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성읍 구원리 고반동(考槃洞) 칠곡(七曲)의 합죽선(合竹扇)
선비가 펼쳐든 합죽선(부채)을 닮은 바위가 한 폭의 그림이다.
이 합죽선을 동악산 눈물겨운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곡성군민들을 올바로 이끌어줄 의인(義人)에게 드린다.
### 차기 곡성군수와 의원들에게 전하는 곡성중고등학교의 역사
곡성중앙초교는 말할 것도 없지만 곡성중고등학교는 곡성농업실수학교가 그 전신으로 동악산에 은거 항일의병과 민족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애국지사들이 비밀리에 사전 학교를 세울 위치를 선정하고, 10여 년 간 몇몇 대표자들이 각개로 해당 토지들을 매입한 후 곡성군민들의 성금과 참여로 설립된 민족자각운동의 결과물이며, 항일독립운동의 상징이다.
항일독립운동의 상징인 곡성중고등학교가 설립된 것은 다음과 같은 눈물겨운 역사가 있었다.
당시 조선 말기부터 동악산에 은거하여 항일의병과 민족독립운동을 이끌어온 우리 곡성의 애국지사들이 당시 1921년 8월 초 지금으로 환산하면 대략 7~8백억원의 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보내는 등 조직적이고 모범적으로 활동하던 우리 곡성의 애국지사들이 일거에 와해되고 지하로 숨은 것은 1920년대 초의 일이다.
1921년 7월 백중날(8월 18일) 밤 매국노들의 밀고로 일제히 검거되어 살해되거나 암살되고 혹독한 고문으로 죽거나 미쳐 길거리를 헤매다가 들짐승들의 먹잇감으로 사라지면서 조직이 와해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남은 조직을 추슬러 지하로 숨어들었다.
당시 동악산에 은거 지하로 숨어들어 곡성의 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우국지사들의 비밀활동이 얼마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은밀하고 끈질기며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이들이 1920년대 초부터 은밀히 모의하여 1937년 토지(25,692평)를 확보한 후, 1941년 2월 25일 현 곡성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모태가 된 곡성농업실수학교(谷城農業實修學校)를 설립하는 과정에 잘 나타나 있다.
“곡성중학교는 당시 우리 조선인들이 배우지 않으면, 왜놈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걱정으로 노심초사하던 지역 어른들이 조선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왜놈들에 맞서 모의 끝에 세운 학교였다.”는 곡성읍 학정마을 박봉안박봉안(朴鳳安)의 손자 박종석(朴鐘錫 1927년 현 생존)옹의 증언에서 보듯이, 1920년대부터 초부터 정수태(丁洙泰, 秀泰, 1890∼1949)를 비롯하여 박봉안(朴鳳安 1871~1939)․정규태(丁奎泰 1884~1939)․조태환(曺台煥 1901~1950) 등을 대표로 하여, 서로 역할을 분담 대략 15년에 걸쳐 1937년까지 자금을 모으고 예정된 학교 부지 25,692평을 매입 확보한 후 현 곡성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모태가 된 곡성농업실수학교를 설립한 것이니 곡성중고등학교는 곡성군민들의 성금과 참여로 설립된 민족자각운동의 결과물이며, 항일독립운동의 상징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들 우국지사들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깊은 산골짜기 숲속에서 솟아나 바다로 가는 옹달샘의 물처럼 끈질기고 조직적으로 활동한 애국지사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니, 대를 이어가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굴욕을 참아내며 희생하여준 우국지사들에게 감사할 뿐 더는 욕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조선 말기부터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이, 다시 그 아들이 죽으면 또 그 아들이 대를 이어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헌신했던 이들 우국지사들의 맹약은 해방 후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져 노무현 정권에서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장병완을 광주로 보내 교육시키는 결정적인 힘이 되었으니 무엇을 더 의심할 것인가?
이처럼 분명하고 자랑스러운 곡성읍 동악산 항일독립운동의 역사가 끊임없이 부정되고 훼손되고 있는 것은, 해방 이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애국지사들을 학살하여 버리고 대를 이어 곡성을 장악하고 있는 “조(趙)․양(梁)․박(朴)․빙(氷)․이(李)․김(金)” 등으로 대변되는 몇 안 되는 친일파들과 대를 이어 군림하는 이들 친일파 후손들에게 기생하는 신흥 부패세력들이 그 원인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사람들이라면 남녀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다 아는 이들 “조(趙)․양(梁)․박(朴)․빙(氷)․이(李)․김(金)” 등으로 대변되는 몇 안 되는 친일파들은 일제 강점기에 곡성지역에서 활동하는 항일독립군들을 괴멸시키는 치명적인 역할을 한 반민족 매국노들이고, 잔혹한 고문과 수탈에 앞장선 악질 친일 부역자들이며, 지금도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 노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치를 떠는 민족을 배반한 매국노들인데, 해방 후 지금까지 대를 이어 곡성의 덕망가로 정치가로 교육과 문화계의 어른으로 군림하고 있으니, 무슨 역사가 바로서고 무슨 발전이 있으며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인가! 참으로 통탄(痛歎)할 일이다.
【부연하면 친일파 중에서도 이들 악질 친일파들은 당시 이들로부터 혹독한 고문과 수탈 등을 직접 겪어냈던 곡성군민들과 지금도 관심 있는 주민들은 다 알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국가에서 친일파로 규정한 것이 아니기에 필자가 조사한 명단을 공개할 수가 없는 안타까운 사정이 있음을 양해하여 주기 바란다.】
그동안 곡성의 역사를 연구하는 한사람으로 곡성중앙초교와 중고등학교의 역사를 바로세우고 정신을 계승하기를 바랐지만 친일 매국노들의 방해로 실패하고 그저 사료로 책장 속에 꽂아두고 있는 안타까운 오늘이다.
바라건대 오는 6월 2일 선출되는 차기 곡성군수와 의원들은 친일 매국노들이 묻어버린 곡성의 역사 곡성중고등학교의 역사를 바로세우고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우리 곡성이 미래로 나가는 동력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곡성 중앙초교와 곡성중고등학교 출신들은 자랑스러운 우리 곡성의 선비정신을 이어받고 오늘에 되살려 21세기 항일의병과 민족독립운동을 이끄는 독립군의 자세로 대를 이은 매국노의 세력과 부패세력들을 청산하여 우리 곡성을 바로 세우는 일에 앞장서 줄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린다.
거듭 부디 백 년 전 의로운 땅 곡성에서 의로운 선비들이 의기를 치켜들고 일어나 나라를 구하고 민생을 구했던 것처럼 우리시대의 소명(召命)을 받은 의인(義人)은 이 합죽선으로 맑고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해방 후 지금까지 친일파들과 그 후손들이 묻어버린 동악산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이 땅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일소하여 의로운 선비들의 고장 살맛나는 곡성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부정부패 없는 참 맑은 세상을 위하여
2010년 5월 4일 동악산에서 박혜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