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장33-47절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
오늘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주신 하나님 아버지 경배하며 찬양한다!
[우리 서로 인사하자.] -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오늘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한다.
예수님은 제자 가룟유다의 배반의 입맞춤으로 잡히셨고 제사장들과 빌라도에게 고문을 받으셨다. 죄가 없는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신 후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으심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로의 길을 위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두 조각이 되었다.
성전 휘장은 두 개였다. 하나님은 성소 안에 휘장을 둠으로써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휘장을 만들게 하셨는데 휘장의 의미는 분리입니다.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휘장 밖 성소까지입니다.
휘장을 기준으로 성막은 둘로 나누어지고, 성소를 첫째 성막, 휘장 안을 둘째 성막은 지성소라고 불렀습니다. 제사장들을 항상 첫째 성막 안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둘째 성막에는 일 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피를 들고 들어가 속죄의 피를 뿌리는 것을 제외하고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휘장을 만들게 하신 것은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으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휘장이 가로 막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휘장을 걷어주시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휘장을 찢어주셨다.
이 휘장은 우리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였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Therefore, brothers, since we have confidence to enter the Most Holy Place by the blood of Jesus, by a new and living way opened for us through the curtain, that is, his body,
1. 하나님 나라로의 길은 열려있다.
나는 지금 어느 길을 향하고 있는가?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으르렁거리며 죽어라고 달려가고 지쳐도 쉬지 않고 뛰어가지만 그 길이 겨우 한뼘 길이 밖에 되지 않는 헤벨의 인생, 한번 숨을 내쉬면 곧 없어지고 마는 그런 인생이나 또는 분명히 열심히 달리고 살아온 것 같은데 쩨렘의 인생처럼 허상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비록 하나님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 정직하고 의롭게, 바르게 살기 위해서 천천히 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길이 좁고 험하게 느껴지고 어렵다 생각되어도, 남들이 보기엔 예수님 믿는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의 원칙이 미련하게 여겨진다 해도 우리들이 가는 길이 하나님 나라로의 길이라면 우린 지금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바로 그길!
십자가에 죽으시며 주님의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통해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을 열어주신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간다면 우리는 지금 생명의 길, 구원의 길, 축복의 길, 의인의 길, 천국의 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이젠 너희를 떠나게 되지만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겠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으니까 예비를 다 마치면 내가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으로 인도할 것이며 내가 가는 그 길을 너희가 알것이라고 하니까 도마가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모르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사람들이 왜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는가? 근심과 두려움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조차도 근심과 두려움에 얽매이면 금방이라도 주님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오늘 헌신예배 드리는 우리 아현영문 교회학교교사들 – 우리들의 사명 – 우리가 어느 길로 인도하느냐에 따라서 지금 우리들만 바라보고서 따라오는 우리교회 아기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과 청년들 – 다음세대 – 그들의 인생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까지 책임을 지게 된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주님의 몸을 찢으시사 성전 휘장이 찢어지면 하나님 나라로의 길이 열려졌듯이 우리 교사들의 헌신과 사랑과 사명을 통해 우리 교회학교 학생들이 하나님 나라로의 길을 가게 된다. *우리 어린이들/ 학생들은 선생님들만 따라가자!
우리교회가 세대통합예배 – 목적은 오직 하나 – 우리 가족 모든 세대 – 하나님 나라로의 길에 함께 가자는 것이다.
그 길을 조금 먼저 앞서 가고 있는 우리 어른들이 다음세대들에게 이 길을 가는 성도의 믿음, 신앙생활, 구원의 확신과 기쁨, 예수님의 길을 가는 성도로의 본이 되어 우리를 따라 오는 다음세대, 미래세대, 자녀세대들로 모두가 바로 이길로! 다른 길이 아닌 하나님 나라로의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 우리 아현영문 다음세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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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아리마대’는 예루살렘 서북쪽 30여km 쯤에 있는 성으로, 일반적으로 사무엘의 고향인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 소빔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사사이자 위대한 선지자였던 사무엘의 고향이니만큼, 올바른 여호와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자부심이 높았을 것이며, 자연히 이곳에서 자란 아리마대 요셉은 그러한 영향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 요셉’ - ‘여호와께서 더하실 것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존귀한 공회원’으로 ‘부자’였다. 그의 집안은 아리마대 성의 유지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백성의 장로로서 유대민족 최고법정 산헤드린 공회원의 자격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공동굴이나 자연동굴을 무덤으로 사용했다.
수의로 싸여진 죽은 사람의 시신은 동굴 속 의자 위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무덤의 입구는 큰 돌로 막아 언제든 여닫을 수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시체가 완전히 썩고 나면 사람들은 무덤 문을 열고 들어가 유골을 수습하여 유골함에 넣은 뒤, 무덤의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나마 이런 가족 공동묘지가 없는 가난한 자들은 죽는 즉시 땅 속에 매장되어 버렸고, 흉악한 범죄자나 저주받은 자들의 시체는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일반공동묘지’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완전 새 무덤에 장사된다는 것은 여간 부자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갈릴리 목수 출신의 예수님의 경우에는, 시신이 그냥 땅 속에 매장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흉악범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졌기에 기드론 골짜기의 일반 공동묘지 속에 던져져야만 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단지 자기에게 자신이 기다리던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신 주님을 사랑했기에 그렇게 했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의 그와 같은 행동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2. 아리마대 요셉을 통해 이사야 53:9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He was assigned a grave with the wicked, and with the rich in his death, though he had done no violence, nor was any deceit in his mouth. 만약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새무덤을 주님께 드리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이 땅속에 매장되거나 일반 공동묘지 속에 버려졌더라면 이사야의 예언은, 아니 구약성경은 거짓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생활과 믿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
3. 아리마대 요셉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 정말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만약 아리마대 요셉이 아니었더라면, 주님께서는 땅속에서 온몸에 흙을 뒤집어쓰신 채 일어 나셨거나, 기드론 공동묘지로 부터 다른 시체의 썩은 물에 흠뻑 젖으신 채 부활하셨을 터인데, 그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우리 주님의 영광이 아름다울 수 있다.
▲아리마대 요셉이 사랑하는 주님께 자신의 새 무덤을 드릴 때 이와 같이 위대한 역사가 그곳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행하는 일이 아무리 하찮은 일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실은 상상치도 못할 위대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오늘도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시며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하고 알게하고 그 나라에 우리들과 함께 올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우리들만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애타게,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려야만 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불신자 가족들!
우리 이웃들,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의 영혼들, 더 나아가 우리나라와 세상의 영혼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리마대 요셉처럼 당돌하게 – 톨마오 – boldly – 극한 위험을 무릅쓰고 대담하게, 용감하게 –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성도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내 무덤을 내어줄 만큼의 희생과 헌신의 신앙으로 : 1.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주님의 몸을 찢어가시면서 열어주신 하나님 나라로의 길로 날마다 걸어가며 살아가자!
2. 아리마대 요셉을 통해 이사야 53:9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처럼
나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내 삶 가운데서, 내가 만나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성취되게 하자!
3.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새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드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 정말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처럼, 나의 희생과 섬김, 봉사를 통해 예수님의 이름이, 예수님의 영광이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하자!
이 시간 찬양하고 기도: [주님 나라 임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