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晨門)이 묻길 "어디에서 왔는가?" 하자,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공씨(孔氏=공자)에게서 왔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하는 자로구나!"
'논어 헌문 편'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이상주의자를 한 마디로 정의해 주는 말이다.
신문이 공자를 평한 이 말은 나에게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평생 쓸데없는 짓들을 많이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의미나 가치가 없기 때문에 쓸데없다는 뜻이 아니라 애를 써서 해봐도 되지 않는, 즉 현실적으로 계산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들 즉 결과가 있는 일보다 결과가 없이 그저 애만 써야 하는 ‘뜬구름잡기’이다. 소소한 성과를 얻을 때가 있기는 했었지만 대게가 현실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들을 추구해왔었다. 대부분이 사익을 위한 일이 못되는 공익적인 일이기에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호주로 돌아와서 잡으려는 뜬구름은 상당히 현실적인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한인교민사회를 시작으로 해서 다른 이민자 구룹을 포함하는 노인대학을 만드는 일이다. 먼저 내가 사는 한인사회부터 가르칠 사람과 배울 사람들을 조직해 내는 일이 중요한 임무이다. 이 계획이 비교적 뜬구름이 될 가능성이 낮은 것은 호주 정부의 복지정책을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노인대학의 목표는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가르칠 수 있는 자료를 찾아서 작은 규모부터 큰 규모까지 그룹을 만들어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인력개발인 셈이다. 앞으로 노인대학을 넘어서 농장, 양로원, 공동묘지까지 세울 계획이다.
늦은 나이인 나를 불러준 My Liverland는 유아부터 노인까지 즉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 사이의 모든 부문에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문어발 복지 에이전트인 셈이다. 호주 정부의 복지정책을 구석 구석 파고 들어가서 인구의 18%인 노인들을 위한 영양가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노인의 존재는 약한 고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과 저장되어 있는 정보들이 세대를 넘어 공유될 수 있다면 노인의 존재가 약한 고리가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아지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가 시드니 한인사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노인대학은 이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구체적인 방법인 것이다. 거기에다 수익까지 있는 일이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노인계층에 파고 들기 위한 침투공작(?)의 한 가지 방법으로 대표적인 노년층의 소통 수단인 카톡방에 주목하기로 했다.
그래서 주변의 몇 사람에게 노인들이 많이 가입되어 있는 카톡방에 대한 정보를 구했더니 의외로 카톡방의 부작용을 언급했다. 한 마디로 카톡 때문에 피로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정보의 쓰레기가 넘쳐 흐를 수 있는 곳이 바로 노년층이 이용하는 카톡방이다. 카톡방에서는 주로 자신이 정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좋은 내용이라고 타인에게 단체로 카톡을 보내는 사람들때 대문에 피해가 많다. 현대는 정보가 넘쳐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이다. 선택의 능력이 없는 사람은 가치 없는 정보에 휘둘리게 된다.
정보의 왜곡외에 노인계층에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 모든 조직이 작은 이익과 사소한 감정적 차이 때문에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법이지만 노인사회는 특별히 그런 현상이 심하다. 유치원 세계의 아이들은 작은 일에 삐지고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러나 세상 떼가 많이 묻은 노인의 세계는 작은 일에 삐지고 좋아하는 일은 유치원 세계와 똑같지만 절대로 순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유치원과 달리 노치원은 어려운 곳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런 일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보니까 재미 있는 깨달음도 있었다. 처음에 중고차를 고르기 위해서 여러 차를 운전했다. 그러나 1년 반 만에 보험도 없이 처음 운전하는 차를 타는 일은 약간의 긴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도 길을 알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을 풀 수가 있었다. 길을 안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인생의 불안은 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배움은 인생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특히 종교는. 그러나 어떤 경우는 오히려 길을 더 돌아가게 만드는 때도 있지만.
다음으로는 만나는 사람마다 호주로 다시 돌아와 일을 하게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같은 이야기를 수 십번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야기에는 반드시 나를 오라고한 My Liverland 대표 Sammy가 빠질 수 없다. 즉 "Sammy라는 사람이 있는데…”로 시작해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Sammy와 우리 부부의 부모 자식 같은 사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성립이 될 수가 없음으로 재미있게도 Sammy 이야기는 나의 호주 귀한 창세기의 1장 1절이 되는 셈이다. 즉 나의 귀환은 Sammy의 존재가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창세기는 인류구원의 대서사시를 쓰기 위한 필수적인 시작이다. 즉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과학은 신앙이 정상적인 사고에서 어떻게 비정상적으로 사고로 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인 것이다. 해보지 않던 새로운 일을 하다 보니 배우는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