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첫마음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 있는 벗들에게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 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우리의 소원은 부자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올해도 농사짓는 것이다
허리 숙여 불볕이랑을 기며 태풍 장마에 애간장을 졸이며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일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올봄에도 내 땅에 씨뿌리는 것이다
누가 내 가난한 소망을 가로막는가 누가 내 소박한 봄날을 깨뜨리는가 누가 사람을 먹여 살려온 이 들녘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기지를 세우려 하는가
너희가 무력으로 내 땅을 강점하고 너희가 총칼로 내 봄을 짓밟는다면 이제 우리는 나라도 없다 이제 우리는 정의도 없다
미군의 민주주의 미군의 안보 미군의 권리에 내 땅에서 울부짖고 쓰러지고 쫓겨나는 나라라면 나라도 없는 우리는 이제부터 평화의 독립군이다 농사를 내려놓고, 삽도 호미도 내려놓고, 먼저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
쫓겨난 빈손으로 촛불을 들고 너희들의 미사일 너희들의 전투기 너희들 탐욕과 전쟁의 마음을 내 안에서 조용히 불사르겠다
불살라, 이 새싹같은 촛불을 들고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저 우는 들의 눈물을 기름부어 너희들 무기의 어둠을 불사르겠다 우리들 인간의 봄을 시작하겠다
이제 나라도 정의도 없는 우리는 미군의 총칼에 울부짖고 미군의 폭력에 피흘리는 지구마을 어린 것들을 보듬어 안고 국경없는 평화의 봄을 꽃피우겠다
이 들녘에 떠오르는 아침해는 누구도 홀로 가질수는 없듯이 이 들녘에 차오르는 봄은 누구도 홀로 맞을 수는 없듯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전쟁의 바그다드에도 새만금에도 쿠르디스탄에도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어야 한다 아아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길잃은 날의 지혜
큰 것을 잃어 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검은 산에
큰 산불이 나고 검은 바람이 불고 잎새도 가지도 둥치도 타 버린 참혹한 빈 산에 검은 산에
아 그래도 뿌리는 살아 불탄 몸 쓰러져도 새근새근 살아 여린 싹을 내 밀고 있었습니다
빛나던 꽃도 열매도 아닌 희망이던 가지도 둥치도 아닌 잊혀진 땅속의 씨알 뿌리들만이 타버린 한 시절의 몸을 껴안고 조용히 푸른 싹을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일어서 고개 들어보면 절망이지만 허리 숙여 들여다보면 희망입니다
IMF
이 나라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강력하게 몰아쳐 온 말
이제 갓 말 배우는 아이에서 허리 굽은 노인네까지 서울 도심에서 산촌 마을까지 온 겨레의 삶과 내면을 단번에 관통시킨 운명같은 말
IMF
누군가 예고라도 있었더라면 차라리 그 말이 우리 말이었다면
이 나라 내 삶의 파탄은 늘 밖에서 느닷없이 몰아쳐왔다 여전히 우리 운명의 테마는 「안과 밖」이었다
언제나 바깥 세계의 변화 속도는 우리 내부의 개혁 속도보다 훨씬 빨랐고 그 역사의 시간 차이만큼 이렇게 혹독한 결과를 불러오곤 했다
내 안과 밖의 IMF!
YS 탓인가
나라 경제 거덜난 게 『모두 내 책임이다』 YS는 비장하게 말하지만
모르는 소리 YS 탓만이 아니다
YS 탓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대 그렇게 무능하고 오만 독선한 변절자라고 이제와 돌멩이를 던지는 그대 그를 대통령으로 찍었던 당신 탓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세월 문지르며 넘어가지 마라 오직 『우리가 남이가』 소리치며 줄줄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당신 책임이다 YS가 가장 개혁적이라며 힘을 실어 주자고 과거를 팔아 그를 추켜올린 당신 책임이다
YS만 탓하지 마라 변절자를 따르는 자는 자기도 따라서 변절되는 법
먼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자격도 없는 법 이제 와서 그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옳은 말도 모두 물리고 썩은 말이 될뿐
내가 나선 이유
솔직히 나는 내 죄를 안다 나도 거품이었고 부실했다 나는 지금 누구도 탓하지 않고 내 일생을 바쳐 쌓아온 것들이 발 밑에서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이건 분명 내 탓이다 나의 불찰이고 나의 무능이다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임을 나는 잘 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슬프다 이것이 내 노여움이다
이 모든 걸 내 죄로 알고 받아들이는 게 너를 조금도 참회시킬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거다 너는 어제도 오늘도 그러한 것처럼 내일 다시 숱한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미치게 하고 한 순간 통째로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너희들이 떠넘긴 이 큰 죄와 고통이 고스란히 우리의 미래로 떠밀렸을 뿐이라는 것 그것이 나의 슬픔이고 나의 분노이다 그것이 내 탓이다 내 가슴을 치면서도 너를 향해 내가 나서는 이유이다
마지막 남은 믿음
