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 박옥근
묵은 항아리들이 온몸으로 빗물을 받아 내린다. 뼛속까지 파고든 군내를 씻어내기라도 하는 것일까. 바닥은 온통 불어터진 곰팡내로 질척거린다. 사람들이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올 때 가져온 항아리들이다. 협소한 베란다에 두고 사용하기에는 여간 불편한 물건이 아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항아리는 옥상으로 옮겨졌고,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갔다. 옥상은 어느새 항아리의 고려장 터로 변해 있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항아리들은 무슨 생각에 젖어 있을까. 옛 시절을 떠올리며 고향 하늘을 그리워할까. 아니면 고향 소식에 목말라할까. 태어난 곳이 제각각인지 모양새도 가지각색이다. 날씬한 몸매에 솥뚜껑 모양을 날름 쓰고 있는 서울 항아리는 목소리도 야들야들 할 것만 같다. 고인 빗물을 가슴 가득 안은 충청도 항아리는 솔은 주둥이로 느릿느릿한 말을 하는 듯 하다. 둥그스름한 모양새에 얕은 뚜껑을 쓰고 있는 전라도 항아리는 할 말을 잃은 듯 묵묵히 서있다. 금방이라도 무뚝뚝한 말투로 한마디 툭 내뱉을 것만 같은 경상도 항아리는 펑퍼짐한 엉덩이에 투박한 뚜껑을 쓰고 있다. 금간 것, 이 빠진 것, 테를 두른 것들을 내려다본다. 그것들을 쓰다듬으며 어루만진다. 바지런히 씻고 닦았을 옛 여인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안 주인의 알뜰살뜰 손맛 곰삭는 냄새도 난다. 좋은 놈으로다 고른 씨앗들을 작은 항아리마다 채워두고서 흐뭇해했을 소박함도 엿보인다.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끝없이 퍼주기만 했을 어머니들의 넉넉한 정도 훔쳐본다. 내가 내놓은 항아리 속내를 들어다 보자 그 안에 어머님의 삶이 그대로 배어있다. 결혼초기, 시집살이 할 때다. 곳간에는 항아리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큰항아리들 속에는 낟알과 쌀이, 작은 항아리들 속에는 잡곡들과 종자들이 담겨져 있었다. 뒤뜰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 속에 장류와 젓갈, 장아찌와 김치 등이 담겨져 있었고, 어머님은 늘 씻고 닦으셨다. 곳간과 장독대만 바라보아도 배가 부르다고 하면서 소중히 다루셨다. 몇 해 전, 초여름이지 싶다. 시댁 삽짝을 들어서자 어머님이 대대로 물려받은 항아리들을 마당 한켠에 세워놓고 다듬이 방망이로 사정없이 내리치고 계셨다. “쨍그랑 쨍!” 소리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되돌아가는 항아리의 외마디 비명으로 들려왔다. 와르르 내려앉는 파편들은 왠지 모르게 내 가슴에 조각조각 꽂이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방망이를 빼앗으며 만류했다. 어머님은 “나 죽고 나면 네가 좀 힘들겠느냐. 그래서 큰마음 먹고 오래된 물건들을 모두 없애려했다.”고 하시었다. 그러고 보니 아랫방 아궁이 앞에 어머님의 옷이 수북이 놓여져 있었고, 일부는 이미 아궁이 속에서 활활 타고 있었다.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궁이의 불꽃을 보자 홀로 살다가 이승을 먼저 떠난 주위 분들이 떠올랐다. 그분들은 어머님과 서로 애환을 나누며 자매같이 지냈던 사이었다. 그분들이 살아생전 귀중히 여겼던 생활도구와 옷가지들을 자식들이 하찮게 여기며 버리는 것을 어머님은 보셨던 것이다. 비록 당신께는 귀한 물건들이지만 자식들에게는 쓸모없는 짐 덩어리로 남는다는 것을 아셨다. 당신께서 떠나신 뒤에 자식들이 고생을 할까봐 손수 항아리를 깨고 옷을 태우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어무이요!” 소리치며 작아진 어머님을 덥석 안아버렸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어머님은 장롱에서 보퉁이를 꺼내놓으며 풀어보라고 하셨다. 수의였다. 아직도 정정하신데, 그것도 당신 손으로 장만하셨다니 꺼림칙하기도 했고 속상하기도 했다. 자식이 아무리 없이 산다 해도 수의를 안 입혀 보내실까봐 이렇게 마련하셨느냐고 하자 어머님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웃기만 하셨다. 이제는 곳간도 옛 이름이 되었다. 그 옛날 곳간열쇠를 허리춤에 달고 위풍당당하게 아랫사람을 부리던 안방마님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조상들이 그렇게 애지중지 여겼던 항아리도 시대변화에 밀려 점차 멀어져갔다. 시댁의 곳간과 장독대도 새로 집을 지으면서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으로 남는 걸까. 빗줄기를 타고 오는 그리움은 내 기억의 저편으로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옛 풍경들을 선명하게 되살려놓는다. 낯익은 풍경들은 금세 옛 추억들을 불러와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도 하지만, 가슴을 에듯 아리고 쓰리게도 한다. 지금 고향에는 노인네들만 남아 외로이 고향 땅을 지키고 있다. 성장한 자식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로 떠나면서 부모님만 남겨두고 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인이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이사를 가면서 옥상에 버려두고 간 항아리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머님이 왜 그토록 소중히 다루었던 항아리를 깨뜨리셨는지를. 묵은 곰팡내를 씻어 내리는 항아리 겉면에 어머님이 쓸쓸히 웃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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