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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1.27.PM2시)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
세계 성취의 10종사
화엄경 한 단락 공부하는 시간이다.
11) 세계의 무차별
세계성취품 그 마지막 세계의 무차별, 차별이 없음에 대한 내용이 되겠다.
가. 10종 무차별
이시(爾時)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부고대중언(復告大衆言)하사대 제불자(諸佛子)야 응지세계해(應知世界海)에 유세계해미진수무차별(有世界海微塵數無差別)이니 소위일일세계해중(所謂一一世界海中)에 유세계해미진수세계(有世界海微塵數世界)가 무차별(無差別)이며 일일세계해중(一一世界海中)에 제불출현(諸佛出現)의 소유위력(所有威力)이 무차별(無差別)이며 일일세계해중(一一世界海中)에 일체도량(一切道場)이 변시방법계(徧十方法界)가 무차별(無差別)이며 일일세계해중(一一世界海中)에 일체여래(一切如來)의 도량중회(道場衆會)가 무차별(無差別)이며
그때에 보현보살이 다시 대중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응당히 알아라. 세계바다에 세계바다 미진수의 차별 없는 것이 있느니라. 이른바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에 세계바다 미진수의 세계가 있는 것이 차별이 없으며,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에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여 있는 위력이 차별이 없으며,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 일체 도량이 시방 법계에 두루 한 것이 차별이 없으며,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 일체 여래의 도량에 모인 대중이 차별이 없느니라.”
일일세계해중(一一世界海中)에 일체불광명변법계(一切佛光明徧法界)가 무차별(無差別)이며 일일세계해중(一一世界海中)에 일체불변화명호(一切佛變化名號)가 무차별(無差別)이며 일일세계해중(一一世界海中)에 일체불음성(一切佛音聲)이 보변세계해(普徧世界海)하야 무변겁주(無邊劫住)가 무차별(無差別)이며 일일세계해중(一一世界海中)에 법륜방편(法輪方便)이 무차별(無差別)이며
“또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 일체 부처님의 광명이 법계에 두루 한 것이 차별이 없으며,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 일체 부처님의 변화하신 명호가 차별이 없으며,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 일체 부처님의 음성이 세계바다에 널리 두루 해서 끝없는 겁 동안 머무름이 차별이 없으며,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 법륜(法輪)의 방편이 차별이 없느니라.”
일일세계해중(一一世界海中)에 일체세계해(一切世界海)가 보입일진(普入一塵)이 무차별(無差別)이며 일일세계해중(一一世界海中)에 일일미진(一一微塵)에 일체삼세제불세존(一切三世諸佛世尊)의 광대경계(廣大境界)가 개어중현(皆於中現)이 무차별(無差別)이라 제불자(諸佛子)야 세계해무차별(世界海無差別)이 약설여시(略說如是)어니와 약광설자(若廣說者)인댄 유세계해미진수(有世界海微塵數)하니라
“또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 일체 세계바다가 한 티끌 속에 널리 들어가는 것이 차별이 없으며, 낱낱 세계바다 가운데 낱낱의 작은 티끌에 일체 삼세 모든 부처님 세존의 광대한 경계가 그 속에 다 나타남이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불자들이여, 세계바다의 차별 없는 것을 간략하게 말하면 이와 같으나, 만약 널리 말한다면 세계바다의 미진수가 있느니라.”
세계바다의 무차별에 대한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을 화엄경을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보고 듣고 한다.
늘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경문을 과거 훌륭한 성인들이 다 함께 공부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것을 떠올리면 ‘아 정말 다행이다, 정말 어떻게 이런 행운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화엄의 5조, 7조, 또는 9조 화엄조사들을 열거할 때 용수보살이니 마명보살이니 인도에서는 그런 분들을 선조로 모시고, 그다음 중국에 와서는 두순 지엄 현수 법장 그다음에 우리나라로 오면 원효스님 의상스님 자장율사 이런 분들이 이러한 경문을 함께 읽고 그것을 음미하고 또 거기에 대해서 스스로 논하고 토론도 하고 생각도 하고 했다는 사실, 이 자취를 우리도 밟아서 이렇게 걸어가고 있다.
