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일- 고린도전서 4:9-13
시편 50:7-15/ 찬송 494장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바울은 이미 “왕 노릇”(고전 4:8)을 자처한 고린도교인들과 비교하여 사도인 자신의 모습을 거리낌없이 드러냅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자기 모습을 통해 현재 고린도교인들의 태도가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 알리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이미 왕이 되었다면, 사도는 여전히 십자가를 진 길 위의 존재입니다.
바울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왜 “끄트머리”(9)에 두셨는지, “구경거리”(9)로 삼으셨는지 깊이 성찰합니다.
마치 죽임이 작정 된 자와 같이 투기장에 내몰린 검투사로 비유합니다. 복음 전도자의 삶은 그만큼 처절한 죽음의 현장과 가깝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들의 입장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처지와 정반대입니다.
바울은 뚜렷한 대조를 통해 비교함으로써, 둘 사이의 입장 차이를 드러냅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10).
-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10).
-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10).
바울이 고린도교인들과 사도 사이를 비교한 것은 극단적 대조를 통해 고린도교회의 자만을 깨닫게 하려는 반어법입니다.
사도들이 처한 고난의 현실은 고린도교인들이 착각하는 영광과 거리가 멉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11).
사도는 생존을 위해 친히 손으로 일하며,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인내합니다. 사도들의 대응 방식은 보복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12).
- “박해를 받은즉 참고”(12).
-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13).
결론적으로 바울은 십자가를 따르는 사도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13).
바울의 실토는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십자가를 따르는 삶은 당장 실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도의 고백은 정반대입니다. “만물의 찌끼”와 같은 현실은 진실한 사도의 자리이며, 영광된 복음이 설 땅입니다.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분리되지 않음을 믿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
따라서 복음 전도자로서 바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르려는 것입니다.
☀ 바울 앤솔로지
114)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고전 4:10).
바울이 고백한 사도의 모습은 ‘어리석고, 연약하고, 비천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고린도교인들이 자부하는 모습과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하다’고 자처합니다.
바울의 말은 자기 비하적인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단어는 “그리스도 때문에”입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겪는 고난의 삶은 지극히 자발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간적인 ‘어리석음, 약함, 비천함’을 감수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어리석음과 약함과 비천함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바울은 사도들이 겪는 고난 받는 자리야말로 십자가를 따르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진실한 모습이라고 여깁니다.
사도들이 지금 당하는 수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거룩한 희생입니다.
바울에 따르면 사도는 존귀함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기 몸으로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샬롬샬롬
첫댓글 주님 어리석은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삶, 우리의 시선, 우리의 손과 발이 낮은 곳을 향하고 겸손과 순종으로 옷 입는 그런 삶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삶의 고난도 묵묵히
바라보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