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식믈들이 너 어머니이고 네 형제들이다.
올해 경주 불국사 벚꽃은 아주 아주 아름다웠다. 관광객들은 폰으로 꽃이 피고지는 아름다움 찰나의 순간들을 담았다. 그들은 벚꽃이로 유한한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으로 인생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꾸리이든 왕벚나무든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왜 분명하게 선을 긋지 못할까? 왜 그럴까? 아주 최근 지금 한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젊은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나저나 목욕탕에 가면 냉탕과 열탕이 있듯이 기후가 너무 냉열탕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니까 벚꽃들도 선이 없어졌다. 꽃들이 이구동성으로 필 때도 질 때도 철이 없다. 지금 우리도 철없이 산다. 우리가 보는 벚꽃은 전부 다 사꾸라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메이요시노이다. 소메이요시노를 딩깅해 보면 어찌될까?
요시노 소메이 혹은 소메이 요시노는 일본이 만들어낸 간판급 사꾸라이다. 이 요시노 소메노(Cerasus × yedoensis ‘Somei-yoshino’)는 꺾꽂이나 접붙이기로 복제가 된다. 그러면 최초의 나무 즉 原木은 어디에서 온 나무일까? 이를테면 소메이요시노는 언제 어디에서 출생했는가? 조상은 누구인가?
일본의 식물학자들은 여전히 그 베일에 가린 탄생의 수수께기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혹시 한반도에서 현해탄을 건너 소메이요시노가 간 것이 아닐까? 일본은 여전히 소메이요시노의 종의 기원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일본 땅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메이요시노는 우리 왕벚나무처럼 독고다이가 아니다. 소메이 요시노는 합성어 이다. 학명에 X 표시는 잡종이라는 뜻이다. 사꾸라의 동료를 나타내는 Prunus는 Cerasus 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도쿄 일본 철도 jr선 야마노테 선 고마고메 역 옆에 요시노 소메이 벚꽃 기념 공원이 있다. 공원 기념물에는 “소메이 요시노의 요람”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소메이는 이 지역의 옛 이름이다. 에도 시대(1603-1868) 정원 붐이 한창 일어났을 때 소메이는 꽃집과 식물가게가 번창하였다. 소메이는 식물과 꽃들의 중요한 산지였다. 또 소메이지역은 에도의 원예 중심지였고 기라성같은 정원사들이 모였다.
에도 시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1868-1912) 사이에 소메이 원예장인들은 벚꽃으로 유명한 나라현의 요시노산을 라벨을 붙여 요시노 벚꽃을 상품화 하여 일본 전역에 팔았다. ‘소메이 요시노'라는 이름은 1900년 일본원예학회지에 실린 도쿄국립박물관의 식물학자 후지노 요리나가의 논문에서 처음 나왔다. 1901년 마쯔무라가 이 소메이요시노를 신고하였다. 도쿄 우에노 공원의 벚꽃을 관찰한 결과 마쯔무라는 요시노산에서 마구 자라는 야생 벚나무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메이의 요시노 벚꽃을 구별하기 위해, 마쯔무라는 "소메이 요시노"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마쯔무라는 소메이요시노 종의 기원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일본 식물학의 시작은 전설적인 식물 채집가 포리 신부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아마도 그 당시 일본 식물학에 관심에 있었던 그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다. 우리와 또 같이 포리 신부가 프랑스에 일본의 식물을 다 넘긴다고 생각하였다. 일본이 포리 신부의 식물채집으로부터 독립하여 일본인 스스로 식물 연구를 시작해는 1877년이었다. 바로 그래 동경대학에 이과가 신철되었으며 1887년에 일본 식물 분류학의 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 일본으 우리보다 빠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포리와 타케신부가 국내 체류 식물 채집을 (1900-1910) 하였고 한국DHK인 정태현이 직접 식물채집을 (1911) 하였다.
자 그러면 문제가 무엇인가? 복제품 소메이요시노(1901)를 자연품 우리 왕벚나무(1908)를 변형이라고 첫 단추를 키운 것이다. 제대로 하다면 우리 왕벚나무의 변형이 소메이요시노이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1912년에 학명을 그렇게 짓고 변형이든 아니든 1916년에 식물 사냥꾼 나까이가 질적으로 서로 다른 근본과 족보가 다른 두 종을 하나로 통합흡수해 학명을 동일종 (Prunus Yedoensis Mastmu. )으로 호적등본을 만들어 버렸다. 나까이는 이 사실과 진실을 알아차렸다고 본다. 그렴 우리는 그냥 왕벚나무라고 부르고 대부분의 벚꽃은 사꾸리이니 소메이요시노라고 부르면 된다. 정부가 뭐라카든..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왕벚나무가 저츨산인지라 심을 나무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부터가 진검승부이다.
내가 왕벚나무에 대해서 지루하게도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내가 살아온 푸른 평화의 환경운동의 역사 때문이다. 가톨릭 신학에서 이토록 평가절하되고 무수리처러 맨 밑자리에 오용되어온 식물 존재의 관점에서 서구의 지성사를 비판하는 것이다. 게다가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비롯하여 유럽 종자 회사를 거머진 프랑스 빌 모랭같은 식물제국주의에 선교사들이 선봉에 섰다는 사실이다. 종교가 영혼구령사업을 선교하면서 식물 존재과 같은 피조물은 대상화, 심지어 씨앗조차 유전자 조작을 서슴치 않았다, 결국 인간은 種 고독을 뼈절이게 느끼며 지구난민이 되어 AI에게 섹슈얼을 투사할 지역에 이르렀다. 우리의 삶, 일상의 삶, 우리의 심리적 공간을 도구적 이용가치에서부터 식물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사업이 아닐까? 기후위기를 구하는 슈퍼히어로는 식물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