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 역 사이를 걷다
1. 연천은 경기도에서는 드문 인구 소멸 지역이다. 다른 북쪽 지역과 마찬가지로 휴전선과 밀접했을뿐더러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이 적은 곳이다. 한탄강 관광지나 전곡 선사유적지를 중심으로 답사했던 관계로 연천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은 부족했다. 최근 신탄리역 쪽으로 자주 가게 되면서 연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휑하니 넓은 공간이 많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건물과 사람과 차들이 적다는 점이다. 그것도 대다수는 관공서와 군부대와 작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연천과 철원의 경계점인 신탄리역을 출발하여 역 사이의 길을 걸으면서 연천역까지 이동했다. 그것은 여유로운 걸음이지만 낙후된 연천의 현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2. 연천의 고적함은 최근 경원선 공사 관계로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열차와 역은 조용한 시골의 활력을 주는 몇 되지 않은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역은 문을 닫았고 그 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연천의 거리는 더욱 한산해졌다. 신탄리역에서 평화누리길을 따라 약 2시간 30 분 정도 걸어 신망리역까지 이동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따라 여유롭게 연천의 산과 들 그리고 하천 사이를 걷는다. 여유로운 공간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시간이다. 수확이 끝난 논과 밭은 봄을 기다리며 긴 휴식에 돌입했다. 활동을 중지하고 퇴역한 존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진한 외로움을 전달한다. 매년 새롭게 태어나는 식물들에게는 새로움을 위한 충전일 수도 있지만, 인간에게 퇴역한 후 시들어져 가는 모습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신호이자 허무의 언어이다. 인간의 종으로는 ‘새로움’일지라도 개별적인 ‘존재’는 망각되는 과정이다.
3. 신망리역은 최근 단장을 하고 ‘신망리 마을박물관’으로 변모했다. 역 주변을 꾸미고 역사 안에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퇴락해가는 것들을 다시금 부활시키려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아름답다. 지금은 기차가 끊겨 사람들이 찾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열차가 달리면 이곳의 풍경은 조금은 풍성해지리라 믿는다. 어쩌면 나의 ‘기차 인문학’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시골 간이역은 누군가에는 잊혀진 장소이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의미있는 공간이다. ‘신망리 역’의 변모가 그러한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4. 경원선 운행 중단 때문에 백마고지 역과 동두천 역 사이를 셔틀 버스가 대체 운영되고 있다. 먹거리는 소요산 역 주변이 많다는 생각에, 또 그곳에 맛있는 단팥빵 가게가 있다는 생각에, 소요산 역까지 셔틀 버스로 이동했다. 소요산 역 주변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그래도 몇 군데 괜찮은 식당이 있다. 두부 요리를 잘하는 집도 있고, 메밀 요리가 맛있는 집도 있다. 아직도 소요산은 관광지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메밀 요리 전문점에서 ‘굴떡만두국’을 먹었다. 따뜻한 국물과 풍성한 굴 냄새가 피곤한 몸을 덥혀주었다. 여행의 마지막은 역시 먹는 행위이다. 단지 때우는 음식이 아니라, 답사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의식으로서 중요한 맞춤표인 것이다.
5. 다시 셔틀버스로 신탄리역으로 돌아와, 자가용을 몰고 출발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둠이 가득한 도로를 고독하게 달린다. 같이 달려주는 자동차의 불빛도 없는 도로는 긴장감을 배가 시킨다. 하지만 그 끝없는 어둠이 묘한 매력을 주기도 한다. 모든 것을 침묵하게 하는 느낌이다. 더구나 완전히 새로운 공포의 어둠은 아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답사를 한 곳이기 때문에 대략 알고 있는 길에 가득한 어둠이다. 그리고 그 어둠은 익숙한 밝음을 향한 과정이다. 경기도 북부 지역을 달릴 때는 남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차 사이를 헤집고 다녀야 하는 복잡한 남부와는 다르게 북부는 비워있다. 어둠만이 나의 길동무였다. 1시간 조금 더 달리자 자유로가 나타난다. 집이 가까워졌다.
첫댓글 - 사라져 가고 있다는 신호이자 허무의 언어! 그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