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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게 하는 일상적인 용어들(4)
인플레이션(inflation)/명사; 화폐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현상으로 정도가 매우 심한 초 인플레이션과 통화가 늘어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가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높게 올라가는 고 인플레이션이 있다. 유의어는 통화 팽창 (通貨膨脹) 참고로 디플레이션(deflation)을 이해할 것.
짱깨(掌櫃)/명사; ‘주인장’을 뜻하는 중국어 ‘짱궤이(掌櫃)’에서 온 말로, 중국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 혹은 자장면, 짬뽕 따위의 중국 음식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짱깨 또는 짱꼴라, 짱개 란 중국인을 낮잡아 부르는 한국어 명칭이다. 짜장면이나 중화요리점 종업원를 낮춰 부르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중국인을 낮잡아 부르는 용어로 사용하는 빈도(頻度)가 더 높다. 이와 비슷한 말로 중화 인민공화국이 대륙만하게 크다는 것을 통틀어 대륙이라고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조선 말기에 중국 상인이나 사장을 ‘장구이(중국어 간체: 掌柜, 정체: 掌櫃, 병음: zhǎngguì)’라고 불렀는데 그 단어가 사람들의 입을 거쳐 변하다보니 ‘짱깨’가 됐다. ‘장구이’는 중국에서 지금도 쓰고 있는 단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중국집 사장을 ‘짱깨’라고 부르다 보니 중국인 전체를 일컫는 말처럼 된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에 중국어로 중국의 발음을 중궈라고 하는데 거기서 짱깨로 변음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본래의 의미는 사장 또는 주인을 일컫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짱꼴라’는 청나라의 한족들이 만주족 황제 앞에서 자신을 ‘노재(奴才)’라 부른 것을 보고 일본인들이 ‘청나라의 노예’라는 뜻으로 '청국노(淸國奴)'라 부른 말이 건너온 것이다. 중국어 발음 ‘칭궈누’를 ‘잔코로’라 말한 것이다. 이 말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짱꼴라’로 변한 것이다.
‘掌櫃(장궤)’는 중국어로서뿐만 아니라 한자어로서도 국어에 들어와 있다.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어 ‘장궤’라 한다. 사전에서는 ‘장궤’에 ① ‘부자’라는 뜻으로, 중국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② 돈 많은 사람, ③ 가게의 주인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달고 있다. 이 가운데 ③ 이 그 원래의 의미에 가깝다. 장사를 하는 가게의 주인은 돈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장궤’에 ‘부자’라는 의미가 생겨날 수 있었다.
저널리즘(journalism)/명사; '저널리즘'이라는 말은 원래 최근의 사건을 인쇄된 형태로, 특히 신문에 취재·보도하는 것을 가리켰으나 20세기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확대되어, 최근의 시사문제를 다루는 모든 인쇄물과 전자 통신장비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하게 되었다. 신문과 잡지, 팜플렛, 뉴스레터, 등으로 대중에게 뉴스, 해설, 특집물 등을 수집, 준비, 배포하거나 시사적인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는 활동. 또는 그 분야를 말한다. 넓게는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책 등을 통하여 오락 및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을 포함하기도 한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로 재정리함.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명사; 게임 이론에서, 참가자가 제각기 선택하는 행동이 무엇이든지 각 참가자의 이득과 손실의 총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이다. 제로 섬은 게임이나 경제 이론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모든 이득의 총합이 항상 제로 또는 그 상태를 말한다. 어원은 레스터 써로(Lester C. Thurow) 교수가 1981년에 쓴 책 《제로 섬 사회》(The Zero-Sum Society: Distribution and the Possibilities for Economic Change)에서 그 용어가 기인하였다. 경마나 슬롯머신과 같은 도박은 주최 측의 몫을 제외하고 패자로부터 모은 돈을 우승자 나누는 장치이기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외환거래도 여기에 해당한다. 