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6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동해 북평장은 국내 3대 장터로 손꼽히고 있다. 대형 마트조차 장이서는 날엔 꼼짝 못하는 강원도 최대의 재래시장이다.
추석을 앞둔 마지막 장날. 북평장은 어느 때 보다 분주하다. 북평장이 이렇게 활성화 된 것은 지리적 이유도 크다. 강원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7번 국도에 있고 태백에서 내려온 37번 국도와 정선에서 넘어오는 42번국도가 북평장이 열리는 동해에서 만난다. 강원도 최대규모의 재래시장이 서는 까닭이다. 심지어 장날이면 대형마트의 매상이 뚝 떨어진다. 장이 서는 곳은 동해시의 식수원인 ‘전천(箭川)’ 옆이다. ‘전천’은 임진왜란때 격전지였던 까닭에 전사자의 피와 화살이 하천에 가득 떠 내려와서 붙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200년을 이어온 재래시장
북평 장터에는 직접 들고나온 농산물이 가득하다. (이다일기자)
북평장의 역사는 무려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발행된 삼척읍지 「진주지」에 따르면 “정조 20년(1796년), 북평장은 매월 3, 8, 13, 18, 23, 28일의 여섯 번 장이 열리는데 장세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북평장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전천’의 물길이 변하면서 그에 맞춰 하구 쪽으로 이동해 왔고, 1910년 10월 8일에는 대홍수로 인해 북평마을이 수해를 입으면서 장이 옮겨지기도 했다. 1932년 현재 위치에 자리 잡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평장의 노인들은 아직도 장을 ‘뒷두르장’ 또는 ‘뒷뜨루장’이라고 부른다. 뒷쪽의 평야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불러오던 우리말 이름이다. 「동해시사」에 따르면 “뒷뜨루는 마을 전체이름이다. 삼척부 북쪽에 있는 넓은 뜰이란 뜻으로 우리는 북방계 민족이라 남쪽을 앞이라 하고, 북쪽을 뒤라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쪽 평야에서 열리는 북평장에는 전통을 이어온 우리네 재래시장의 멋이 있다.
“무엇을 팔러 오셨어요?”
못생긴 생선 곰치, 하지만 국물맛이 일품인 생선이다. (이다일기자)
‘생산자 직거래’, ‘당일배송’, ‘한정판매’.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해 북평장을 둘러본 느낌이다. 대형 마트를 찾아가면 신선한 제품을 생산자의 얼굴을 내걸고 판다는 광고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원조는 재래시장에 있었다. 자릿세 500원을 내고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 잡은 상인들은 대부분 생산자이자 판매자이다. 어제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 무, 오이를 비롯해 집 앞 농로에서 잡은 미꾸라지까지 모두 직접 가져온 상품들이다. 당연히 생산자 직거래일 수밖에 없다. 많지도 않다. 기껏해야 고무 대야 몇 개 분량으로 집에서부터 바리바리 싸온 물건들이다. 그러니 한정판매, 당일배송일 수밖에…
이곳에선 좋은 포장, 대량판매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래가 우선이다. 과일을 한가득 쌓아놓은 매장보다 앉은 자리 빙둘러 놓은 여 나무 소쿠리의 과일이 더 잘 팔린다. 잘 팔리기 때문인지 닷새에 한번 세상 구경 하려는 시골노인의 나들이인지, 인근지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길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장터가 벌어진다. 강원도 바닷가에서 열리는 장터답게 가자미, 문어 등과 같은 생선이 많다. 또한 고래고기, 상어고기처럼 다른 시장에서 보기 힘든 것도 있으니 북평장을 꼼꼼히 둘러보는 묘미가 여기 있다. 추석 제사음식 준비를 위해 문어를 파는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한쪽에선 닭 세 마리를 끈으로 묶어 손에 쥐고 있는 노인이 호객에 나섰다. “토종닭이요~”.