원효나 의상 스님이 읽은 그 경전의 발자취를 우리가 따라서 걸어가고 있다.
용수나 마명보살 같은 이들이 읽으신 그 대목을 나도 이렇게 읽고 있다.
또 가까이로는 서산 사명같은 이들, 고려 때 보조지눌스님 같은 이들 균여스님 같은 이들은 보현행원을 노래로, 향가로 써서 만민중들에게 소개를 하였다.
그런 큰스님들, 그런 훌륭한 성인들이 읽었던 그 길을 ‘아 이렇게 나도 읽고 있구나’ 또 ‘인연있는 여러분들과 함께 화엄경을 같이 읽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정말 다행하고도 다행한 일이다.
나. 게송으로 거듭 펴다
이시(爾時)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욕중선기의(欲重宣其義)하사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관찰시방(觀察十方)하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그때에 보현보살이 그 뜻을 거듭 펴려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습니다.
일미진중다찰해(一微塵中多刹海)가 처소각별실엄정(處所各別悉嚴淨)이어든
여시무량입일중(如是無量入一中)호대 일일구분무잡월( 一一區分無雜越)이로다
한 작은 먼지 속에 많은 세계바다가
처소를 각각 다르게 다 엄정했는데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것이 하나 속에 들어가지만
낱낱이 구분되어 섞이고 어긋남이 없네.
한 작은 먼지 속에 많은 세계바다가
처소를 각각 다르게 다 장엄했는데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것이 하나 속에 들어가지만
낱낱이 구분되어 섞이고 어긋남이 없네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하나의 작은 먼지 속에 수많은 세계바다가 있고, 세계바다마다 각각 다르고 청정하게 장엄하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것이 하나의 작은 먼지 속에 들어가지만 그 하나하나마다 낱낱이 구분되어 뒤섞이거나 어긋남이 없다. 즉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이치다. 시간적으로도 9세와 10세가 서로서로 상즉(相卽)하고, 공간적으로도 한 작은 먼지 속에 수많은 것이 상입(相入)하더라도 뒤섞이거나 어긋나거나 혼잡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각각 따로따로 제자리에 안립(安立)하여 있는 이치이다.
일일진내난사불(一一塵內難思佛)이 수중생심보현전(隨衆生心普現前)하사
일체찰해미부주(一切刹海靡不周)하시니 여시방편무차별(如是方便無差別)이로다
낱낱 먼지 속에 무수히 많은 부처님이 계시어
중생들의 마음 따라 널리 앞에 나타나
일체 세계바다에 다 두루 하시니
이와 같은 방편이 차별이 없네.
무차별을 말씀하신다.
낱낱 먼지 속에 무수히 많은 부처님이 계시어
중생들의 마음 따라 널리 앞에 나타나
일체 세계바다에 다 두루 하시니
이와 같은 방편이 차별이 없네
참 좋은 게송이다.
일일진내난사불(一一塵內難思佛)이 수중생심보현전(隨衆生心普現前)하사 일체찰해미부주(一切刹海靡不周)하시니 여시방편무차별(如是方便無差別)이로다.
참 좋은 게송이다.
일일진중제수왕(一一塵中諸樹王)이 종종장엄실수포(種種莊嚴悉垂布)하야
시방국토개동현(十方國土皆同現)하니 여시일체무차별(如是一切無差別)이로다
낱낱 먼지 속에 모든 보리수나무 왕이
가지가지로 장엄하여 드리웠는데
시방 국토에 다 같이 나타나나
이와 같은 일체가 차별이 없도다.
