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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행기>
40일간의 남아메리카 여행 3
- 쿠스코, 잉카의 영욕이 있는
곳 -
대성당 / 쿠스코, 페루 2015.3. 28
여행의 시간 속에는 고통이란 없다.
열아홉 시간 사십 분.
이카에서 밤을 새워 달린 야간버스가 쿠스코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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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동 시간과 고산증에 대비해 어제부터 예방약을 먹기 시작했으니 일단 장거리 이동 준비는 된 셈, 버스 안에서의 추위를 염려하여 침낭도 따로 빼 놓았다. 지금까지는 베이스캠프에서 가볍게 적응을 한 것이었고 이제부터 본 여행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자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하지만 과연 이 힘든 이동 과정을 아무 탈없이 이겨내고 무사히 쿠스코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지, 무엇보다도 멀미에 극도로 취약한 아내가 걱정이었다.
어제 저녁 6시 20분 출발할 예정이던 버스는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이카를 출발했다. 미리 얘기를 들었던 터였기에 버스가 제 시간에 출발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무려 한 시간을 지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남미 아닌가.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듯이 먼 남미 땅에서 귀 먹고 말 못하는 여행자가 이곳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야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야지,,,
밖은 캄캄한 어둠,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깜박 잠이 들었다가 잠깐 깨었더니 몸이 심하게 흔들리며 추위가 몰려왔다. 침낭을 꺼내 덮고 의자를 뒤로 눕자 이번에는 울컥 메스꺼움이 몰려왔다. 뭐지,,,,? 다시 좌석을 반듯이 세우고 자세를 바르게 해보지만 한번 시작된 증세는 쉽게 가시지를 않았다. 커튼을 제치고 창밖을 내다보니 버스는 어둡고 구불구불한 험준한 산길을 시속 30km의 속도로 서행하고 있었다. 몸의 상태로 보아 고도가 상당히 높은 안데스를 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전 융프라우에서 고산증을 겪었던 경험이 있어 컨디션 조절에 단단한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막상 고산에 도달하니 몸이 반응을 하는 듯했다. 아직 진짜 고산은 시작도 안 했는데,,,아무튼 잘 견뎌야 했다.
눈을 감고 몸을 뒤척이며 고산을 겪고 있는 동안 일행들도 말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울렁임이 가시고 속이 편해졌다.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던 버스가 잘 닦인 포장길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몸은 늘 정직하다. 불편하면 곧바로 반응하고 편해지면 또 금방 적응한다. 먼 산 위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 가득하고 병풍같은 절벽 아래로는 풍성한 계곡물이 흐르는데 마치 강원도 정선의 어느 한 곳을 지나는 느낌마져 들었다. 자연은 이곳이나 우리의 그것이나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눈을 들어 일행들을 둘러보니 하나같이 퀭하고 초췌했다. 아무리 꽃다운 청춘들이지만 긴 시간 밤버스를 타고 안데스를 넘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버스가 어느 마을 인근에 이르자 갑자기 한 현지 중년여성이 끙끙 앓더니 승무원을 불러 불평을 쏟아 놓는다. '친척 집에 가는데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다. 앞으로 다시는 이 버스를 타지 않겠다. 무슨 방법이 없느냐? '하는 등의 하소연이란다. 현지인이라도 고산에 살지 않으면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는가 보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한참 동안 불편을 토로하던 그녀는 버스가 마을에 도착하자 깊은 정적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때가 아침 7시 40분, 이카에서 출발한 지 12시간을 넘긴 시각이었다. 그러나 버스가 마을에 정착을 했는데도 그녀 이외에는 아무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우르르 버스에서 내려 팔다리 한번쯤 휘두르다 올라왔을 텐데 그 어느 누구도 움직이는 기척이 없다. 모두들 무기력했다.
이카에서 쿠스코로 가는 길. 구불구불한 안데스이 길은 멀기도 하고 높기도 높다.
