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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해놓으면 다음번 여행을 할 때 용이하다. 물론 추억을 곱씹는 역할도 할것이다. 다른여행객들의 길잡이도 될것이고...
●태항산 보물섬 투어(7.22~7.25일 3박 4일+인천1박)
●가이드: 이정혁: 188-5324-0000 39세 연변출신 7세 임주학교에 아들을 둔 유부남
연변특유의 억양에 키는 보통이며 통통한 체구에 호감도가 높다.
●환율: 한국돈 1만원=중국돈 55위안. 중국돈 1위안이 한국돈 200원정도 지불하면 충분함.
●여행시 주의사안: 미리 화장실을 사용해야 장기간 이동시 고충이 안생김.충전기 일자형 아답타가 필요함. 동그란 220v플러그만 갖고가면 낭패 봄. 차 넘버를 메모해 두거나 사진을 찍어두고 투어 안내용지도 마찬가지. 특히 가이드와 현지담당자 연락처는 반드시 숙지 할 것. 호텔이름도 야간 출행시는 메모해 두거나 사진을 찍어놓으면 길을 잃어도 택시를 타고 찾아갈 수 있음. 귀중품관리 철저. 특히 자리를 뜰 때는 반드시 돌아보는 습관을 할 것. 어떤이는 화장실에 핸폰을 놔두고 깜빡해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음. 특히 여권은 분실시 곤란을 겪음.
우리는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했다. 4시에 출발하는 상주대학교 출발 인천공항 리무진을 타야 했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한 짐을 챙기고 상주대학까지 이동하니 이미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고 많은 관광객들이 타고 있었다. 인천공항까지 1인 2만6천5원, 시간은 3시간이다.
kt로밍 하루 만원짜리 3일. 인터넷 무제한. 통화비는 거는데 2200원 받는데 700원이란다. 유심을 이용하면 한통화에 100원이라는데..
9시에 보물섬여행사와 미팅을 가졌다. 이번 투어 참여자는 총 19분이었는데 대부분 가족분들이었다. 두팀으로 나눈 단체 비자를 이용했다.
비자와 일정표를 받고 여권과 함께 티켓팅-보안검색후 탑승 대기 공간으로 공항 면세점에서 지인에게 줄 담배를 샀다.
드디여 11시 50분에 아시아나 비행기 출구를 이용해 탑승. 국내항공사인 경우 이용하기가 좋다. 국외항공사인 경우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12시 20분 출발-제남(지남)오후1시 도착(실은 1시간이 반대로 이동하므로 한국시간은 오후 2시) 중간에 따근한 식사가 나왔다.
드디어 공산국가인 중국에 도착하니 중국 공안과 군인들이 긴장감을 준다. 입국심사는 꼼꼼히 본인과 확인대조하고 시간이 걸렸다.
밖에 나가니 중국 4대화로(중경,무한, 남경, 제남)라는 제남에 걸맞게 온도가 염천이었다. 주로 청도를 통해서 한국인들이 입국을 했는데 관광객이 많아지자 제남에도 인천코스가 생겼다고 했다. 연변 가이드 이정혁씨가 환영과 일정안내와 주의사항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제남은 1천만명이 사는 제갈공명의 고향인 산동성(인구 1억가까움)의 수도이며 물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 19명은 보물섬투어차를 이용해 휘현으로 이동했는데 무려 6시간이나 소요가 되었다.
충전기 일자형 아답타가 필요함. 동그란 220v플러그만 갖고가면 낭패 봄.
하남성은 중국고대도시로서 고대의 싸움터였던 중원이었다. 산이 없어서 농사를 주업으로 하였기에 중원을 얻으면 중국의 곡창지대를 얻기에 조조가 이를 바탕으로 군사를 양성해서 천하를 설계한 곳이기도 했다. 또한 장개석 군대가 수년의 가뭄으로 민심이 피폐하고 굶주린 수천만의 인민의 이동으로 중국이 어지러워질까 두려워 하남 주변을 포위해 이동을 금지시키자 수많은 인민들이 모택동 공산당으로 편입해 당시 2만의 군사에 불과한 병력을 수십만병력으로 성장시켜 중국의 패권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곳도 하남이라고 했다.