정직하게 땀 흘리면 반드시 잘 사는 날이 온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나에게도 해 뜨는 날은 온다 이 작은 믿음 하나로 일만 하며 살아온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실직은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렸지만 나에게는 이제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고 집도 돈도 친구도 없고 기술도 다 소용이 없고
내 일생을 지탱해온 모든 것들이 차갑게 무너지고 내가 딛고 선 삶의 믿음이 발밑에서 허물어지고 이제 나는 세상의 그 무엇도 믿지 않지만
그래도 이 차디찬 세상에서 아직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믿음이 있다면 그건 … 햇볕이 따뜻하다는 거다…
긴 밤을 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떨며 지새운 내 몸에 아직도 햇볕은 따뜻하게 평등하게 비춰준다는 이 진실 공원 벤치에 누운 내게도 햇볕은 따뜻하다는
이 마지막 진실 이 마지막 믿음
기차역 대합실로 간다
아침이면 졸음 달고 뛰어가던 내 몸은 컨베이어에 묶여 끌려가던 내 몸은 어느 날 툭, 끊어져 흐느적거리는 연처럼 내 발길은 허공의 시간을 걷는다 그래도 아침이면 구청으로 노동부로 공원으로 부지런히 다니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던져진 불량품처럼 기차역 대합실에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보곤한다 공공근로 다녀온 아내는 쓸모 없어진 의료보험 카드와 조합원 주택부금과 자녀 학자금융자증 차량 할부카드를 놓고 한숨과 짜증이 는다 정말 못할 소리까지 한다 이제 나는 힘을 잃었다 고치자고 해도 잘 안되던 못된 가장의 권위라도 남았으면 좋으련만 낮술에 못된 성질만 남아 정말 이대로 가면 나도 아내도 사람마저 버리겠다 언제부턴지 허공의 시간을 걷는 내 발길은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기차역 대합실로 떠밀려 간다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제 몸을 때려 울리는 종은 스스로 소리를 듣고자 귀를 만들지 않는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 온 목수는 자기가 살기 위해 집을 짓지 않는다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우리들, 한번은 다 바치고 돌아와 새근새근 숨쉬는 상처를 품고 지금 시린 눈빛으로 말없이 앞을 뚫어 보지만 우리는 과거를 내세워 오늘을 살지 않는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흙과 뿌리를 보살피지만 스스로 꽃이 되고 과실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모두가 웃으며 오실 길을 지금 우리 젖은 얼굴로 걸어 갈 뿐이다
오늘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참 좋은 날이다
늘 새로운 실패를 하자
돌아보면 내 인생은 실패투성이 이제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겠다고 조용히 울며 다짐하다가
아니야 지금의 난 실패로 만들어진 나인데 실패한 꿈을 밀어 여기까지 왔는데 나에게 실패보다 더 무서운 건 의미 없는 성공이고 익숙한 것에 머무름이고 실패가 두려워 도사리는 것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의미해지지 않는다 성공했지만 의미 없는 것들이 있고 비록 실패했지만 더 의미 있는 것도 있다 누군가는 의미 있는 실패라도 해주며 쓰러져야만 그 쓰라림을 딛고 넘어 새날은 온다
이제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준비에 실패함으로 실패를 준비하지 말고 실패를 정직하게 성찰하며
늘 새로운 실패를 하자
가을볕
흙 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 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 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은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우리 나라 양심선언 제1호 인물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 중에 지금의 국방부 장관 격인 군부대신 이근택이 그 날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 앞에서 제가 앞장서서 을사조약에 찬성한 것이 무슨 자랑거리나 되는 듯이 『이제 우리 집안은 더 혁혁한 권세를 누리게 되었지』 뻔뻔스럽게 지껄였다는데
마침 그 집 찬모가 밥상을 올리려고 창 밖에 있다가 이근택의 말을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 부엌칼을 집어들고 마루에 올라 소리쳤단다 『네놈이 그토록 악독한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네 종노릇하면서 밥을 빌어먹었으니 아이구 창피하고 억울해 못살겠다』
찬모는 이렇게 호통을 치고는 집을 뛰쳐 나갔단다 하인들이 쫓아오자 이 참모는 『동네사람들은 잘 들으시오 집주인이란 자는 역적이요 그래서 내가 바른말을 했더니 오히려 나를 잡으려 하고 있소』 고래고래 소릴 지르니 하인들도 더 이상 쫓지 못했단다
끝내 나라가 망하고 온 백성이 시일야 방성대곡 하고 순국자결이 줄을 잇는 먹구름 속에서도 이 얘기를 들은 민중들은 박장대소하며 후련해 했더란다
나는 이 찬모를 우리 나라 <양심선언 제1호> 인물로 삼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데 나라 경제 거덜낸 IMF오적들 밑에는 사람다운 사람 하나 없나 하기야 이 머리가 그 머리인지 꿔온 머린지 빌린 머린지 『통 기억이 안난데이』
다시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가을 볕
가을 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 부시다.
