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스님의 인세(印稅)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하기 어렵고 고된 사업은 출판업이라고 한다. 원인은 독서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불교계의 독서인구는 한국 사회의 평균 독서인구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니 거의 황무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런 열악한 조건에서 불교출판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포교라는 뜻을 세우지 않으면 애당초 안 될 일이다.
스님이 문서 포교에 뛰어든 것은 1974년이었다. 먼저 월간 「불광」을 창간하고 몇 년 지난 뒤에 ‘불광출판부’를 등록했다. 그 당시만해도 출판사 등록이 잘 안 될 때였다. 하다못해 출판사 등록만 가지고 있어도 사회 저명인사처럼 느껴질 시대였으니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쉽게 ‘불광출판부’ 등록이 성사된 것은 스님의 사회적인 기여와 공로 때문이다.
출판부를 등록하자 곧바로 성철 종정의 친저 『본지풍광(本地風光)』을 출간했고 불교 수행의 길잡이가 된 지침서와 여러 경전을 속속 간행했다. 그러나 책을 구입해서 보는 사람들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출간해도 그 출판비용의 대부분은 책을 간행하는 출판사가 짊어져야 했다. 도무지 수지맞는 사업이 아니었다. 물론 스님은 돈을 벌기 위해서 출판부를 등록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 권의 책을 내면 다음 책을 낼 수 있을 정도의 비용만이라도 마련되면 문서포교가 한결 순조로울 터인데 돈벌기는 고사하고 투자비용도 못 찾고 다음에 출간할 책의 제작비도 모이지 않았다.
그런 불광출판부 운영에 그래도 힘이 되었던 것은 스님의 수행력과 덕행이다. 그것은 스님의 초지일관 뜨거운 신심과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장한 원력과 이타의 보살행으로 말미암아 종단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불광의 문서포교 불사에 적극 협력해 주었다. 이런 힘은 돈이나 물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는 스님 자신이 쓴 많은 역.저술의 힘이다. 이 책들에는 스님이 친히 공부하여 얻은 안목과 경험에 의한 알찬 내용이라는 독자들의 믿음이 따랐다. 그랬기에 출간되는 즉시 호평을 얻었고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는 책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들은 스님의 신변잡담이나 에세이가 아니라 거의가 신심을 키우는 내용이었기에 불자들의 수행에 직접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찾았고, 또 서로 권해 가며 불법 공부의 지남을 삼았다. 스님의 저술들은 주로 경전 번역이나 수행법과 조사어록, 신앙생활에 대한 책들이다.
이미 말했지만 스님의 이런 책들은 오랫동안, 아니 지금까지 불자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소위 한국불교의 명저가 되었다. 그 원인은 좀 더 자세하게 짚어본다면 스님께서 늘 신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기에 그들의 고통과 아픔, 공부 중에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 되었다. 신도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고자 정진하고 노력하니 자연 그에 관한 글을 썼고, 그러므로 신도들에게 필요한 인기 있는 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본다. 그런 수행 위주, 기도 중심의 책을 불광출판부가 독점하여 출판했으니 그 힘이 여간 클 수밖에 없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거기다가 스님이 역.저술한 그 수많은 책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이 팔린다 해도 인세나 원고료 한 푼 지급하지 않고 전액 출판부 운영비로 썼으니 어쩌면 불광출판부가 가지고 있는 노다지 광산이라고 말해도 될 일이다.
