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유명한 판결로는 솔로몬왕의 진짜 어머니를 구별하는 판결을 비롯한 여러 판결, 요즘도 텔레비전 프로에 나오는 중국의 포청천의 판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가슴에서 피를 뺀 한 파운드의 살만 도려내라는 판결(물론 반론의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의 명쾌한 행적, 조선 초기 황희 정승의 훌륭한 언행 등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이야기도 참 많다. 근대의 신파극 ‘검사와 여선생’에서도 검사의 법정 발언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이런 많은 이야기를 읽고 듣고 했음에도 언제나 그런 분들 같은 현명함을 흉내나 내 볼 것인가?
1.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
많은 재산을 소유한 어느 상인이 깊은 병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그러나 마침 아들은 멀리 외지에 나가 있었다. 그에게는 노예가 하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에게 맡기기가 불안했다. 그가 죽은 후 재산을 노예가 안전하게 아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를......!
고심 끝에 그는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
‘나의 모든 재산을 노예에게 물려준다. 그러나 무엇이든 이중 한 가지는 나의 아들에게 준다.’
그리고 그 상인은 세상을 떠났다. 얼마 후에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노예는 기쁜 마음으로 아들에게 상인의 유언을 전했다. 한편 아들은 뜻밖의 비보에 슬퍼했고 노예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준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학식 높기로 유명한 마을의 랍비에게 찾아가 이를 상의했다.
랍비는 웃으며 말했다.
“이 유언은 노예가 재산을 가지고 도망치거나 자네에게 올바로 전해지지 않을지도 몰라서 자네 아버지가 내린 현명한 결정이네, 자네는 재산 한 가지를 노예로 선택 하게나. 어차피 노예의 재산은 주인의 것이 되니까......!”
랍비의 말을 듣고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아차린 아들은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 랍비말대로 재산 한 가지를 노예로 선택한 후 노예에게 재산의 일부를 물려주고는 자유롭게 풀어주었으며, 그 남은 재산은 아들이 소유하게 되었다.
2. 고대 그리스시대
--오래 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써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테네에서 아마 군인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성대한 승전 퍼레이드가 있었던 모양이다. 구경꾼이 어찌나 많았던지 어떤 사람이 길가에서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마침 옆에 이층집이 있어서 이층 지붕위에 올라가 구경을 했는데 그만 잘못하여 비스듬한 지붕위에서 미끄러져 아래로 추락을 하고 말았다.
맨 땅으로 떨어졌으면 본인이 죽고 말았을 텐데 하필이면 다른 구경꾼 머리위로 떨어져 밑에 있던 사람이 깔려 죽고 말았다.
죽은 사람의 가족들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되어 고소를 하였다. 가해자는 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잘못을 시인하고 합의하여 보상을 해 줄 의사가 있었다. 판관도 가족들에게 그렇게 할 것을 종용하였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끝까지 법대로 사형 집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판관은 가해자가 선량하고 고의로 살인을 한 것이 아니므로 어떻게든 좋게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 가족들의 주장이 너무 강경하여 오랜 고심 끝에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좋다. 사형을 시키도록 하겠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서 있던 그 위치에 가서 서고, 피해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지붕에 올라가서 가해자 머리 위로 뛰어 내려라.”
이 똑같은 방식의 형 집행은 얼마나 절묘한 판결인가? 충분히 이해가 되는 공정한 판결이지만 피해자 가족은 지붕위에 올라가 뛰어 내리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꼭 가해자가 죽는다는 보장도 없으며 잘못하면 뛰어내린 사람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므로 고소를 취하하였다고 한다.
3. 고려 문신 손변의 명판결
그가 경상도 안찰부사로 부임했을 때 여러 해 묵은 남매간의 유산 상속에 대한 송사가 있었다. 어미가 먼저 죽고 아비가 나중에 세상을 떠나면서 유서에 전 재산을 출가한 딸에게 물려주고 어린 아들한테는 갓과 검은 옷, 미투리 한 켤레, 종이 한 권만 남겼다는 것이다. 아들이 장성한 뒤 억울하다고 고소를 했다. 누나는 유언대로 자기가 전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을 하였다.