중국에는 24성이 있는데 현재 산업화에는 가장 더딘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남성은 일제 부역의 역사로 인해 중앙정부의 관료가 되는데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현재 인구만 1억이라고 하니 하남성 한 성이 한반도 면적보다도 크고 인구도 더 많다. 우리는 휘현 화룡여도호텔(준 4성급)0373-651-9999에 묵었다. 호텔은 크나 중국특유의 향이 배겨있었고 중국인들 역시 더운지 호텔에서도 웃옷을 벗고 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호텔 내부는 한국과 다를 바 없으나 거울이 없고 냉장고 없는게 특색이었는데 이것은 우리가 묵은 3박 동안 호텔이 모두 그러했다.
호텔식은 기름지고 고기는 겨우 달걀이 전부다. 대부분 야채를 기름에 볶거나 한국인을 위한 장아찌종류
원래 일정은 천계산 관광이었는데 운태산 관광을 하게 되었다.
천계산과 만선산은 물난리로 갈 수 없게 되었는데 가이드는 변경을 하는 코스로 운태산과 다음날 통천협관광을 주문했고 240불을 요구했다. 대신 양고기 무한리필과 샤브샤브 뷔페를 해주겠다고 했다. 사실 가이드 경비 40불, 마사지 경비 30불을 빼면 170불을 요구한 것이다.
운태산엔 ‘홍석협’이라는 협곡을 보았는데 수많은 회전협곡을 낭떠러지 길을 만들었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별로 반갑지 않은 여행이었다. 마늘님이 손을 잡으라 해서 난 별로 경치도 보지 못하고 발끝만 쳐다보며 걸었다. 낮은 곳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몇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계절적으로 오면 장관이라고 했다.
비가 온뒤라 수량이 많아서 보기가 좋았다.
미끄러지면 천길 낭떠러지다.
홍석협을 나온 후 우리는 차를 타고 운태산 정상부근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14개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하염없이 산등성이를 돌며 올라갔는데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협곡과 멀리 보이는 첩첩산중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가이드는 서유기 손오공의 무대라고 했는데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나타날 것도 같았다. 긴 터널은 순전히 사람들의 수공으로 돌을 깨서 뚫은 흔적들이 보였는데 그런 공력도 그렇지만 아찔한 곡예의 길을 운전하는 운전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상부근에 이르러 운태산 안내표시를 보니 정상까지 해발 2000m라고 했다. 한라산보다 높은 코스였다. 마눌님과 잠시 계단을 올라 정상가까운 계단중간에서 하늘의 기운을 받는 흉내를 냈다.
내려온 시간이 오후 1시30분 우리는 운태산 주변에서 점심을 들었는데 식사는 먹음직 했지만 내내 쌀밥이 거칠어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식당이라서 그런지 한국소주 ‘참이슬’이 있었다. 난 가격을 묻지도 않고 두 테이블에 한 병씩 서비스를 해서 맛있게 원샷을 나누어 마셨는데 나중에 값을 치르는데 1병당 1만원이었다. 가이드에게 왜 이리 비싸는가 여쭸더니 중국에서는 무조건 한국 소주는 1만원이라고 한다.
다시 임주로 이동해서 점심은 양고기 무한리필인데 꼬치구이라서 감질이 났다. 기대보다 실망이 컸다.
식사후 이층에 마사지하러 올라갔다. 두 부부는 발가락이 간지러워 마사지를 못한다고 하고 젊은 여인은 전신마사지를 안하고 발마사지만 한다고 했다. 우리가 들어서자 남녀 마사지 도우미들이 도열했는데 기본 한국인사말들을 잘 했다. 남자들은 여 마사지걸들이 여자손님들은 남 마사지맨들이 그룹별로 들어가서 마사지를 했는데 50분 가량을 했다. 팁을 한국돈 2000원이나 중국10위안을 주라고 했다. 난 한국도 3000원을 마사지 걸에게 주었는데 초보자들의 솜씨라서 그런지 눈요기는 됐을지언정 피로가 확 풀릴 정도로 잘 하지는 못했다.