주식은 기본적으로 비 제로섬이다. 상승 국면에서는 가치가 창출되고, 하강 국면에서는 가치가 감소한다. 주가가 상승하면 주가 상승 폭 × 발행 주식수 분의 가치가 발생한다. 시장 전체로 봐도 마찬가 전체 주가가 오르면 시가 총액이 증가해 그 늘어난 만큼 가치가 생겨난다. 즉, 상승 추세에서는 시가 총액이 늘어난 만큼 모두가 이익이 되고, 하락세에서는 시가 총액이 줄어든 만큼 모두가 손해를 본다. 덧붙여서 이 기간 시가 총액은 등락이 있었지만, 그 시작과 끝을 시가 총액이 변화하지 않으면, 그 사이의 거래는 제로 섬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로 섬 게임에는,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참가하여 순이익(net profit)을 보았다면 기타의 다른 참가자들은 손해를 보았을 것이므로 네거티브 섬게임(negative sum game; N.S.G)이 되었다고 하고,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참가하여 순손실(net loss)을 입었다면 기타의 다른 참가자들은 이익을 보았을 것이므로 포지티브 섬게임(positive sum game; P.S.G)이 된다. 그리고 외환시장에서 거래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의 거래 결과는 항상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 된다. 즉, 이익을 보는 참가자가 있으면, 반드시 손해를 입는 참가자가 발생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 위키 백과사전과 국어사전 그리고 관련자료 정리/
치킨게임(Chicken Game)/명사; 2대의 자동차가 마주보고 달리는 극단적인 담력시험으로, 2대의 차량이 마주보며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1명이 방향을 틀어서 치킨, 즉 겁쟁이가 되거나 아니면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된다는 게임의 이름으로,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어느 한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충돌할 경우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된다. 1955년 개봉된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주인공 짐(제임스 딘)과 버즈(불량배 두목)가 탄 자동차 2대가 절벽을 향해 나란히 질주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서양에서는 치킨이 겁이 많은 동물로 여겨지는데, 주인이 모이를 주려고 해도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심이 많고 겁이 많아 도망을 잘 가는 겁쟁이를 '치킨'이라고 부른다.
1950~7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극심한 군비경쟁을 꼬집는 용어로 차용되면서 국제정치학 용어로 굳어졌다. 지금은 흔히 한 국가 안의 정치나 노사협상, 국제외교, 산업 등에서 상대의 양보를 기다리며 갈 때까지 가다가 파국으로 끝나는 사례를 설명할 때 많이 사용된다. D램 반도체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오히려 양산경쟁에 돌입하며 원가 이하에 제품을 팔아온 세계 반도체 업계의 2006년 하반기 이후의 상황도 치킨게임에 비견되었는데, 결국 2009년 세계 D램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5위를 기록했던 독일 키몬다가 파산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브리태니커
캠프(camp)/명사; 일반적으로는, 산이나 들에 천막이나 판자 따위를 사용하여 임시로 간단하게 지은 집. 또는 거기에서 지내는 생활을 의미하고 있으나, 군사 용어로는 원정중인 군대의 임시로 주둔하는 지역. 또는 그것을 위해 갖춘 반영구적인 숙영 시설과 설비를 뜻한다. 주둔군의 캠프는 보통 시설이 야영지(bivouac)보다는 공들여 만들어서 내구력이 있지만 요새나 막사보다는 떨어진다. 역사적으로는 로마 군단의 캠프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진을 아무리 길게 치든 짧게 치든 간에 로마인들은 항상 도랑·토담·목책의 누벽(壘壁)을 쌓았으며, 그 안의 공간은 한결같은 설계에 따라 사령부, 보급계, 장병의 숙사구역으로 구획되었다. 따라서 적의 기습을 받을 때 부대원들은 언제나 환경에 익숙하여 어둠 속에서도 신속히 처신할 수 있었다. 로마군의 캠프들은 아주 견고했으며, 그에 따라 프랑스·영국, 그 밖의 지역에서 후에 그 캠프들이 중심이 되어 도시들이 성장하게 되었다. 