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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朴只島] 개요
천사의 다리로 알려진 작은 섬
박지도는 목포항에서 25km 떨어진 섬으로, 여객박지도 [朴只島] - 천사의 다리로 알려진 작은 섬선을 타면 안좌 복호에서 내려서 두리마을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안좌도 남쪽 끝인 두리마을에서 약 600m 떨어진 섬이 박지도이다. 총면적 1.190km2, 해안선 4.6km이며, 17세대에 21명이 거주한다. 지금까지는 안좌도 두리마을에서 도선을 타고 다녔지만 2011년에 두리포구와 박지도 간을 연결하는 547m의 천사의 다리가 완공되어 이제는 걸어서 들어가는 섬이 되었다.
안좌도를 왕래했던 도선
안좌도에서 마주 보이는 박지도
박지도의 최고높이는 130m이며, 기복이 심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간석지가 넓게 발달해 있으며, 썰물 때는 안좌도, 반월도 등의 섬과 연결된다. 남쪽 해안 일부는 방조제를 축조해 경작지로 이용하고 있다. 취락은 남동쪽 해안가 반포마을과 북쪽 해안의 문서구지에 분포해 있다. 박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하여 박지도(朴只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섬의 지형이 박 모양이라 하여 바기섬 또는 배기섬이라고도 한다. 박지도는 보리, 쌀, 고구마, 콩, 마늘 등의 농산물이 주 특산물이다. 그밖에 근해에서 멸치, 참조기, 가자미, 갈치, 낙지, 해삼 등이 잡히고 있다. 1973년도 50가구 328명, 분교생 75명이었던 박지도는 현재 17가구에 21명이 살고 있으며, 빈집이 12곳이나 있다. 이 섬에도 1970~1980년대부터 이농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여타 농 · 어촌과 다를 바 없이 먹고 사는 경제 문제와 자녀교육 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 섬마을에는 구멍가게조차 없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4~5명씩 모여 나룻배를 타고 두리 포구로 나가 택시비를 분담하여 면소재지에 가서 생필품과 먹거리 등을 구입했다. 장날 손주 주려고 산 아이스크림이 집에 도착해보니 다 녹아버렸다는 우스갯소리는 이 마을에서만큼은 농담이 아닌 현실이다. 마을에서 만난 노인들을 통해 인심이 어느 섬보다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6.25 전쟁 시절에도 인심이 후해 이곳으로까지 온 피난민들에게 집짓기도 도와주고 식량까지 나누어 주는 등 도움을 많이 주었다 한다. 신안군 섬들은 대부분 갯벌이 많이 있다. 그런데 박지도에는 특이하게도 갯벌이 별로 없다. 그래서 김양식을 할 수 없는 환경이라 농사에 더 집중하는 섬이다. 주변 대부분의 섬들은 김양식으로 인한 가계빚이 보통 몇천만 원에서 억대씩 있는 데 비해 박지도 사람들은 김양식을 한 바가 없어 도리어 빚이 거의 없다고 한다. 갯벌이 있는 섬에서는 해마다 기대와 함께 빚을 내어서 김양식을 하지만 재료값과 기름값, 인건비 상승에 비해 제자리걸음만 하는 김값 때문에 김양식을 하는 집 대부분이 빚을 지기 때문이다.
박지도는 밭이 많다. 1960년대에는 보리를 1천 가마 이상 수확했다고 한다. 밭의 면적이 300여 ha 논농사 20ha 정도라고 한다. 갯벌이 없다 보니, 이곳 섬주민들은 대부분 어업보다는 농사에 힘을 쏟는다. 농산물로는 보리, 쌀, 고구마, 콩, 마늘 등이 생산되고 있다. 현재는 일손부족으로 논농사는 5ha 가량, 밭농사는 3ha 정도를 경작하고 있다.
박지도에는 40년간 이장직을 맡고 있는, 70대인 국내 최장수 이장 임춘삼 씨가 있다. 40년간 장기집권을 하고 있기에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 이장이다. 1968년 한양대 공대를 휴학한 임씨는 ‘복학하기 전까지만 이장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예 섬에 눌러앉아 살게 되었다 한다.
