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부인
본문 : 마태복음 26장 31-35절, 69-75절.
26장 30절에 유월절 식사를 마치고
찬미하고 감람 산(올리브 산)으로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1-35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고하셨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감람산으로 가는 도중에
이 대화가 있었는지,....
감람산에 도착해서 대화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참으로 힘든 시간이 닥쳐 올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장차 올 시험을
준비시키기 위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넘어질 것임을 예고.....
31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31절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난외주 2)에는 “나를 인하여 실족하리라.”로
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실족’은 마태복음에서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5장 29-30절. 11장 6절. 13장 21절, 57절.
15장 21절. 18장 6-9절. 24장 10절)
‘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으로 인하여
넘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옵니다.
“나를 버리리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버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스가랴 13장 7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31절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고
했다고 했지요.
스가랴 13장 7절에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짝이 된 목자를
하나님의 칼로 칠 것이다,
그로 인하여 양의 떼가
흩어진다고 했습니다.
흩어진 양들 가운데 삼분의 일은
연단을 받고 시험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마도 제자들의 흩어짐은 연단의 기회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스가랴 13장 7절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하고 있습니다.
스가랴의 말씀은 죄 때문에
목자도 치고 양도 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적용하심으로
목자를 침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과...
이 고난은 죗값을 완전히 치르기 위한
고난임을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구속사적인 일을 행하십니다.
제자들은 넘어지지만 결국은
이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을 것임도
예고하십니다.
32절에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십니다.
이미 앞에서도 고난을 말씀하시면서
부활도 말씀하셨습니다.
(16장 21절. 17장 23절. 20장 19절)
28장 7절과 10절에도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고 했습니다.
(먼저 가심은 목자의 이미지가 있음)
이 부활의 진리도 제자들은
훗날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심....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즉 예수님 때문에 넘어질지라도
(난외주 3. 헬, 주를 인하여 실족할지라도)
자신은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
(난외주 4. 헬, 실족하지 않겠나이다.)이라고 합니다.
33절을 봅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의 자만심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감, 자신을 의존함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이 낫다는
우월감까지도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버릴 수 있지만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에게
큰 위기가 올 것임을 생각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했는데
베드로는 자신감이 넘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자신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자신감으로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없음을 가르쳐주십니다.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하실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 말씀 앞에 자신을 부인해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데...
자신감을 의지하면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는 길을 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진실이었을 것입니다.
35절에 자신감이 넘치는 답을 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들 모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신앙은 자신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존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해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면 시험이 올 때
넘어지고 맙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58절에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69-75절은 그 이어서
베드로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다가(70절)
더 나아가 맹세하고 부인합니다.(72절)
더 나아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부인합니다.(74절)
69절에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여종이 베드로에게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갈릴리 사람이라고 한 것은
경멸의 표일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감 있게
말했던 베드로가 아닙니까?
그런데 여종의 얘기 앞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합니까?
70절을 봅시다.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데
“모든 사람 앞에서” 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10장 33절을 기억하게 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공개적으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했지요.
베드로가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을....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앞문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71절)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한 것은
역시 경멸의 표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72절에 맹세하고 부인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
마태복음 5장 34절에 맹세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씀도 어기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어겼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다.
네 말 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73절)고 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의 독특한 언어는
유대인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합니다.(74절)
‘저주’는 예수님을 저주한 것인지,....
예수님을 자신이 안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벌하실 것이라고
자신을 저주한 것인지 ....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훗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뜻으로 예수님을 저주하도록 요청 받았는데,....
이 베드로의 저주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울었습니다.
(74절) 75절에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통곡하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드로는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심히 통곡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고
예수님과 함께 기도로
준비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결국 넘어지는 길로
나아가고 말았습니다.
심히 통곡해야 하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자신감’을 의지하는 것은
베드로의 길, 넘어짐의 길입니다.
자신감으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감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감으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자신감을 의존하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할 때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는
한 구절 말씀이 위대한 베드로를
만든 것입니다.
우린 75절 속에서 베드로의
세 가지 행동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생각나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네가 오늘밤 닭 울기 전에
세번 씩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그 말씀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났을 때는
새벽녘이었고 곧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닭의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주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 것입니다.
베드로는 닭의 울음 소리를 듣고
주의 말씀이 생각났지만 ....
우리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도....
주의 말씀을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둘째는 “밖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 곧이어
법정 뜰 밖으로 나갔습니다.
베드로가 밖으로 나갔다는 것은
예수를 부인했던 현장과 공포에 질려
자신을 가누지 못했던 패배의 현장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죄 짓고 살던
그곳으로부터 떠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밖으로 나가지 맙시다.
그리고 어서 빨리 죄악의
현장 밖으로 나갑시다.
더 이상 머물렀다가는 멸망하게 될
악의 소굴로부터 탈출합시다.
세째는 “심히 통곡”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하게 귀를 기울이고
베드로의 심금을 울렸던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머물러선
안 될 곳을 떠나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통곡해야 합니다
대장부 베드로의 통곡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베드로처럼 통곡하고...
새 사람이 되시기를 .....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