가을 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
나는 젖은 나무
난 왜 이리 재능이 없을까 난 왜 이리 더디고 안 될까
날마다 안간힘을 써도 잘 타오르지 않고 연기만 나는 나는 젖은 나무
젖은 나무는 늦게 불붙지만 오래오래 끝까지 타서 귀한 숯을 남겨준다고 했지
그래 사랑에 무슨 경쟁이 있냐고 진실에 무슨 빠르고 더딘 게 있냐고 앞서가고 잘 나가는 이를 부러워 말라 했지
젖은 나무는 센 불길로 태워야 하듯 오로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용맹스레 정진할 뿐 젖은 나무인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긴 호흡으로 치열하게 타오를 뿐
사랑은 끝이 없다네/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대가 내 마음속을 걸어다니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강을 건너서도 그대가 내 가슴에 등불로 환하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대 이름만 떠올라도 푸드득, 한 순간에 날아오르겠는가 그 겨울 새벽길에 하얗게 쓰러진 나를 어루만지던 너의 눈물 너의 기도 ... 시린 별로 타오른 우리의 사랑을 이제 너는 잊었다 해도 이제 너는 ! 지워버렸다 해도 내 가슴에 그대로 피어나는 눈부신 그 얼굴 그 눈물의 너까지는 어찌 지금의 네 것이겠는가 그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가만히 눈감으면 상처난 내 가슴은 금세 따뜻해지고 지친 내 안에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해맑은 소년의 까치걸음이 날 울리는데 이렇게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걸 내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어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사랑은 끝이 없다네 다시 길 떠나는 이 걸음도 절망으로 밀어온 이 희망도 슬픔으로 길어올린 이 투혼도 나이가 들고 눈물이 마르고 다시 내 앞에 죽음이 온다 해도 사랑은 끝이 없다네 나에게 사랑은 한계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패배도 없고 사랑은 늘 처음처럼 사랑은 언제나 시작만 있는 것 사랑은 끝이 없다네 ...
아직과 이미 사이 / 박노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박노해) |
그토록 애써온 일들이 안될 때
이렇게 의로운 일이 잘 안될 때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뜻인가
길게 보면 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이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시키려는 건 아닌가
하늘 일을 마치 내 것인 양 나서서
내 뜻과 욕심이 참뜻을 가려서 인가
능(能)인가
결국은 실력만큼 준비만큼 이루어지는 것인데
현실 변화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해
처절한 공부와 정진이 아직 모자란 건 아닌가
때인가
흙 속의 씨알도 싹이 트고 익어가고 지는 때가 있듯이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이루어지는 것인데
세상 흐름에 내 옳음을 맞추어내지 못한 건 아닌가
내가 너무 일러 더 치열하게 기다려야 할 때는 아닌가
쓰라린 패배 속에서 눈물 속에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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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 박노해
우리의 소원은 부자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올해도 농사짓는 것이다
허리 숙여 불볕이랑을 기며 태풍 장마에 애간장을 졸이며 누구도 대시하고 싶지 않은 일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올봄에도 내 땅에 씨뿌리는 것이다
누가 내 가난한 소망을 가로막는가 누가 내 소박한 봄날을 깨뜨리는가 누가 사람을 먹여 살려온 이 들녘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기지를 세우려 하는가
너희가 무력으로 내 땅을 강점하고 너희가 총칼로 내 봄을 짓밟는다면 이제 우리는 나라도 없다 이제 우리는 정의도 없다
미군의 민주주의 미군의 안보 미군의 권리에 내 땅에서 울부짖고 쓰러지고 쫓겨나는 나라라면 나라도 없는 우리는 이제부터 평화의 독립군 이다 농사를 내려놓고, 삽도 호미도 내려놓고, 먼저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
쫓겨난 빈손으로 촛불을 들고 너희들의 미사일 너희들의 전투기 너희들 탐욕과 전쟁의 마음을 내 안에서 조용히 불사르겠다 불살라, 이 새싹 같은 촛불을 들고 저 우는 들의 눈물을 기름부터 너희들의 무기의 어둠을 불사르겠다
우리들 인간의 봄을 시작하겠다 이제 나라도 정의도 없는 우리는 미군의 총칼에 울부짖고 미군의 폭력에 피흘리는 지구마을 어린 것들을 보듬어 안고 국경 없는 평화의 봄을 꽃피우겠다
이 들녘에 떠오르는 아침해는 누구도 홀로 가질 수 없듯이 이 들녘에 차오르는 봄은 누구도 호로 맞을 수는 없듯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전쟁의 바드다드에도 새만금에도 쿠르디스탄에도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어야 한다. 아아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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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수도 살릴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만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짖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 길고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긴 이별에 한숨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뿜으며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위로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걸로야 TV탈렌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들 견줄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서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꽃이야 강사 따르겠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내가 동료들과 술망태가 되어 와도 몇일씩 자정 넘어 동료집을 전전해도 건강걱정 일격려에 다시 기운이 솟고 결혼 후 3년 넘게 그 흔한 세일 샤스하나 못사도 짜장면 외식 한번 못하고 로션하나로 1년 넘게 써도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좋소.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더기로 동료들을 몰고와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요즘들어 빨래, 연탄갈이,김치까지 내 몫이 되어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조금만 나태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비판하는 진짜 겁나는 당신 죄절하고 지치면 따스한 포옹으로 생명력을 일깨 세우는 당신 나는 쬐그만 당신 몸 어디에서 그 큰 사랑이 , 끝없는 생명력이 나오는가 곤히 잠든 당신 가슴을 열어 보다 멍청하게 웃는다.