그가 처음으로 이장일을 맡을 때 면사무소로부터 받은 수당은 월 350원이었다 한다. 그래도 주민들이 보리와 콩, 조 등 농산물을 걷어주는 바람에 이장직을 지속할 수 있었다. 요즘도 수당은 22만 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한다. 임 이장의 집 창고에는 지금도 36년간 이장을 하면서 보관해온 각종 공문서와 영수증 등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옛날에는 이장이 면사무소 일은 물론, 주민들의 생필품까지 사다 주는 배달부 노릇도 했다고 회고한다.
박지도 임 이장은 주민들의 신속한 민원처리를 위해 오토바이를 구입해놓고 주민들의 발이 되어왔는데,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은퇴를 앞두고 있다. 섬주민들을 위해 긴 세월을 봉사해온 그의 노고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박지도 둘러보기
선착장 가는 길은 마을의 중심도로다. 길 좌우로 다양한 밭이 있다. 고추밭, 보리밭, 마늘밭 등이 펼쳐져 있고, 도로 아래는 온통 논이다. 작은 섬치고는 제법 넓은 논이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는 게 박지도가 주는 인상이다. 이곳을 여기에서는 ‘대야들’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이곳이 바다였는데, 간척으로 얻은 들이다. 박지도의 선착장은 섬의 북서쪽 끝자락에 있다. 이곳이 섬 입구이지만 마을과는 정반대인 곳에 있다. 입구에는 마을 표지석과 정자쉼터, 산책로 안내도 그리고 이정표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마을 표지석에는 박지리라 표기되어 있고, 그 옆으로 1990년도 범죄 없는 마을이란 글귀와 함께 연혁이 새겨져 있다. 중노두 전설이 담긴 안내판도 있다.
박지리 정자
정자에서 쉬고 있는 주민들
그리고 간판에는 ‘마을 뒷산 당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 마을의 안녕과 질병 퇴치를 위해 흠 없는 송아지를 잡아 각을 떠서 당제를 지냈다’는 설명이 나와 있다. 구약성경에 제물에 각을 뜬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도 송아지의 각을 뜬다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의 뜻은 농어촌에서 소나 돼지를 잡을 때 나누기 쉽게 쪼개는 것을 각을 뜬다고 하였다. 여기서 박지도 당제에 대하여 알아본다. 주변의 섬 지역에서 박지도의 당제는 유명했단다. 해마다 정월대보름이 다가오면 30대의 남자 2명을 골라서 원당주, 부당주를 선정하였다. 흠이 없이 송아지를 한 마리 사서 10일간 잘 먹인다. 정월 열나흗날 당산 정상까지 끌고 가서 당 앞에 서면 제관은 샘에서 목욕을 하고 송아지를 잡아 제물로 바쳤다. 당제가 다 끝나면 제주는 송아지를 마을 가구 숫자인 53덩이로 잘랐다. 흉년이 들면 소머리만 사다가 바쳤다. 각을 뜬 송아지를 지게에 지고 마을 쉼터인 멀구슬 나무 아래로 내려오면 한 덩이씩 가져갔다. 임산부 집은 가져가지 않았다. 송아지 머리와 뼈, 내장은 제주가 가마솥에 국을 끓여서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이때 이장 선출과 나룻배와 농로 보수 등 마을의 회의를 마친 후에 꽹과리를 울리며 한바탕 놀이마당을 벌인다.
