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께서 크레 치오에서 베들레헴을 재현하게 된 동기는 명확합니다. (벌써 이 동기가 올해로 800주년이 되었군요) 귀족인 요한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기가 겪은 그 불편함을 보고 싶고, 또한 아기가 어떻게 구유에 누워 있는지, 그리고 소와 당나귀를 옆에 두고 어떤 모양으로 짚풀테기 위에 누워 있는지를 나의 눈으로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
그는 둘레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습니다.그는 가난한 임금님의 탄생과 작은 마을에 베들레헴에 관하여 재미나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부르고 싶을 때면 사랑에 불타서 그분을 베들레헴의 아기라고 부르곤 하였습니다. 베들레헴이라는 말을 할 때의 그 목소리는 마치 어린양의 울음소리 같았습니다. 그의 입은 말로써 보다는 차라리 감미로운 사랑으로 채워져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글라라도 기도할 때 얼굴과 팔을 십자가로 펼치며 땅에 엎드린곤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주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였고, 땅을 눈물로 적셨으며, 땅에 입맞춤을 하였고, 그리하여 그녀는 예수님을 언제나 가까이 모시듯이 예수님의 발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어느새 세월은 흘러 또 한해의 끝자락까지 흘러왔습니다. 시작은 반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이상의 속도감이 따르는 것이 노년의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삭풍이 불고 바람의 선율 따라 사방으로 이어진 메마른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겨울입니다. 그 안에서 온기는 찾을 수 없지만 회상으로 나마 추억의 길을 걷다 보면 내면에 안개처럼 흩어져 있는 옛이야기 들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완의 아픔은 꼭 독감을 닮은 오한의 증세 같다 하면서 눈을 잠시 감고 자신의 맥박 소리를 찾다 보면 마음과 몸 안에 잔존하고 있던 옛 기억은 전부 자신의 몫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청춘은 꿈을 먹고살았다면 중춘은 물욕의 현혹에 살았고 노추에는 회상에 잠재된 추억을 불러내며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의 정체에 휘둘리지 않고 세월에 지치지 않으려면 성탄과 더불어 사부님의 자유의 샘 안에서 번득이는 평화와 글라라 성인의 순백의 믿음을 화두로 제2의 믿음이 시작되었던 시기의 저에 정체성을 되짚으며 회한의 순간을 극복해 보고 새로운 일 년의 계획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란 이름의 영성 안에는 '자유'가 숨어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사부님과 항상 함께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글라라'입니다. 성 글라라에게는 순백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신은 인간을 구속하지 않고 자유를 주는 신입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모든 이들을 서서히 그리스도로 만들어 나가는 신입니다. 이러한 것을 실제로 증명한 사람은 평생 가난한 성자의 길을 걷기 위하여 피나는 고난의 세월을 보낸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이탈리아 움부리아지방 아씨시에서 태어난 부유한 포목상 집 아들로서 유복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도 선천적으로 물려 받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본질과 해결에 대하여 하루하루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습니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가난한 성인들을 이야기할 때 지복의 경지만 극한 되어 설명하고 그 과정에 깃든 험하고 뼈를 깎는 행적은 흘려보내기 일수 였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으로부터 뛰쳐나가는 순간이야 말로 위대한 순간입니다. 자기 해방에 순간을 얻기 위하여 바친 희생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그 성인의 인생에 큰 감동을 받으면서 그 뒤를 이을 생각도 하게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육체에 수많은 고문을 일삼던 일생이었습니다. 사부께서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들자 자신의 육신에 대하여 동정 어린 마음을 자신에게 전합니다. 자신의 눈물을 통해 웃음 짓는 하느님을 익히 알기에, 육신을 동정하는 고백의 기도를 남겼습니다. "나의 형제 나귀여 나의 형제인 나귀여 나를 용서하오. 너무나 그대를 학대하였소. 또한 천지에 놓여 있는 모든 것에 하느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부님은 모든 것을 대하시는 마음이 순수해져 갔습니다. 순수는 바로 사부의 정당한 보검입니다. 그래서 구비오의 양 때를 죽인 늑대도 자신의 국속에 뿌린 재도 심지어 죽음 까지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봉건영주의 압재와 교황권의 교활한 탐욕과 핍박받는 농부들의 현실은 유럽 중세기를 개혁의 뜻과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발현은 시대적인 소용돌이를 몰고 왔습니다. 빈부의 격차로 인하여 파생된 종교적인 문제의 대두는 프란치스코의 영적 행렬을 로마, 페루지아의 경계를 넘어 들불처럼 이탈리아 전국으로 퍼져 나가며 참회를 바탕으로 신에게 자비를 구하고 계기가 마련됩니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가난은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난을 따르라는 결심 위에 세운 프란치스코의 가난의 영성은 중세 도시사회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세를 넓혀 나가는 동기가 부여됩니다.