둘쨋날 우리는 임주 희복원호텔(준 4성급)0372-616-111에 투숙했다.
공산국인데 호텔방 그림은 서양화이다. 옛날이면 모택동 사진이 걸렸음직. 돈은 모두가 모택동얼굴이다. 지금의 중국을 만든것은 등소평일진데. 훗날 등소평과 시진핑 얼굴이 새길 날이 올지도..
중국공산당은 등소평이 개방을 하고 시진핑이 완성을 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임주는 최초의 여성우주인의 고향이기도 하고 우공이산의 전설이 있는 도시며 시진핑이 다녔던 북경 청하대학에 가장 많은 학생들이 배출되는 교육도시라고 한다. 그리고 1960년,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 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하남성 북부 지역 주민들이 물을 끌어 들이기 위해 10년 동안 험준한 태항산을 뚫어 수로를 만들었다는 당시 주은래(周恩來)가 "현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업적중 하나"라고 치켜세운 ‘홍기거’수로가 있는 곳이다. '홍기(紅旗)를 꽂고 만든 거(渠:도랑)'라는 뜻의 홍기거(紅旗渠)는 1250개의 산을 지나 211개 지하통로, 152개의 고개를 넘어 약 1,500㎞의 어마어마한 인공수로를 완성했다고 하니 가히 중국 국민들의 대공정 노고를 짐작케 한다. 이 뜻을 세우기 위해 공산 수뇌부들은 관료가 되면 반드시 방문하는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미녀교통경찰들이 볼거리이기도 하다.
주로 한국인들 관광객 일색이라서 한글로 안내표시를 많이 해 두었다.
세쨋날 오전에는 옵션인 통천협을 다녀오고 오후에는 임주 대협곡을 가는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일찍이 아침을 먹고 7시30분에 출발을 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쇼핑가게 라텍스 상점에 들렀다. 마눌님은 15만원짜리 라텍스 루비담요를 샀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단다.
임주 통천협으로 갔다. 가는 도중의 거대한 태항산맥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총길이가 600km, 넓이가 250km란다.
통천협은 하늘과 맛닿은 협곡이라는 뜻이다. 트래킹하는 코스도 장관이었지만 우리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이동했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다보는 전경은 일품이었지만 고소공포를 느낀 나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선인봉에 올라 관경대까지 가는데 나는 고소공포증으로 관경대는 구경도 못하고 멀리서 사진을 찍고 돌아서야 했다.
우리는 케이블카로 내려와서는 한식요리집인 샤브샤브를 먹었다. 사 간 중국주를 마시러 했는데 테이블 안내판에 외부주류 반입시 2만원 벌금이란다.
우리는 드디어 최고명소인 태항산 대협곡에 발을 들여놓았다. 전동카를 타고 입구까지 5분여를 달리는데 관광객들이 그닥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폭우영향때문이리라. 가이드는 다행히 우리 일행이 여행도중 비가 안쏟아져 행운이라고 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거대한 글씨로 암벽에 ‘飛龍峽’글씨가 보였다.
입구에 들어서니 거대한 글씨로 암벽에 ‘飛龍峽’(용이 날아오르는 협곡)글씨가 보였다.
저 벼랑길을 오를 생각하니 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고 협곡물을 건너니 올라가는 길마다 공포스런 절벽이다. 이미 돌아갈 차편도 없다. 약 1시간여 건너편 목적지까지 가야만 차가 있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마늘님 손을 잡고 간신히 발을 디뎌 절벽을 건너니 평지가 나오고 다시 절벽이 이어지고 했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곳이라는 '함주'
신선들이 사는 비경같다.
