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일본에서는 "절(寺)이라고 하면 묘지(墓)나 공원묘(靈園)를, 승려라고 하면 장례식 종사자"를 연상하게 되는데, "사실 토다이지(東大寺)나 엔랴쿠지(延曆寺) 같은 관사(官寺) 계보를 잇는 큰 절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공동묘지(靈園) 같은 걸 두지 않았"다고 한다. (松尾剛次, 『「お坊さん」の日本史』 , NHK出版社, 2002. p.27)
마츠오 선생의 표현대로 "장례식을 일삼아 하는 스님은 일본밖에 없다(葬式に從事するのは日本の僧侶だけ)"는 말을 일본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영화를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초상이 나면 가장 먼저, 그 집안이 다니는 절(보리사/菩提寺) 스님을 불러 독경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납골까지 전과정을 스님과 절에 의탁해서 치른다.
장례식이 끝나고도 다달이 돌아가신 날에 기도를 올리는 명일(命日,めいにち)을 챙기는 집도 있고, 1년에 한 번 우리의 기제사(忌祭祀)처럼 스님을 불러 집에서, 혹은 절에 가서 법요를 올리고 우란분절을 챙기고...
이름난 절이건 동네 작은 절이건 거의 대부분 공동묘지(靈園)를 두고 있어서 처음 일본에 가보고 너무 놀랐다.
책이나 스크린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죽음이나 죽음 이후를 절에 의탁하고 있으며, 묘지가 생활권과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특이하게 봤다.
* 부처님 성지순례 후기를 시작하다가 난데없이 웬 일본의 장례불교를 들고 나오는가, 의아해 하시는 독자분(동행이인의 고정독자분은 두 분, 혹은 세 분에 지나지 않지만...)들께 양해를 구하는 마음으로 변명의 말씀드리자면
1. 코로나 시대를 4년간 살면서 코로나로 돌아가시거나... 코로나백신 맞고 돌아가시거나... 원래의 지병을, 코로나로 인한 병원사정 때문에 제대로 치료 받지 못 해 돌아가시거나... 너무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어느 때보다 남의 일 같지 않게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절감하기에 죽음, 장례 등에 대해 각별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에.
2. 언제 다시 여권 들고 해외 나갈 수 있을지... 그런 일은 이제 영영 가망 없어진 것은 아닌지... 정말 절망적 심정으로 암울한 코로나 시대를 살다가 출국하게 되었다는 설렘, 그것도 코로나 이후 첫 출국이 부처님 성지순례를 위해서라는 감격 속에서도 순례길 내내 사로잡혀 있던 문제 --- 죽음, 인도의 장례 문화, <<깊은 강>> ---는, 특히 부처님의 마지막 열반의 행로(왕사성, 바이샬리, 케사리아 대탑, 쿠시나가르 열반당)를 다니면서 어떻게든 "일본불교 장례불교" 의 오명에 대해 재고하게 되는 시간이었기에.
3. 집에 와서 마츠오 선생의 <<인물로 보는 일본불교사>>(마츠오 겐지 저/ 김호성 옮김, 동국대학교출판부, 2005)를 다시 읽으며 "장례불교"(심지어, 죽음을 이용해 상업적 행위를 하는 '상업불교'라는 손가락질까지 받기도 하는)의 오명을 쓰고 있는 일본불교를 위한 변명 한 줄이라도 쓰지 않을 수 없겠다는 사명감까지 발동시키게 되었기에......... 늦었지만 이제와 새삼스럽지만(今更/いまさら)... 허접하지만 이렇게 부처님성지순례 후기라는 제하의 글을 긁적이게 된 것이다.
각설하고
겉으로 보는 일본불교의 특징이라면
1. 결혼한다.
2. 장례불교다.
이 두 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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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결혼 :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거대 종단인 조계종이나 천태종 등은 독신을 자격 요건으로 하지만, 종단/종파에 따라 스님들의 결혼을 문제삼지 않는 곳도 있다.
* 장례불교의 문제 : 물론 우리나라 불교에서도 시다림(尸陀林)이라고 해서 임종을 앞두고 있는 불자나 초상이 났을 때 스님을 초청하여 염불, 독경, 설법하는 의식을 치르며, 49재나 천도재 등 사후의 법요를 올리고 있다. 다만 일본처럼 전적으로, 마츠오 선생 표현으로 "장례에 종사"한다고 할 정도까지 전적으로, 깊이, 장례의례를 도맡아하고, 절 뒷마당이 온통 공동묘지, 무덤군을 이룰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에서 한국불교를 "장례불교"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일본인은 태어나 신사에 가서 축원하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고, 죽어서는 절에 간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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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그렇다는 말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6년 전쯤 정토진종 혼간지파 총본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인터넷으로 각 사찰 홈페이지만 가봐도 결혼식 접수 안내문도 있다.
* 전통적으로 신사는, 사람의 피나 죽음 등 부정타는 일(穢れ/死穢/死 穢れ )을 절대 금기시했다.
그래서 장례를 치른 상주뿐 아니라, 장례 참석했던 사람, 월경 중인 여인도 신의 영역인 신사에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신도(神道)의 신들은 부정(不淨)한, 부정탄 것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순한 조문객이었는가, 상주였는가...장례식에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가에 따라 출입 금지 기간이 정해지고, 시한이 지나 금지령이 풀려 다시 신사에 갈 때도 소금을 뿌려 정화의식을 치른 후(穢れを祓い、清めてから) 출입할 수 있었다.
때운에 바깥에서 묻은 더러운 것을 깨끗이 정화하고 들어가야 한다.
신사 들어서는 입구에 손씻고 입을 헹구는 곳(御水洗/おてあらい, 手洗鉢/ちょうずばら)을 둔다.(일본 사찰에도 마찬가지 필수 비치시설인데...요즘 은 간혹 우리나라 절에서도 볼 수 있어 그게 소위 말하는 "왜색문화" 인지, 아니면 인도의 불교 전통에서도 있었던 문화인지 ...갸웃거리게 된다.)
신도(神道)는, 죽음이나 피, 역병 등 안 좋은 것, 부정 타는 것은 그렇게 질색하지만 좋은 일(慶事)은 오케이, 대환영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안고 외출 가능해지면 강보에 싸인 아기를 데리고 신사에 가서 장수와 축원을 빈다. 경사스런 일, 신사의 결혼식이나 사진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장면,신사 앞마당 웨딩사진도 ...
세상이 변하니 신도의 신들도 변하는지, 요즘에 와서는 간혹 장례를 집전하기도 한다고 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은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