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죽비소리·철부지소리(114) 여름피서와 풍미탐승(風味探勝) 우리나라는 6월 말쯤부터 장마가 시작되는데 올핸 비도 안 내리고 날씨가 푹푹 찐다. 원래 7월 중순 쯤 되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데 올 여름은 이상기온으로 더위가 기승을 부릴 거라 기상청 예고대로 6월 중순쯤부터 예년의 한여름 기온을 맴돌더니 벌써 기온이 예년보다 훨씬 더 덥고 후덥지근해 더운 날씨로 온천지가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엇 그제(양 7월7일)가 소서(小暑)였고 19일이 초복(初伏)이며 뒤따라 23일이 대서(大暑)요 29일이 말복(末伏)이다. 이 한여름의 더위가 최고의 절정을 향해 치달으면 모두가 더위를 이기려 온갖 피서비법들을 다 동원한다.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온 피서비법은 그 시대에 걸맞게 참으로 다양했는데, 가령 정적인 피서 법으로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더위를 이겨냈다. 흐르는 강물이나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거나 녹음 우거진 정자위에서 목침을 베고 누워 솔솔 불어오는 들바람을 벗 삼으며 더위를 이겨냈다. 가정에서는 대청이나 뒷마루에 눕거나,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 더위를 이겨내거나 했다. 그리고 보통 평민들은 우물가에서 웃통을 벗어 찬물을 바가지로 떠 등목으로 더위를 식히거나, 밤에 냇가에 나가 몸을 물에 담그고 강수 욕을 했었다. 때로는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하기와 밤이면 죽부인(竹夫人)을 이용, 밤의 열기를 식히며 잠자리에 들었고, 대나무로 만든 대발과 등토시를 이용하여 더위를 이겨냈으며, 몸이 약한 사람들은 각탕(脚湯)으로 더위를 ?기도 했다. 즉 무릎 아래 부위를 물에 담그는 목욕을 하되 섭씨 43-44도의 열탕에서 3분정도, 16-17도의 냉탕에 1분씩 담그기를 되풀이 하는 것으로서 하체의 피가 잘 돌아 관절염 환자나 하체가 약한 사람과 병자가 취했던 피서 법이었다. 또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라 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하면 부정이 가신다하여 이 머리감기는 예로부터 내려온 습속이며, 또한 천렵(川獵)도 피서의 한 방법이었다.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그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피서한 지혜들이었다. 이렇게 천태만상의 피서법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특이한 더위퇴치법을 소개하자면 “극록담(克錄談)”이란 책에 신라시대의 용피선(龍皮扇)이라는 부채가 있었는데 양반신분의 상류층 선비들이 특수 어피(漁皮-물고기 가죽)로 만든 이 커다랗게 만든 부채를 하인들이 좌우로 흔들어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가시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두양잡편"(杜陽雜篇)이란 문헌에 보면 특이 한 게 눈에 띄는데 "영량지초(迎凉之草)라는 화분을 키워 이를 창문에다 올려놓으면 더운 바람이 지나면서 저절로 시원한 바람으로 바뀐다고 했다. 이 진귀한 화분은 봉황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해서 "봉수목(鳳首木)"이란 이름이 붙은 이 화분은 이를 방안에 두면 서너 칸 냉방은 거뜬했다고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생겨 먹은 화초이고 나무들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전설적인 이야기인지 요즘의 상식으로선 짐작키 어렵다. 여름은 땡볕에 푹푹 쪄야 제 맛이라 했지만 더위를 피하지 못해 더위에 지쳐 발생한 질병을 서병(暑病)이라 했고, 전통적인 더위를 이기는 원칙으로 이열치열(以熱治熱)식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이열치열은 무턱대고 열기가 있는 뜨겁고 고단백의 음식만을 취한 것이 아니라 너무 냉(冷)한 음식을 많이 먹어 해가 되는 것을 경계하였던 경구이다. 이와 아울러 우리의 조상들은 현명하게도 건강을 위해 두한족열(頭寒足熱)하라 했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의미다. 즉 화를 끊여서 골치 아프게 하지 말고 손발과 배는 따뜻하게 하여 순환이 잘 되게 하라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여름에는 머리로 열기가 모이고 소화기는 차가워질 수 있으니 머리는 차갑게 하고 찬 음식이나 음료 및 냉방기 등을 멀리하여 복부를 따뜻하게 하라는 지혜가 아니겠는가. 이열치열이나 두한족열이란 참으로 현명한 조상들의 지혜요 가르침이다.