사부님은 병을 앓다가 환시를 통하여 신을 만나 약속을 하게 됩니다. 도시의 여인들을 따라다니며 가무에 심취해 그들과 춤과 노래를 부르며 지냈던 탕아의 생활을 청산하고 쓰러져 가는 교회를 세우라는 신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환시 속에서 신은 사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전하십니다. “ 나를 보면 너 자신을의 얼굴을 볼 것이고 너를 보면 나 자신의 얼굴을 볼 것이다” 이때부터 환시에 신들린 사부님의 생애는 “ 나는 땅을 느끼고 땅은 나를 느끼도록 대지에 발가벗고 누울 그때까지 온갖 수모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가난, 평화, 사랑을 설교하는 것을 한 시도 놓은 적인 없는 삶을 살아가시게 됩니다.
사부는 병마와 싸워가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통을 실현하는 일생을 살게 됩니다. 이 속에는 중세의 물질적 풍요의 가치관을 버리지 못한 레오도 결국 사부의 정신적 목표에 이를 때까지 회의적이었지만 결국 감동을 받아 충실한 선택에 하게 됩니다. 맨발의 탁발 수도자 사부는 세속적인 교황의 탐욕을 진정으로 회개하게 유도하고 사부의 정신적인 위대한 사랑이 글라라를 우애로서 수녀로 맞이하고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자비와 선의 사랑의 경지로 올려놓기도 합니다. 종국에 이르러서는 온갖 만물(태양, 물, 빛, 불, 동물, 풀과 나무 등)을 형제처럼 사랑했던 사부 프란치스코에게는 신은 자연이며 자연은 곧 신이었습니다. 비로소 사부님께서 진정한 자유를 얻으신 것입니다.
아씨시의 성녀 글라라, 봉쇄수도원의 창립자시며 성 글라라 수도원의 최초의 영적 어머니의 글라라라는 이름은 구약의 히브리어나 신약 그리스어가 아닙니다. 사부 성 프란치코와 성녀 글라라는 12-13세기 중세시대의 인물로서 라틴어에서 이름을 갖고 온 것입니다. 라틴어의 철자 Clara입니다. Clarus의 여성형이며 형용사로 Transparent clear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투명함과 순백의 뜻을 지닌 Clara는 순백의 믿음을 지닌 성녀입니다. 그리고 생전 성녀는 십자군 전쟁시기였습니다. 오스만터어키 족의 빈번한 침입을 받아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수녀원으로 쳐들어 오는 오스만 터어키족의 침공에 놀란 수녀원 자매들이 피신하자는 간청을 물리치고 글라라는 순백의 믿음 하나만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피신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오로지 순백의 성체가 모셔진 성광을 들고 창으로 다가가 이슬람 군사들을 향해 성광을 비추자 진군하던 이슬람 군사들이 회군하여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후 글라라 성녀는 순백의 믿음 또는 순백의 성체기적 성녀라 알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글라라 수도원에서 성체공경 신심은 가장 첫머리에 올려져 있으며 성녀를 표현한 초상화에 성광과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자유와 순백의 믿음이 기복신앙의 한계에 머물던 얽매임에서 풀려나는 기회가 찾아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도 모르고 살던 지혜나 좀처럼 바꿀 수 없는 습관을 고치는 기회를 얻으면 새로운 광명의 세계를 얻게 되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좋은 경험이 세월이 흐르면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다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하지 않은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만 특히 일부분입니다. 그런 사실은 고백에 대한 통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도적인 통계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갖고 대화를 진솔하게 나누다 얻어진 수치입니다. 시간은 종전의 확고함도 무너트리는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반대로 더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시간을 부여해주기도 합니다. 어떤 생각으로 시간과 마주하며 사느냐에 따라 각각 다르게 반영되는 것이지만... 충실할 수 있는 조건이 가득하기에 마음에 와닺는 진실과 행복이 깃들어 있기에 그 방향으로 지속적인 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년의 시기에 접어들면 보편타당함을 기반으로 하는 사유와 행동은 무너지고 본능에 충실하며 이기적인 충동성만으로 매달리는 과오의 성향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변덕이 난무하고 대화는 생략되고 나름대로의 자존감 위해 모든 것이 투쟁적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아주 긴 시간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실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보고 살며 단 하나의 고집만으로 모든 것을 대면하는 것을 보며 갈등적 모순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나 또한 이 범주 안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어느 날 불쑥 자신에게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모순들을 자신의 마음자리에 들지 못하게 하려면은 노년의 정체성에 스스로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짐하게 된 것입니다. 이 혁신의 기반을 자연의 섭리를 통한 자유와 순백의 믿음 안에서 훈련된 의지에 중심을 두며 걸어 나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첫댓글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무뎌진다고 영적 형제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마음을 벼리고 갈고 닦으면 예전과 같이 예리한 심성을 기를 수 있다고 그들이 말하더군요. 앞으로 더욱더 정진하라는 말로 알아듣고 그 길을 걸어갈 계획입니다.
마음의 혁신은 인내를 수반한 지혜의 원적인 이지인 것 같습니다. 깨달음은 늘 신선한 걸음 앞에 자신을 세웁니다. 길이 없는 길을 가려면 걸어서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진리가 새삼 그리워 지는 시기에 당도해 있는 자신을 엿보고 마음의 파문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성찰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할지 모르나 고마운 기회라 여겨집니다. 새삼 젊은날 자신에게 꾸준히 부여하고 살았던" 걷지 않는 자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부르는 첫날 아침입니다. 또 한 해 안에서 모든 것이 축복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