앞에는 낱낱 먼지 속에 무수히 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중생들의 마음 따라서 널리 앞에 나타났고, 그것이 일체 세계에 다 두루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기는
낱낱 먼지 속에 모든 보리수나무 왕이
가지가지로 장엄하여 드리웠는데
보리수를 한 번 상상해 보기 바란다. 부처님이 앉아서 성도하신 곳, 부처님이 그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정각을 이루신 곳, 부처님이 6년 고행 마지막 일주일에 우유죽을 얻어먹고 고행을 다 청산하고 목욕을 하고 ‘이제 나는 깨닫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런 각오를 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다행히 일주일 만에 깨달았으니까 일어나서 만중생들에게 그 깨달음의 이치를 펴려고 이렇게 화엄경을 설하고 ‘화엄경을 누가 이해하겠나’ 그래서 처음부터 아주 기초부터 ‘유치원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치부터 다시 설명해야겠다’ 해서 고집멸도 4성제라든지 12인연이라든지 8정도 그런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것부터 설명해서 80평생 법을 설해서 중생들을 깨우치게 된 사연이다.
이 보리수 나무가 보통 보리수가 아니다. 그런데
낱낱 먼지속에 모든 보리수나무 왕이
가지가지로 장엄하여 드리웠는데
먼지 속에 그 깨달음이 다 있다, 이 뜻이다. 왜 그 먼지속에 하필 보리수 나무가 있겠는가? 그 먼지 하나 하나도 전부 깨달음의 이치, 우주 만유의 본연의 이치가 그 속에 다 스며있다는 뜻이다.
시방 국토에 다 같이 나타나나
이와 같은 일체가 차별이 없도다
그런 내용이다.
일일진내미진중(一一塵內微塵衆)이 실공위요인중주(悉共圍遶人中主)하니
출과일체변세간(出過一切遍世間)호대 역불박애상잡란(亦不迫隘相雜亂)이로다
낱낱 먼지 속에 또 작은 먼지 같이 많은 대중이
사람 가운데 주인을 다 같이 둘러싸니
일체에서 뛰어나서 세간에 두루 하되
또한 비좁거나 잡란하지 않도다.
낱낱 먼지 속에 또 작은 먼지 같이 많은 대중이
먼지 속에 또 많은 대중들이
사람 가운데 주인을 다 같이 둘러싸니
인중주(人中主) 하면 사람 가운데 주인, 부처님이다. 부처님을 다 같이 둘러쌌으니
일체에서 뛰어나서 세간에 두루 하되
일체 모든 대중들로부터 다 뛰어나서 그 상태가 세간에 두루하되
또한 비좁거나 잡란하지 않도다
깨달음의 안목으로 보면 전부 이렇게 다가오고 그렇게 보인다. 보이는 대로 이렇게 설했지 보이지 않는 것을 어찌 이렇게 설했겠는가? 상상도 못한다. 보이지 아니하면 이러한 이치를 어떻게 상상해서 만들어 낼 수가 있겠는가?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는 그렇게 보려면 그렇게 보아진다. 그렇게 보려고 하면 그렇게 보아지는 것이다.
일진중무량광(一一塵中無量光)이 보변시방제국토(普徧十方諸國土)하야
실현제불보리행(悉現諸佛菩提行)하니 일체찰해무차별(一切刹海無差別)이로다
낱낱 먼지 속에 한량없는 광명이
시방 모든 국토에 두루 하여
모든 부처님의 보리행을 다 나타내니
일체 세계바다가 차별이 없도다.
낱낱 먼지 속에 한량없는 광명이
시방 모든 국토에 두루 하여
부처님 가르침의 광명, 진리의 광명이 시방 국토에 두루하여
모든 부처님의 보리행을 다 나타내니
모든 부처님의 보리행, 깨달음의 행을 다 나타내니
일체 세계바다가 차별이 없도다
내용이 아주 그럴 수 없다. 이것을 백 번이고 이백 번이고 읊조리고 읽고 그러면서 음미하고 가슴에 푹 젖어들도록 우리는 그렇게 해야할 줄 안다.
일일진중무량신(一一塵中無量身)이 변화여운보주변(變化如雲普周徧)이라
이불신통도군품(以佛神通導群品)하사대 시방국토역무별(十方國土亦無別)이로다
낱낱 먼지 속에 한량없는 몸이
구름같이 변화하여 널리 두루 하며
부처님의 신통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사
시방 국토에도 또한 차별이 없도다.
