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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 자리에 서게 되면 떨리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이런 경홈이 처음인 저에게는 더욱 무거운 마음과 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한 달을 보냈습니다.
처음 윤전도사님께서 10월의 성령집회 간증자가 나라는 말에는 그렇게 떨리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했는데 아마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주 한 주 시간이 지나며 일주일 남은 이 글을 작성하는 시간에는 왜 이렇게 떨리고 워드를 치는 손까지 떨리는지 성령집회 때마다 다른 간증자들의 간증을 들으며 내가 저 자리에 서게 되면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 말주변도 없고 그다지 간증할 이야기도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분들의 이야기 속에 감명을 받으며 은혜로 다가왔었고 한편 마음속에서는 내 차례가 빨리 오지 않기를 감히 바랬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주일학교를 아주 조금 다녓었는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크리스마스 때나 부활절 때 받았던 계란과 선물들만 기억할 만큼 아주 조금 교회에 나갔었고 어쩌다 주일하교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 전화를 하거나 직접 데리러 올 때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교회에 열심인 오빠를 따라서 아주 멀리 있었던 교회에 함께 다녔었고 교회에서 가는 수련회에 갔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저의 어렸을 적 기억에도 오빠는 교회를 참 열심히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교회에 관련된 어렸을 적 추억은 이것이 다이며 별로 교회와 깊은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느이 됭서 교회에 나가게 된 계기가 있엇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쭉 서울에서 살다가 일산으로 중학교 때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세를 살지 않게 되는 우리집을 사서 오게 되는 중요한 시점이 바로 일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산이 저에게는 제 2의 고향인 셈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있었는데 저의 셋째 언니가 류마티스 간절염이라는 병명을 받게 되어 가족들이 크게 슬퍼하고 있을 때 우리집 근처의 작은 교회에서 병든자들이 병이 낫는다는 부흥회 소식을 접하게 되어 부흥집회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엄마와 셌째언니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저도 함께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세례를 받고 아주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주일 성수는 열심히 지켰었던 것 같습니다.
십 몇 년 전에는 일산 신도시가 모두 산과 밭이었고 아파트도 거의 없는 아주 시골이었는데 일산 신도시가 생기며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지역 1순위로 아파트에 당첨이 되어 그곳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다니던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옮게게 된 교회는 승리 교회였는 큰 교회 이다보니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거의 일 주일에 예배 1시간 드리는 것이 저부였었고 교회에 깊이 들어 갈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다가 설교시간만 되면 왜 이렇게 졸린지 설교내용을 제대로 듣고 오는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저의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이 승리교회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잠시 회사를 그만 두고 놀고 있을 때 승리교회 목사님의 추천으로 저의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 취직이 되는 바람에 남편과 만나게 되었으니 저에게는 승리교회는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교회입니다. 그곳에서의 교회생활은 아주 깊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남편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고 몇 년 동안은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민정이가 네 살 되던 해에 중산마을에서 살고 있을 때 그곳에서 잠깐 살 때에 어느 교회의 여전도사님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집에 있는 중에 벨을 눌렀었다면 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것이고 다시 교회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만나는 바람에.....그런 결정에는 많은 생각없이 쉽게 결정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곳 교회에서는 그래도 아주 큰 교회는 아니어서 그런지 민정이 또래가 있는 엄마들과의 교류가 있는 구역예배를 통해서 조금씩 교회생활에 적응을 했었고 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주 열심히는 아니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교회생활에 조금씩 젖어들어가고 있을무렵 아파트 분양을 하게 되고 분양시기에 맞추어 잠깐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한 교회에 계속 오래 다니고 싶어도 이사를 많이 다니는 바람에 한 교회에 오래 다닐 수 없었습니다.
이사 간 그 곳에서도 다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집 윗 층에 사시는 분이 구역장었는데 그 분의 인도로 행복교회에 오기 전까지도 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귀가 앏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누가 전도를 하게 되면 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 번도 거절 하지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곳에서의 1년동안의 교회생활을 맡치고 교화 월드 1차 아파트로 입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도 어김없이 이사 오는 첫 날 어떤 교회에서 두 분이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를 오셨습니다.
아주 깊은 믿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속 교회생활을 하고 있었던 터라 고회를 다니려 하는 마음은 있었고 내가 혼자 찾아서 교회에 가는 것보다는 인도되어지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희 집에 오신 분은 이민호 전도사님과 백성숙 집사님 이었습니다.
그 두 분의 인도로 행복교회에 오게 되엇습니다.
