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9.수요저녁예배 설교
*본문; 삼상 24:1~7
*제목; 사무엘상서강해(24)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다!
1. 설교를 듣는 방법(들을 귀를 얻는 방법)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요리한 말씀의 선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리의 특성상 분명히 맛있게 먹는 사람들도 있고,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입맛과는 상관없이 우리 주 성령께서 그 말씀의 은혜로 먼저 설교자를 적셔주시고, 그 적셔진 은혜가 성도들에게 선포되는 것이 설교이기에, 세상 음식과는 다르게 틀림없이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받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설교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듣는 것입니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고, 눈을 영혼의 창입니다. 그래서 설교는 그 영혼을 적시고, 그리고 그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혜이기에 “눈”을 통해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눈을 바라보며 설교를 들어야 설교의 은혜를 누리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마음에 담겨진 은혜를 ‘내 은혜’로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입에 습관적으로 붙은 아멘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이서 동의하는 그래서 그 은혜가 내 것이 되기를 바라는 고백으로 “아멘”할 때, 눈을 통해서 내 마음에 담겨진 은혜가 오롯이 “내 은혜”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눈으로 듣고 아멘으로 은혜를 저장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2.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다!
요한복음처럼 석 달 만에 다시 ‘사무엘상서 강해’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서 사울을 목숨을 살려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자세히 알아봅시다. ‘1~3절’입니다.
“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삼상 24:1~3)
오늘 본문에서의 사울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적이요 가시였던 ‘블레셋’과 전쟁을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 가운데에서도 다윗을 향한 미움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삼천 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갑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블레셋과의 국가적 전쟁 가운데 있는데, 사적 감정에 휩싸여서 다윗을 좇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쓰여도 단단히 쓰인 것입니다. 그 뭔가가 무엇이겠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우리 믿음의 인생은 모두가 영적전쟁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꾸 누가 생각해도 이상한 마음과 감정을 들고, 일에서도 자꾸 이상한 일을 행하고 그래서 이상한 결과가 자꾸 초대된다면 그때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울이 엔디게 광야의 한 굴에 용변을 보려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굴에는 누가 있는 것입니까? 바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다윗의 수하들이 말하기를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인 것입니다. 이 순간 다윗이 혼자 있는 사울을 죽인다면, 그 동안의 도망자의 삶도, 비참한 유랑자의 삶도 다 정리되어지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서의 멋있는 삶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울처럼 하는 일마다 어려워지고 마음이 더욱 더 어지러워지는 사람이 있고, 하는 일마다 이상하게(?) 잘되어져가는 다윗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이 둘 사이는 차이점은 무엇이겠습니까?
사울은 문제(정치적 적이라고 생각한 다윗 죽이기)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께 집중합니다.다음 구절을 보면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4~7절’입니다.
“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삼상 24:4~7)
이 절호의 기회와 절박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이를 기회로 여기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직 사울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의 판단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삶의 결이 은혜로 난 자의 비결인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문제나 현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 이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만 가만히 베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목적이 하나님의 뜻과 같아야 하지만, 다윗처럼 그 방법도 하나님의 방법과 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사고 방식, 즉, 무슨 일이든지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자녀의 생각이 아닙니다. 일이 되지어지 않아도, 심지어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부합한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이 바로 믿음의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영안이 어두워져 버린 것입니다. ‘8~11절’입니다.
“8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삼상 24:8~11)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각조차도 복음화 시켜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적 상태를 이끌어가고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귀는 사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합니다.
우리의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합니다.
우리의 입은 하고 싶은 말만 하려는 것입니다.(ex, 광화문 호랑이탈 실험)
그러나 귀와 눈과 입이 복음화된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할 것들(하나님의 뜻과 의도)을 들으려 합니다.
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아야 할 것들(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려 합니다.
이들은 하고 싶은 말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말(믿음의 말, 사랑의 말)을 하려 합니다.
이런 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이제 사울이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16~17절’입니다.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삼상 24:16~17)
믿음을 지키면, 문제나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면,
그리고 들어야 할 말을 듣고,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말해야 할 것을 말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이렇게 대신 완성하셔서, 대적이 먼저 고백하고 우리를 의롭다 선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3. 정리
설교는 눈으로 듣고, 아멘으로 내 은혜로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문제나 상황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목적도 선해야 하지만, 그 이루는 방법도 선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할 것을,
보고싶은 것이 아니라, 보아야 할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할 것을 말하면,
우리 일을 하나님이 대신 완성해주시는 자녀가 됩니다. 이렇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늘 다윗처럼 주의 은혜가 펼쳐지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를 위해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항상 주를 바라보는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