잠시 후 출발한 버스가 도심을 가로지르자 활발한 도시의 아침이 눈에 들어왔다. 씩씩하게 줄지어 학교 가는 아이들, 도로를 빠르게 오가는 자동차들, 활짝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들, 그리고 그 앞 길가에는 어디서부터 가져왔는지 풍성을 야채를 쌓아 놓은 행상 아낙들이 자리를 잡았고 비탈진 언덕에서는 집 짓는 인부들의 손길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데스 마을의 하루가 그렇게 열리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난 버스가 다시 오르막으로 접어들자 작은 빵 한조각과 요쿠르트가 아침 식사로 나왔다. 입맛이 있을리 없지만 앞으로 네 시간을 더 가야한다니 - 거리가 멀기 보다는 높은 산을 넘고 구비구비 고개를 돌아야 하기에 버스가 빨리 달리지를 못했다. -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 누군가로부터 사탕이 전해지고 껌이 전해지면서 버스 안에 화기가 돌았다. 배낭여행이지만 일행이 있으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포장길과 비포장길을 번갈아 가며 산을 오르고 우르밤바 강을 따라 또 다시 달리기를 네 시간, 승무원이 담요와 베개를 회수했다. 다 왔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 멀리 산 아래 분지에 붉은색 지붕을 얹은 거대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쿠스코였다. 비행기를 타고 바라본 쿠스코 상공이그렇게 아름답다던데 버스에서 차창으로 바라보는 쿠스코의 전경도 그 못지 않게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오후 1시, 드디어 쿠스코에 도착했다. 아르마스 광장 옆의 숙소는 터미널에서 택시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쿠스코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에서 본 쿠스코 전경. 세상의 배꼽이자 태양의 도시답게 아름다운 도시다.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됐다. 긴 시간의 이동도 그렇지만 높은 고도차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쁘고 몸이 무거웠다. 불과 단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는데 벌써 입술이 터지고 얼굴에 기미가 짙어지는 멤버가 눈에 띄었고 나 역시 며칠동안 면도를 하지 않은데다 밤새 겪은 고초를 고스란히 몰골에 새긴 채 숙소에 짐을 풀고 인근의 한식집에서 꿀맛같은 점심을 먹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이 들었다. 미국에서 온 예쁜 S가 이곳에서 새롭게 팀에 합류했다.
자신들의 땅을 '세계의 배꼽'(쿠스코는 '배꼽'이라는 의미)이라 부르며 잉카제국 최고의 신이던 태양신을 숭배하고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이라 자부했던 잉카제국의 성스러운 수도였던 쿠스코. '금을 찾으러 이곳에 왔다'고 호언하던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저항 한번 못한 채 그야말로 허망하게 한 순간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이 태양의 도시에는 지난 문명이 지워지고 그 신전과 궁전의 기단 위에 식민시대의 새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과 헤수스 교회가 그렇고, 산토 도밍고 교회가 그렇다.
하지만 비록 지금은 옛 도시의 흔적이 대부분 사라지고 식민시대의 잔재들만 남았다고들 해도 긴 세월 쌓아온 한 문명의 삶이 어느 순간 송두리째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곳을 방문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 역사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화려했던 날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도시가 담고 있는 유구한 시간 속에 제국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잉카제국이 권력투쟁으로 내분에 휩싸이지 않았더라면,,,,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때는 제국을 이루었던 강대한 문명이었다. 내분이 없었다면 그토록 강했던 제국이 불과 몇 안 되는 스페인군에게 그렇게 쉽게 무너졌을까? 하지만 역사에 만약이란 있을 수 없다.
아무런 소득없는 허망한 상상인줄 뻔히 알면서도 너무나 쉽게 무너져버린 제국의 멸망을 아쉬워하며 잠시 과거의 그날로 돌아가 본다. 역사는 아니러니다. 아무리 강한 문명이라해도 다음 세대를 위해 의자를 비워야 할 때가 오면 반드시 안으로부터의 위기를 겪게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문명들의 역사가 말해준다. 역사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吉再)-
쿠스코에서 산 작은 야마 그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에는 활기가 넘쳤다. 지나간 아품을 언제까지나 짊어지고 갈 수는 없는 일, 오늘의 쿠스코에는 더 이상 어두운 그늘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중심지구인 아르마스 광장은 각 나라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있고 현지인들의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들과 모임이 이루어졌다.
