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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충남지사를 만나러 가는길은 날씨부터 고르지못했다. 천안까지 쨍쨍했던 하늘이 예산을 거쳐 내포신도시에 접어드니 눈발이 거세게 휘날렸다. 내포신도시는 기암괴석이 즐비해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봉산밑에 자리잡았다.
용봉산은 기(氣)가 센 산이라 대통령 후보들이 많이 찾았던 산이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허허벌판에 충남도청 청사만 마치 우주정거장같은 독특한 모습으로 덩그러니 서있다.
지난해 내포신도시로 이전한 충남도청 첨단 청사는 충남도의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드런낸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안희정 지사가 있다. 40대 중반(46세)에 도지사에 당선된 안지사는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모로 화제의 중심인물이다.
지난해 10월 시사저널이 선정한 정치분야 차세대리더 1위에 꼽혔다. 작년말 천안에서 열린 안지사의 저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출판기념회에선 김한길 민주당 대표, 문재인, 김한길, 안철수의원과 노무현 전대통령부인 권양숙여사등 야권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했다.
안 지사는 젊었다. 이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인 50이 됐지만 단정하고 해맑은 얼굴에 목소리는 조근조근 했다. 자연스럽게 얼마전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변호인'얘기가 나왔다. 그는 꼭 20년전에 정치인 노무현을 만났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최근 노무현 전대통령의 인권변호사로서 변신을 다룬 영화 '변호인'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영화를 관람하고 노 전대통령을 다시 생각했다. 혹시 이 영화를 본적이 있는가?
"관람했다. 이 사건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에겐 가슴아픈일이다. 수사기관의 폭력과 고문앞에서 당사자는 얼마나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꼈겠는가. 주인공이 인권변호사로 거듭난 과정에서 배우 송광호씨의 연기를 보면서 가슴이 찡했다. 특히 국밥집아줌마와의 인연이 짠하게 감동을 주었다. 선배변화사 집을 찾아가 '이건 아니잖아요'라며 절규하는 대사가 떠오른다"
- 안지사는 지난달 17일 송년기자회견에서 최근 대학가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와 관련해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안 지사는 박근혜 정부의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따뜻한 대화를 원하는데 차가운 법치를 얘기하기때문에 국민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절박하게 느끼는것 같다. '안녕들 하십니까'는 한국사회가 안고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안고있는 문제가 반드시 대통령탓은 아니지만 대통령에게 좀더 따뜻한 대화를 원하는데 그게 안되기 때문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이 유행이 된게 아닐까"
안 지사는 20대 중반에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으로 노무현 전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2001년 대선때는 노무현 캠프 사무국장을 맡아 참여정부 출범에 기여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함게 '좌 의정, 우 광재'라는 말을 들을 만큼 신망이 두터웠으나 대선자금 관리자로 책임을 지고 1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참여정부 5년간 정치일선에 물러나있었다.
그러나 안희정 지사에게 정치적인 기회가 온것은 아이러니하게도 MB정부 시절이었다. 2008년 고향인 논산에서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구속전력때문에 좌절하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최초로 충남지사에 당선되면서 친노계의 미래로 떠올랐다.
-안지사는 얼마전 김대중·노무현 전대통령의 뒤를 잇는 장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집안을 이어가는 맏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대선을 염두에둔 발언이라는 말들이 많다.
