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 경재 신부님의 15주기를 지내고 있다. 이 신부님의 행적을 잠깐 돌아보면서 오늘 복음을 묵상하도록 하자. 신부님은 우여곡절 끝에 1970년 12월 19일 제7대 원장 신부로 취임미사를 봉헌하셨다. 그 미사에는 윤공희 대주교님, 노기남 대주교님, 김정진 바오로 신부님이 함께 하셨다. 이 자리에서 윤공희 주교님은 “오늘부터 이 알렉산델 신부가 이곳 원장이다.”라고 선언하셨다. 이 말씀은 라자로 마을을 평화의 마을로 만들어 달라는 교구장의 주문이었다.
당시 신자 대표로 김종태 아우구스티노가 환영사를 하였다. 발췌해서 보겠다.
“신부님! 죄 많은 저희를 끝내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오신 신부님! 아흔 아홉 마리의 양떼보다 병들고 초라한 한 마리의 양이 그렇게 소중해서 무관심 속에 버려진 이 불모의 땅으로 되돌아오신 신부님! 화려한 성당과 생기발랄한 수많은 교우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지니신 신부님께서 하필이면 모든 사람이 백안시하는 저희와 더불어 십자가를 같이 나누려 하시옵니까? 그 누구의 죄도 아니면서 인류에게 버림받고 세계 속에 고립된 이곳에서 체념으로 살다가 죽어가야 할 목숨들을 위하여, 헐벗고 초라한 영혼들을 위하여 모든 것 다 뿌리치고 오신 신부님의 그 고결하신 사랑을 저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당신께서는 진정 불행한 자의 벗이요 인자하신 어버이십니다.
수륙만리 멀다 않으시고 외롭고 험한 길을 다시 찾아오신 신부님! 신부님께서 침체 상태에 있는 성 라자로원의 운영을 어떻게 개선하시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기대에 앞서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신부님의 그 높으신 뜻을 받들고 감사의 정을 표시해야 할지 사뭇 조심스런 마음가짐으로 오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절망이 없는 성 라자로원을 위해서, 서로 돕고 기구하는 알뜰하고 보람찬 생활을 위해서 죄인들 곁에서 영원히 보살펴 주시고 사랑해 주시기를 기원하면서 이 두서없는 환영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여기서 라자로 마을에 있던 분들이 얼마나 영적지도자를 원하였는지 알 수 있다.
신부님은 부임하셔서 나자로 요양원을 성 라자로 냐병센터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발전 및 구라사업의 장.단기 계획을 세우셨다.
단기적으로는 우선 가족들의 식생활을 안정시키고, 낡고 초라한 병사들을 모두 철거하고 현대시살을 갖춘 건물들을 신축하여 가족들이 안락하게 불편 없이 생활하게 하는 것이었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부님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한센병과 그 밖의 질병을 정상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시설과 의료요원을 확보해야 했다.
장기적으로는 권위 있는 한센병 전문 병원이나, 한센병 연구소와 같은 기관을 설립하고, 국내 다른 지방의 정착촌이나 재가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이동진료사업도 하려고 생각하셨다. 이동진료 사업은 그동안 메리놀 신부님께서 지도하시면서 활동을 하였고 2010년부터는 성 라자로 마을의 소속으로 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동진료 팀은 경기도의 여러 정착촌을 다니며 진료사업을 펼치고 있다.
신부님은 가족들을 위해 집을 짓는 것 같은 가시적인 사업을 어느 정도 이룬 다음, 외부 세계와 차단된 특수한 ‘봉쇄 환경’을 활용하여 가족들에게는 신앙의 깊은 신심을 심어주기로 결심하셨다. 라자로 마을에 지원하신 근본 목적이 사목자로서 한센인들의 신익(神益)을 위한 사업을 하시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자로 마을이 한센인들의 사회복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될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는 피정장소로 개방하기를 바라셨다. 그리하여 라자로 마을이 정신적, 경제적, 의학적으로 한센인들을 위한 사업으로는 선진국의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신부님의 꿈이셨다.
