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사무실에서 쌈지님, 갈매님과 함께 장식초를 만들었다. 파라핀에 크레파스로 색깔을 만들어 엽기토끼, 피카츄, 개구라찌, 소라를 만들었다. 빨강 파랑 노랑 보라 연두 예쁜 모양과 색깔로 변하여 하나씩 둘씩 태어났다. 우린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함성을 지르고 손뼉을 치며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초들을 가지런히 놓으면서 원승스님의 글이 생각났다. 동자승을 그린 그림이 하나쌕 팔려나갈 때 어미품을 떠나는 자식을 생각하며 마음아파 했다는데 나도 그럴 것 같았다. 우리의 손길이 닿아 태어난 장식초들이 자식처럼 소중했다. 옆에서는 미룡님이 구슬을끼워서 목걸이도 반지도 핸드폰걸이를 만들고 나눔님과 샘물님은 분주히 바깥일을 하셨다. 자오에 힘들고 궃은일을 맡아서 해주는 노총각 경남씨도 함께 했다. 착하고 부지런한 우리들의 총각 경남씨를 올해는 장가보내기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름대로 꼼꼼이 준비하여 바자회의 문이 열렸다. 일찍가서 바자회 여는 것을 도울려고 했는데.... 8시경에 도착하니 그 전날부터 광주에서, 익산에서 올라온 몽실님과 수수님, 달래님 선희님 경남씨 제이비님 회진님이 준비하고 있었다. 9시가 되기 전에 정리하기 위해 옷을 걸고 지갑과 양말, 물건 하나 하나를 만지면서 오늘 우리의 바자회에 많은 분들이 방문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시간이 되어 목양교회 집사님들이 여러분 오셨다. 떡뽁이, 순대 김밥, 등를 준비하고, 샘물님은 구슬땀을 흘리면서 이것 저것 지시를 한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 여기저기서 "오세연집사님 이건 어떡해요? 여긴요?????" 소리친다. 오랜만에 보는 시골 장날 같았다. 연실 땀을 훔치며 작은 발자국을 옮기는 샘물님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무엇을 위해 밤잠도 못자고 휑한 눈으로 저리 분주히 다니는걸까, 무엇을 위해.... 아이들 학교 보내고 조금 늦게 도착한 쌈지님과 갈매님이 들어서자 분주히 움직이던 손들이 보다 활기를 띠는 듯 보였다. 쌈지님은 정 훈 선수 야구선수 시절에 야구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외친다. '예쁜 언니 여기 맛난 김치, 젓갈, 밑반찬도 있어요", "멋쟁이 아주머니 여기 좀 오셔요 김밥이 있구요 순대도 있어요 ", " 아가들아 엄마 모시고 오너라"...... 제일 먼저 물건들을 팔아주고 싶어 일찍 나왔다는 장춘화집사님(복음송가수) 이것 저것 골라서 바구니에 담는다. 정말 감사했다. 그 정겨움에 .... '주여 그 가 내딛는 발 걸음을 복되게 하소서 아름다운 마움위에도....' 작은소리로 나는 기도한다. 햇볕이 뜨거워 팔이 아픈 것 같았다. 모두 힘이 든 상황인데도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바자회날 처음 만난 달래친구 선희님도 끝까지 남아 봉사해주셔서 감격에 감격이다. 코너마다 손님들이 물건을 사기도하고 음식코너에는 분주하다. 우리도 뜸뜸히 먹거리를 사다 먹었다.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바자회에 참석하신 풋내기목사님 얼굴을 뵈니 반가웠다. 나눔님은 전봇대 옆 의자에 앉아 혹 부족한게 있는지 잘못된게 있나, 없나를 살피시느라 내내 조금은 상기되어 긴장한 듯한 표정이 역력하다. 들어가서 조금쉬다 나오시라 했지만 영 마음이 놓이질 않는 듯 지리를 뜨지 못하신다. 그래도 성급한 마음에 왜 이렇게 손님이 없죠 묻는 내게 "아직 반나절인데 ..." 라며 걱정말라시는 걸 보면 역시 대장이지 싶다. 생각했던 만큼 유동인구가 많지 않았다. 학생들도 거의 다니질 않고 너무 많이 남은 물건들을 보고 걱정이 앞섰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 자리를 지키자 다음 날이 시어머니 생신이시라 수수님이 먼저 가신단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바자회 장소를 떠났다. 오랜 만에 만났는데 제대로 인사말도 못하고,나눔의 노래 행사때 만나자며 헤어졌다. 저녁때 약속이 있어 쌈지님과 갈매님을 두고 먼저 오면서 끋까지 도와주고 오길 빌면서 마음은 그 곳에 두고 인사도 없이 서울로 돌아왔다. 샘물님, 수수님 몽실님 앞에 피곤하다는 말 조차 꺼낼 수 없지만 무엇이 피곤한지 ....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쉬고 싶었다. 아무런 생각없이...자오식구들이 궁금해서 마음놓고 쉴 수도 없었다. 나눔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 들 댁으로 가셨단다. 전화를 끓고 마무리는 누가 하나 그 많은 일들을.... 그대로 집에 있을 수가 없어 권영석집사님께 함께 가서 도우자고 했다. 내 얼굴을 보고 쉬길 원하는 남편에게 " 난 쉴 수 없어, 죽어도 그 곳에서 죽을래, 그 곳에 남아있는 식구들은 어떡허구 나 혼자라도 갈래" 여간해서 고집을 꺽지않는 날 그냥 말려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남편이 데려다 주고 도와주겠단다. 결혼한지 25년이 지난 후 그 날처럼 고맙고 감사하단 생각 해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기운이 있으면 업어라고 주고 싶었다. 감사! 감사! 권영석 집사님 당신의 착한 마음에 하늘의 복이 가득하길... 9시경에 부천에 도착했더니 모두 빠져 나간 빈자리에 남아있는 식구들은 모두 지쳐 있는 것 같았다. 선희님은 한 개의 옷이라도 더 팔고 싶어 스피커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널어놓았던 옷가지를 다시 박스에 담고 미룡님은 악세사리를 정리하시고 샘물님과 회진님은 쌓여있는 물건들을 다시 차로 옮기고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권영석집사님은 무거운 짐들을 번쩍 들어 차로 옮긴다. 작은 힘이라도 모우면 큰힘이 된다는 것을... 아침에는 몰랐던 것 같은데 무슨 짐들이 그리 많은지! 다시 돌아온 것이 넘 좋았다 모든 짐을 싣고 떠난 자리에 남아 쓰레기 정리를 하면서 이 자리에 내가 있음에 감사드렸고 우리들의 빈가슴은 주님이 모두 채워 주시리라 믿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내가 그 자리에 손님이 아니고 주인 임을 내 속에 있는 내가 깨우쳐줬다. 이번 바자회로 인해..... 모두모두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리고 ........ 모두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