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글을 읽다 보면 '도통(道統)'이란 말이 나온다. 도통이란 유학의 정통을 계승한 인물에게 붙이는 칭호다. 조선 후기에는 주자학을 완성한 주희(朱熹), 즉 주자에 대한 헌사로 사용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이 "하늘이 공자를 이어서 주자(朱子·주희)를 낸 것은 사실 만세(萬世)의 도통을 위해서였다(송시열, '한여석[韓汝碩〕에게 답함', <송자대전>)"라고 말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주자학이란 주희가 공자나 맹자의 말을 해석한 것을 뜻하는데, 송시열 등에 의해 유일사상으로 떠받들어졌다. 백호 윤휴가 사형당한 이유 중 하나도 주자학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북벌론과 신분제 완화를 주장하던 청남(淸南) 영수 윤휴는 <중용(中庸)>에 대해 주희와 달리 해석했다는 이유로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윤휴가 사형당한 후 송시열이 제자 권상하(權尙夏)에게 윤휴의 죄 중에서 주희를 모욕한 죄가 가장 크다고 비판한 것이 윤휴의 사상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말해준다.
집권당인 노론은 주자학을 당론으로 삼았고, 이렇게 주자학은 조선에서 유일사상으로 격상되었다. 소론 계열의 박세당(朴世堂·1629~1703년)이 <사변록(思辨錄)>에서 <논어> <맹자> . <중용> . <대학> . <상서> 등의 경전을 주희와 달리 해석했다는 이유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린 것도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임금도 주자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대였으니 신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선 후기 일부 선비들은 유일사상인 주자학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사진은 KBS 사극 <징비록>의 한 장면. ⓒ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