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는 '도돌이표'라는 기호가 있다.
코드 진행에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는 기호로서, 아무리 사비-클라이막스 마디에서 절정을 치다를지라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것들도 전부 도돌이표와 같은 일상을 겪는다.
처음 변했을때야 신선하고 좋게만 느껴졌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우리 생활에 들어온다.
더는 신기하고 화려하게 보이지 않고 그냥 원래 우리 곁에 있었던 것만치 감각이 무뎌진다.
이번에 갔다온 원주고속버스터미널이 그런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처음 이사올 당시, 첫 방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은 지금 없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마치 내 옆에 있었던 것처럼 흔한 익숙함만 남아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그런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시외버스터미널보다 한 발 앞서 들어온 고속버스터미널.
단계동 상권을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지금은 높은 옆 건물의 위세에 눌려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조금 어설프기까지도 하다.

깔끔하고 아담하면서 모던한 느낌의 원주고속버스터미널.
우산동에 같이 있던 시절에서 홀로 옮겨오며 '조금은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었지만,
다시 시외버스터미널이 옆자리에 더 큰 모습으로 다가온 지금은 신비로움 같은 것은 없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도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도 한낱 일상의 조각들일 뿐이다.

신비로움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듯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도 시간이란 파도에 계속 출렁이고 때로는 무뎌진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여러 감정을 갈아타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처음의 설레임, 기쁨, 희열, 환희, 좌절, 낙담, 실연, 실망 등등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나면 결국은 똑같은 상황이 다시 찾아와도 점점 무감각해질 뿐이다.
필자 역시 처음 여행을 다닐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설레임이 있었다.
사진에 욕심도 없었고 그저 무언가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오직 '구경'만으로 즐거움이 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욕심이 마음 속으로 들어오면서 수집을 해야 행복을 느끼기 시작하기도 했고,
한단계 더 올라가여 사진을 남기고 글을 올려야 행복을 느끼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것이 더욱 발전하여 목표를 정해놓고 하루에 '여기까지 못 가면 실패'라고 스스로를 낙인찍기도 했다.

결국 내 스스로가 가둔 욕심과 낙인이 순수한 '여행' 그 자체를 더럽혔다.
여유는 점점 사라졌고 목표는 점점 늘어나 스스로를 옥죄게 되었고 결국은 점점 지쳐갔다.
이상하게도 하루에도 열 몇군데씩 다니며 수많은 사진과 글을 남기는 현실이,
아무 목표 없이 그저 몸이 이끄는데로 다니던 때보다 훨씬 더 무감각했던 것이다.

스스로의 욕심에 스스로가 지쳐 결국 모든 손을 놓고 한동안 쉬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허송세월을 보냈던 때도 있다.
생각이 나면 다시 카메라를 꺼내들 때도 있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점점 나이를 먹으며 생각하는 것이 하나 둘 달라졌고, 삶의 파도를 수없이 맞으며 느낀 것이 있었다.
처음 순수했던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순수라는 이름에 욕심을 얹으면 얹을수록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맞는지.

굳이 여행이란 타이틀에 몸을 끼우지 않아도 된다. 어디에 대입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불변의 진리이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몸이 쉽게 생각을 따라주지는 않기에 더더욱 힘든 것이 초심을 찾는 것이다.
이번 일정은 순수했던 나로서의 도돌이표를 찍는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것이다.
고독한 멍청한 외로웠던 하지만 누구보다 행복했던 나로서의 정점을 찍는 여행.
오랫만의 원주는 그래서 반가웠다
사방에 무엇이 들어오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원주고속버스터미널은 특히 더 그랬다.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를 꿋꿋이 지켜주는 이로서 많은걸 배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 없이 오늘을 살아가는 너는 나에게 '도돌이표' 같은 존재다.
첫댓글 춘천-원주 금강고속 8기 크루저 시승을 하려고 몇번 원주까지 갔었는데 원주는 군사(?)도시라고 불려서 그런지 몰라도 터미널에 내리면 항상 무거운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제 느낌입니다. ^^;
전역하신지 얼마 안되셔서 의욕은 충만한데 막상 접하는 일마다 맥이 빠질때가 있습니다. 예전과 똑같이 했는데도 공허하다고 해야할까요....초심이 흔들릴때는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셔도 될 듯합니다.^^
터미널 기행 잘 보고가요..
똑같은 것을 보아도 사람마다 느끼는게 다르지요. 저는 원주쪽 터미널에서 특별히 무거운 기분을 느끼진 못해서요..
초심을 유지하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게 정말 힘들죠. 그럴 때 잘 버텨야 나중에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그것보다 예전 원주터미널의 아스트랄함이 워낙 ㄷㄷㄷ 해서(승차홈이 5갠가 그랬을겁니다.)
기행문 잘보았습니다.^^ 원주는 중복노선이 하나있죠 바로 강릉-원주ㅎㅎ 강릉사람들이나 원주사람들은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골라타는 재미로 강릉원주를 가죠^^ㅎ 아직까진 시외버스가 우세하지만 고속버스는 널널합니다. 작년 재작년인가 원주에서 강릉까지 대원고속 타본적이 있는데 대원고속을 탄 승객이 와 좌석 널널하다 시외는 매진되서 없는데 하는 소리까지 들었답니다.^^ 아무튼 대원고속이 홍보와 더 좋은 차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시외버스에서 기눌렸던걸 되찾아올수 있으면 좋겠네요.^^
알게 모르게 고속노선이 많이 생겼더군요. 사람도 더 많아진 것 같고요. 서울쪽이야 당연 장사가 잘 되지만 나머지 구간은 아직 힘을 더 내야 할 것 같습니다.. ㅠㅠ 더 분발해서 완전한 경쟁이 이뤄지면 좋겠네요. ㅎㅎ
경쟁을 하려면 고속도 다양한 노선의 개발 필요성이 있죠!
문제는 이미 시외버스가 차지하고 있다는 거예요ㅜㅜ
다양한 노선도 좋지만 지금 있는 노선들이 확실히 자리잡는 것도 중요하죠~
원주시외버스터미널 소유주가 동신운수인건 아이러니죠..ㅋ
저 큰 터미널이 동신운수 소유였군요...; 정말 의외네요.
70년대에는 동신운수가 경기,충북,충남까지 운행하였지요 지금은 시내와 농어촌버스 위주이지만
시외버스터미널과 비교하니 정말 아담하군요.춘천도 0마트가 입점해있는 시외에 비하면 고속터미널은 구멍가게? 수준인데. 제 생각엔 인구 20~30만 정도의 도시에 웬만한 노선을 시외버스가 차지하고 있으면 고속버스 노선은 시외의 보조라고 할정도(너무 비약이 심할수 있지만)로 볼수 있겠네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제 생각입니다.
거의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도시던지 고속버스가 시외버스보다 앞서는 동네는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고속버스는 주변 위성지역 연결이 안 되고 노선 수가 적다는 것 때문일까요.. 원주는 인구 30만 도시치고는 그나마 많은 편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