화기의 발달로 캠프가 요새화되어 캠프들은 안전말뚝을 박고 순찰을 도는 것 외에는 방호되지 않았으며, 확립된 전선의 후방에 설치되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요새화된 베이스 캠프(지휘본부)가 양측에 다시 등장했으며, 북베트남군의 시설들은 깊은 방탄 차폐물로 덮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일상적인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짐으로서 청소년 캠프, 어린이 캠프, 겨울 캠프, 여름 캠프, 과학캠프,등의 계절 캠프, 가족 캠프, 자기주도 학습 캠프, 영어캠프, 과학캠프 등의 학과 학습캠프, 힐링캠프, 캠프 노래, 해병대 캠프, 캠프타운 체험 캠프, 모바일 캠프, 비전 캠프, 유치원캠프, 캠핑카, 캠프장, 캠핑용품 등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금년도는 총선과 대선의 중요한 선거가 있어 각 대선후보를 지원하는 각종 선거 캠프가 설치 운영되고 있다. 이때에 ‘캠프’는 일정부분의 선거 전략을 기획, 운영하고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본부의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코픽스(COFIX)/명사; 코픽스는 'Cost of Fond Index’의 줄임말로, 주택담보 대출 금리를 정할 때 기준이 되는 금리를 말한다. 예금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을 반영하여 산출되는 새로운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를 말한다. 자금조달이란 기업 활동의 바탕이 되는 자금, 즉 자본을 조달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자기자본 조달, 타인 내지 차입자본 조달 및 자기금융의 3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코픽스는 자금조달 잔액에 적용된 금리의 가중평균인 '잔액기준 코픽스'와 월중 새로 조달된 자금에 적용되는 금리의 가중평균인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로 나뉜다.
코픽스의 지수산출 대상이 되는 자금조달 상품에는 정기예금과 정기적금, 상호부금, 주택부금, 양도성예금증서, 환매조건부채권매도, 표지어음매출, 금융채(후순위채 및 전환사채 제외) 등이 있다.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금식 예금은 지수산출 대상에서 제외된다. 모든 시중은행에서 이용 가능하나 코픽스 기준금리에 각 은행별 가산 금리를 더해서 아파트 담보대출금리가 정해지므로 은행마다 적용 금리에는 차이가 있다. 금리 면에서는 신규취급이 잔액기준보다는 낮지만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잔액기준이 유리하다. 2010년 2월 16일부터 전국은행연합회에서 매달 15일(공휴일이면 다음 영업일) 오후 3시 이후 각 은행의 자금조달 총액과 가중평균금리 등의 정보를 취합, 월말 잔액기준 및 월중 신규 취급액 기준의 코픽스를 산출한 후 홈페이지에 공시하고 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정리함.
패러다임(Paradigm) /명사; 패러다임(systematic arrangement of all the inflected forms of a word)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다양한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구조 또는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미국의 과학자 토마스 쿤(Thomas S. Kuhn 1922- )이 그의 책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 1962》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패러다임은 패턴, 예시, 표본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παράδειγμα)를 영어화(英語化)하여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토마스 쿤의 명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패러다임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체계를 뜻한다. 물리학을 전공한 토마스 쿤이 과학 발전의 과정을 연구하면서 과학의 연구 방법이 미리 정해져 있는 "예시"를 따르는 것을 중시한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면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천동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다른 모든 천문 현상은 천동설의 테두리에서 설명되었다. 화성과 같은 외행성은 천구를 지나는 특정 기간에 정상적인 공전 방향과는 반대로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기원전 3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잘 알려져 있었고, 천동설에 부합하는 설명을 하기 위해 주전원과 이심원을 갖는 천체 모형을 고안하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형은 이를 정교하게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행성 간의 공전 주기 차이로 인해 일정기간 외행성이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한다.