그런데 내가 출판부 일을 맡은 후부터, 즉 출판부의 운영 사정이 어느 정도 좋아지자 스님께서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의 인세 이야기를 거론했다. 지금까지는 인세니 원고료니 생각도 하지 않고 지냈지만 이제 출판부가 본 궤도에 올랐으니 적절히 인세를 지급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운을 떼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스님의 속사정을 잘 모르긴 했어도 지금 와서 곰곰 생각해 보면 스님이 개인적으로 돈이 필요했던 것 같다. 스님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인세를 주었으면 하는 뜻을 조심조심 내비쳤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였는데도 스님은 그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미안해 하는 마음을 내보였다. 내 기분을 살펴가며 겸연쩍어 하는 표정으로 간단히 언급하곤 했다. 사실 나는 그 당시 그렇게 이야기하는 스님의 진의를 몰랐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출판부가 스님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또 스님은 돈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런 잘못된 생각에는 불광사 전체가 스님의 뜻에 들어 있는데 스님이 마음 먹으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스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힘들여 꺼내시면 나는 손쉽게 생각하기를, 상좌인 나에게 출판부를 잘 하라는 또 다른 당부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가벼운 우스개 정도로 받아들이곤 했다. 흔히 노인의 노파심으로 젊은 사람에게 일 잘하라고 은근히 독려하는 일쯤으로 생각하여 넘겨듣곤 했지, 그 일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려는 마음을 내지 못했다.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 매우 안타깝고 멍청한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때마다 건방지게도 웃음 띤 얼굴로, “스님, 제가 출판부를 잘 운영하여 돈을 더 많이 벌어서 한꺼번에 듬뿍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거의 상투적인 나의 대답에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가, 또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조심스럽게 예의 그 인세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그 당시 스님은 어딘가에 돈이 꼭 필요하여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결국 상좌에게 자신이 쓴 책의 인세를 거론했는데 그만 눈치없는 상좌는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 순간 그 자리만 적당히 피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딱한 노릇이란 말인가. 이러한 생각마저도 때늦은 뒤, 지금에 와서야 다시금 통감하게 되었으니 실로 한심한 일이며, 안타깝고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비록 스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알아듣지 못해도, 스님 생전에만 알아챘어도 두고두고 가슴을 치는 일은 덜했으리라!
이제 지난 일을 생각할 때면 그때의 광경이 너무나 선연하게 떠오른다. 가까운 상좌에게도 ‘너 가서 돈 얼마 가져와’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또 망설인 끝에 겨우 입을 떼신 스님께 아쉬움만 남기고 말았으니, 지옥 갈 큰 죄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바로 이런 일이 큰 죄가 아니고 또 무엇이 큰 죄이겠는가? 아아, 만시지탄은 엉터리 바보들이 즐겨 부르는 시대를 초월한 애창곡이구나.
이 글을 쓰면서 그때의 생각을 다시 하니 반성과 자책에 가슴이 아리고 아프기 그지없다. 만약,
“스님, 돈이 필요하시군요, 여기 얼마 준비해 왔습니다. 혹시 부족하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돈이 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하면서, 봉투를 마련하여 두 손으로 공손히 올려드렸다면 스님 마음이 짐이 얼마나 가벼웠을까! 지금에야 이런 때늦은 생각을 다시 해보지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틀림없이 상좌인 나에게 고맙다고 말씀하면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눈빛으로 건너다 보셨을 것이다. 그 다정다감한 자비의 눈길을 내 온몸으로 받으며 감개무량한 심정에 고개를 떨구었을 스승과 상좌의 광경을 그려보노라면 미련한 내가 너무나 밉다.
좀처럼 자신의 일을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았던 스님, 당신의 긴요한 사정으로 돈이 필요할 대,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고 생각해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서 부득이 상좌인 나에게 말씀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상황. 그런데도 상좌는 정작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딴 생각을 하고 딴전을 피우고 있었으니 그 바보 같음을 어디에 비유한단 말인가? 아, 이제는 도저히 밝은 낮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구나!
다시 곰곰 생각하면 정말 불경스럽고 외람스러운 일이 하나 더 떠오른다. 그때 수시로 스님에게 몰래 찾아와 용돈을 얻어가는 강원도에 사는 젋은 수행자가 있었다. 그가 올 때마다 딱한 사정이 안타까워 스님은 남몰래 용돈을 쥐어 주었고, 그런 장면을 몇 번이나 목도한 나는 젊은 사람에게 나쁜 버릇 들인다고 여쭌 적이 있다. 스님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들킨 것처럼 몹시 민망해 했다. 나는 그 후부터 스님에게는 돈이 없어야 한다고 아주 못된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짐짓 스님의 청을 모른 채 외면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디 이뿐인가, 살면서 스님을 안타깝게 한 일이…….
아,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노라면 너무나 아쉽고 한스러워 등에 땀이 흥건히 솟는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4 위법망구, 송암지원, 도피안사
첫댓글 살다보면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런 부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보현행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큰스님의 그 마음 또한 부모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함을 다시 챙겨 가족에게 돈에 대해 인색했던 부분이 적지않아 미안합니다.._()()()_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아 편하게 해 줄수 있음은 나의 행복이자 모두의 행복 임을...
모든 이의 원을 들어줄 수 있는 보살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