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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묶을 때면 당나귀 갈비뼈 부서질까 걱정
안데스 원주민들 겉모습은 투박하기 짝이 없지만 실상 얼굴을 트고 나면 정겹기 그지없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대부분 허름한 중절모에 모직 옷을 걸친 그들은 소박하면서도 웃음이 넘쳤다. 우리 가이드와 당나귀 몰이꾼인 카레라 부자는 유난히도 돈독했다. 글리세리오는 리마에서 예비 대학생으로 지내오다 방학을 맞아 집 찾는 길에 가이드로 아버지와 동행하게 된 것이다.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두 사람은 걸을 때도 같이 걷고, 잠도 한 텐트에서 자는데도 야막에 도착할 때까지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 엄청난 눈이 남벽에 얹혀 있는 론도이를 바라보며 삼부냐 고개로 향하고 있다.
카샤 패스가 있는 장벽으로 다가서는 사이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희고 노란 들꽃이 융단처럼 피어 있고, 나비도 날아다닌다. 소와 말들은 우리들의 캐러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스레 풀을 뜯는다.
“이 빵을 뺏는다는 것은 초원의 혈투를 자초하는 겁니다.”
아침 일찍 햄버거 빵 두 쪽으로 아침을 해결한 일행은 오전 10시도 안 되었는데 허기를 느끼고 글리세리오가 점심으로 건네준 햄버거 빵을 꺼내 씹는다. 얄팍한 빵 두 조각이 점심의 전부다 보니 먹을 때마다 신경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먹성 좋은 이영석씨는 석상명씨와 기자를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보며 접근을 차단시킨다.
커다란 기둥바위 사이로 난 고갯길은 초반부는 밟으면 수시로 밀리는 흙과 잔돌이 뒤섞여 급사면을 이루고, 위쪽으로도 코가 닿을 만큼 가팔라 오르막 내내 진을 뺀다. 그래도 안부에 올라서자 새로운 풍광에 흥분이 인다.고개스 왼쪽으로는 송곳 같은 침봉들이 길게 이어지며 장관을 이루고, 그 뒤로는 설산들이 반짝인다. 또한 내일 넘어야할 삼부냐 패스는 푸른 빛으로 반짝이며 우리를 부르고 있다.
고개를 넘어 목초지가 조성된 론도이로 내려서는 사이 양떼가 앞을 가로막고, 사이사이 소들도 어슬렁거린다. 30분쯤 내려섰을까, 멀리 비포장길을 따라 론도이로 다가서는 마리오 카레라가 당나귀를 몰고 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거대한 암봉 니나샹카와 론도이가 고개를 버쩍 치켜들고 솟구쳐 있다. 오늘 캠프지는 두 고봉이 굽어살피는 지상낙원이다.
▲ 카시 고개에서 바라본 거대한 암봉군.
급경사 사면을 내려서자마자 숨 고를 틈도 없이 비가 쏟아진다. 오후 1시30분, 다른 날에 비하면 1시간 반 빨리 비가 내리는 것이다. 지금 페루 안데스는 절정의 우기다. 오후 들어서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다행이다 싶은 것은 아침나절에는 비가 오지 않아 그래도 걸을 만하다는 점이다.
트레킹 사흘째인데도 카레라 부자는 도대체 먹을 만한 것을 주지 않는다. 아침은 멀건 수프에 빵 두 조각이 고작이고, 점심 역시 빵이다. 와라스의 트레킹 대행사 사장인 블라디미르를 지나치게 믿은 게 실수였다. 너무 믿은 나머지 라면 몇 개 외에는 준비해온 식량이 없다. 카레라 부자에게 “오늘 저녁은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보라” 부탁했지만, 결과는 꽝이다.
“이건 뭐야, 도저히 비위가 상해서 못 먹겠네. 밥은 또 왜 이래…. 왕짜증이네, 왕짜증-.”
감자죽에 쌀밥, 그리고 그 위에 얹은 계란 프라이. 카레라 부자가 나름대로 성의를 다한 음식이었지만 감자죽에는 우유를 섞었는지 느끼하고, 밥은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 꺼냈는지 곤두서서 살아 움직였다.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먹는 만큼 먹고, 나머지는 비닐봉지에 담아 텐트 한 쪽에 숨겨두었다가 한밤 중 흐르는 냇물에 씻어 보내는 웃지못할 촌극을 벌이고 만다.
▲ 거대한 암봉 사이의 된비알을 따라 카시 고개로 오르는 이영석씨.
당나귀는 캠프지에 도착하면 묶였던 줄에서 해방되어 주변의 초지에서 풀을 뜯고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그래도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그러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주인이 다가가 주둥이를 줄로 묶어 캠프지로 끌고 온 다음 등에 짐을 싣는다. 짐을 잘 고정시키기 위해 줄을 잡아당기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저러다 당나귀 갈비뼈가 으스러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이 날은 기다리다 못해 카레라 부자가 당나귀를 잡으러 가기도 전에 출발했으나, 엉뚱한 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고생만 잔뜩 해야 했다. 여기가 안데스 산중인데 설악산쯤으로 깜빡했던 것. 그래도 론도이 목초지와 고개 중간쯤의 된비알 사면에서 우리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글리세리오와 합류하게 되자 반갑기 그지없다.
