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산성에서 보낸 하루였습니다.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쾌청하고 따뜻했지요.
산성의 식구들은 오늘 새벽에 새해 해돋이 행사을 정검하는
'해돋이 미리 보기'가 있었답니다.
물론 해는 근사하게 7시 40여분에 떠올랐다는 말을 들었구요.
혹여 새해 첫날 날이 흐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 조림과 함께
무사히 해가 착하게 두둥실 떠올라 주길 빌었습니다.
오늘은 운좋게도 기념관에서 정형모 화백을 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독산성 싸움도>를 그리신 작가 말입니다.
말그림을 매우 잘 그리셨지요.
오래동안 그림을 찬찬히 살피시더니 가까이서, 좀 멀리서
그윽히 바라보는 노 화백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78년도에 그림을 그리셨다니 20년도 넘은 세월이 지난 것이지요.
그동안 일 이년에 한 두번씩 오셔셔 그림을 보고 가신다고 합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산성에 대한 그 노화백의 마음은 각별하겠지요.
아마 우리 해설사들도 언젠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
앞으로 20년 30년 후에 어쩌다 이곳 행주산성을 찾으면
오늘 그 노 화백의 눈빛으로 산성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리라 생각됩니다.
(그때까지 산성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대부분이 저마다 이런 저런 사유로 헤어져 있기가 쉽겠지요.)
아니, 그 화백께선 기념관에 딱 한장의 그림을 그려두셨지만
우리들이야 행주산성의 봄여름가을겨울 구석구석을 누비며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리고다녔으니 훨씬 그윽한 마음이 되겠네요.
그때 옆에 가족이 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시겠지요.
그리고 지금 함께 있는 산성의 사람들과 해설사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기도 하겠지요.
세월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함께 데리고 가니까요.
지금은 생활이지만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오늘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정말 숙연하고, 그리고 소중하답니다.
소리나지 않게 무심한듯 잔잔하고 느릿하게
여러분들과의 인연을 이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