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 같은 하루였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루였습니다.
자연의 정기와 신선함, 생명력을
듬뿍 안고 돌아온 하루였습니다.
오렌지 같이 상큼하고도
달콤새콤한 하루였습니다.
진한 향수를 간직하지 않았지만
내내 은은한 향이 코끝에 스미는
하루였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즐거움이
함께 어우러진 정겹디 정겨운 하루였습니다.
오늘 잠시 집을 떠나
자연의 품 속에 안긴건
'정말 잘한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옹골진 하루였습니다.
양 어깨에 빵빵한 힘을 더하고
가슴엔 말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그 어떤 생각을 떠올려도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을 수 있는 만족한 하루였습니다.
누구든 붙들고 환한 얼굴로
'오늘 참 행복한 하루였어요'라고
말하고픈 정말정말 좋은 하루였습니다.
전대 평생교육원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장성 할렐루야 기도원 옆에 터를 잡은
전남대학교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쪽빛 하늘은 가을에만 볼 수
있는줄 알았는데 길 양옆의
그리 높지 않은 산 봉우리에는
아직 잔설이 하얗게 남아 있었지요.
점심식사 후, 커피를 한잔 뽑아들고
건물 밖으로 나온 나는 푸른 하늘과
산봉우리의 잔설로 어우러진 자연 앞에
감탄과 함게 숭고함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반가운 분들을 만나 오후 계획은
정도(正道)가 아닌 약간 우회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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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산86-1.
이곳엔 대한 조계종
'용흥사' 라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139호이고,
여기에 유형문화재 90호인 범종이
'이타전'에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용흥사 초입에는 왼편으로
부도군이 위치하고 있다.
스님들의 사리를 모셔 놓은 부도군은
모두 7기가 줄지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그 각각의 문양과 탑 모양이 독특하다.
탑의 맨 위에 있는 모양은
무화과를 본뜬 모양이라고 한다.
부도가 놓여진 맨 아래의
받침돌 모양도 독특했다.
링 모양, 각이 진 모양 등,
또한 중간 부분의 팔각 기둥에 새겨진
무늬도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는
각각의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다.
보통은 연꽃모양, 구름모양 등이
새겨진다고 한다고 한다.
부도군을 자세히 살펴본 후,
극락교를 지나 용흥사 입구에
당도하니 '은진미륵불'이 우람한
자태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높다란 은진미륵불을 보는 순간,
언젠가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내가
처음으로 보았던 동양 최대의
거대한 석불인 '해수 관음성상'이 떠올랐다.
너무나 거대한 그 크기에 우선 압도 되었었다.
뭔가 커다란 충격에 내 가슴은
벌떡거렸고 심장은 쿵쿵거렸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는건
그 크기도 크기지만 해수 관음성상의
얼굴가득 머금은 '인자한 미소'와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듯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가사'를 걸친
석불 모습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그보다는
조금 덜했지만 아무튼 쉬 놀람이 가시지 않았다.
요모조모 석불을 바라보던 나는
약간의 의아함을 가졌다.
너무 깨끗해서 이끼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고, 너무 말끔한 겉 모습에
약간은 낯설음마저 느끼게된것이다.
오늘 찾은 용흥사는 '이타전' 건물 한 곳만
고유의 터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몇개 동
건물들이 새로 창건 중에 있었다.
영조대왕의 생모인 최숙빈 대비가 한때
이곳에서 기도하여 영조가 탄생했다고 한다.
땔나무군, 무수리 출신이었던
어머니의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영조는 즉위(60년 동안 제위)한 후,
여섯명의 상궁을 모실 육상궁을 지어주고
일체의 세금을 면세 해 주었다고 한다.
본래의 寺名은 '몽성사'
국왕과 나라를 위하는 뜻에서 '용흥사'라
개명했다 하며, 48동이 6.25동란으로 완전 전소
되었는데 1988. 10. 5.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복원(신축?이 더 어울릴법하다)중이라고 한다.
거대한 대웅전은 내부 단장 중인지 아직은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고 그 대웅전을
끼고 옆으로 돌면 왼편에 산신이 이 절을
잘 지켜 달라는 의미에서 모신다는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었고 대웅전 뒷편 지붕 위에는
아이 팔뚝만한 고드름이 주르르 매달려 있었다.
요 근래에 보기드문 고드름이라선지
어릴적 처마 밑의 고드름을 따다
동네 아이들과 칼싸움도 하고
더 철없던 시절에는 초가지붕 위의
고드름을 따다 수건에 싸서 방안에
숨겨 두었었는데 나중에 보니 고드름은
간데 없고 수건만 흥건히 젖어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용흥사 '이타전'에는 유형문화재 90호인
'범종'이 보존되어 있었으며, 현재 고유의 자리에
터를 잡고 있는 본래의 건물은 이타전 뿐이라한다.
나머지 건물들은 모두 제각각 위치를 잡아
신축했거나 신축하는 중에 있었다.
그곳에서 발길을 돌려 나오면서
'간헐천'(물이 살아 움직인다 하여 명명)
이 있는 '중대암'이라는 암자에 올랐다.
눈이 녹는 중이라 연한 뽀드득 소리는
아니었지만 비단길을 걷는 듯한 그
발밑의 촉감은 나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오르는 길목에 계곡물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는데 물 속이 다 들여다 보이고
이끼가 전혀 끼지 않은 맑은 물 속에서
금방 빙어라도 솟구쳐 오를것만 같았다.
아담한 암자는 스님의 손길로
아기자기하게 잘 다듬어지고 꾸며져 있었다.
우리 풀꽃들과 야생화를 사랑하신다는
스님의손길이 곳곳에 스며있었고 작은 연못도
아주 운치 있었다.
간헐천 약수에 목을 축이고 그 물맛을
비유할만한 낱말을 찾으니 아무리
뒤적여 보고 헤집어 보아도 이 작은
가슴과 머리로는 도저히 표현 불가능이라.
주인이신 스님은 잠시 암자를 떠나시고
수수한 처사님이 일행을 맞아 들여
정성껏 끓여 내오신 차를 대접받았다.
차와 함께 곁들여져 나온 곶감은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 곶감으로 수정과를 담그면 풀어지지 않고
한 달 이상 두어도 그 모양 그대로 있다고 하니
함부로 맛볼 수 없는 귀한 곶감임을 말해 무엇하리.
잠시의 빡빡한 내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겨 안온함과 여유를 누린
오늘 하루의 이 행복한 마음쉼의 나들이가
현실로 돌아온 나의 힘겨운 일상에
힘찬 삶의 활력소가 되리라.
20010131.
새해 첫달의 마지막날. 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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