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방역 완화 이후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한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규제를 놓고 엇갈린 대응을 하고 있다. 유럽은 유럽연합(EU) 차원의 권고로 검역 강화 조치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 반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하지 않겠다며 오히려 중국 관광객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중국은 각국의 입국 규제 조치를 ‘정치쇼’라고 비난했다.
중국발 비행기 입국자들이 지난 4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코로나19 검사센터에서 방역 관계자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경향신문 스웨덴 사회공공보건부는 오는 7일부터 중국에서 들어오는 여행객들은 입국 전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번 조치는 일단 3주간 시행된다. 벨기에 보건부도 중국발 항공편 탑승객을 대상으로 입국 전 음성 확인서 제출을 의무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벨기에 역시 이르면 7일부터 이같은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유럽에서 중국발 입국 규제에 반대해 온 대표적인 나라였던 독일도 입장을 바꿨다. 카를 라우터바흐 독일 보건장관은 이날 “중국발 여행객은 앞으로 독일 입국시 최소한 신속항원검사 결과가 필요하도록 입국 규정을 곧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이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EU 차원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EU 순환의장국인 스웨덴은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통합정치위기대응(IPCR) 후 보도자료를 통해 “EU 차원의 조율된 예방대책에 합의했다”며 “중국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편 탑승객을 대상으로 탑승 전 48시간 이내 코로나19 음성 확인 요건을 도입하는 방안이 회원국들에 강력히 권장된다”고 밝혔다. 유럽에서는 앞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자체적으로 중국발 입국 규제 조치를 도입했고 EU 차원의 공동 대응이 논의돼 왔다. 의무는 아니지만 EU의 권고에 따라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사전 코로나19 검사 조치 등을 도입하는 회원국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중국인 관광 수요가 많은 동남아 국가들은 상반된 대응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규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관광창조경제부 장관이 직접 성명을 통해 오히려 “중국 관광객을 환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부총리 겸 보건부 장관도 언론을 통해 “중국발 입국자가 다른 국가에서 오는 방문객과 다른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준비 중이지만 별도 규제를 가해 중국 관광객을 차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역시 지난달 말부터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발열 검사와 감염 의심자의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고 있지만 특정 국가에 대한 차별적 조치는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각국의 검염 강화는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한 중국의 불투명한 정보 공개와 변이 바이러스 출현·유입 우려에 따른 조치다. 중국에서는 지난달 방역 완화 이후 감염자가 폭증했지만 당국이 감염자 집계 발표를 중단하면서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됐다. 또 베이징과 상하이 등 여러 지역이 이미 감염 확산의 정점을 지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여전히 응급환자가 속출하고 병상과 화장시설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AP통신은 이날도 베이징 동부의 한 병원에서 병상 부족으로 노인들이 산소 마스크를 쓴채 복도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전했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관으로 가득찬 시신 안치실과 시신을 화장할 곳이 없어 주민들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직접 화장을 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과 영상도 올라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에서 발표되는 통계는 코로나19로 입원한 환자와 중환자 수, 사망자 수 등에서 코로나19의 진정한 영향을 과소평가한 결과라고 믿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은 WHO와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관련 정보와 데이터를 적시에 공유하고 있다며 차별적이고 정치적인 조치라고 비난한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도 “중국의 전염병 상황은 통제할 수 있고 유의미한 새로운 변이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각국의 방역 조치는 과학적이어야 하며 정치적 농간을 부리거나 중국을 대상으로 한 차별적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매체는 다른 나라의 입국 규제가 정치적인 쇼라고도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6일자 사설에서 “일부 국가는 처음부터 정치적 요인이 과학적 판단을 압도하는 쇼를 하고 있다”며 “중국 여행객에 대한 추가적 방역 조치는 과학적 판단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편견과 정치적 계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