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의학분야 톱30에 한국 5 중국 6 일본 7개大
고려대는 2년 전 충북 청원군 오송연구단지에 3만3000㎡가량의 부지를 매입했다. '의·생명공학 복합연구단지'를 짓기 위해서다. 지난해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바이오메디컬 연구 공동 협약'을 체결하는 등 의·생명공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맞수' 연세대도 뒤지지 않는다. 2005년 "의학·생명과학 분야를 10년 안에 세계 5위권에 올려놓겠다"고 발표한 뒤 매년 100억원 이상의 연구비를 조성해 '생명과학'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경희대는 지난해 한의대·의대·치대 교수들을 하나로 묶는 '의학계열 거버넌스'를 구성, 한의학·양학 융합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국내 대학들의 생명과학·의학 연구는 '전쟁'이라 불릴 만큼 치열하다. 이런 양상은 2010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 결과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분야별 학계 평가 순위에서 30위 안에 한국 대학이 5곳(서울대·연세대·포스텍·카이스트·고려대)이나 속한 분야는 생명과학·의학 분야가 유일했다.
경쟁이 치열한 것은 국내뿐만이 아니다. 생명과학·의학 분야 30위권에 일본과 중국은 우리보다 많은 각각 7개·6개 대학을 진입시켰다. 이 분야 아시아 '톱 10'에는 한·중·일을 비롯해 싱가포르(싱가포르국립대·2위), 홍콩(홍콩대·7위), 대만(국립대만대·9위), 태국(출라롱콘대·10위) 등 총 7개 국가 대학이 포함됐다. 나라 간 '연구 전쟁'이 어느 분야보다 뜨겁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생명과학에 승부 건 부산대·포스텍
부산대는 지난해 학계 평가 생명과학·의학 분야에서 아시아 48위였지만 올해는 15단계 상승해 아시아 33위(국내 6위)를 기록했다. 부산대가 아시아 40위권에 든 분야는 생명과학·의학이 유일했다.
이 학교 약학대학 건물 311호에 위치한 '생체 방어 단백질 연구실'(약대 이복률 교수)은 다국적(多國籍) 연구팀이다. 15명 중 3명이 일본·중국에서 배우러 온 외국인 연구원들이다. 이전에는 영국·스웨덴 연구원도 있었다.
교과부로부터 '국가 지정 연구실'로 선정되기도 했던 이곳 교수와 연구원들은 매일같이 빨라야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길에 오른다. 열심히 하는 만큼 성과도 탁월하다. 2008년 이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규명한 '무척추동물의 방어 원리'는 '감염 진단 시약' 기술 개발로 이어져 유한양행에 이전된 뒤 현재 일본에서 상용화 절차를 밟고 있다.
부산대의 생명과학·의학 분야 순위가 크게 오른 것은 이 같은 '일류 연구실'을 파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부산대는 2008년부터 연구 지원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채택해 3년 동안 생명과학 분야에 매년 10억원씩 투자해왔다. 이 돈 역시 그냥 나눠주는 게 아니라 논문 실적과 매년 두 차례 이뤄지는 평가 결과에 따라 배분한다.
지난해 아시아 45위에서 올해 22위로 껑충 뛰어오른 포스텍 역시 생명과학을 대학 차원에서 육성한 경우다. 생명과학과는 교수 수로는 9%(22명)에 불과하지만 연구비는 대학 총연구비의 15.2%인 223억원이나 된다. 포스텍은 지난 3월 연구 핵심 역량 강화 분야로 생명과학·의학 분야를 선정, 대대적인 예산 투입을 시작했다. 이 분야 노벨상 수상자급 석학을 3년간 최대 100억원을 들여 초청할 계획이고, 500억원 예산의 융합연구센터 건립에 들어간 것이다.
◆'약대 전쟁' 효과인가?
생명과학·의학에서 국내 대학들의 학계 평가가 높아진 것은 '약대 전쟁'의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교과부가 올해 초 전국에 약대 신설을 인·허가하는 과정에서 대학들이 생명과학 연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는 것이다.
교과부 박주호 대학지원과장은 "대학별로 대표 논문 100편을 제출하게 해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영향력)를 심사하는 등 연구 역량을 중심으로 평가했다"며 "이런 기준이 각 대학의 생명과학 연구 실적 향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약대 신설이 허가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는 최근 대규모 제약회사 부설 연구소 유치에 나서는 등 '학(學)·연(硏)·산(産) 네트워크' 구성에 착수했다. 캠퍼스 안에 외부 연구기관을 유치하고 학내 관련 학과 교수들의 연구력을 집중해 BT(생명기술)·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앞서나가겠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들의 생명과학 연구 경쟁은 논문 수에서도 확인된다. 2004년 7824건에 불과했던 국내 생명과학 논문 숫자는 2009년 1만355건으로 5년 만에 32%나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학의 생명과학 연구력이 아시아 최고로 부상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본·중국 등 다른 아시아 대학들은 이미 우리보다 앞서 생명과학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다. 부산대 약대 이복률 교수는 "매년 두 차례 중국에 가는데 갈 때마다 연구성과가 쑥쑥 오르고, 일본은 여전히 우리보다 20년가량 앞서 있다"며 "국제적인 생명과학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투자·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지난 2002년 4515억원에 불과했던 정부 BT 분야 투자액은 2008년 1조7257억원으로 IT(정보통신기술) 분야(1조7259억원)와 엇비슷해졌다.
평가원 홍세호 연구원은 "정부 연구 투자액 등 기초체력은 갖춰졌지만 IT 분야의 삼성·LG의 전자제품 같은 사례처럼 제약산업 차원의 뚜렷한 성과는 아직 없는 상태"라며 "국가가 비용이 많이 드는 임상실험 비용을 보전해주는 등 BT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