토마스 쿤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이론 체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과학혁명의 단적인 예로 제시하였다. 쿤은 이러한 과학 이론의 변화는 어느 한 이론이 그르고 다른 한 이론은 옳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 전체가 갖는 신념과 가치체계가 변화한 것이며, 문제 해결 방법이 달라진 것이라 파악한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현대의 표준 모형 역시 하나의 패러다임일 뿐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한 과학 연구의 특성 전체를 묶어서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 이라고 불렀고 이러한 "패러다임" 에 따라서 과학자들은 연구를 하게 되었다. 즉, 과학 연구에서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역량이나 창의성보다는 "패러다임" 이라고 하는 전체적인 틀과 공통점을 주목한 게 토마스 쿤의 업적이고, 그러한 패러다임이 과학의 연구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이 지금은 과학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문적 영역까지 확대되어서 어떤 분야를 지배하는 ‘특정한 체제나 이념 전체’를 뭉뚱그려서 패러다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참고로 쿤의 이론에 따르면 "패러다임" 이 계속 과학을 지배하다가 절정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기존의 "패러다임" 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 관찰되고(예를 들면 빛을 파동이 아닌 "광자" 라는 기본입자를 지닌 물질로 보아야만 설명이 가능한 광전효과 같은 것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새로운 "패러다임" 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하게 된다고 했다. 쿤의 이론은 과학 발전을 뉴튼, 아인슈타인 등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역량에 의존한다고 보았던 기존의 과학사 개념을 뒤집는 매우 획기적인 개념이었고, 이러한 개념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고 많은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 각 종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 종합 재정리.
포퓰리즘(populism)/명사; 포퓰리즘은 이데올로기 혹은 정치철학으로서, "대중"과 "엘리트"를 동등하게 놓고, 정치 및 사회 체제의 변화를 주장하는 수사법, 또는 그런 변화로 정의된다. 캠브리지 사전은 포퓰리즘을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포퓰리즘은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된 말로, 이는 '대중', '민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대중주의', '민중주의'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말이다. 이는 '대중의 뜻을 따르는 정치행태' 라는 점에서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만 보기 어려우며 민주주의도 실은 포퓰리즘과 맥을 같이한다. 영국의 롱맨 사전은 '포퓰리스트'(Populist)를 부자나 지식인보다는 보통 사람들을 대변하는 자'로 가치중립적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대중의 순수한 의지를 반영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포퓰리즘은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고 모두 나타날 수 있다.
포퓰리즘의 기원은 로마의 호민관이던 그라쿠스 형제가 개혁을 위한 지지 확보를 위해 시민에게 땅을 나눠주고 옥수수도 시가보다 싸게 팔았는데 이것이 포퓰리즘의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근대적인 의미의 포퓰리즘에 대해서는 1870년 러시아에서 전개된 '브나르드 운동(V narod movement)'을 포퓰리즘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브나로드는 ‘민중 속으로’ 라는 뜻으로 당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의 브나르도 운동은 자본주의 경제 구조를 깨뜨리고 러시아 농촌 사회의 전통적 공동체인 '미르(Mir)'를 근간으로 한 새로운 사회 건설을 꿈꿨다. 하지만 지식인 운동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농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한편, 어원을 기준으로 보자면 1891년 미국에서 결성된 인민당(People's Party)이 당원들을 포퓰리스트라고 부른 것이 뿌리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의 인민당은 누진소득세, 상원의원 직선제, 교통 및 통신에 대한 정부 규제, 거대 기업 간 담합 금지 등의 정책을 주장했다. 남부 농민들이 주축이 된 인민당은 기업가, 은행가, 대지주 등에 대항해 소농과 숙련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으려 했다. 인민당은 20년도 안 돼 해체되었지만 이들의 주장은 뒷날 민주당의 강령으로 흡수됐고 현재는 모두 실현됐다. / 위키 사전에서 발췌 재정리함.
폴리페셔(Polifessor)/명사;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 조어(造語)이다. 대학 교수직을 발판으로 입신양명을 꿈꾸는 행태를 보여, 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폴리페셔는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연결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정관계 고위직을 얻으려는 교수’를 가리켜 이르는 ‘폴리페서(polifessor)’를 국립 국어원 우리말 다듬기에서 ‘정치철새 교수’라고 했다.