두 용이 머무는 곳
나를 깨우친다.' 悟' 암석옆에서
곳곳이 숨어있는 비경이다. 그래서 '
桃花谷'이라고 했을것이다.
벽계에 이르니 물이 청명하고 작은 물고기들이 보이고 수많은 물갈래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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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끝에 5~6세 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작은 능금사과를 ‘천원!’하고 내밀었다. 천원을 주고 사서는 모두에게 한 개씩 맛보라고 권했는데 풋사과 맛이었다.
대협곡을 나와서 우리는 두 번째 쇼핑가게인 죽섬유로 이동한 시간이 오후 7시였다. 설명을 듣고 지배인이 권하는 상품마다 귀가 솔깃해진 일행들은 물건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평소 목이 안좋았는데 2만5천원짜리 광석이 달린 목벨트를 했는데 10분이 지나자 목이 뜨거워지는 효과를 보아서 그것을 샀다. 마늘님 허리밸트, 기타 등등 15만원어치 또 물건을 구입했다.
중국전통주를 '바이주'라고 한다. 그중에 두강주를 쳐준다고 했는데 한국돈으로 25000원. 일행이 사서 저녁만찬에 대령을 했다. 33도 증류 알콜이라서 화끈거리는데 정신은 점점 맑아진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쓰러지면 새벽이 오는줄 모른다고 했다.
셋째날
다시 요성 정태동방호텔(정4성급)0635-4218-888로 이동했는데 도착시간이 거의 밤12시가 되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대충 씻고는 골아떨어졌다.
넷째날 호텔 아침 조반. 잠시 주변을 산책했는데 거리마다 포플러 나무를 주로 많이 심은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대한민국을 본뜬 등소평시절에 심어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거리는 비교적 깨끗하고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많이 타거나 노새 짐꾼도 보였다. 하지만 수많은 차들의 경적소리를 보면서 조금은 안정이 안되고 무질서한 느낌이면서도 나날이 발전하는 젊은 대국의 미래가 엿보였다.
조반을 먹고 7시반에 짐을 싣고는 다시 물의 도시 제남으로 향했다. 인민광장에서 아침체조를 하는 중국인들은 한국의 여느 공원풍경과 다를바 없었다.
약 3시간을 달리니 물의 도시 제남으로 왔다.
11시쯤에 천성광장에 도착하고 대명호를 가로지르는 수로 고수부지를 따라 걷는데 정말 물의 도시답게 풍부하게 물량이 샘솓는게 보였다. 이곳에 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통제없이 자유롭게 나와 샘가에서 노는 모습이 공산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남 수로길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해본다.
어떤 통제도 없이 수양버들 그늘이 계속 이어지고 풍부한 샘물을 긷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점심식사이다.
제남공항에서 12시30분까지 대기하고 짐붙이고 보안검색-밧데리는 개인소지해야 하는데 불구하고 나중에 스페어 용 밧데리가 두개나 발견되서 다시 보안검색해야 하는 수고를 가졌다.
다시 인천공항이다. 한국과는 1시간 50분거리인데 실제 시계상은 한국이 한시간 더 빠르다. 공기부터가 다르다. 역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살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인천공항의 항공편수가 1000대가 넘고 이동 관광객이 17만이 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만약 세계최고로 거듭나는 인천공항을 88올림픽 이후 제때 만들지 않았다면 중국관광객을 흡수하기도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종이호랑이로 전락됐을지도.
해병대 1기후임가족과 인천 소래포구에서 만남. 기름진 음식만 먹다 해산물을 보니 식욕이 돋았다. 34년전 군대이야기를 해대며 백령도 횟집에서 술을 한잔했다. 9만원짜리 시켰는데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다섯째 마지막 숙박코스-다음날 아침 물회를 먹고 택시를 타고 종합버스터미널로 가니 딱 8000원이 나왔다.
문경터미널까지 12500원. 상주로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