이러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시는 신부님은 국가의 지원과 사회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그 지원과 협조는 적선이 아닌 의무라고 생각하시고 일을 시작하셨다. 한센인들이 인간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고통을 당한 것은 바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 자금은 국가의 도움이나, 소수의 독지가의 희사로써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믿으셨다. 이 사업은 한센인들을 위한 것뿐이 아니라, 한센병의 전염을 예방하고, 이 병을 완전히 퇴치함으로 건강한 사람들 자신이 나병의 공포에서 해방되게 하는 더 큰 목적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 신부님은 떳떳하게 국내외로 다니시면서 ‘국제 거지’라는 별명을 들으시면서 까지 기금을 모으셨으며, 당신이 구상하신 계획을 이루어 가셨다. 또 신부님은 라자로 마을에 부임하시면서부터 수원교구에는 절대로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고 자립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교구의 간섭도 원치 않으셨고 그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고 있다.
그리고 1970년 12월 19일 신부님의 귁국 환영회를 하면서, 1958년 이래 신부님이 지도해 오신 가톨릭 지성인 단체인 새남클럽 회원을 중심으로 70여명의 발기인들이 신부님의 한센인들을 위한 사업에 대한 설명과, 비장한 각오로 도움을 청하시는 간절한 호소를 듣고 발기하게 되어, 현 ‘라자로돕기회’가 발족되었고, 1971년 4월 3일 두 번째 회합을 갖고 정식으로 라자로돕기회를 발족시켰다. 이 라자로돕기회는 단순히 라자로 마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환자들이 80,000여명의 한센인들과 국외의 한센인들까지도 품는 조직으로 변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성 나자로 요양원’에서 ‘성 나자로 나병센터’로, 그리고 더 정감 있는 ‘성 나자로 마을’로 이름을 바꾸셨다. 그리고 이 이름은 1972년 4월부터 문교부의 외래어 표기법에 의거하여 ‘라자로’로 고쳐 쓰고, 영문 표기는 ‘St. Lazarus Village'라고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부님은 이 사업의 지표를 정하시고, 이 사랑의 사업에 윤리성을 부여한 “머지않아 우리들의 사랑의 씨앗은 싹트리라. Sooner or later the seeds of 역 love will grow.”란 말을 라자로돕기회와 성 라자로 마을의 슬로건으로 정하셨다. 이때 초대 라자로돕기회 회장은 신부님의 스승이셨으며, 당시 성균관대 대학원장이시고 새남클럽 회장이셨던 류 홍렬 박사님이셨다.
어떤 분은 신부님과 인연을 맺고 40여년을 성 라자로 마을을 위해 일해 오셨는데 처음 만났던 신부님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이경재 신부님은 가끔 전화를 해서 한 시간씩 좋은 말씀을 들려 주시고곤 하였는데, 금세 사람을 감동시키는 열성적인 분이셨다. 상대가 저절로 고마움을 느껴 꼼짝 못하게 만드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이종덕, 내 삶은 무대 뒤에서 이루어졌다, 서울 2004, 308쪽) 신부님은 당신의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많은 분들이 이 라자로 마을 사업에 동참하도록 이끄셨고 참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이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23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신다. 신부님께서는 가도와 활동을 겸비하시면서 한센인들을 위한 사업을 해 나가신 분이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와 청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고 아버지께서는 그 청을 반드시 들어주실 것임을 믿고 살아가신 분이시다. 그리고 신부님의 노력은 지금과 같은 마을을 이루도록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심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셨다. 우리도 그분을 닮고 아버지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듯이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통하여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도 역시 영광을 주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당신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신 분이시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영광 안에 계시는 신부님은 아마 우리에게 지금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삶을 살도록 하라고 하실 것이다.
사랑의 삶으로 우리 모두가 신부님이 그리스도를 닮아 영광을 받으셨듯이 우리 모두가 아들 그리스도를 닮고 우리 모두가 한 몸 그리스도가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가 그 생명에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신부님을 올바로 기리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성령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그분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주님 안에 살아있는 하느님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 이 미사에서 신부님을 기리며 우리도 모두 신부님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신부님께서 펼쳐 놓으신 사업에 변함없는 사랑으로 임하도록 결심하고 이 결심을 신부님께 약속드리며 주님께 봉헌하는 미사를 봉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