이들이 자신들만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본분을 잊고 분별없이 정치에 뛰어 들어 세계 수출대국 7위에 오른 대한민국(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네델란드에 이어서 7위 )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이들 주범들은, 아마도 이와 같은, 폴리페셔들의 '준동(蠢動)과 정치계, 관료사회로 대거 이동'함으로써, 국민소득 3-4만 불 시대를 일찌감치, 미국, 일본, 독일, 이태리, 영국, 프랑스, 캐나다( G7 )등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었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고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깊은 학문적 소양과 전문성을 정치에 접목하여 사회발전에 도움을 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이 짙다. 국회의원 선거철이면 교수직을 유지한 채로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면 장기 휴직을 하고, 낙선되면 다시 강단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수업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관련법을 악용하는 등 도덕성이나 양식을 저버린 행동을 하는 사례가 잦아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경향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들의 무분별한 정치참여를 규제하기 위하여 윤리규정을 제정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와 유사한 용어로,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을 합성한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도 있다. 이는 언론 활동을 바탕으로 정계와 관계 진출을 시도하는 언론인을 가리키는데, 폴리페서와 마찬가지로 부정적 의미가 다분하다./ 네이버 백과사전과 관련자료 종합 요약정리.
“안철수, 만들어진 신화”(도서출판 미래지향. 2012)를 집필하여 출판하여 많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미래경영연구소 소장 황 장수가 쓴 ‘썩은 대학체제에 기생하는 폴리페셔와 그 피해자인 학생이 빠진 논란/2011.10.31’ 글에서
일부 매체들이 안철수, 조국 등의 폴리페셔 즉 정치 참여하는 교수에 대한 문제를 보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기성 정치권의 논쟁이 이제 언론 매체간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라고 전제한 다음 ‘지난 대선 선거운동 때인 2007년 6월 집계만으로도 MB캠프 495명 등 538명의 교수가 각 선거 진영 캠프에 참가하고 있었다. MB 정권 첫 조작 때 16명 후보 중 71명이 대학교수였는데 이들 거의다가 땅 부자로 문제가 제기되었다. 지난 총선 때는 모두 42명의 교수가 전국구와 지역구로 출마해 그 중 19명이 당선되었다고 한다.-중략-
한국에서 교수가 정치 참여를 많이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교수는 변호사나 법조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자격을 갖춘 전문직업인으로 인정해 주는 집단이다. 오랜 학벌, 신분 사회의 결과로써 그렇게 인정되고 있다.
둘째, 교수는 시간이 많이 남는다. 사실 교수는 한 학기에 주 6-9시간 강의를 하는데 어떤 교수는 이것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교수의 노동시간이 이렇게 짧은 것은 강의는 공식적인 노동이고 이외에 강의를 위한 준비시간, 또 더 나은 강의를 위해 연구하고 학문적 업적을 위한 연구기간 등의 개념이 나머지 시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 가보면 교수들은 강의, 연구, 논문발표 및 각종 활동에 엄청나게 바쁘다. 그리고 그들 또한 수입여부를 떠나 교수직을 정치인이나 관료보다 더 나은 것으로 생각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엄청난 교수내부의 경쟁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아 딴 생각을 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교수는 시간이 너무 남아돌아서 연구는 안하고 그 남는 시간에 정치판을 기웃대며 신분상승을 꿈꾸고 있다. 나도 대학원까지 다녀봤지만 한국대학의 학문의 질에 대해서는 거론할 대상조차 안 된다.
셋째, 요즘 교수는 다 집안이 살만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유학까지 가서 석, 학사 따서 이후 많은 시간을 기약 없이 기다리며, 교수직을 따려면 집안의 지원이나 결혼을 통한 내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교수임용 자체가 엄청난 로비의 결과물이다. 인맥과 이해관계, 때로는 금품이 수반된 끈질긴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따라서 교수들은 자신들 스스로 특수한 상층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다. 학문적 지적 우월성이 아니라 오랜 투자와 경쟁을 물리치고 따낸 자리라는 특수한 상층 계급 의식이다. 서울의 잘나가는 대학 교수들을 보면 이들은 여간의 우월한 신분의식을 가진 것이 아니다.
물론 이들은 아예 걸 맞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눈에 등록금, 취업으로 고통 받는 대학생과 학부모의 고민은 다른 세상의 일이다. 또 이에 걸맞게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인맥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에서 얻은 재테크 등을 통해 땅, 주식 등에서 수익 창출에 골몰한다.
