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투 유발자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탈출 20, 2-3.5.)
신학생 때의 일입니다. 신학생들 사이에서 게슈타포로 불리는 교수님의 이야기인데요. 마음은 여리셨는데, 수업 방식도 그렇고 말씀과 분위가 독일 비밀경찰을 연상케 했습니다.
특히 시험에 관한 한 매우 엄격하셨고 문제도 매우 어려운 문제만 골라내신다는 느낌을 주셨습니다. 학생들에게 신론(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한 번은 기말고사에 이런 문제를 내셨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느님'에 대해 아는 대로 쓰시오."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몇몇 (질투유발자) 신학생들 빼고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하나같이 "헉"소리를 내었습니다. 그야말로 암담했습니다.
# F학점
‘질투하다’, ‘시샘하다’라는 뜻의 히브리말에는 동사 קַנָּא(카나)와 그 파생어 קִנְאָה(키나)가 있습니다(탈출 20,5. 34,14; 신명 4,24. 5,9. 6,15.)
구약에 약 20번이나 쓰이고 있는데요.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주로 우상(אֱלִיל; εἴδωλον; idol: 헛것, 벙어리) 숭배와 관련되어 하느님 당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실 때, 쓰인 말입니다.
말씀을 듣는 청자聽者인 백성들을 위한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자기표현법입니다. 역사와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활동하시는 (야훼) 하느님의 인간적인 자기표현 방식이시지요.(탈출 20,4-5.)
그런데 여기까지만 쓰면 '질투하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50%만 알게 되는데요. F학점입니다.
히브리말은 다의적이어서. 더 중요한 점 간혹 놓치게 되는데요. ‘질투하다’, ‘시샘하다’라는 뜻의 동사 קַנָּא(카나)와 그 파생어 קִנְאָה(키나)는 ‘열정’, ‘열심’이라는 더 일반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됩니다.
# 질투하시는 하느님
즉, ‘질투하시는 하느님(אֵ֣ל קַנָּ֔א 카나 엘)’이라는 말씀 안에 숨겨진 진짜 의미는 죽기까지 자비로운 사랑을 베푸시겠다는 아버지 하느님의 의지가 담긴 표현입니다. 당신 백성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질투처럼 불타는 사랑'의 열정이 감추어진 말이지요.
하느님의 마음은 우리의 영혼이 우상, 즉 ‘헛것’을 숭배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 혹은 ‘생명의 길’과 ‘다른 길’을 걸을 때, 아파하시고 질투하십니다. 열정적인 사랑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안절부절못하십니다. 그러므로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자기표현은 당신의 자비로움에 머물지 못한 자녀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구애입니다.
# 구애求愛 하시는 예수님
마태오복음 13장 1절부터 23절까지 이어지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세 개의 중첩되는 이야기가 각각의 서로 다른 의미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비유는 비유와 비유가 서로 왕래하며 핵심 메시지를 서로 부각해주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비유가 그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를 꾸며주며 서로 다른 상황에서는 서로를 돋보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첫 번째(13,1-9.)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두 번째(13,10-17.)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유에 대한 설명(13,18-23.)이 서로 보완하고 있지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섭리를 깨닫게 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씀이지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고 싶으십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이사 14-15.)
# 똑같은 사랑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은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같지 않지요.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나’의 협력, ‘나’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우상(헛것)은 내가 만들어 창조한 것이고, ‘나’의 욕구와 욕망이 숭배합니다.
살다 보면 좋은 땅에 있을 때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을 때도 있지만, 길가에 던져진 씨앗처럼 희망을 싹 틔울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고독한 길바닥 삶을 살 때도 있고,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도 이해받지도 못하고 절망과 마주한 듯한 돌밭 같은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정말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져 가시덤불처럼 거칠고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기를. 전능하신 하느님, '구애하시는 주(יהוה, Yahweh)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믿을 수 있기를.
예수님께서는 씨앗의 비유를 통하여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과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해주시며, 그 나라의 삶이 인간이 살아가야 할 이유와 목표임을 가르쳐주십니다. 그 나라는 지금-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내어주시며 하느님이 '나'에게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은 내 안의 ‘속-사람’. 내 영혼이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뙤약볕에서 영글어가는 낱알들처럼.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기를. 자비와 자선으로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살아가는 동안 질투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축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우리의 삶은 여기가 끝이 아니기에.
오늘도 절망 가운데 하느님과 함께 희망과 사랑과 자비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씨앗의 법칙은 먼저 뿌리고 나중에 거둡니다.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하고,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뿌린 씨가 모두 열매를 맺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뿌린 것보다 더 많이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매일매일 하느님과 함께 씨 뿌리는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