이때 풍물패는 당주집을 시작으로 각 가정을 돌면서 행운을 빌어 주었다. 그 시절은 가난했지만 설날부터 약 한 달을 먹고 마시며 놀았다. 겨울에는 농한기라 할 것이 없어서 흥청거렸지만 당제는 중단되었고, 섬은 이제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박지도 역시 다른 섬들처럼 노인의 섬이 되고 말았다. 박지도 선착장 입구에서 해안 길을 따라 한참 가다 보면 박지도와 반월도 사이에 돌로 된 옛 노두가 있다. 이 노두는 ‘중노두’라 하는데 이 노두에 얽힌 애틋한 전설이 있다. 이곳에는 박지도 암자에 사는 젊은 남자스님과 반월도 암자에 사는 젊은 비구니스님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담긴 ‘중노두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박지섬 암자에는 젊은 스님 한 분이, 반월섬 암자에는 젊은 비구니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박지섬 스님은 멀리 아른거리는 자태만 보고 반월섬 비구니를 사모했다. 그러나 들물이면 바닷물이 가로막고 썰물이면 허벅지까지 빠지는 갯벌이 가로막아 오갈 수가 없었다. 서로는 망태에 돌을 담아 부어나갔다. 그러기를 여러해, 둘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어느날 드디어 갯벌 한가운데서 만날 수 있었다. 둘은 서로 손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너무 먼 곳까지 들어온 둘은 갑자기 불어나는 바닷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서로 부둥켜안은 채 물 속으로 잠겨 갔다. 다시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돌무더기 길만 이어져 있을 뿐 스님도 비구니도 보이지 않았다.”
이정표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박지도와 함께 박지―반월 간의 천사의 다리 그리고 왼쪽으로는 해변 산책로와 등산로 표시가 되어 있다. 여기에서 마을과 해변 산책로는 똑같이 2km 떨어진 거리다. 산책로는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해안 산책로 한쪽으로 등산로 가는 길이 있다. 등산로라고 하지만 고작해야 최고높이 130m에 불과한 산이다. 그래도 섬은 기복이 심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 마을 당산이 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 때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300~400년생 팽나무 고목과 그 밑의 토석제단이 있다. 팽나무가 당신의 신체이며 당신은 「당할매」 「할머니신」으로 불린다. 100여 평이 되는 이곳 주위에는 나무들이 울타리 역할을 한다. 매년 음력 정월보름에 당제를 거행한다. 전라도 방언으로 ‘당지’라 일컫는다. 산책로 입구에서 5분 정도 약 15미터쯤 올라가면 혹 붙은 예덕나무가 있다. 그 앞은 유명한 감태 집단 자생처가 있다. 정확하게는 다리의 꺾이는 부분에서 이곳 해안까지이다. 몇 분 더 가면 바닷가에 독살이 보인다. 물이 들어온 때라 반원형의 돌들만 보인다. 제법 길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간석지가 넓게 발달해 있다.
감태 자생지
길은 산책로라고는 하지만,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해안길이라 걷는 데 조금은 어렵다. 여기서 마주 보이는 곳이 본섬 안좌도다. 어느 정도 가면 섬의 가장 동쪽 끝자락 지점으로 오르막길이 있다. 해안 산책길은 아래로 계속 이어진다. 마을에 들어서면 고지대로, 마을과 산이 맞붙은 형국이다. 밭을 낀 집들이 대부분 폐가들이다. 길도 단순하다. 마을의 교통수단은 경운기와 오토바이. 이마저도 없다면 30여 분 거리를 뙤약볕 아래서 걸어야만 한다. 산 아래에 약간의 밭이 있고 마을 아래에도 약간의 밭이 있을 뿐이다. 마을을 거쳐 걸어 나오면 마을 입구에 이르는데 그 위쪽에 학교터가 있다. 이 섬에도 예전에 학교가 있었다. 초등학교 분교 1개교가 있었으나, 지난 1991년 폐교되었다. 졸업생 2명을 배출한 것을 끝으로 문을 닫았고 폐교는 개인이 사들였다.
박지도 마을 앞 바다 갯벌에는 수백년 된 원형이 완벽하게 보존된 독살이 있다. 독살은 전통 고기잡이 방식인데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돌로 담을 쌓아놓고 밀물 때 물을 따라서 들어온 고기가 돌담에 들어와 갇혀서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그래서 석방염이라고 한다. 이 독살을 제주도에서는 원담이라고 부른다. 독살은 남해의 창선도 사이에 많이 있는 어살 혹은 죽방염하고 같은 이치이다. 죽방염은 긴 나무로 일종의 벽 같은 것을 길게 만들고 거기에 그물을 치고 그 안에 물이 들어오면 멸치와 고기들이 따라 들어온다. 이런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으면 상처도 없고 고기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맛이 뛰어나고 비싸다. 주로 간만의 차이가 심한 서해안에서 고기를 잡는 함정어법이 독살이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고 사라져 버린 전통어법이다.
