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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라 쓰고 '희망'이라 읽는다 올해 국립암센터 5대 원장으로 연임된 이진수 원장. 그는 미국 ND앤더슨 재직 시절,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인들을 치료해 화제가 됐고, ‘2001년 미국 최고의 의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세계적인 암 전문가다. 10년 전 귀국해 국내 암 치료와 연구에 매달려온 그는 이제 항암 신약 개발을 통해 혹한 속에서 자라나는 보리 싹 같은 희망을 본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만이 감돌 것 같은 국립암센터 행정동 3층 테라스에는 작은 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화분 몇 개로 분위기를 낸 정도가 아니다. 세 평 남짓한 공간에 갖가지 채소를 심은 나무상자가 빼곡하다. 심지어 껑충하게 자란 줄기에는 장맛비를 맞고 자란 오이며 토마토 등 과실이 튼실하게 달려 있다. 텃밭을 조성하려다가 배수와 유지 등의 문제에 부딪혀 궁여지책으로 화분을 들여놓았지만, 여느 주말농장 부럽지 않을 정도다. 이진수 원장의 아이디어로 조성된 ‘베지터블 가든’이다. “이것 보세요. 벌써 새가 쪼아 먹었네요.” 이 원장은 반쯤 남은 토마토를 내밀었다. 원망은커녕 반가운 얼굴이다.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들러 빨갛게 익은 토마토와 다 자란 오이를 따곤 하는 그에게 그곳은 생명의 공간이다. 오이와 토마토가 쑥쑥 자라는 것처럼 환자들에게 희망이 자라기 바라는 마음에서 정원을 조성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미군 측이 정주영 회장에게 유엔군 묘지에 잔디를 심어달라고 했대요. 엄동설한이었는데 잔디가 어디 있겠어요.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보리였어요. 파랗게 자라고 있는 보리를 몇 트럭이나 갖다 심었죠. 멀리서 보면 비슷하거든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바꾼 정주영 회장의 아이디어를 생각하며 정원을 조성했습니다.” 폐암 명의, 국내 항암제 개발에 힘쓰다 이진수 원장은 지난 6월 국립암센터 5대 원장으로 선임됐다. 암센터 개원부터 함께해 센터장과 부속병원장, 연구소장, 4대 원장을 지냈으니 국립암센터의 역사와 한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축하한다는 인사조차 부담스러워할 만큼 겸손한 사람이었다. “축하받을 만한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야전군 사령관으로 임명받아 전쟁터로 가는 셈인데 축하보다는 ‘무원을 빈다’, ‘살아서 돌아와라’가 더 맞지 않을까요? 암 정복의 프론트 라인에서 열심히 일하라는 직책이겠죠. 훈장을 받는 입장도,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포지션도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암 치료에 있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국립암센터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암은 무조건 죽는 병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 때문에 암이라는 진단이 나와도 정작 본인에게는 끝까지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로는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암센터’라는 이름을 걸고, 7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국립암센터를 개원했다. “암센터가 암을 오픈 디스크(환자에게 상태를 알려주고 치료하는 것)하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병원 간판만 봐도 ‘내가 암이구나’ 생각하게 됐으니까 피할 도리가 없었죠. 건물에 불이 나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하나요? ‘불이야!’라고 소리치죠. 암 환자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은 암에 걸렸으니 치료해야 한다’고 알려야죠.” 이진수 원장은 국립암센터 부임 전부터 이미 국내외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재직 시절,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 고 박성용·박정구 회장 형제를 치료해 화제가 됐다. 2001년에는 ‘미국 최고의 의사(America’s Top Doctors)’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한창 명의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이었던 서울대 의대 박재갑 교수의 권유를 받고 귀국했다. 당시 가족들은 귀국을 만류했지만, 그는 “국내 암 치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이며 조국에 대한 봉사”라며 한국행을 택했다. 국립암센터로 자리를 옮겨온 그는 암 치료 연구와 항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국내 암 치료 기술도 지난 10년간 꾸준히 발전해왔다. 덕분에 암 환자가 5년 동안 생존할 확률도 해가 갈수록 높아졌다. 1993~1995년에 41.2%였던 것이 2004~2008년에는 59.9%가 됐다. (여기에는 국립암센터도 한몫했다.) 국립암센터는 세계에서 13번째로 양성자 치료기를 도입해 치료기기 보유 면에서도 앞서 있고 새로운 치료법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양한 임상실험을 통해 신약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이진수 원장은 “이젠 암 치료를 위해 미국이나 일본으로 가는 환자는 없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것으로 ‘5분 진료’를 꼽았다. “미국에는 환자당 한 시간 정도 진찰을 해요. 주로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죠. 그런데 한국에는 환자당 진료시간이 5분 정도밖에 안 되다 보니 제대로 질문을 받을 시간조차 없어요. 물론 진료비와 관련된 시스템에 원인이 있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 달에 두 차례씩 공개강좌를 열고 있어요.” 그는 5대 원장으로 연임되면서 무엇보다 ‘항암제 개발’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4대 원장으로 있을 때부터 국가 차원의 항암 신약 개발 사업을 추진해 역량을 인정받았고 ‘국립암센터 비전 2020’을 선포하기도 했다. 암센터 내에 사업단을 설치하고 사업단장으로 김인철 전 LG생명과학 사장을 영입한 것도 이를 위한 것이었다. “암 환자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요. 국산 항암 신약을 제공해 암의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야죠. 올 6월 구성된 사업단을 중심으로 5년 안에 네 건 이상의 기술 이전과 글로벌 항암 신약을 한 개 이상 출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암은 나이 들면 생기면 주름살과 같아 암 치료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암 환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03년 중앙암관리본부에 등록된 암 환자는 11만 명이었는데 2009년 등록된 환자 수는 17만 9천 명이나 되고, 2011년 추정 암 환자 수는 무려 21만 6천 명이나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진수 원장은 원인으로 ‘고령화’를 지목했다. “5년 이상 생존율은 점점 늘고 있지만 5년을 살면 5년 늙는다는 뜻도 됩니다. 나이가 들면 또 다른 암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어요. 예전에는 환갑만 되어도 잔치를 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평균 수명 80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진단 기술이 발달되면서 암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역시 환경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예로 대장암 환자 수가 위암을 앞지른 결과를 언급했다. “2008년까지는 위암이 대장암보다 많았지만, 올해는 대장암이 위암보다 많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서구화된 식생활 때문이죠. 대장암은 고기를 많이 먹고 채소를 상대적으로 적게 먹는 식단에서 비롯되거든요.”
이진수 원장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취재 두경아 기자 | 사진 유진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