재래시장의 참맛
재래시장의 모습 낡아서 모서리가 끊어지고 다듬어진 나무판 위에 생선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페인트 붓으로 칠한 듯 한 간판의 식당은 장날이 되면 문앞까지 늘어선 난전으로 입구조차 찾기 힘들다. 동해 북평장은 예로부터 생선과 건어물이 유명했다. 지금도 인근 항구에서 잡아온 생선들이 북평장에서 거래된다. (이다일기자)
전국에는 수백개의 재래시장이 있다. 주로 5일장으로 열리는 재래시장들은 지역의 유통 중심지였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현대식 유통방식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일부는 ‘재래시장’의 관광상품화를 통해 재탄생했다. 동해 북평장이 차별화 되는 이유는 여기에도 숨어 있다. 다리가 아픈지도 모르게 이곳저곳 구경하고 다녀도 정감이 느껴진다. 낡은 기와와 적갈색 나무 창살의 방앗간에선 기름을 짜고 질척하게 물이 흐른 어시장에는 싱싱한 꽃게가 박스넘어 탈출을 시도한다. 동해안의 명물 오징어는 간이어항에서 삐죽거리며 수영을 하고 있다. 오후가 돼도 꾸준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장터.
옛날모습 그대로 장터의 기본인 ‘교류’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200년 전 모습도 그랬을 것이다. 집에서 가져온 닭, 소와 텃밭의 채소와 좁은 강원도의 논에서 일궈낸 잡곡들이 농민들의 손에 들려 나왔을 것이다. 지금과 달라진 것이라면 우시장이 사라졌다는 것 정도?, 북평장의 모습은 옛날 방식 그대로 남아 있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가는길/
승용차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을 지나 동해나들목까지 간다. 7번국도를 타고 삼척방면으로 향하다 효가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북평교를 건너면 장이 펼쳐진다. 내비게이션에는 ‘북평동주민센터’를 입력하면 된다. 서울에서 기차를 이용할때는 청량리역에서 동해까지 가는 야간열차를 타면 좋다. 22시40분에 출발해 동해에 04시12분에 도착한다. 동해역에서 장터까지는 약 2km, 도보로 30분 거리다.
닭 사세요 이 아저씨는 사진찍는 내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제 팔아야 하는 닭은 단 세마리. 시장 귀퉁이 전봇대 옆에 자리잡은 아저씨는 연발 ‘닭사세요’를 외친다. 옆에서 그 소리를 듣다 발견한 특이한 것은 정말 닭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외침이라기 보다는 그저 지나는 사람들에게 ‘닭사세요’를 시작으로 말을 걸어보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이래저래 말도 걸어보고 얘기도 하다보면 닭은 팔리겠지… (이다일기자)
가자미 말리는 풍경 북평장은 특이하게 어시장, 청과시장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일부 몰려 있는곳은 있지만 여기저기 섞여 있으니 구경하는 재미가 더 좋다. 새벽부터 처 놓은 천막에 가자미를 말리고 있다. 추석이 다가오니 제삿상에 올릴 음식들이 인기다. (이다일기자)
북평삼거리 북평장은 북평삼거리에서 남쪽으로 약 600m의 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넓지 않은 공간에 800여개의 매대가 들어서면 북적거리는 장터가 된다. 백화점 세일이라도 한다면 차가 막혀 빵빵대느라 정신없겠지만 재래시장 주변은 차들도 여유롭다. 인근 주차장에 차를 놓고 천천히 걸어다니며 장을 보거나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다일기자)
강원도 옥수수 시장을 돌다보면 금새 허기를 느끼게 된다. 북평장에는 오래된 국밥집도 있고 장날만 문을 여는 국수집도 있다. 하지만 길가에서 옥수수를 삶아내는 냄새는 끼니때도 아닌 배를 자극한다. 게다가 강원도 옥수수 아닌가…. (이다일기자)
주전부리 장에는 없는 게 없다. 말린 과일부터 호두, 땅콩, 아몬드 같은 견과류들이 예쁘게 포장돼 팔려가길 기다린다. 색색의 주전부리를 보면 누구나 어릴적 엄마손을 잡고 따라나왔던 장터가 생각날 것이다. (이다일기자)
햅쌀 강릉 옥계면에서 햅쌀을 갖고 오셨다는 할머니. 로또 간판옆에 앉은것이 탁월한 선택일까? 이날 대박나셨다. 한 되에 5천원인 햅쌀은 추석 제삿상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인해 금새 팔려나간다. 옆에는 빈 가마니만 늘어간다. 돈 받고 쌀 담아주기도 바빠 이것저것 옆에서 여쭤보다 핀잔을 들었다. 농부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이런때가 아닐까? (이다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