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읽는 세상] 뉴턴, 페스트 유행 기간 '만유인력의 법칙' 떠올렸다
2022.10.11 14:00
뉴턴이 발견한 운동의 세 가지 법칙, 당신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뉴턴이 발견한 운동의 세 가지 법칙 중 멀리뛰기를 할 때 멀리뛰는 방법과 관계가 없는 것은 무엇일까?”
얼른 답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지만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이 관성, 가속도, 작용과 반작용이라 하면 답을 맞히기가 한결 쉬워진다. 셋 중 무엇일까.
정답은 “없다”다. 도움닫기시 빨리 뛰어갈수록 멀리 뛸 수 있는 것이 관성을 이용한 것이고, 점점 빨리 뛰는 것이 점점 느리게 뛰는 것보다 멀리 뛸 수 있는 것은 가속도를 이용한 것이며, 마지막에 발을 구를 때 강하게 밟을수록 멀리 뛸 수 있는 것은 작용과 반작용을 이용한 것이다.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이 관성, 가속도,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것까지 떠오른 순간 셋 중 하나를 선택하려고 고민했다면 이제부터 태도를 바꾸는 게 좋겠다. 시험을 칠 때는 답을 골라야 하지만 사회에서는 보기 없이 답을 찾아야 할뿐, 객관식 문제의 답을 찾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왜 유명한 과학자일까. 뉴턴이라는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뉴턴의 업적을 1분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과학 역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이, 아인슈타인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천재의 한 명으로 거론되는 뉴턴을 1분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건 그동안 공부한 것과 현재 아는 것이 별도의 공간에서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식을 사용하려면 객관식 문제에서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위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천문학에서의 기여, 운동의 세 가지 법칙, 빛과 색깔에 대한 연구업적, 미적분 발견은 모두 뉴턴의 업적이다.
여기서 진짜 문제 하나,
“뉴턴이 평생을 통해 남긴 대표적인 업적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몇 살 때였을까.”
페스트가 덮친 1664년 영국 런던, 케임브리지대는 '비대면 수업' 전환
뉴턴은 1661년 6월 삼촌인 윌리엄 아이스코프 목사의 추천으로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에 입학했다. 재학중에 똑똑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대학에서는 그가 계속해서 학자로 자라날 수 있도록 1664년에 4년간 더 장학금을 주기로 했고, 이를 토대로 뉴턴은 졸업 후에도 계속 케임브리지대에서 대학원과 유사하게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 뉴턴이 입학하기 직전인 1660년 11월 28일 런던에서는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 of London for Improving Natural Knowledge)가 문을 열었다. 1626년에 세상을 떠난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이론만 세우고 실험과 관찰을 하지 않는 바람에 학문적 발전이 늦었다.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이론을 세우고 추론을 통해 진리를 알아내야 한다”는 귀납법을 주장한 것이 수십년 후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베이컨의 후배라 할 수 있는 영국 학자들은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를 따랐고, 그리스 철학자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라 불렀다. 뒤에 소개할 런던 대화재 이후 생폴 성당(St. Paul Cathedral)을 설계하는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을 필두로 기체의 부피와 압력이 반비례함을 알아낸 보일(Robert Boyle, 1627-1691), 성직자 윌킨스(John Wilkins, 1614-1672) 등의 주도로 그레샴칼리지에서 첫 모임을 가진 후 훅(Robert Hooke, 1635-1703)과 뉴턴 등도 합류를 했다. 1663년에는 찰스2세 왕이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4월 23일에 왕을 설립자로 하고 왕립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뉴턴이 새로운 모임에 불려간 것은 케임브리지대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명석함을 부여 주었기 때문이고 모임에 합류한 직후에는 서기 역할을 맡았다. 케임브리지와 런던을 오가며 나름대로 즐겁게 학문세계를 즐기던 중 1664년 말부터 런던에서 페스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미 300여년 전에 유럽을 초토화하다시피 한 페스트는 그 후로도 수시로 유행을 하곤 했으며, 페스트의 유행은 지금의 코로나19처럼 사회활동을 마비시켰다.