대성당 앞 계단에서는 흰옷을 입은 신자들이 나와 미사를 드리기도 하고 어떤 시간에는 한무리의 시위대가 그 계단을 메우기도 했다. 인근의 상가들과 카페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잉카의 전통복장을 하고 대성당 주변에서 관광객들과 기념 사진을 찍으며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수고하는 여인네들의 모습도 정겹기만 하다. 골목길에는 아이를 데리고 구두를 닦는 근면한 아낙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집에서 만든 작은 민예품이나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나와 발길을 붙드는 사람들도 여느 도시와는 달리 싫지가 않다. 그러다 마음이 끌리면 빈약한 주머니나마 망설임없이 열어도 본다
아르마스 광장. 이 광장은 잉카시대에도, 스페인 식민시대에도 지금처럼 존재했던 도시의 심장부였다. 그러나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성스러운 의식을 올리고 국가의 중요한 집회를 하던 곳이었던 반면 스페인 인들은 아르마스 Armas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무기를 정비하고 군사 목적을 수행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이방인들은 잉카인들의 영혼이 깃든 신전 위에 대성당(왼쪽)을 세웠고, 그들의 궁전 위에 예수회 교회인 라 꼼빠니아 데 헤수스 교회(정면)를 세웠다. 맑은 날 3,600미터 고도의 쿠스코의 구름은 성당 종탑에 걸려있다. 여기가 곧 하늘이다.
대성당. 잉카의 비라코차 신전을 허물고 그 기단 위에 지은 중남미에서 손꼽히는 식민시대의 건축물이다. 1550년에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짓기 시작해 완공에 100년 이상 걸렸다. 지진 방지의 예수라 불리는 원주민 피부색을 지닌 그리스도, 만찬 접시에 꾸이가 담긴 마르코스 사빠타가 그림 <최후의 만찬>이 있다. 1650년 지진 때 많이 허물어진 것을 보수한 모습이다.
대성당. 양 옆으로는 두 개의 교회가 있다. 왼쪽은 1733년에 건축된 예수 마리아 교회 Iglesia Jesus Maria 이고, 오른편의 것은승리의 교회 Iglesia de el Triunfo로 1535년에 만들어진 쿠스코 최초의 교회다.
라 꼼빠니아 데 헤수스 교회. 잉카 11대 왕의 궁전 위에 지어진 교회로 현재의 모습은 1650년 대진으로 무너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아르마스 광장 중앙의 파차쿠텍 황제의 동상. 잉카의 제9대 황제로 쿠스코를 세우고 영토를 넓혀 실질적인 잉카의 시대를 연 인물.
쿠스코가 푸마의 형상을 한 도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도로 위의 표지판.
아르마스 광장 측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는 곳이다.
잉카 전통복장을 하고 관공객들을 상대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삶을 이어가는 현지의 아낙들.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일일이기도 하겠지만 어찌보면 잉카사회의 문화를 전파하는 최일선 전령사들일 수도 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비가 내리는 아르마스 광장에 우수가 어린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카페와 상점 거리. 길고 멋진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르마스 광장의 야경. 황금의 도시라는 이름답게 황금색 야경이 볼만하다.
라 꼼빠니아 데 헤수스 교회 야경
산토 도밍고 교회(황금 신전, 꼬리칸차). 돔형 지붕을 지닌 비잔틴 양식의 교회다.
500여년전 어느 날, 서방의 이방인들이 찾아와 성서를 내밀며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라 했다. 황제는 거절했다. 그로부터 잉카제국에 어둠이 시작됐다.
꼬리칸차 종교박물관에는 1532년 11월 16일 프란시스 피사로가 잉카의 아따우알파 황제와 면담하던 장면의 그림이 있다. 제국이 무너지고 무자비한 침탈과 억압의 역사가 시작되던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꼬리칸차는 잉카인들의 생명선이었다. 존재 이유였고 그들의 세계였다. 황금 궁전이라 불리며 외부는 황금판으로 치장되었고 안에는 황금상이 가득했던 잉카의 신성한 태양 신을 모시던 신전이었다. 이 시선한 태양의 신전이 침략자들의 손에 약탈되고 무너지자 잉카인들은 생명력을 잃어갔다. 신성한 태양의 신전 기단 위에는 이방인들의 수도원이 세워지고 태양신의 계시 대신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졌다. 잉카인들의 아픈 역사가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산토 도밍고 교회 전경.
12각 돌이 있는 종교예술박물관 골목. 하루 종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수백 년 세월을 지켜온 반들반들 닳은 바닥의 돌들,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큼직한 돌들로 이루어진 양 쪽의 돌담들이 이 땅의 주인인 쿠스코 옛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비춰준다. 이런 미로형 좁은 골목길은 적의 침입을 대비하여 만든 잉카의 건축 양식이다.
