하는 생각에 이것은 혹시 퍼온것...(미안) 하는 마음에 놀랬고 그래서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해서 또 미안하구...
우리의 진부한 일상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감동을 주니까 영화겠죠. 그런데 '엇갈림의 끝은 영원'이라는 말은 좀 슬프네요. 내 노래 18번 '직녀에게'나 불러야 겠다......
영화제목이 북극의 연인들이란 것인데 제목 저자 등 사람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 고질을 천형으로 갖고 있어 또 제목을 잘 못 썼네요 ㅠ.ㅠ.....그리고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는 이게 첫영화이자 마지막 영화입니다. 색 계를 올해 본 줄 알았더니 작년이네요...세월이 빠르다고 해야하는지 아님 ......................무심한 것인지
내년엔 고전읽기 뒷풀이로 영화보러 가요. 계획해서 딱 세편 보기. 4개월에 한 번씩. 그리고 감상문 서로 교환하기.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