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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학하던 해 용산에서 여섯 명이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교수님은 선배들은 그리고 친구들은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안녕했습니다. 내가 훈련소에 있을 때 제주도의 강정마을이라는 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섰습니다. 울면서 끌려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불쌍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녕했습니다. ‘다 그렇게 사는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지금까지 나에게 아무도 ‘너는 안녕하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진짜 안녕한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 술을 먹을수록 무력해지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답답해져만 갔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안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녕한 척 해왔기 때문입니다." - 우리학교 09 강훈구
"이것이(세상과 나의 삶을 분리시켜왔던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지적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살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꾹 참고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니까요. ‘나는 아직 안녕하다’며 자기최면을 거는 동안에, 나는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잃은 것 같습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도, 원전 비리에도, 4대강 사업의 뒷통수에도, 언제나 나의 삶을 이런 문제들로부터 격리시켜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신차려보니 결국, 파업에 참가하는 6748명의 노동자가 직위해제 당하는 작금의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저도 안녕하지 않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 군입대를 앞둔 어느 사범대 11학번 학생 |
주씨는 구체적으로 무엇에 어떻게 맞서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안녕하냐고 물었을 뿐이다. 그런데 "안녕(安寧:아무 탈 없이 편안함)하십니까"라는 이 평범한 질문이 학우들의 마음을 요동시켰다. 평소엔 아무것도 아니었을 흔한 질문이 그토록 무겁게 다가왔던 이유는 저 말 뒤에 생략된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 지금 편안한가? (그래도 되는가?)"
일상의 인사마저 무겁게 만드는 것은 주씨의 표현대로 '하 수상한 시국'이다. 그가 처음 대자보를 썻던 날 4213명이었던 직위해제 철도노동자 수는 이제 7611명으로 늘어났고, 여당은 결국 장하나 의원의 징계안을 제출했으며, 밀양의 할머니들은 여전히 공권력 앞에 알몸으로 맞서고 있다.
주씨의 대자보는 '이런 시국에서 내 일상의 안녕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찌 사치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자보를 본 학우들은 '안녕한가'가 아닌 '안녕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대자보를 통해 비로소 자신들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세상과의 벽을 허물어준 주씨의 투박한 대자보는 학우들에게 도올의 혁세격문 못지않은 명문으로 다가왔다.
주씨는 '안녕하지 못한' 학우들과 함께 14일 오후 3시부터 학교에서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어제는 교문 앞에 서서 이 행사를 홍보하기 위한 1인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벌이는 동안 그의 곁에는 "함께 합시다" "정녕 안녕하신가요?"라고 쓰여진 자보를 들고 나온 학우들이 가세했고 학우들이 오가며 건넨 수십 개의 음료와 간식, 핫팩이 쌓여갔다. 동참과 응원메시지도 줄을 이었다.
저 대자보를 읽은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안녕한가? 아니, 안녕해도 되는 것인가? 나는 이 질문 앞에 안녕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 주현우 씨 대자보 전문
<안녕들 하십니까?>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36873&CMPT_CD=P0001
서울역 광장에서
'서울역나들이' 집회에 참가한 서강대 09학번 정다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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