못배우고 멍든 공순이와 공돌이로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일어서 만난 당신과 나는 천생연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까부스고 밤하늘 별처럼 흐르는 시내처럼 들의 꽃처럼 소곤소곤 평화롭게 살아갈 날을 위햐여 우린 결말도 못보고 눈감을지 몰라 저 거친 발굽 아래 무섭게 소용돌이쳐 오는 탁류 속에 비명조차 못지르고 휩쓸려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기쁨으로 산다 이 길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눈물나게 좋다 여보야
도중에 깨진다 해도 우리 속에 살아나 죽음의 역사를 넘어서서 이름 봄마다 당신은 개나리 나는 진달래로 삼천리 방방곡곡 흐트러지게 피어나 봄바람에 입맞추며 옛얘기 나누며 일찌기 일 끝내고 쌍쌍이 산에 와서 진달래 개나리 꺽어 물고 푸성귀 같은 웃음 터뜨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윽한 눈물을 짖자 여보야 나는 당신이 좋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젤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미치게 미치게 좋다.
- 공장 뜨락에
따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 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 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 오는 가간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 어느 놈이 커피 한잔 산다 할 때는
뭔가 바라는게 있다는 걸 안다.
고상하신 양반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릴 땐 내게 무얼 원하는지 안다.
별스런 대우와 칭찬에 허릴 굽신이며 감격해도 저들이 내게 무얼 노리는지 안다.
우리들이 일어설 때 노사협조를 되뇌이며 물러서는 저 인자한 웃음 뒤의 음모와 칼날을 우리는 안다.
유식하고 높은 양반들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세상마다 뒹굴며 눈치밥을 익히며 헤아릴 수 없는 배신과 패배 속에 세상 살아가는 통박이 생기드만
세상엔 빡빡 기는 놈들 위해서 신선처럼 너울너울 나는 놈 따로 있어 날개 없이 기름바닥 기는 우리야 움츠리며 통박을 굴리며 살아가지만 통박이 구르다 보면 통박끼리 구르고 합쳐지다 보면 거대한 통박이 된다고
좆도 배운 것 없어도 돈날개 칼날개 달고 설치는 놈들이 무엇인지 이놈의 세상이 어찌된 세상인지 누구를 위한 세상인지 우리들 거대한 통박으로 안다.
쓰라린 눈물과 억압과 패배 속에서 거대한 통박으로 구르고 부딪치고 합치면서 우리들의 통박은 점점 날카롭고 명확하게 가다듬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통박이 거대한 통박으로 하나의 통박으로 뭉쳐지면서 노동하는 우리들이 새날을 향하여 이놈의 세상을 굴려갈 것이다.
- 한세상 살면서
뼈빠지게 노동하면서 아득바득 조출철야 매달려도 돌아오는 건 쥐씨알만한지
죽어라 생산하는 놈 인간답게 좀 살라고 몸부림쳐도 죽어라 쇳가루만 날아들고 콱콱 막히고 골프채 비껴찬 신선놀음 허는 놈들 불도자처럼 정력좋은 이윤추구에는 비까번쩍 애국갈채 제기랄 세상사가 왜이리 불평등한지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생각도 못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말도 못하는 놈은 썩은 괴기여 켈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실천하는 사람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인간이제 진짜 노동자이제
비암이라고 다 비암이 아니여 독이 있어야 비암이지 센방이라고 다 센방이 아녀 바이트가 달려야 센방이지 노동자라고 다 노동자가 아니제 동료와 어깨를 꼭 끼고 성큼성큼 나아가 불도자 밀어제께 우리 것 찾아 담은 포크레인 삽날 정도는 되어야 진짜 노동자지
- 준비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처절한 정진으로 자기를 갈고 닦아 저 거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진정한 자기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없는 준비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해 가는데 세상과 자기를 머릿속에 고정시켜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 1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 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빚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말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긁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부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을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귿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 일주일의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엽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요." 어느 도적놈인지 조직폴력배인지 노란 민들레 한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이 주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 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서 ?줘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한 민들레꽃 한 송이로 환하게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년 아름다은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민들레꽃을 바로 봅니다. 어디선가 묶인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내 손에까지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 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둥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중에 수천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흑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 거대한 안기부의 지하밀실을
이 시대의 막장이라 부른다.
소리쳐도 절규해도 흡혈귀처럼 남김없이 빨아먹는 저 방음벽의 절망 24시간 눈 부릅뜬 저 새하얀 백열등 불어 불엇!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과 온 신경이 끊어 터질 듯한 고문의 행진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 더이상 무너질 수는 없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 그것은 우리들 희망의 파괴 우리 민중의 해방출구이 붕괴 차라리 목슴을 주자 앙상한 이 육신을 내던져 불패의 기둥으로 세워두자
서러운 운명 서러운 기름밥의 세월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 속에 매순간 결단이 필요했던 암흑한 비밀활동 그 거칠은 혁명투쟁의 고비마다 가슴치며 피논물로 다져온 맹세 천만 노동자와 역사 앞에 깊이 깊이 아로새긴 목숨 건 우리들의 약속 우리들의 결의 지금이 그때라면 여기서 죽자 내 생명을 기꺼이 바쳐주자
사랑하는 동지들 내 모든 것인 살붙이 노동자 동지들 내가 못다 한 엄중한 과제 체포로 이어진 크나큰 나의 오류도 그대들 믿기에 승리를 믿으며 나는간다 죽음을 향해 허청허청 나는 떠나 간다.