아마도 다른 교회에서 그날 오셨어도 그 교회로 가게 되엇을 지도 모릅니다.
그 때의 저의 마음의 상태가 많이 열려 있었기에 쉽게 그렇게 결정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날 예배를 드리며 많은 부분 다른 교회와 다름을 느껐습니다.
앞에 나와서 감사고백을 드리는 부분도 그렇고 목사님의 설교도 그렇고 마이크를 잡고 찬양대가 찬양을 하는 모습도 그렇고 많은 부분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새로 오시는 분들이 한 결 같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분위기가 밝고 찬양대의 환한 미소로 찬양하는 찬양이 좋았고 내 스스로가 결정한 곳이기도 하기에 계속 다니기로 마음먹고 순 예배를 통해서 교우들과 교제를 하며 아주 열심히는 아니지만, 순 예배는 자주 참석 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교회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순모임이 나에게 끈이 되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순모임을 통해서 다른 분들과의 교제 가운데 그 분들의 실생활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게 되고 행복교회에 적응하게 되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믿음이 자라는 부분에 있어서 많이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주일예배 잠깐 드리고 끝나는 분분에 있었습니다.
행복교회에 온지 1년이 지난 때에 문촌마을 아파트로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고 간 곳도 아니고 그 당시 한참 전세가 귀할 때인지라 집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촌마을로 가게 되었는데 그 곳 아파트에 이 전도사님 댁과 이은주 집사님 댁이 그 곳에 있었습니다.
알고 간곳도 아닌데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믿음 좋으신 분들을 저의 주변에 부쳐주셔서 수요예배도 드리게 되고 새벽예배도 드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되고 교회생활에 좀 더 가까이 들어가게 되었을 쯤 어떤 집사님께서 회요일 목사님과 함께 하는 리더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냐는 권유에 나도 모르게 참석하겠다고 이야기 하는 바람에 리더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말주변도 없고 교회에 깊이 들어가 보질 않아서인지 항상 교회의 주변을 멤도는 항상 손님처럼 그렇게 지내고 싶었는데 그 모임을 나가게 되면서 발목이 잡혔던 것 같습니다.
발목이 잡혔다기보다는 교회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고 배우게 되면서 한 교회에 오래 머물 수 있게 되었었던 부분이기도 하고 아마도 그 시점이 교회생활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자주 쓰는 표현 중에 얼떨결에 했다는 표현들을 자주 씁니다.
찬양대에 서게 된 것도 그렇고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고 예전 같았으면 빼기에 바빴을 텐데 이상하게도 행복교회에서는 내가 먼저 선듯 하지는 않지만, 누가뭘 시키면 빼지 않게 되는 것들이 참 이상합니다.
이런 자리에 서게 되면 사실 간증거리가 많아야 하는데 그래서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결혼한 지 12년 정도 되엇느데 벌써 여섯 번 정도 이사를 했습니다.
문촌마을 살 때에 교회에서 많이 떨어진 고양동 쪽으로 분양을 받아 이사를 가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곳으로 분양을 받을 때에는 행복교회에서 주일예배만 드릴 때 여서 교회를 쉽게 옮기는 것에 대해서 별로 개의치 않을 때이고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분양을 받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분양을 받고 3년이 흘러 이사를 가야할 때가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행복교회가 너무 좋아지고 있었던 때라 떠나고 싶지 않았고 이곳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던 때라 기도 제목으로 목사님과 여러 집사님들께 이야기함으로 중보기도하게 되었고 그런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가지 못하게 막아주셨습니다.
남편은 아마도 기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저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동안 이사를 하게 될 때 한번도 문제가 되엇던 적이 없었고 오히려 집을 내놓는 즉시 쉽게 집이 나갔었던 경험들을 비추어 불때 그 때에 집 문제로 고생한 것들이 바로 증거라 할 수 잇습니다.
그 이후로 남편과 크게 싸우게 되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거의 싸우지 않는데, 교회 다니는 것이 무슨 죄인인 것처럼 남편 눈치를 보며 열심히 교회를 디니고 있었던 그 때에 시 댁 일로 주일 아침에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남편이 예배에 참석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예배만이라도 드리고 가면 안돼냐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며 현관문을 잇는 힘껏 닿아버리고는 가버렸습니다.
행복교회에 다니지 않았을 때 같았으면 남편 말에 군말 않고 따랐을 텐데 그때부터 무언지 모르게 교회 일에 잇어서 싸우게 될 때면 용기가 생겼습니다.