광장을 거닐다 대성당을 돌아 12각 돌이 있다는 거리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종교예술박물관의 한 쪽면을 받치고 있는 돌벽들 중 하나인 12각 돌은 다른 돌들과 바람 한 점 들어갈 틈도 없이 정교하게 물려있다. 잉카인들은 모래를 이용해 돌의 거친 면을 반복해 문질러 정교하게 다듬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남겨진 기록이 없기에 잉카인들이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태양의 신전(코리칸차)의 돌축대나 쿠스코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담벼락 등에서 잉카인들의 뛰어난 건축술을 느낄 수 있다.
12각 돌이 있는 골목길을 돌아나오다 대성당 인근에서 들린 한 상가에서 아내에게 어울릴만한 잉카전통문양의 백팩을 발견했다. 가게에는 어른은 없고 자그만한 여자 아이가 혼자 있었는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음에도 희안하게 대화가 잘 통했다. 열 살이라는 그 귀여운 꼬마 숙녀는 어찌나 살갑고 정성스럽게 대하는지 다른 민예품들에 비해 제법 고가였던 그 백팩을 몇번의 흥정 끝에 단 1솔도 깎지 못한 채 사들고 가게를 나섰다. 아마 어른이었으면 조금의 융통성이 있었겠지만 가격에 대해서는 여지가 없어도 밝은 모습으로 열성껏 손님을 대하는 어린 아이의 노력에 대한 값이라 여겼다.
물건 값을 깎아주는 대신 서비스로 들려준 고리 달린 야마 인형 두 개를 받아 들고 빙그레 웃으며 숙소로 돌아와 아내에게 멋진 가방 싸게 샀다며 자랑을 하면서 그 당찬 아이를 소개했었는데,,,,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때 만난 그 아이가 바로 페루의 내일을 이어갈 밝은 미래인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페루의 내일을 열 인물들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토록 당차고 열의에 찬 아이들이 있는 한 페루는 두 번 다시 지난 시대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아르마스 광장 인근의 구두닦이 여인과 아이. 무언가를 얘기하는 관광객을 똑바로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참 밝아보인다. 아이를 데리고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이곳 사회에서는 일상의 일이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꼬리칸차 인근의 가정집 뜰
꼬리칸차를 찾다가 작은 골목이 있어 무심코 들여다 보았더니 작은 뜰에서 꼬마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여러 집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인 듯 보였는데 바닥에는 돌들이 깔려있고 공터를 가로지른 빨래줄에는 부지런한 아낙이 솜씨좋게 빨아 널은 가족들의 옷가지가 보기 좋게 널려 있었다. 비록 집들은 낡고 지붕에는 잡초가 우거졌지만 구김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수줍어는 했어도 건강했다.
코리칸차에서 조금 떨어진 리마캄파 광장의 분수대
쿠스코 사람들이 먹고 사는 모습을 보자며 산 페드로 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수줍고 친절했다. 그리고 치열했다. 과일을 파는 사람들도, 과자를 파는 사람들도, 옷가지며 신발이며 다양한 잡화를 파는 사람들 모두가 열심이었다. 그 중에서도 먹거리를 파는 음식점 코너의 모습은 우리의 방산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먹고, 입고, 자는 일에는 지구를 반바퀴 돌아 온 이곳에서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산타 클라라 거리에 있는 산타 클라라문. 문 오른쪽 위에 보이는 흰색 건물은 초등학교Colegio National de Ciencias가 있다. 사진 앞쪽에는 이 학교와 길 하나를 두고 나란히 산 프란시스코 교회가 있고 그 앞으로 산프란시스코 광장이 있다.
산 클라라 문 안에 있는 산 페드로 성당 앞 초등학교의 돌벽. 이 돌벽 역시 잉카시대의 돌벽인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산 페드로 시장. 인근에 마추픽추, 우르밤바 행 페루레일 기차역이 있다.
과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명언이었다. 알지 못하면 눈으로 보고 지나가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정말 그랬다. 이 시장을 세 번이나 왔다 갔으면서도 이 근처에 페루행 기차역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아르마스 광장을 조금만 올라가면 삭사이와망이 있으니 그곳에서 쿠스코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었을 텐데 어영부영하다 그도 못했고, 산 프란시스코 성당 옆에서 내려다보는 일출이 그리 멋있다던데 그도 못했다. 고산에 지쳤던 것일까? 몸이 많이 무거웠던 것은 맞지만 아쉬움이 많은 곳이다.