이제 그 순간 결행의 순간이다. 서른다섯의 상처투성이 내 인생 떨림으로 피어나는 한줄기 미소 한 노동자의 최후의 사랑과 적개심으로 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 마지막 생의 외침 아 끝끝내 이 땅 위에 들꽃으로 피어나고야 말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가자 자본가세상, 챙취하자 노동해방"
그대 나 죽거든
- 아영아영 나 죽거든
강물 위에 뿌리지마 하늘바람에 보내지 말고 땅속에다 묻어주오 비 내리면 진 땅에다 눈 내리면 언 땅에다 까마귀 산짐승도 차마 무시라 뒷걸음쳐 피해가는 혁명가의 주검 그대 봄빛 손길보다 다독다독 묻어주오
나 언 땅 속에 길게 뿌리누워 못다 한 푸른 꿈과 노래로 흐를 테요 겨울 가고 해가 가고 나 흙으로 사라지고 호올로 야위어가는그대.. 어느 봄 새벽, 수련한 함박꽃으로 피어 날 부르시면은 나 목메인 푸르른 깃발 펄럭이면서 잠든 땅 흔들어 깨우며 살아날 테요
아영아영 나 죽거든 손톱 발톱 깎아주고 수염도 다듬어서 그대가 빨아 말린 흰옷 이쁘게 입혀주오 싸늘한 살과 뼈 험한 내 상처도 그대 다순 숨결로다 호야호야 어루만져 하아- 평온한 그대 품안에 꼬옥 보듬어 묻어주오 자지러진 통곡도 피 섞인 눈물도 모질게 거두시고 우리 맹세한 붉은 별 사랑으로, 눈부신 그 봄철로 슬픔 이겨야해. 아영 강인해야 해
어느 날인가 그대 날 찾아 땅속으로 오시는 날 나 보드란 흙가슴에 영원히 그댈 껴안으리니
아직과 이미 사이
-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살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거룩한 사랑
- 성은 피과 능이다.
어린 시절 방학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뭍혀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 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 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끊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을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고난은 자랑이 아니다
- 고난은 싸워 이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역경은 딛고 일어서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좌절은 뒤어넘으라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눈 뜨라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려들거나 빨리 통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고통의 심장을 파고들어 그 안에 묻힌 하늘의 얼굴을 찾으리고
고난은 살아낸 그대여 그것은 장한 인간 승리이지만 맑은 눈 뜨지 못하면 철저히 무너지고 깨어져 내려 먼지만큼 작은 자신으리 실상을 보지 못하면 내세운 정의와 진리 속에 숨어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면,
고난을 ?고 나온 자랑스러운 그대 역시 또 하나의 닻입니다. 슬픔입니다. 고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승화시킨 사람이 아니라면 생의 가장 깊은 절망과 허무의 바닥에서 맑은 눈으로 떠오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앞을 비추이는 희망의 사람이 아닙니다.
행여 제가 고난받았다고 얼굴을 들거든 침을 뱉어 주십시요 고난받았기에 존경받는다면 그것은 나의 치욕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고난이 나를 키웠고 고난이 나를 깨우쳤고 고난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배웠고 그대를 만났습니다. 아- 나에게 고난은 자랑이 아니라 아름다운 슬픔입니다.
줄 끊어진 연
- 한겨울 바람이 맵찬 어느 날이었어요
창살 너머 어둑한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줄 끊어진 가오리 연 하나가 뒤척이며 고행중이더군요
스스로를 산채로 파묻고 인연 줄도 다 놓아 버려 깊어가는 감옥이 조금은 적막하지만 한사코 붙잡지 않습니다 탓하지도, 의지하지도, 소망하지도 않습니다.
난 지금 줄 끊어진 연처럼 홀로 빈 하늘 떠도는 듯해도 하하, 나는 나대로 고독한 긴장 속에 생명줄 내건 치열한 날들입니다.
보이는 줄만 줄일까요 세 손으로 거두어야만 삶일까요 이헐게 날면 되는 것을 줄 없는 줄을 타고 허공 찬바람 속에 몸 던져주며
나는 홀로 날았습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내 목숨 같은 외줄을 끊고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다시 이어지는 고투의 세월을 참흑한 투쟁과 묵상의 나날이었습니다
아- 눈 맑게 열리고 마침내 내 인연의 때가 오는 날
줄 없는 줄을 통해 아직도 첫마음 밝혀든 그대에게 나 뜨거운 떨림으로 차전할 것입니다.
그래요 희망의 줄은 이미 저마다의 몸 속에 내장되어 있고 좋은 세상은 이미 현실 속에 와 자라고 있고 외줄의 때가 있고 거미줄의 때가 있고
밤새 거미 한 마리가 제 몸 속에서 투명한 줄을 뽑아 쇠창살에 잘 짜인 집을 짓더니 아침 햇살에 이른 영롱한 팽팽한 거미줄망이 그대로 한 우주, 내 삶의 안과 밖이 이어지는 관계 그물망으로 확 비추어 오더군요.
겨울이 온다
- 와수수
가랑잎 쓰는 바람에 삭발한 머리 쳐드니 하늘은 저만큼 높아져 있다. 나는 이만큼 낮아져 있는데
시린 하늘 흰 구름은 옥담 질러 사라지고 나는 컴컴한 독방으로 사라지고
맑은 가을볕도 잠깐 여위어가는 가을 설움도 잠깐 벌써 독방 마루 바닥이 찹다 의시시 몸 웅크리며 겨울 보따리 풀어 해진 옥 궤맨다
아 어느덧 저만큼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벽 속에 시퍼렇게 정좌한 채 겨울 정진 깊어가는 날 온다 대낮에도 침침한 독거방 불빛 아래 갑자기 바느질 손 바빠진다.