원형독살
그런데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살이 아니라 논이라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뒷면이라 부른다. 뒷면에 있는 논은 땅이 한 평이라도 아쉬운 시절 박지도 사람들이 돌로 둑을 쌓고 만든 간척지 논이었다. 장비가 부실하고 영세성을 면치 못하던 시절, 만든 논이 바닷물이 밀려와 둑이 터지고 다시 갯벌로 변해 버렸다. 독살같이 보이는 돌담들은 그 둑의 일부라고 한다. 약 400년 전에 돌로 둑을 쌓아 농토를 만들었는데 유실된 것은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자연 현상에 의해 조금씩 허물어가던 둑이 사리 때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 터져버린 뒤 지금까지 방치한 것이다. 농사에 목을 매던 시절이 지나고 농사가 천대를 받다 보니 간척으로 만든 논이 그만 예전의 바다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마을에서 선착장까지는 시멘트 포장길이다. 마을 앞에 보이는 섬이 ‘부소도’이다. 여기서 서쪽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 작은 섬에도 논이 제법 있다. 매립해서 만든 논이다. 남쪽 해안 일부는 방조제를 축조해 경작지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산지가 많은 편으로 임야면적이 1.11km2, 약 63%를 차지하며 경지면적은 논 0.17km2, 밭은 0.24km2로 경지율이 29%이다.
시멘트 길은 구불구불한데 가운데 새로 공사한 흔적이 보인다. 수도관 매설작업을 한 것이다. 「천사의 다리」를 통해 들어오는 수도관이다. 여러 모로 천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박지도의 서쪽으로 접어들면 다시 내리막길이다. 점점 길어지는 천사의 다리. 길은 이내 평지로 이어진다. 이런 조그마한 섬에 야경이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니, 놀랄 만하다. 박지도의 역사 중 가장 큰 경사는 천사의 다리 축조일 것이다. 안좌도 두리항과 박지도 간을 연결하는 547m의 나무다리를 최근에 완공한 후 교통, 수도 등 여러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었고, 신안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다리 입구에 서 있는 천사모형 안내판에는 신안의 1,004개 섬의 발음과 어울리는 의미의 천사의 다리(Angel Bridge)로 명명했다고 적혀 있다.
옆에서 본 천사의 다리
천사의 다리 전경
천사의 다리는 친환경이기에 차가 다닐 수 없다. 두 사람이 나란히 산책하며 건널 수 있을 정도의 폭을 갖고 있다.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쉼터와 낚시터를 만들어 두었고, 바다와 갯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다리 양쪽으로 길게 조성해놓았다. 이 목조형 다리가 연결되면서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섬은 박지도와 반월도이다. 차는 통행하지 못하지만 오토바이와 리어카, 자전거 등이 오갈 수 있기에 밤에도 안좌본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관광객들의 산책 코스이며 마을 주민들의 운동길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안좌면사무소 이승일 씨는 “바다 위 다리를 산책하며 맑은 공기와 바닷바람을 즐길 수 있는데, 육지에 잘 알려지지 않아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본섬인 안좌도나 이에 딸린 박지도 · 반월도 모두 한가롭고 고요한 섬들이라서 느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이곳이 갯벌 체험형 관광지로 조성된 것이다. 천사의 다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외딴 섬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천사 같은 존재이다.
비록 작지만 이야기 거리가 있는 섬이 박지도이다. 휴가철이면 이런 소박하고 아름다움이 있는 박지도와 반월도에 온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목교와 선착장에서 낚시를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에게는 휴식의 공간이 필요하다. 섬과 바다를 동시에 관찰하고 자연을 즐기는 친환경적인 생태관광이 앞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그 생태관광지로 적합해 보이는 고즈넉한 섬이 박지도와 반월도이다.
출처:(한국의 섬 - 신안군, 2021. 04. 30., 이재언)
2023-06-03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