"어느집안이든 집안을 이어가는 맏이가 되겠다는 것은 당연한 포부다. 그런 얘기는 지난 20여년간 정당활동을 하면서도 해왔던 얘기다. 내 나름의 소신과 포부를 얘기한 것인데 오히려 정치권의 과민반응에 놀랐다. (대통령이라는)자리나 지위가 내 목표는 아니다. 바둑으로 치면 두텁게 두지 집계산은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가 한단계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기여하고 싶다"
-최근 출간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라는 저서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선거에서 졌다면 더 이상의 변명은 필요가 없다'고 민주당 일각의 대선불복에 대해선 비판했다. 또 '공칠과삼의 시선으로 보는 이승만과 박정희'글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해서도 유신과 경제성장의 공과를 잇는 대로 평가하자고 했는데?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대선불복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정원 댓글사태에 대해 민주주의 대원칙에 따라 책임자는 처벌하고 조치를 취해달라는 얘기다. 민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경쟁을 통해 결과가 나오면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또 박정희 대통령의 평가는 끝났다. 더이상 과거를 갖고 싸우지 말자는 거다. 과거를 갖고 싸우면 현재와 미래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이제는 대한민국에 이뤘던 성과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다만 국정원댓글 사건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수사결과를 기다려보는것도 좋지만 대통령의 권한인 인사와 지휘권을 행사해야 한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민주당 정권이 그랬다면 새누리당이 가만히 있었겠나.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측면에서 선거를 끝낸뒤 싸우는것은 올바르지 않다. 댓글사건에 대해 책임을 묻는것을 대선불복과 연관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눈앞의 이득, 지역주의'라는 글에서 지역주의 정당정치를 청산해야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고 썼다. 바람직한 말이지만 정치인의 지역기반은 현실이다. 충청권 인구가 최근 호남인구를 추월했는데 큰 꿈을 꾸는 안 지사에겐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역연고에 애향심을 갖고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역주의는 타파돼야 한다. 내가 고향출신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에 따라 지지한다면 지역주의를 극복할 것이다. 1970년대엔 부산 대구에서도 야당의원이 많이 나왔다. 정치인들이 당장 표가 나온다고 지역주의에 호소해서는 안된다. 정책과 비전으로 표를 얻어야 한다" (그는 작년 10월 시사저널 인터뷰에선 전국적으로 지지받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었다)
-선거구를 조정해 인구가 호남을 추월한 충청권에 의석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난 생각이 다르다.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등 권역별 인구비례로 나눌게 아니라 도시권과 농촌권으로 나눠야 한다. 대전 천안은 인구수에 비해 국회의원이 적다. 어느 권역이든 군단위로 내려가면 똑같다, 도시권과 농촌권역의 인구비례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해야 한다. 영남 충청 호남의 인구비례로 선거구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지사는 2007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하자 다산 정약용의 편지를 인용하면서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라며 친노를 폐족이라고 했다. 벌써 6년전 얘기다. 지금의 친노는 당시와 어떻게 다른가.
"친노는 일부언론이 민주당을 분열시키려는 용어다. 봉하마을에서 노전대통령의 장례를 치뤘던 모든 사람들은 노무현을 계승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폐족이라고 말한것은 자세를 낮추라는 의미다. 난 폐족에 관한 질문을 들을때 마다 곤혹스럽다. 지금은 다르지 않나. 정파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이후 새누리당에게 정권이 넘어갔다. 달도 찼다 기울었다 한다. 여야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정권도 바뀔 수 있다"
안 지사는 젊지만 노회했다. 민감한 질문에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핵심을 비켜났다.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평상심을 유지했던 안 지사는 폐족얘기가 길어지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서의 특정 대목에 대해 질문할때는 "책을 다시한번 읽어보라"며 살짝 감정을 드러냈다.
-안지사에게 도지사는 정치적인 역량을 시험하는 중요한 무대라고 본다. 이번에 발간된 저서에서는 4년동안 지사직을 수행하면서 느낀 경륜이 드러났다.
하지만 안지사가 주장한 개방형직위 확대, 연공서열 파괴, 전문분야 외부수혈, 정년보장제도 수정등은 쉽게 접목하기 어려울것 같다.
"나역시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공직자의 평생고용보장 시스템으로 국가의 다양한 행정수요를 이끌어낼 수 없다. 국가와 관료사회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공무원 조직의 운영형태에 있어서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지사는 20년간 정치에 몸담았지만 충남지사가 유일한 선출직이다. 그만큼 정치적인 위상과 인지도에 비해 경력은 일천하다는 얘기다. 아직 능력을 못보여 줬을수도 있고 과대포장됐을수도 있다. 이때문에 이번 6.4 지방선거는 향후 그의 정치행로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주위에선 보고 있다. 차세대 리더를 꿈꾸는 그가 '충청권 대망론'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 여부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jbn 파워인터뷰^네이버블로그(박상준인사이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