참혹한 사랑
- 그대 소식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 못 본지 벌써 7년인데 얼굴이 몹시 안되었더라고 그동안 크레 앓아 몹쓸 수술까지 받았다고 사람들과도 잘 만나지 않는다고 내 얘기 듣고 말없이 울기만 하더라고
바보같이... 바보같이... 그렇게 혹독하게 시대앓이를 하다니 그냥 좀 살지 몸이라도 챙기지 다들 돌아가 따뜻한 자리를 잡는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다 바친 그대가 왜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나도 가끔은 웃으며 사는데
그래 내가 힘들까 봐 엽서 한장 없었나요 혼자서 여린 몸에 그 패배를, 가혹한 상처를 그렇게 지독히 앓아야만 했나요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과 아름다움이 아까웠어요 맑은 열정과 가능성이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그 ?치울 때까지만 좀 떨어져 하라고 했던 거에요 그런데도 울며 꽃 꺾어 던지며 현장으로 수배길로 오시더니 이렇게 쓰러지자고, 피투성이로 망가지자고 한사코 조은 길만 골라 걸으셨나요
이제는 더 울지 마세요 슬픔도 착함도 버리세요 떨리는 기다림도 버리세요 남들처럼 대충 잊어버리세요 그대 안의 나도 지워버리세요 많이 늦었지만 따뜻하게 둥그렇게 이젠 부디 행복하세요.
바보같이... 바보같이 ... 아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꽃같이 싱싱하던 그대가 아니라 다시는 필수 없는 흘러간 꽃이라도 그대의 좌절 그애의 상처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내 남은 목숨이 다하도록 멀리서... 곁에서...
- 박노해 시인.
출생 : 1958년 11월 20일.(전라남도 함평.)
학력 : 선린 상업고등학교.
경력 : 1985년 서울 노동연맹.
1988년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 결성.
1989년 서울 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
수상 : 1988년 제 1회 노동문학상.
데뷔 : 1983년 시와경제 '사다의 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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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침묵 깨고 ‘Save Lebanon’ 운동 펼치는 시인 박노해 |
박노해 시인을 만난 것은 지난 7월 11일이다. 박 시인은 7년간의 침묵을 깨고 광화문 사거리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레바논에 전투병 대신 재건과 의료 지원을 위한 부대를 파병하자는 내용이었다. 장대비가 내렸고, 그는 우비를 입고 거리에 섰다. 수첩과 카메라를 든 취재진도 있었다. 나눔문화 대학생 회원들은 “10초만 시간을 내달라”며 지나치는 시민들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웃는 얼굴로 흔쾌히 응하는 사람도,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나 나름의 고통과 아픔이 있지요.그것을 나누고 승화하면 사랑과 희망이 시작됩니다. 상처야말로 당신이 가진 최고의 보물이에요”
어느 무관심한 자(者)의 편지
고백하겠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뉴스를 보면서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내 앞가림도 바쁜 세상, 먼 나라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가슴 아파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백하겠다. 박노해 시인의 책을 구입한 것은 그들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책의 디자인과 사진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박노해를 알고는 있었지만 무관심했다. 그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먼 나라 레바논에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가서 직접 찍고, 손으로 적어온 글들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낯선 무슬림 아이들이 소 같은 눈망울을 하고 있는 흑백사진은,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래,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책을 덮을 무렵에야 알았다. 소처럼 순박한 눈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사실 깊은 슬픔이 어려 있다는 것을.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지워지지 않을 글씨로 새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괴롭힌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숱하게 걸었을 광화문 거리에서, 나는 박노해 시인이 나눔문화 회원들과 함께하고 있는 ‘Save Lebanon’ 운동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없는 거리만을 골라 걸었을 리는 없다. 그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무관심’이었다. 신나는 음악으로 귀를 막고,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눈을 감고 걸었던 거리에서, 그들은 레바논 아이들의 평화를 지원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슬픔을 담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결국, 눈물을 불렀다. 하산(6)의 집은 폭격으로 무너졌다. 하산의 누이 자이납(8)은 벽돌 더미에 깔렸다. 하산은 살았지만 누이는 죽었다. 같이 흙장난하고 놀던 누이는 명분이 모호한 전쟁에 삶을 빼앗겼다. 하산은 ‘혼자 살아남아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소 같은 눈망울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심의 눈물이 담겼다.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흘렀다. 무관심의 눈물은 차가웠다. 박노해 시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인터뷰는 나눔문화에 있는 박노해 시인의 개인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간간이 눈을 감고 있던데,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우리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에서 시위를 하고 있지만 레바논 아이들의 머리에는 폭탄과 총알이 떨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혼자라도 알려야 합니다. 슬프고 고독하지요. 외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이해합니다. 다들 ‘먹고살기’ 위해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에 대해 모른 척하고 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선함과 의로움과 사랑이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깐 발을 멈추는 것이 어려울 뿐. 평화운동가와 혁명가, 로맨티스트가 가슴속에 한 명씩 살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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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박노해 시인의 카메라 앞에 선 아이들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음을 잃었다. (아래) A PLANE VS A CHILD, 죄 없는 아이의 얼굴에 튄 폭격의 파편. | |