산 페트로 시장의 쥬스 가게 여주인. 이른 아침 들른 산페드로 시장의 과일쥬스 가게의 아낙은 딸기, 오렌지, 망고, 바나나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과일을 넣어 쥬스를 만들어 주었다. 한 가지 맛뿐만 아니라 섞어서도 만들어주는데 내게는 한가지 맛이 제일이다. 오렌지,,,
야채 파는 젊은 여인의 표정이 밝고 활기차다. 산 페드로 시장
아기를 업고 노천에서 수박을 잘라 파는 젊은 아낙. 수박이 어찌나 달고 시원한지 투어에 지친 몸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등에 업힌 아기는 수박을 다 먹고 돌아설 때까지 한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훗날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쿠스코 시내 골목길 풍경
쿠스코의 골목
역사가 에드워드 H 카는 "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어제는 오늘과 단절될 수 없고, 오늘은 내일을 이끌어갈 미래 세대들이 성장하는 토양인 것이다. 비가 내리는 아르마스 광장 한 모퉁이에 서서 허망하게 사라진 슬픈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며 지난 문명이 전하는 메세지를 찬찬히 그려보았다. 쿠스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떠올리며,,,,,,
내일은 쿠스코 주변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첫댓글 마치 저도 거기에 있는듯 착각이
들정도로 자상한 설명과 사진들
정말 감사해요
성스럽고 신비로운 잉카제국속으로의
산책!! 넘 좋습니다~~~^^
남미를 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곳은 몰라도 페루와 볼리비아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입니다. 마추픽추 정글투어도 해보고 싶고 볼리비아 고산지대의 자전거 트래킹도 해보고 싶고,,,욕심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참 멋진 곳입니다. ^^
으와
그시간을 버스에서...
그것도 지나고나면
다 그리움일거에요.
부럽다는...
어마어마한 시간이지요.
머리로 생각하면 도저히 불가능 할 것 같은데 이 정도의 시간은 이곳 여행자들에게는 일상 인듯합니다.
비행기로 가면 두 시간 채 안되는 거리인데,,,,벌써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ㅎㅎ
우와~~또 다른 세계네요^^
즐감 ㅎㅎ
즐거운 볼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새로운 세계를 기대하고 떠났던 여행이었던 만큼 새로운 경험, 새로운 느낌을 많이 받았던 여행이었습니다.
너무 멋집니다. 천천히 다시 읽어 봐야겠어요. 저도 꼭 체험해.보고 싶어요~^^
그러세요.^^
멋진 계획 세워서 꼭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여행은 언제나 신나고 즐겁잖아요. ~
긴 여행만큼이나 긴글과 사진을 편하게 감상합니다
이 정성과 노력을 여행자의 모습으로만 느껴서는 않될듯합니다.
널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참으로 올려주신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냥 한낱 필부필부의 흔하디 흔한 여행기일 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들 지역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글의 내용도 정확하지 않고 인터넷의 여러 여행자들의 글을 읽고 이리저리 얽은 것이니 달리 수고했다 할 것도 없습니다. 늘 잘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
아름답고 실감나는 사진을 보니 가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잘 감상했읍니다.
여행을 떠나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니 제 글 쓴 목적이 제대로 이루어졌군요. 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딜가나 여행은 먹는거 보는거 동반자... 모든게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좋습니다... 참으로 멋지십니다.
물론이지요.^^
그런 것이 균형있게 어우러지지 않으면 긴 여행 힘들게 보내게 됩니다.
함께 여행한 젊은이들이 여행을 많이들 해서 그런지 너무 멋졌어요. ^^
오~무명시대님 드디어 남미도 가셨군요~~
쿠스코 정말 그립네요 ㅠ
예전에 써니천사님이 올리신 글을 보고 남미에 꼭 가리라 마음을 먹었었는데 이렇게 빨리 실현하리라고는 저도 미쳐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덕분에 멋진 세상 구경하고 잘 돌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ㅎㅎ
쿠스코 멋진 곳입니다. ^^
쿠스코의 풍경 잉카트레일 12각돌 푸마의 모양돌 모두다 눈에 선하네요
다시 가보고 싶은 여행지 입니다 ^^*
저도 기회가 되면 페루하고 볼리비아를 다시 갈 생각입니다. 무엇하나 편한 곳 없는 곳이었는데도 자꾸만 옷깃을 잡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
아~우 대단하십니다 도전해 보고 싶었지만 님의 글과 멋진 그림으로 대신합니다 저는 멀미를 무지심하게하는데
아찔하네요 박수 ㅉ ㅉ 좋은글 감사합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도전하세요.
여행의 긴장감과 설레임은 멀미도 어쩌지 못하더군요. ^^
즐겁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