페스트가 번질 것을 우려한 케임브리지대도 예방적 차원에서 문을 닫아버렸다. 대학이 문을 닫는 바람에 공부가 좋아서 대학에 남아 계속 공부를 하려 한 뉴턴에게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감염병으로 멈춰버린 일상, 뉴턴의 학문적 아이디어는 싹을 틔웠다
뉴턴은 1665년에 오늘날 미적분학에 해당하는 수학 이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마침 페스트로 인해 대학이 문을 닫자 갈 곳이 없어져 울스도프(Woolsthorpe)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의 울스도프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대학이 다시 문을 열 때까지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뉴턴은 고향집에서 전원생활을 즐겼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착상을 떠올린 사과나무는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다는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지금도 울스도프에 남아 있다.
2019년 마지막 날, 중국 정부가 우한에서 새로운 호흡기 감염증인 코로나19가 발생했다는 발표를 하자 전세계는 2년 이상 일상을 포기하고 비대면 교육이라는 익숙지 못한 환경에 처해야 했다. 2020년에 대학생들이 학교에 나오는 대신 집에 머물러야 했을 때 필자는 “뉴턴은 여러분들 나이에 일생 동안 연구할 주제를 선택했다. 여러분들도 집에서 소극적으로 학교에서 전해주는 지식을 받아먹기만 할 게 아니라 무엇이든 의문을 가지고 그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걸음을 떼어 보라”고 하곤 했다.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일각에서는 런던 인구 25%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진 페스트는 1666년 말 런던에서 사라졌다. 당시의 의학수준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망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페스트가 사라진 것은 런던에 발생한 대화재 때문이었다. 한 빵공장에서 발생해 9월 2일부터 5일간 지속된 대화재는 런던의 5분의 4를 태우고, 80%가 넘는 인구가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되었다. 불탄 생폴 성당을 다시 지을 때 렌이 설계를 했고, 지금 런던을 방문하면 성하게 남아 있는 오래된 건물이 없는 것은 이 화재 때문이다.
2년 가까이 고향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학문 세계에 빠져든 뉴턴이 케임브리지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생각해 본 아이디어가 진리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비판적 사고 습관, 미래의 뉴턴 기른다
2020년 1학기 비판적 사고를 통해 진리에 의심을 품거나 새로 연구해야 할 과제를 도출하는 학생들에게는 가산점을 주겠다고 했지만 점수 신청을 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신청을 한 극소수의 학생들도 점수에 눈이 먼 것인지 몇 줄 되지 않는 아이디어만 제시했을 뿐 이 아이디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기초적인 방법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래는 모두 몇 개인가.”
이런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문제를 듣자마자 풀기를 포기하거나 “모래의 크기가 얼마인지 확실치 않으므로 대답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답변을 하곤 한다. 모래의 크기가 확실치 않으면 자신이 정하면 되는 것이고, 모래의 분포지역 넓이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직접 정하면 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특별히 좋은 말이 없어서 비판적 사고라 했지만 원어인 'critical thinking'은 특정 사안에 대해 비판을 하기 위한 생각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critical thinking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 사실, 증거, 관찰, 주장 등을 알아보고 이를 분석해 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 과정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자기주도적(self-directed)·자기훈련적(self-disciplined)·자기탐색적(self-monitored)·자기교정적사고(self-corrective thinking)를 가져야 한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 아래로 떨어지는지 의문을 가져야 하고, 구름판을 밟을 때 왜 강하게 밟아야 멀리 뛸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이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이다. 무지개는 왜 서로 구분되지 않는 색이 연속적으로 붙어서 보이는지, 원의 넓이를 구할 때 연속적인 선의 합으로 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뉴턴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단계는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왜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고 가르쳐 주는 것만 영문도 모르는 채 외우느냐고 할 게 아니라 왜 졸업식은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매년 똑같은 순서로 진행되는지, 졸업식이나 주간 조례시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알아듣기 어렵게 말로만 하고 때우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개선이 가능하다.
목표와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표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기획서에 나와 있는 일인데 비판적 사고로 충만해야 할 학교(특히 대학)에서 완벽하지도 않은 행사를 똑같이 반복하고 암기력 위주로 평가를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미래 사회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학습 태도도 바뀌어질 것이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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