미나파타 고개(Minapata·4,750m)에 올라선 시각은 오전 11시. 먼저 올라온 마리노가 씩 웃는다. 4박5일 일정 중 마지막 고개이기 때문인지 제법 긴 사면길을 올랐는데도 숨이 고르고 마음이 편안하다. 이영석씨도 미투코차 캠프장에서 비아그라 처방을 받은 이후 나날이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 론도이 계곡 건너로는 니나샹카와 론도이가 우뚝 솟구쳐 있다. 간혹 눈사태가 일어나면서 섬뜩케 하지만 중단부 설원 밑으로는 아름다운 폭포수가 멋들어지게 걸려 있다.
고개가 두 개다. 짤막한 허릿길을 지나 있는 고개는 삼부냐 고개다. 미나파타 고개에서 당나귀가 귀를 쫑긋 세운 채 지켜보는 가운데 예의 햄버거 빵으로 점심을 먹은 다음 날씨만 맑다면 시리시한카에서 예루파하로 이어지는 대장벽과 명봉들을 볼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고 삼부냐 고개로 향한다.
그 아쉬움은 조금이나마 삼부냐 고개에서 달랠 수 있었다. 산허리를 돌아 고개에 올라서는 순간 코발트빛 산중호수인 솔테라코차(Solteracocha) 주변을 빙 둘러싼 설봉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망도 곧이어 쏟아진 빗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퇴석 둑에 갇힌 채 생명체라곤 하나도 살아 있지 않을 것 같은 솔테라코차를 바라보며 긴 된비알을 내려서자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묘한 곳이다. 위쪽은 죽음의 호수 같은 솔테라코차가 올라앉아 있건만 아래쪽은 생명수로 가득 찬 하와코차가 자리 잡고, 호숫가 원주민들의 움막 주변 초지에는 양과 염소떼가 편안하게 살고 있었다.
▲ 고요한 새아침을 맞이하는 하와코차. 호수 뒤편에 니나샹카~예루파하 장벽이 펼쳐져 있으나 구름 안개에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원주민들에게 산은 도전의 대상이 아닌 삶의 터전
호숫가 언덕배기에 텐트를 친다. 민가에서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산 감자를 삶는 사이 호수물이 빠져나가는 큰 도랑 옆에서 다가갔다. 개울 건너에는 투망질하는 아버지와 장대 낚싯대를 드리운 채 제법 강태공 폼을 잡는 어린 아들이 보인다. 한 뼘쯤 되는 물고기를 잡자 어린 아들은 낚싯대를 치켜들며 자랑하고, 손가락만한 물고기지만 투망에 물고기가 걸리기만 하면 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투망째 치켜든다. 이들에게 안데스는 험산도 도전의 대상도 아니었다. 오로지 삶의 터전이었다.
페루 안데스 트레킹은 예상했던 산세와 달리 유순했다. 산봉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 우뚝 솟구쳐 있고, 어깨를 맞대며 거대한 장벽을 이루고 있으나, 산 아래 풍광은 넉넉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다. 장벽 아래 어디든 물이 가득 담긴 호수가 들어서 있고, 산릉과 산릉 사이는 평원을 연상케 할 만큼 거대한 초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곳이 원주민인 인디오들에게 생활터전이요 짐승들을 키우는 방목장이었다.
하산길-. 해발 4,000m대 높이의 허릿길은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후 절벽처럼 가파른 산길을 따라 야막 마을에 내려선 다음 카레라 부자의 집에 들어가 가족들의 환대 속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치퀴앙 행 11시30분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버스가 올스톱 상태라는 전갈이 돌아왔다. 이 날 밤 리마행 야간버스를 타지 않으면 다음날 칠레 산티아고행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상황. 이영석씨의 얼굴이 잔뜩 굳어지고 말이 사라졌다.
또다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트럭에 이은 승합차 대절이라는 적잖은 경비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예정대로 와라스에 도착, 비록 차가운 물이지만 닷새간 비와 땀에 찌든 몸을 씻어내고 모처럼 푸짐한 저녁식사를 즐긴 다음 이튿날 리마에서 새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글·사진 한필석 차장 pshan@chosun.com">ps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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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탄도 잘 보고갑니당^^3탄은 리마 여행기가 올라올려나?//편안한 페루 여행의 답례는 뭘루 해드려야할까요?ㅋㅋ
3탄이 시원치 않아 2탄에 추가로 넣었습니다.따라서 답례 받은 처지가 못 되네요..ㅎㅎㅎ
무한 리필 해드릴려고했더만...싫으시다니 어쩔수없네용ㅎㅎㅎ
라파엘도 이 리포터에 참가하면 노스페이스~ 후원할까요? ㅋㅋㅋ 해발 4천미터면 라파엘한테는 식은 세비체먹긴데~ ㅋㅋ
요새 가짜 북면이 어찌나 많던지..별로야요. ㅎㅎㅎ 식은 세비체라..아이고 ㅎㅎㅎ
다음...앨범 작업때 겸사겸사 후원해주십사~~!!해보셔요...한미모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아마도 가능할듯싶은뎅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