낱낱 먼지 속에 한량없는 몸이
구름같이 변화하여 널리 두루 하며
부처님의 신통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사
시방 국토에도 또한 차별이 없도다
일일진중설중법(一一塵中說衆法)하니 기법청정여윤전(其法淸淨如輪轉)이라
종종방편자재문(種種方便自在門)으로 일체개연무차별(一切皆演無差別)이로다
낱낱 먼지 속에 온갖 법을 설하니
그 법이 청정하여 바퀴가 구르는 듯
가지가지 방편의 자재한 문으로
모든 것 다 연설함이 차별이 없도다.
앞에서는 한량없는 몸을 이야기 했고, 여기서는 법을 말한다.
낱낱 먼지 속에 온갖 법을 설하니
그 법이 청정하여 바퀴가 구르는 듯
법륜(法輪) 법의 바퀴, 법을 법륜이라고 하고 ‘법륜을 굴리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런 데서 온 말이다.
옛날에 전륜성왕이 가면 4가지 보배로 된 바퀴가 앞에서 굴러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요즘은 바퀴가 흔하고 자동차다 자전거다 기차다 뭐든지 다 바퀴로 되어 있는데, 옛날 2600년 전에 기계화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는 그 바퀴가 무엇을 운반하는 도구로 참 신기하다. 신기한 것이다.
법이 그와 같이 바퀴가 굴러가듯이 신기하게 굴러간다 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가지가지 방편의 자재한 문으로
모든 것 다 연설함이 차별이 없도다
그 법륜이 뭐든지 다 설했다.
8만대장경이 바퀴가 아주 쉽게 굴러가듯이, 온 천하에 진리의 수레바퀴가 굴러간다. 그래서 불교마크 같은 것을 할 때 보면 꼭 8정도를 안에다가 8개의 지지대를 넣고 바퀴를 만들었다. 초기에 부처님께서 4성제 8정도를 설했다 라고 해서 법륜마크를 그렇게 한다.
인도에는 법륜마크가 국기의 문양으로 되어 있다. 그것이 불교에서 출발한 것인데 그렇게 쓴다. 그런 것들도 전부 연관시켜서 우리가 떠올리고 가슴에 새기면서 보면 훨씬 신심이 더 난다.
일진보연제불음(一塵普演諸佛音)하야 충만법기제중생(充滿法器諸衆生)호대
변주찰해무앙겁(徧住刹海無央劫)하니 여시음성역무이(如是音聲亦無異)로다
한 먼지에서 모든 부처님의 음성을 내어
모든 중생들의 법기(法器)에 다 충만하되
세계바다에 두루 머물기를 한없는 겁 동안 하니
이와 같은 음성도 또한 차별이 없도다.
여기는 음성이다.
한 먼지에서 모든 부처님의 음성을 내어
모든 중생들의 법기(法器)에 다 충만하되
법의 그릇에 다 충만하되
세계바다에 두루 머물기를 한없는 겁 동안 하니
세계바다에 두루 머물기를 한없는 겁 동안 하니
이와 같은 음성도 또한 차별이 없도다
한 먼지에 모든 부처님의 음성이 거기에 다 들어있고 거기에서 중생들의 법의 그릇에 다 채운다. 법의 그릇에 전부 부처님 설법의 음성으로 다 채운다.
정말 좋은 표현이다. 실질적으로 우리 마음에 그런 이치가 얼마나 와 닿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다음의 문제고 경문, 경전에서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그 뜻은 참 그럴 수 없다.
공간과 시간과 음성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서로서로 상즉상입(相卽相入)함을 밝혔다. 사(事)와 사가 무애할 뿐만 아니라, 사(事)와 부처님의 음성도 또한 무애하다. 한 먼지에서 부처님의 음성을 내어 중생들의 법기에 충만하게 한다. 그것이 무량 아승지겁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사와 음성과 시간이 서로서로 상즉상입하여 무애자재함을 밝혔다.
찰해무량묘장엄(刹海無量妙莊嚴)을 어일진중무불입(於一塵中無不入)하시니
여시제불신통력(如是諸佛神通力)이여 일체개유업성기(一切皆由業性起)로다
세계바다 한량없는 묘한 장엄을
한 먼지 속에 다 들어가게 하니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 신통력이여
모두가 다 업성(業性)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도다.