레바논 현장의 진실이나 아이들의 절망과 고통, 공포, 슬픔 다 알면서도 내가 모자라고 무력해서, 전투병 파병조차 막아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내가 조금만 더 힘이 있다면’, 그런 힘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위도, 힘도, 명예도 탐내지 않고 7년간 묵언 했습니다. 7년이면 다 잊혀지지요. 꾸준히 활동했다면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젊은 세대도 저를 알 것입니다. 이럴 때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고통받는 레바논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러나 정말 가치 있고 옳은 일은 작지만 꾸준히 밀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씀이신데요, 많은 분들이 서명에 동참하고 아이들을 위해 얼마씩 돈을 내주셨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다른 삶에 관심 가질 수 없는 나름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고통을, 같은 고통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고통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의 치유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도 몸과 마음이 무척 고통스러울 때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라고 느끼지 않겠습니까. 외롭고 슬프고, 실패하면. 그 상처의 치유도 나눔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보다 더 힘들고 절박한 인류에 관심을 갖고 뭔가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고 할 때, 내면의 상처도 치유되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한 ‘고통의 치유’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고,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인식과 ‘직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과 직면하게 하는 박 시인의 힘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배고파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의 배고픔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 밥을 굶어, (밥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하고 생각할 수도 있죠. 남에게 억울하게 폭력을 당해보고, 짓밟혀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큰 절망이고 고통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 ‘힘’은, 저 자신이 가난과 고통과 슬픔, 억울함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 안에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과는 핏줄처럼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들과 제가 한 몸이라고 느낀다면, 발가락 하나가 아파도 손이 가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상처가 있고, 가난, 아픔이 있지요. 그것을 개인으로 끌어안을 때는 절망, 고통이 되지만, 승화하고 나누면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사랑과 희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처야말로 당신이 가진 최고의 보물이고 힘입니다.
●레바논 현지에서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상을 ‘직면’했을 때의 충격을 설명하실 수 있나요?
온몸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시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살아 있는 인간이, 살아 있는 집과 마을을 거대한 폐허로 만드는 그런 사람들은, 과연 인간인가. 이렇게 어린아이들을 이토록 무참하게 학살한 이들이 인간인가. 말을 잊었습니다. 시도 쓸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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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광화문 네거리에서 의료, 재건부대 파견을 위한 1인 시위 중인 박노해 시인. (아래) 카메라 앞으로 아빠의 사진을 들고 나온 리안(5) 리안의 아빠는 전사했다. | |
* 박 시인과 동행했던 건국대 히브리 중동학과 최창모 교수는, “박 시인이 카메라를 들게 된 것도 충격 때문에 시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흑백인데, 마지막 장의 아이들 사진만 컬러입니다. 각자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도드라집니다만, 어떤 의도가 있으셨는지요?
흑백만 찍다가 예수 최초의 기적이 있었다는 까나 마을에 노을이 지는데, 그 노을 아래 선 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만은 아이들을 컬러로 찍어주고 싶었지요. 까나 마을에 가서 전시회를 열어주려고요. 아이들에게는 복수심도 없고 부모, 친구가 다 죽고 폭격 더미에서 살아남아도 증오가 없습니다. 순수한 평화의 마음을 곱게, 영원히 잊지 말고, 변치 말고, 평화의 올리브나무처럼 자라라고, 곱게 담아주고 싶었습니다.
●이 기사를, 혹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사람은 자기 자신, 자기 나라에 대한 관심은 누구나 타고납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관심,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관심, 국경 너머의 관심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지구시대죠. 우리 아이들은 지구를 품고 자라야 합니다. 이 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면, 지구시대 시민의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고통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국경 너머에서, 너무나 많은 곳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일상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우리는 그 위에서 이 정도의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딛고 선 존재의 발밑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할 때, 우리는 바로 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고, 둘러보고, 그것으로부터 사랑과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요. 여러분이 그런 놀라움을 눈물로 끌어안아주기를 바랍니다.
●‘세계시민’이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지구시민’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세계시민’이 더 대중적이지요. ‘지구시민’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하나뿐인 우리 지구 문제, 그 문제에 대해서도 지구적으로 생각하자는 의미입니다. 세계는 인간과 인간, 나라와 나라의 개념이지만, 지구시민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터를 포함해 평화, 생명, 나눔의 문제를 포괄합니다.
●다분히 회의적인 시각에서 질문 드립니다. 인간도, 세상도 결국 모순 덩어리인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죠. 공존합니다.
누군가는 ‘어차피 그런 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 어떤 변화의 가능성을 읽으십니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 안에 천사와 악마가 있습니다. 포르노부터 고전까지. 문제는 ‘어느 쪽에 물을 주고 정성을 기울이느냐’입니다. 그 선택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지요. 그것이 인격이고, 인간성입니다.
