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를 대신해 항변합니다.
외할머니의 늦둥이인 막냇삼촌, 그의 막내딸인 사촌동생은 저와 19살 차이가 납니다. 제가 대학생 때 어린이집 다녔던 꼬물이를 하원길에 데려오기도 했고, 엄마가 없다고 엎어져 마냥 우는 아이를 어쩔 줄 몰라 바라만 봤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랬던 동생이 벌써 대학을 졸업해 종종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을 알려주고, 서브웨이 샌드위치 최강 가성비 조합과 최고의 소스 조합을 알려주는 ‘젊은 동생’입니다.
최근 이 동생이 인턴십을 하다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인턴십 지원을 위해 각종 서류에, 영어 점수에 면접까지 봤다고 들었는데… R&D 예산 삭감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지역 연구소 지원 업무를 하던 일개 인턴 자리까지 영향을 끼치게 됐다더군요. 그 친구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입니다. 돌아갈 집에, 여전히 경제활동이 가능한 부모님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요. 다시 미래를 위한 준비-각종 능력, 자격 시험-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랍니다. 잠시만, 동생의 스펙을 살짝 이야기해볼까요. 사회심리 전공에, 통계를 복수 전공했습니다. IELTs Academic을 무려 Ave. 8.5점이나 득했습니다. 기본 컴퓨터 자격증도 따놨습니다. 캐나다 대학으로 교환과정 1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타고난 성정도 있지만 제 보기엔 잘 놀지도 않고 열심히 읽으며 공부하더라고요. 그런 친구가 취업을 위해 또 무언가 준비를 해야한답니다. 아마도 ‘좋은 일자리’를 위해서겠죠.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 ‘쉬었음’ 청년 올해만 2.3만명↑…정부 노동시장 유입 촉진에 1조 투입 - 경향신문 (khan.co.kr)
전국 고립·은둔 청년 51만6000명 추정…무엇이 그들을 방에 가뒀나 - 머니투데이 (mt.co.kr)
공교롭게 책을 읽으며 접했던 기사입니다. 책에서 언급한 일본형 니트족(85만명, 시기불명)과 (P128) 우리나라 통계청에서 2023년 내놓은 쉬는 청년, 은둔 청년이 얼마나 중첩되는 개념인지는 자세히 짚어봐야 할 테지만, 요는 한국에서도 학업이나 취업을 포기한 채 쉬는, 노는, 은둔하는 청년 인구가 한국에서도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정부는 쉬는 인구 증가 배경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확대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지속하고 있는 점을 꼽으며 대규모 공채보다 수시·경력직 선발이 확대되는 등 달라진 고용 환경도 그 이유라고 판단한답니다. 또한 통계청의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32.5%) 쉬고 있다는 답변도 많았다고 합니다.
책에서 진단하듯 “소비주체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노동을 경시하고 시간이 드는 배움에 대해 의문을 갖기에 교육, 노동으로부터 회피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걸까요?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건 아닐까요? “노동자가 자신이 창출한 노동가치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의 기본 원리다.” (P142) 라는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에 의문을 품지 않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부모 세대가 어떻게 회사에서 퇴출되는지, 시장에서 내쫓기는지를 봐왔던 자녀 세대로서는 시간을 더 들여 그나마 나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 낫다 또는 일에 종속되지 않겠다라는 나름의 ‘합리적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요? 그마저도 추가 스펙을 위한 시간을 들일 여유와 여력이 없는 청년들은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다 그만두게 되고 재취업을, 교육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아닐까요?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기업간 임금격차, 정규/비정규 일자리 격차, 비정규직의 무한 확대 등과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애꿎은 청년들에게 돌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저자가 제기한 문제에 “그게 왜 문제죠? 라고 자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건 지적한 신자유주의적 질서 안이지만 이미 자리잡고, 싫든 좋든 사회경제적 우위를 점한 저자를 위시한 이들의 조언을 빙자한 잔소리에 질려서일까요. 차라리 [노동의 배신]의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말이 덜 고깝게 들립니다. –나쁜 일자리가 얼마나 많은지, 나쁜지, 생계조차 이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며 소득불평등을 성토하고,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
계급장 다 떼고 붙어보자! XXXX 동네 모리배나 할법한 소리를 내뱉는 청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고 경쟁이나 하라니! 더 열심히 배우고 더 많이 일하라니! 가방을 집어 던지고 기존의 체제에 저항하는 청소년/청년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비겁하게 이런 세상을 묵묵히 살아와, 이 나이 먹어놓고 청소년/청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냐고 비난을 해도 할말은 없겠습니다만 비난은 비난대로 들으며 응원의 말과 행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부디 지지 말고 마구 저항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미약하게나마 응원하겠습니다. 소심한 중년(!)이 약속합니다.
첫댓글 멋짐 폭발!!
은경쌤 글은 볼 때마다 쏙 들어가 읽게 됩니다.
제목 보고👍 구체적인 사촌동생의 이야기, mz세대를 향한 진심어린 응원이 담긴 마지막 단락👍👍
지난 모임 때 책 얘기하면서 저자의 견해에 비판적인 생각들 나눠주신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은경쌤 글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는 저자의 통찰이 새롭고,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놀랍기도 했는데..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쌤들의 시선과 생각 훌륭합니다.
제목이 눈길을 확 끄네요. 저도 경제원리를 자꾸 갖다 붙이는 거에 동의가 안 되더라구요. 기성세대의 잘못을 자꾸 애들한테 전가한다는 느낌. 그래도 이렇게 든든하게 뒤에서 지원사격해 주는 어른이 있어 동지감이 듭니다. 저도 살짝 숟가락 얻어 지지 하겠습니다.
한달음에 끝까지 읽었습니다. 역시 은경쌤! 문제의식 분명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글의 힘이 대단합니다. 하류지향을 읽으며 못내 찜찜했던 구석이 뭘까... 싶었는데 은경쌤이 잘 짚어주셨네요. 최근 신문기사와 노동의 배신 책(저는 안 읽었습니다만 언젠가를 위한 위시리스트로 찜)으로 논리를 보강하는 것도 글의 힘을 더해주네요. 마지막 문장 소심한 중년이 약속합니다. 마무리도 좋았습니다.
다만 글이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쉽습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내용이 전부가 동의가 안 되는 건 아닐진대 동의나 찬사 없이 전면 비판으로 느껴져서요. 동의하는 부분이 없다면 할 수 없겠으나 좋았던 부분이 있었다면 짧게 한 두줄이라도 넣어주시면 뭔가 조금 더 균형잡힌 서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이대로도 무척 훌륭하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