손변이 숙고 후 결론을 냈는데 이게 명판결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균등한데 어찌 다 커 결혼한 딸에게는 후하고 엄마 없는 어린 아들에게는 박하였겠는가? 생각컨대 어린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누나가 어린동생을 사랑하는 것이 적어져 동생을 잘 돌보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장차 아이가 어른이 돼 이 종이에 소장을 써서 의관을 정제하고 관가에 소장을 제출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려 줄 사람이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판결을 들은 남매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고, 손변은 그들에게 재산을 반씩 나누어주었다.
--- 2011년 12월 29일자 중앙일보 인용---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사회과탐구 교과서에도 이 내용이 실려있음.>
보나마나 남매는 평생을 의좋게 잘 살았을 것이다. 설마 손변이 ‘탈무드’를 읽었을 리 만무하지만 웬지 판결에서 유사성이 물씬 풍긴다.
(# 참고 : '미투리'란 짚신의 일종인데 짚으로 엮지 않고 삼이나 노로 엮어서 매끈하고 매우 질기다. 요즘으로 치면 짚신은 고무신에 해당하고 미투리는 구두에 해당한다.)
4. 달빛의 명판결
학교의 공식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나 많은 학교가 탄력시간 운용제를 적용하여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근무를 한다.
학교도 여러 복잡한 사정으로 모든 직원이 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키기는 어려우나 나 같은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아무런 제약없이 퇴근이 가능하다. 나는 이점이 참 좋다. 여름철에 4시 30분이면 한나절이나 마찬가지로 퇴근 후 근교 산행도 가능하다.
예전에는 퇴근 후 산 좋아하는 아이들 내차에 탈 만큼 몇 명 남겨두었다가 같이 산행도 하였는데 요즘은 아이들 학원이니 방과후 특기적성이니 하여 시간이 없어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보통 8시 경이면 출근하여 교실에 도착하는데 아이들 오기 전까지 잠시 이것저것 수업준비 등 하루 생활을 준비하지만 아이들이 오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하교를 마치는 오후 2~3시 경 까지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수업 중이야 어차피 꼼짝 못하고 교실을 지켜야 하지만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의 소란, 잘못된 행동, 싸움, 다툼 등 전쟁터 비슷하다. 우리 어릴 때야 운동장에서나 마음대로 뛰어 놀았지 실내에서는 조용히 왼쪽으로 발뒤꿈치 들고 사뿐사뿐 걸어 다녔고 특히 교무실 옆에서는 숨도 크게 못 쉬고 다녔지만, 아무 거리낌 없는 요즘 애들은 복도에서 전력 질주를 하다가 교장선생님을 들이 받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통제 불가능’ 수준에 가깝다.
제일 처리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문제는 고자질이 으뜸이다. 저학년 일수록 그 빈도는 훨씬 더 많다. 그러나 고자질하는 아이 얼굴만 보아도 그 심각성의 깊이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고자질 중에서도 욕하고 놀린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불러다 조사를 해봤자 그놈이 그놈이다. 서로 놀리고 욕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 거의 없다. 이르는 놈이 더 괘씸한 경우가 반반이다.
“선생님, 영철이가 괜히 저보고 욕해요!”
“뭐라고 욕했는데?”
“옆으로 그냥 지나가는데 재수 없다고 그래요.”
“야, 그놈 참 나쁜 놈 같네! 야, 너 영철이가 나쁜놈이라고 생각하냐, 은주 네가 더 나쁜놈이라고 생각하냐?”
“.......”
“야, 괜찮아. 그냥 네 생각을 한번 말해봐!”
“뭐, 그야....... 영철이가 이유 없이 욕했으니 더 나쁜 놈이겠지요?”
“맞아, 나도 영철이가 더 나쁜 놈 같아. 그런데 은주야, 나쁜 놈이 더 잘 참겠냐, 착한애가 더 잘 참겠냐?”
“......? 그거야 착한애 겠지요.”
“아유, 은주는 똑똑하기도 해라. 그래서 나는 착하고 똑똑한 은주가 항상 예쁘더라. 이번엔 똑똑하고 착하고 예쁜 은주, 네가 한번만 참아라. 응?”
은주는 선생님이 영철이를 불러서 혼을 내주기를 더 바라기는 하지만 별수 없이 씩 읏으며 들어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