맞습니다. 세상은 모순 투성이지요. 전쟁은 있어왔고, 악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길과 객관적인 현실 앞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선을 더 키울 것인가, 악을 더 키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체념하는 순간, 폭력, 악의 기득권 안에서 침묵의 동조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전쟁을 하는 세력, 불의한 방법으로 기득권을 가져가는 세력들은 항상 국민의 이름으로 저지르지요. 이스라엘, 미국도 마찬가지고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침묵과 무관심이, 그쪽의 지지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않는 그 자체, ‘지구시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그 자체로 악의 지지자가 되는 것이지요. 귀 기울이고, 들여다보고, 말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박 시인은 늘 힘들 때면 가슴에 새기는 사례가 있다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겨울, 백악관 앞에서 백인 남자가 촛불을 들고 1시간씩 서 있었습니다. 퇴근길마다 그러니까 출입 기자들이 물었죠. “당신 혼자 이러고 있으면 뭐 하느냐”고, “그 촛불 하나 가지고 뭘 할 수 있느냐”고. 그래도 묵묵히, 겨울 내내. 퇴근길에 침묵으로 서 있다가 돌아갔습니다.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촛불 하나가 전쟁을 멈추게 하고 정의로 미국을 돌릴 수 있는 힘이 없을 수도 있다.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마저 이 무거운 어둠 속으로 휩쓸려가는 것을 도저히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 이 촛불은 나를 지키기 위한 양심의 촛불이다.”
그 촛불이 모여서 최초로 베트남군 철수를 이끌었지요. 미국을 구한 시민사회의 힘입니다. 우리는 너무 똑똑하고 지식이 있어 미리 해석하고 말지만, 세상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부르는 대로 손발로 참여하고 나누는 사람들에 의해 바뀌는 것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도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이뤄진 것입니다. 어느 역사의 시기나 마찬가지지요. ‘내가 뭘’, ‘나 하나가 뭘’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너무 무시하지 마십시요. 자기 안에 무시무시한 힘이 숨어 있습니다. 도토리알 안에 참나무가 숨어 있듯. 그것이 바로 백성이 주인이라고 하는 민주주의 아닙니까. 작지만 냉소하지 말고 너무 똑똑해서 체념하지 말고 나누고, 드러내고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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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이 전쟁에 지친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마련한 ‘평화마음그리기’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선 마르다 마흐무드 샬흡(5). 그림에 쓴 글씨는 ‘평화’ | |
●레바논 아이들의 눈망울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인 것은 분명한데, 어른의 눈빛을 하고 있더군요. 레바논 아이들 중 누가 가장 생각나시나요?
하산. 너무나 예쁜 아이입니다.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 한국에 있었다면 영재일 겁니다. 그 아이는 부모를 지키기 위해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장난감 총을 들고 순찰을 돕니다. 하산은 자기가 아버지를 못 지키고 죽은 누나를 지키지 못한 것에 자책감을 가지고 있어요. 죽은 누나를 생각하면 하산의 해맑은 미소가 매의 눈으로 변하는, 강인한 의지가 있지요. 하산의 눈물, 그 속에서 레바논 아이들의 평화의 미래를 보기도 합니다. 이번에 가면 하산을 보겠지요. 평생 어떻게 살아갈지. 친구를 잃고, 누나를 잃고, 피투성이로 살아난 여섯 살짜리 아이가. 미안하다고 울부짖던, 장난감 총을 들고 순찰을 도는 저 아이가, 저 오지 마을의 아이가 어떻게 자라날지 지켜볼 것입니다. 조만간에 가볼 예정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까나 마을에 평화도서관을 지었고, 난민촌에 학교를 지원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은 줄을 서고 있는데, 돈이 없어서 어려운 실정입니다. 길거리에서 모금하고 그 비용을 가지고 학교를 뿌리 내리게 할 겁니다.
창가에 보면 까만 머리들이 난리예요. 학교는 작고 수용 인원은 40명뿐인데, 수십 명 아이들이 배우겠다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쳐다보고, 무등 타고 올라가서 보고. 까만 눈동자들을 빛내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포를 치유하고, 글도 배우고. 아이들 컴퓨터도 설치해주면 좋을 것 같고… 한 달 1백만원에 아이들의 온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아요. 이제는 의미만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삼미(三味 )가 있지요. 돈 맛, 재미 그리고 의미입니다.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의미는 사라지고, 돈 맛과 재미만 두 발로 세계화를 향해 뛰어갑니다.
삶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좋은 우유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초지를 만들어야 하고, 그 위에 소를 키우고, 소는 좋은 풀을 뜯어 먹고 사는 것이지요. 기본이 없으면 건강할 수 없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예요. 문화의 원동력인 시, 음악, 미술, 연극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죽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꿋꿋하게 갈 것입니다. 7년 동안 묵언하면서도 그렇게 해왔고 누가 알아주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입니다. 작가로서는, 딱 3백 명의 독자를 보고 합니다. 30명은 너무 고독하니까요. 3백 명만 있다면 온 심장을 녹여서 쓸 수 있습니다. 충실한 독자 3백 명을 보고 갑니다. 언젠가는 그들이 빛과 소금처럼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옛날처럼 30만 명이, 3백만 명이 책을 본다고 해도, 진정한 독자 3백 명이 빠져 있다면 나는 죽은 작가입니다.
박노해 시인을 만나기 전, 그의 목소리를 상상했다. 이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까를 상상했다. 평화로운 목소리였다. 먼 나라 레바논 아이들의 참상을, 고통과 절망을 마음에 담은 사람의 진중한 목소리는 이미 그 모든 것을 보듬어 안은 듯했다.
사실, 팍팍한 일상에서 100% 자발적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나눔’이 아름다운 이유는, 누구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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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참 좋은 날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삶의 작은 혁명은 사람속에 있지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진리에 닿는 것이다”
고움으로 하는 오늘! 한~ 아름~ 행복과 같이 하소서! _()_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