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좀 색다른 주제인 Home Schooling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 말이 좀 익숙지 않아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어려운데 번역하자면 ‘독학’이라 해야 할까요? 분명 대안교육이나 검정고시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저희 학교 이사장이 직원들에게 Home Schooling 세미나 참석을 권고한 덕분입니다. Home Schooling 세미나의 강연자는 옥스포드 대학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고 28세의 나이에 대학교수에 부임한 젊은 청년과 그 어머니였습니다.
주로 어머니가 자녀교육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아들은 그 교육에 대한 자기 경험과 느낌을 이야기 하며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청년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초중고의 전 과정을 집에서 어머니와 공부하고, 만 13세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미국에서 수학과 철학을 복수전공하여 대학을 졸업한 후 17세에 영국 옥스포드에 대학원에 입학하여 25세에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어머니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로서 엄격한 채식주의자입니다. 아들이 둘인데, 지금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첫째 아들이고 둘째 아들은 12세에 대학에 진학했고, 현재 옥스포드에서 박사학위를 밟고 있습니다. 이 어머니가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독학시키게 된 것은 첫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점심 도시락이 바뀌는 사건이 계기였습니다. 아들이 다닌 학교는 부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 초등학교였는데, 당시 겨울에 점심 도시락을 선생님이 거두어서 데운 다음 따뜻하게 해서 학생들이 먹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도시락이 바뀌어 아들이 모르고 닭고기를 먹으려다 뱉어 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집에서 독학하게 된 하나의 계기이고, 평소 학교 교육을 통한 자식의 성장을 유심히 관찰하던 어머니는 아들이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것이 많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시락 사건 이후부터는 집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아들을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식당은 주로 저녁에 손님들이 많이 몰려 들었는데,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아들도 식당 일을 같이 거들었다고 합니다. 공부는 학교 교과에 맞추어 여러 과목을 섭렵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작문과 수학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기타 과목들은 기본적 언어능력과 수리능력만 있으면 언제든 쉽게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인근의 대학교수가 식당에 손님으로 왔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의 작문을 보여 주게 되었습니다. 교수는 그 글을 읽고 수준이 상당히 높으니 대학 수능 평가를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 때부터 수능에 필요한 여러 과목을 일년 남짓 공부한 다음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세미나는 이틀 동안 열렸었는데,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질문이 있었고 어머니는 조목조목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아들은 그 내용을 뒷바침하며 부연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그 많은 대화 속에서 ‘천재 및 영재교육’이란 단어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런 아들이 나왔다면 아마도 매스컴에서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 김연아에 대한 기사 ‘치솟은 몸값! 광고주들 쓸까 말까 고심’이란 내용을 보면서, 한 인간의 고귀한 땀과 노력이 결국에는 상품화로 전락되고, 1등만이 칭송 받는 우리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스며들었습니다.
어쨌거나, Home Schooling 세미나는 자녀교육이란 결국 부모의 삶과 철학에서 그 바탕이 이루어지고, 자식교육을 남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스스로 관심을 갖고 기대와 욕심보다는 도움과 지원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라는 조용한 말로 끝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