다섯째, 이들 상류 교수계급은 불행히 학교 내에서는 더 올라갈 사다리가 없다는 문제를 알고 있다. 기껏해야 학과장 학장, 총장 등의 보직교수가 전부다. 따라서 욕망과 욕구에 가득 찬 교수들은 학교 밖의 더 높은 신분과 명예와 부가 보장되는 장관, 국회의원, 각종 위원회 자문직 등 겸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상이 오늘날 폴리페셔를 낳은 교수사회의 본질이다. 물론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비난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다. 오늘날 직업은 어떤 것이든 무한경쟁에서 탈락을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조금만 한눈을 팔고 부실하면 그대로 도태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우리가 직장에서 딴 데 신경 쓰고 나다니면 당장 짤리지 그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겠는가? 오늘날 교수의 사회참여는 과거 독재시대에 민주화 운동참여로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즉 누구나 두려워하던 시대의 대 사회적 발언은 지식인의 용기 있는 사회참여의 표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화가 완성된 현시점에서 정권을 비난한다고 특별히 용기 있는 행동도 아닌 시대가 되었다. 다만 소셜테이너로써 사회참여는 되겠지만.
그런 오늘날 시점에서 교수들의 정치참여 반대쪽에는 정작 대학교육의 수요자로써 엄청나게 비싼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내면서도 상품(대학교육의 질)을 따질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무기력한 대학생과 그들의 부모가 있다. 대학은 소비자(학생)들을 받아주기만 해도 소비자들은 황송해한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이지 대학과 교수의 질을 따질 수 있는 형편이나 능력이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는 없는 것이다.
또 일단 들어간 대학에서는 순수한 학문보다 취업을 위한 spec과 취업준비의 노예가 되어 대학교육의 질을 고민하고 문제제기 할 여유가 없다. 다들 각자가 알아서 자격증과 취업공부를 스스로 하는 독서실로 대학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학을 개혁하고 학문의 질을 높이고자 나서는 학생회나 학부모의 목소리를 무한 경쟁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찍히지 말고 학점 잘 받아 졸업해 취업해야 하는 구조 속에 문제제기를 할 소비자는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대학교수는 할 일이 없어졌고 그 중에 좀 낫다 하는 교수들은 죄다 밖으로 나와 정치판 등에서 5년간의 신분상승 기회(대선)를 찾아 기웃 되는 것이다.
정치권도, 언론도, 그 당사자도 사실 폴리페셔 논란의 본질에 벗어난 내용으로 서로 다투고 있다. 사실 교수는 자기 분야의 학문 업적으로 학생과 학교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 정치권과 교수들은 서로의 이해를 주고받았다. 지금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 시대에 다 죽어가는 MB를 비난한다고 그래서 인기를 얻어 소셜테이너가 되는 것은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다. 폴리페셔 논란의 중점은 그 정치성향이나 교수의 양다리 걸치기가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경쟁의 사각지대에서 한번 들어가면 철 밥통으로 놀고먹으며 정치판을 기웃 될 수 있는 『천국의 자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문제이다. 이를 위해 학부모가 피땀 흘려 번 돈, 대학생이 노동으로 알바로 피땀 흘려 번 돈이 등록금이라는 이름으로 헌납되고 있다. 현재 폴리페셔 논란은 주객이 전도되어있다. 이들의 정치참여 문제가 아니라 이래도 될 만큼 한국 대학교육 시스템이 썩어있다는 점이다. 한국 어느 대학도 소비자(학생)에게 등록금 산출의 근거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즉 대학에서 정하면 그대로 내야 하는 것이 등록금인 것이다. 이토록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일이 어디 있는가? 이 때문에 학교도 폴리페셔들을 방치하거나 묵시적으로 후원되고 있는 것이다. 광고도 되고 잘해서 성공하면 학교에 득이 되기에. 나는 폴리페셔 논란의 중심에 서서 연일 언론을 향해 대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사회적 발언에 앞서 자신의 지위와 월급을 채워주고 있는 소비자가 내는 등록금과 그 상품의 질(대학교육의 질)과 그 운영구조(대학 운영시스템)에 대해 먼저 노력하고 발언하는 것이 양심적 도리이며 합당한 수순인 것이라는 점을 충고하고 싶다.