한편 더위를 이기되 몸의 피서뿐만이 아니라 더위에 지친 몸을 보양(補陽)해야 한다. 그래야 더위에 지치지 않고 건강한 심신(心身)을 유지시키고 내일의 건강을 보전해야 건강한 삶을 지속시킬 수 있기에 보양 식(補陽 食)을 해야 한다. 이 것이 우리 조상의 현명한 삶의 지혜요 건강한 삶의 동인이며 지금도 그 풍속이 이어 내려오고 있다. 이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 비법(秘法)의 하나로 이어져 내려온 풍미탐승(風味探勝)이다. 풍미탐승이란 평소의 생활이나 식생활에서 벗어나 음식의 고상한 맛과 멋을 즐기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경치 좋고 시원한 산야를 찾아 먹을거리 등 별미(別味)음식 여행을 하며 노니는 것을 말한다. 이 풍미탐승이란 일상의 생활터전을 벗어나 물 좋고 산 좋으며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 쉬는 것과 맛있고 영양 있는 별비를 찾는데 대개 우리 조상들은 세시풍속(歲時風俗) 따라 즐겼었다. 그 예로 계절마다 찾아먹는 시절음식과 별식과 별미음식을 먹는 습관이 그것인데 여름철에는 복달임을 하는 복(伏)날 음식으로 보신탕이나 삼계탕 등 복날 음식이 그것이다. 그리고 민어탕이나 도미 탕 등도 그 보신의 일종으로 사랑 받아오고 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아들 내외와 손자 하나를 데리고 여름 보양 식을 사먹기 위해 어느 식당을 찾았었다. 냉방기로 식당은 시원해 옛날식 더위 식힘의 처방은 필요 없고 맛있는 음식을 가려 주문만 하면 되어있었다. 그래서 저녁을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공간에서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참으로 다양하고 편리한 여름나기 피서문화의 발달로 여름의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의 집안엔 냉방기와 선풍기 등이 있어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낭만이 없어져 버렸다. 다행이 아련히 옛날식 낭만적인 추억에로의 피서여정을 맛보기 위해 오는 초복(初伏)날에 하루 피서여행 겸 옛 직장 동료들과 충주의 동료 과수원 농장을 찾아가 즐기고자 약속되어있다. 앞만 보고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서 여러 담론과 바둑이라도 두면서 하루를 즐기려 한다. 그날을 기다리면서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의 한대목이 떠오른다. “ 천지는 만물과 나그네를 맞는 객사(客舍)요, 광음(光陰)은 백대(百代)의 지나가는 길손이다. 부평초 같은 인생이 꿈과 같으니, 기쁨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 인생이란 이 지구상에 태어난 역사의 흐름 속에 점하나 찍어놓고 가야하는 삶이 아니던가? 현대식 피서와 풍미탐승(風味探勝)의 일환으로 단 하루만이라도 회색도시를 떠나 자연과 어울리며 여름남을 즐기고자 한다. 2010. 7. 17 무더운 여름날 인덕원 우거에서 |
출처: 북소리 죽비소리 철부지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청암
첫댓글 항상 좋은글 올려 주시는 청암(정일상)선생님게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 하십시요.
세시풍속 따라 우리의 생활습관을 잘 정리하시거 올리시니 정말 좋은 자료라 여깁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 세대의
가르침으로 깨달아야 할 사안이라 이에 대하 감사를 전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더위에 유의하시길...
탁족이라도 하면서 여름을 나야 겠습니다. 어디 외국으로 떠나는 세태와는 다른 한국인의 생활방식대로 살아야 겟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피서가 최고지요.....
여름나기가 요즘 힘이 드는데 좋은 여름나기 힌트 많이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