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만의 천수이볜 총통은 2006년 국민 투표를 통해 대만 독립을 골자로 하는 개헌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이 있은 후 중국의 외교부 대변인은 즉각 성명을 통해 "이는 대만의 동포들에게 엄청난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천수이볜 총통의 위와 같은 개헌 선언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강도 높은 경고성 비난에도 불구, 천수이볜 대만 총통은 최근 미국을 방문해 미국의 '친대만파' 정치인들을 연쇄적으로 만나며 대만 독립의 정당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이러한 행보에 대해 중국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도 대만 문제에 미국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현실 때문에 극단적인 언급은 일단 피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11월 21일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를 가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도 "미국은 대만에게 오신호를 보내지 말라"며 완곡한 어조로 미국의 개입을 비난했다. 천수이볜 총통이 2006년 개헌으로 대만 독립을 시도한다면 이는 중국과 대만과의 충돌만이 아닌 '중국과 미국'의 충돌이 될 수 있는 문제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으로서는 대만을 중국에 넘겨 줄 경우, 일본을 포함한 세력권을 완전히 중국에게 넘겨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미국에게 대만은 '전략적 요충지'이다. 중국 또한 대만이 독립할 경우 '하나의 중국'을 고수하던 대원칙이 깨지는 것은 물론, 국내의 소수 민족들이 각자 독립을 요구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기에 절대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대만의 '독립'이 2006년 현실적으로 실행 단계에 들어간다면 그 이후의 사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최근의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중국의 언론들도 천수이볜 총통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연일 대만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 대만 문제를 보도하고 있는 <환구시보> 11월 24일자 신문
격일로 발행되는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1월 21일자, 24일자 신문에서 대만 문제를 연속적으로 심층 보도하였다.
<환구시보>에 따르면, 천수이볜 대만 총통은 '2003년 독립을 위한 입법 완성, 2004년 국민 투표 실시, 2006년 헌법 제정, 2008년 신헌법 공포'라는 '독립 시간표'를 발표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행보를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우선 법률적인 이유이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대만의 헌법상 중국은 대만 영토의 일부이다. 헌법상으로는 대만과 중국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천수이볜을 중심으로 한 '대만 독립파'들은 대만 헌법에서 중국을 제외시키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법률상으로도 대만과 중국을 완전히 분리시키겠다는 뜻이다.
또한 국제법상으로도 대만의 분리는 국제 사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1960년 UN이 제정한 국제법에 따르면 '식민지 경험을 한 나라만이 국민 투표를 통해 독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은 원칙상으로는 그동안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었으며 식민지 경험을 했다고도 할 수 없기에 국민 투표가 아닌 국제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천수이볜 총통이 위와 같은 시간표를 정해 놓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중국에서 개최되는 '세계박람회'이다. 중국에게 '베이징 올림픽'과 '세계 박람회'는 현재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따라서 중국은 2006년을 전후로 해서는 결코 대만 문제에 강하게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 천수이볜 총통의 계산이다. 그동안 잠잠하던 대만 독립 문제가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이러한 천수이볜 총통의 계산법과 무관하지 않다.
국제적인 이유 말고도 대만 내부의 정세 또한 '대만 독립'을 부추기고 있다. <환구시보>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대만의 정가는 대만에서 출생한 '본토인(本土人)'이 그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 본토인이 대만 정가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이등휘(李登輝) 전 대만 총통의 '본토화(本土化)'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이등휘 총통 자신이 대만 최초의 '대만 출신' 총통이었기에 이등휘 총통은 과거 국민당 주석 시절, 대만 출신이 대만을 이끌어야 한다는 '본토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현재 대만 의회의 대만 출신 의원수 비율은 약 70%에 달한다.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가 정치 주도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대만의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호도 '중화민국(中華民國)'이 아닌 '대만공화국(臺灣共和國)'으로 고쳐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 사정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독립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대만이 가장 믿고 있던 미국의 반응이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지난 18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는 "미국이 대만에 파병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국과 대만의 관계에 있어 피상적인 '평화적 해결'만을 외치고 있다. 미국으로선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굳이 불편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태도 또한 만만치 않다. <환구시보>는 기사에서 "중국과 대만은 가깝다. 인민 해방군은 대만 독립 선동자들을 반드시 사멸시키고야 말 것이다. 그들(대만 독립파들)이 대만에서 떠난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허락된 땅은 한줌도 없다!"라며 대만이 계속적으로 독립을 추구할 경우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독립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단호한지 나타나는 대목이다.
어쨌든 대만 독립의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미국이다. 미국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대치 국면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대만을 포기할 것이냐에 따라에 따라 대만 독립 문제가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과 정면 승부를 하려할 것이냐에 대한 예상은 상당히 회의적이다. 따라서 천수이볜 총통의 대만 독립 시도는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미국이 충돌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대만의 독립 문제는 동북아 정세의 태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의 미묘한 감정이 폭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점차 중국으로부터 이탈해 가는 대만 정서, 그리고 대만을 둘러싸고 전략적 이익과 민족 단결이라는 명제 앞에 서로 맞서고 있는 미국과 중국. 과연 이 세 가지 대립각이 어떠한 형국으로 풀려갈 것인지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