현재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불공정이다. 자신의 노력에 비해 과다한 지위와 사회, 문화, 정치권력을 가진 채 대 사회적 발언을 떠들지만 정작 자신의 신분을 떠받치기 위해 희생되고 썩어가는 학교내부의 현실을 외면하고 사회, 정치 개혁을 외치는 것은 위선이다. 폴리페셔 들에게 학교로 먼저 돌아가 학교를 먼저 뜯어 고치고 다시 밖을 향해 사회적 발언을 하기 바란다. 만일 그것이 이미 자신에게 너무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렸다면 다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인데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 교수직을 물려주고 정치에 전념하는 것이 맞다. 왜 폴리페셔들은 꼭 출마만이 정치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라고 잘못되고 삐뚤어진 한국의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프레임(frame /the framework for a pair of eyeglasses)/명사; 자동차나 자전거, 건조물 등의 뼈대 또는 틀, 인간에 있어서의 체격(體格) 또는 골격(骨格). 볼링에서는 한 경기를 열로 나누어 그 하나를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프레임(Frame)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생각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생각의 처리 방식을 공식화한 것을 뜻한다. 프레임은 어떤 조건에 대해서 거의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프레임을 "마음의 창"에 비유되곤 한다. 즉 어떤 대상 또는 개념을 접했을 때 어떤 프레임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해석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것을 생각의 확정된 틀이라 할 수 있다.
프레임의 예시로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떤 병에 물이 절반 들어 있다. 이때 A는 "절반밖에 안 남았네." 라고 하였고, B는 "절반씩이나 남았네." 라고 했을 때, B는 A에 비해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때 A와 B의 해석의 차이는 두 사람이 갖고 있는 프레임이 기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프레임과 비슷한 개념으로 패러다임(Paradigm)이 있다. 일반적으로 패러다임은 대규모의 인식체계를 말하고, 프레임은 소규모의 인식체계를 말한다. 그래서 프레임은 일상생활 속에서 주로 나타나게 된다. 물론 프레임이 나타나는 데는 패러다임이 영향을 주게 된다. 패러다임은 일반적으로 어떤 법칙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싼 것은 비지떡이다"는 생각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프레임이다. 반면에 "물질은 입자임과 동시에 파동이다"라는 양자역학적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프레임이라기보다 거시적인 상태를 이야기하는 "패러다임"이다.
인간이 생각을 하면서 프레임을 사용하는 것은, 생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우리가 어떤 대상 또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우리는 이 대상 또는 개념을 인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 번 파악했던 대상 또는 개념을 다시 인식하는 데는 처음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며, 그 대상 또는 개념을 좋아한다면 더욱더 빠른 시간만이 필요로 하게 된다. 이는 인간이 대상 또는 개념을 더 간단한 방식으로 처리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된 것은 대부분 인간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프레임은 일반적으로 좋고 나쁨이 없다. 각 세대마다 나타나는 프레임의 차이를 간단하게 세대차이라고 한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각각의 환경에 더 경쟁력이 있는 형태를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남의 프레임에 대해서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없다. 환경이 변화하면 프레임도 같이 변해야 하며, 환경 변화에 맞게 변화하지 못한 프레임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 각 종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에서 종합 재정리.
하우스 푸어(House Poor)/명사;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이란 뜻으로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가 대출이자와 빚에 짓눌려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우스 푸어와 같은 의미를 가진 용어로는
스톡푸어(stock poor)/명사- 무리하게 대출 받아 집을 샀다가 궁핍한 생활을 하는 '하우스 푸어'에 빗대어, 대출을 받아 주식, 증권에 투자를 했다가 원금을 날리고 은행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
렌트푸어(rentpoor)/명사- 하우스 푸어에 빗댄 말로 치솟는 주택 임대비용을 감당하는데 소득의 상당액을 지출해 저축 여력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 등이 있다.
