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면서 나무를 위한 여러 가지 월동작업이 시작된다. 경제적 가치가 높은 나무일수록 더 많은 보호를 하는 데 집중하지만 오히려 잘못 알려진 정보로 인해 돈만 낭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나무의 줄기에 감싸는 잠복소다.
잠복소는 잎을 가해하는 해충이 월동을 위해 지표면으로 내려갈 때 줄기 중간에 보온이 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그 안에 모이도록 한 다음 봄철에 해체해서 소각하는 방제 방법 중 하나다. 이 방법은 시기나 대상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시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먼저 잠복소가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가을철에 잎을 갉아 먹는 해충이 나무에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잎을 갉아 먹는 해충이 있고 그 해충이 월동을 위해 지표면으로 내려와야 한다. 잎을 갉아 먹는 해충이 없으면 지표면으로 내려올 해충이 없으므로 방제 대상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즉 방제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짚으로 만든 잠복소는 솔나방을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소나무에 설치를 많이 한다.
사실 잠복소는 솔나방과 미국흰불나방을 방제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10월에 나뭇잎을 갉아 먹는 해충을 볼 수 있을까? 대부분의 해충은 월동을 위한 상태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10월 중에도 잎을 갉아 먹는 해충의 종류는 극히 드물다.
과거에는 송충이라고 불리는 솔나방이 10월까지 잎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소나무에 집중적으로 설치를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솔나방은 자취를 감춰 보기 힘든 해충이 되고 있다. 여러 이유로 솔나방이 내륙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아주 희귀해졌고 그렇다면 솔나방이 없는데 굳이 잠복소를 설치할 필요성도 없는 것이다. 공동주택 내의 소나무에 집중적으로 잠복소를 설치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과거의 습관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결과인데 이제는 솔나방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설치할 필요가 없다.
잎에 미국흰불나방이 있으며 잎이 있을 때 설치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다른 해충은 요즘 문제가 되는 미국흰불나방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10월에도 유충이 발생해 잎을 갉아 먹는 특성을 보이는데 이 해충을 위해서는 잠복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시기가 중요하다. 잎을 갉아 먹는 해충은 잎이 있을 때 존재하고 잎이 떨어지면 먹이가 없기 때문에 전후로 월동에 들어간다.
그런데 많은 공동주택에서 11월 말에서 12월에 잠복소를 설치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잎이 떨어져 해충이 가지에 없는 상태에서 잠복소를 설치한다면 줄기를 타고 내려올 해충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초겨울에는 해충이 존재하지 않으니 잠복소가 기능을 하지 못한다. 잎이 없는 나무에 잠복소를 설치하는 것은 돈만 버리는 꼴이다.
결국 우리나라에 솔나방은 거의 서식하지 않으므로 소나무에는 잠복소를 설치할 필요가 없고 활엽수의 경우 미국흰불나방이 10월까지 존재하는 나무에만 잎이 떨어지기 전에 설치해야 한다. 미국흰불나방의 피해가 없는 나무, 미국흰불나방이 있더라도 잎이 없는 상태에서는 잠복소를 설치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해체한 잠복소에는 거미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잠복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다소 한정적이지만 손해는 꽤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잠복소 안에 들어가 있는 해충을 없애기 위해 해체 후 소각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최근 잠복소를 해체해 보면 해충보다는 거미 종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거미는 보기에 다소 안 좋을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로움을 주는 생명체다. 거미는 많은 해충을 포식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로운 거미를 잠복소 안에 잡아서 소각한다면 돈 들여 이로운 대상을 없애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로 잠복소의 기능이 일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잠복소 설치를 추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에서는 고민해 볼 문제다.
출처 : [김철응의 나무진료 시대]
첫댓글 잠복소는 거미집이 군요. ㄷ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