교회 생하가 있을 때마다 남편에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던지 몇 칠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하고 아주 어렵게 이야기해서 허락을 받았던 때라 남편 눈치도 엄청 많이 보며 조심스러워 했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생활을 하다가 교하지구로 오게 되엇습니다.
사실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좀 더 교회 가까이 이사 가기를 남편 몰래 기도 많이 했었습니다. 확실히 교회 일에 관련된 기도들은 빨리 응답이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 할지 모르겟지만, 나에게 있어서 아주 어렵게 느껴지는 숙제들이 아주 조금쌕, 하나하나 해결이 되어지는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맏지 않는 시댁식구들에게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도 예전에는 숨겼었는데 이제는 숨기지 않게 되었고 매년 명절, 제사 때마다 내가 제사상 앞에 절하지 안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 절을 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막아주지 못함으로 인해 많은 고민과 걱정들로, 명절에 일을 많이 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가 해결이 안되니까 어찌나 마음이 무겁던지 명절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부터 자유 함을 주셨습니다.
아직은 직접 시댁 어른들께 교회를 다녀서 절 안하겠다는 말은 못햇지만, 몇 년 전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들에게 절하지 말고 우리는 기도하자 하며 기도로 준하며 그렇게 시도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이 무척 화를 냈었습니다. 그 일이 잇은 후로부터 지금은 절하지 안흔 것에 대해 인정해 줍니다.
남편도 사실 나에 대한 불만이 많았었는데 쉽게 이야기 하지 않는 편입니다.
1년전 교하로 이사 오던 해에 남편과 아주 크게 싸우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교하에 이사 오면서 이쪽 지역 아파트 전단지 붙이며 한창 전도의 불이 붙었을 그 때에 남편과 싸우게 되엇는데 사실 저는 시시콜콜 남편에게 교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문에 싸우게 되었는데 남편의 이야기 인 즉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얘기도 없이 늦게 오더니 찬양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듣게 되고 또 얼마 후에 교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사람에게 듣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서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전도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고 이런 이들을 다른 사람에게 듣게 되는 것에 대해 아주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엇습니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남에게 전도하는 것이 별로 보기 좋게 보이지 않았는지 전도만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싸움을 하게 되면서 저에게는 오히려 아주 편하게 교회생활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별로 교회일 하는 것에 남편 눈치 안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슨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좋은 것들만 배우게 되는데 왜 내가 눈치를 봐야하는지 하는 생각에 아주 당당해 졌습니다.
이렿게 되면서 남편은 저의 교회생활에 대해 이제는 완전히 인정해 줍니다.
오히려 수요일이 굥휴일일 때면 남편이 먼저 수요예배 안가냐고 이야기 할 정도입니다.
참으로 이상하게, 제 믿음이 약해서 이겨낼 능력이 안돼서 그러는지 교회 행사가 있을 때나 교회 일을 해야 할 때면 방해하는 요소들을 하나남께서 미리 막아주시는 것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남편이 회사일 때문에 평소에 늦게 오는 것도 헌편으로는 수요예배도 편한 마음으로 드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인가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저의 나약함을 아시고 때로는 강하게 믿음에 있어서 싸워야 할 때에는 담대함을 주시기도 하지만, 내 힘으로 어찌할 바 모르는 일에 있어서는 미리 방해 요소들을 막아주시며 그 일들을 해결시켜주시고 훈련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 같습니다.
행복교회에 온지도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
제 기인적으로는 행복교회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리더모임의 숙제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분들과의 교제 가운데 들었던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또 배우게 되고 때로는 도전도 받고 하면서 무엇보다도 예전에는 어떠한 일을 하면 조금 하다 말다 하는 일들이 많았었는데, 꾸준함을 배운 것 같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도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 이런 기분이 들지 모르겠지만, 저는 행복교회가 너무 좋습니다. 민정이 해든이도 교회 가는 것 너무 좋아 합니다. 또 헤어질 때면 너무도 아쉬워합니다.
저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제가 행복교회에 몸담고 있을 때에 행복교회로 남편이 전도 되어져서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교회 일을 하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이런 소망을 가슴에 깊이 새겨 두고 기도하며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첫댓글 참석못해 넘 죄송스럽고... 무엇보다 집사님 간증이 너무 궁금해 빨리 안올려주시나 했는데 주욱 읽으면서 집사님을 향한 하나님의 붙드시는 강한 손을 느끼며 또 매번 느끼지만 믿음의 모습의 참 아름다우시다 하시는 생각에 제가 마냥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