힐링(Healing)/동사; 몸과 마음을 치유하다. 고치다의 뜻을 가진 말이다, 치유의 방법에는 힐링 보이스(Healing Voice)에 의한 부드러운 다사로운 특정한 목소리로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고, 치료를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삼림욕(森林浴; woods bathing), 치유음악(Healing music) 또는 치유댄스(Healing dance)로 치유할 수 있다.
삼림욕(森林浴;woods bathing); 치료나 건강을 위하여 숲속을 거닐거나 온몸을 드러내고 숲 기운을 쐬는 일, 치료나 건강을 위해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숲속을 거닐거나 온몸을 드러내고 숲 기운을 쐬는 것
치유음악(Healing music); 'heal through the music'의 약자로 직역하면 "치유음악", "치료음악" 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병이 낫는 것은 아니며, 피곤에 지친 현대인의 마음에 윤택함과 평안함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살다가 가끔 푸른 숲이 우거진 산에 가면 체내에 쌓인 노폐물이 씻겨져 나가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ROCK, JAZZ등의 음악을 듣는 것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만 힐링 뮤직의 효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日本의 힐링 뮤직의 제 1인 자로 알려져 있는 미야시타 후미오 (宮下富實夫/Fumio miyashita)는 日本에서 최초로 힐링 뮤직을 등록 상표화 하였으며, 수많은 앨범 발매와 콘서트 등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특히 <잠자는 콘서트>라는 특이한 컨셉의 콘서트가 메스컴에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 모으며 피곤에 지친 현대인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미야시타 후미오의 '힐링 뮤직은 현대인들의 두뇌 활동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좌뇌(左腦)"를 휴식시켜 주며 반대로 "우뇌(右腦)"를 활성화시켜 준다. 즉, 휴식과 활성화를 동시에 진행시켜 주어 명상, 태교, 여성들의 마사지, 피부 관리, 스포츠 선수들의 트레이닝 및 식물의 재배에도 응용되고 있다.
에코힐링
치유댄스(Healing dance); 웰빙 붐과 더불어 명상의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실감하고 있는 요즘, 요가나 단전호흡 등 명상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정신을 집중해서 5분만, 아니 단 1분만이라고 명상을 해보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쪽 근육이 저려 오는 듯 이리저리 몸을 뒤척일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명상을 접하고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기존의 명상은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 하지만 웃으면서 편안하게 즐기는 명상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바로 힐링 댄스! 힐링 댄스는 기존의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명상의 개념에서 벗어나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명상인 ‘웃으면서 명상하자’라는 정의를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건강 운동법이다.
힐링 댄스는 요가의 정적인 동작과 재즈 댄스의 동적인 동작, 그리고 단전호흡에서의 기(氣)를 전하는 동작에 이르기까지, 여러 운동들의 장점만 담아서 누구나 쉽고 재밌게, 그리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으므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생활에 적극 응용할 수 있다. 기존의 댄스는 일정한 양식을 띠고 있지만, 힐링 댄스는 특별한 양식이 없다. 또한, 기초적인 움직임은 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일정한 경험이 쌓이게 되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동작을 음악과 더불어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이러한 상황들을 가속시키며, 신체의 에너지를 정화하게 된다. 곧, 힐링 댄스는 삶의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의 에너지를 살려주는 힐링 댄스는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일깨워주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명상으로 갈 수 있게끔 해주는 다리 역할이 바로 힐링 댄스인 셈이다. 결국, 힐링 댄스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되며, 나아가 자신감을 획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내 마음대로 펼쳐지는 삶의 무한한 에너지를 누릴 수 있다.
힐링 댄스의 기본 동작은 가볍게 털어주는 동작을 통해 온몸을 편안하게 이완시켜주며 몸의 구석구석 쌓여있는 피로와 긴장을 풀어준다. 또한, 어깨와 팔에 쌓인 탁한 기운을 없애주고, 손을 자극함으로써 전신의 기혈(氣血) 순환을 돕는다.
당황하게 하는 일상적인 용어들(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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