세계바다 한량없는 묘한 장엄을
세계바다 한량없는 묘한 장엄을
한 먼지 속에 다 들어가게 하니
미세먼지 먼지먼지마다 세계바다 한량없는 묘한 장엄이 다 그 속에 들어갔다.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 신통력이여
모두가 다 업성(業性)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도다
업의 성품으로 업의 원리로 말미암아서 일어났도다.
일일진중삼세불(一一塵中三世佛)이 수기소락실령견(隨其所樂悉令見)하시니
체성무래역무거(體性無來亦無去)로대 이원력고변세간(以願力故徧世間)이로다
낱낱 먼지 속에 삼세의 부처님이
그 즐겨함을 따라 다 보게 하시니
체성(體性)은 옴도 없고 감도 없으되
원력(願力)을 쓴 까닭으로 세간에 두루 하였네.
낱낱 먼지 속에 삼세의 부처님이
그 즐겨함을 따라 다 보게 하시니
체성(體性)은 옴도 없고 감도 없으되
원력(願力)을 쓴 까닭으로 세간에 두루 하였네
세계바다의 한량없는 아름다운 장엄들이 먼지 하나 속에 다 들어가고, 낱낱 먼지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중생들이 좋아하는 바대로 마음껏 본다. 그러나 체성은 본래로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 다만 원력을 써서 일체 세간에 그와 같이 두루 하다.
세계 성취의 인연과 세계 성취의 의지해서 머무는 것과 세계 성취의 형상과 세계 성취의 체성과 세계 성취의 장엄과 세계 성취의 방편과 세계 성취의 부처님이 출현하심과 세계 성취의 겁의 머무름과 세계 성취의 겁의 전변차별과 무차별 등을 설명하는 것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세계성취품이 한 품이 끝났고, 제7권도 끝났다.
그동안 유마경 세 권짜리를 다 했고, 임제록을 열 여섯 번에 걸쳐서 했고, 그러는 사이사이에 화엄경을 계속했기 때문에 화엄경을 벌써 일곱 권이나 읽었다.
거칠게 읽었고, 거칠게 설명했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는데, 늘 아쉽다.
한 열 명 이내로 딱 앞에 마주 앉아서 서로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하면서 그야말로 ‘이 잡듯이’ 이 잡는 것이 살생을 비유한 것이긴 한데, 낱낱이 하나도 빠뜨리지 아니하고 자세하게 따지고 천착하고 연구하고 해서 그렇게 한 줄씩 한 줄씩 넘기는 것을 우리가 옛날부터 ‘이 잡듯이’라고 한다. 이가 있던 시절에 이를 잡는데 아주 샅샅이 잘 잡아야지 만약에 한 마리라도 빠뜨리면 그것이 또 새끼를 쳐서 금방 하룻밤사이에 그만 온 옷에 다 퍼져 버린다. 옛날에 그런 세월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뭘 자세히 놓치지 않고 하는 것을 ‘이 잡듯이 한다’고 한다. 마당에 풀을 뽑는 것도 그렇게 하나도 빠뜨리지 아니하고 자세하게 하는 것을 옛날 사람들은 으레 ‘이 잡듯이 한다’그랬다.
여러가지 참고서를 잔뜩 옆에다 쌓아 놓고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밤이다 낮이다 이런 것도 구애받지 말고, 앉아서 줄기차게 서로 토론하고 낱낱이 음미하고 보고 좋으면 봤던 것을 또 흥얼거리고 그러면서 음미하고 이렇게 해서 그 책장을 넘겼으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늘 한다. 그렇게 해야 이것이 야무지게 봐진다.
그렇지 아니하고 81권이나 되는데 ‘양이 많다, 시간은 제한이 있다’ 이런 것 저런 것 여러 가지 제약적인 것들을 떠올리면서 하면 참 거칠고 아쉬움이 많다. 그러나 또 이렇게 밖에 달리 하는 방법이 없다.
옛날에 내가 우리 방장 스님하고 일본에 여행을 갔었다.어떤 한국스님이 그분도 범어사에서 같이 학인으로 있던 스님인데 나보다는 훨씬 선배 스님이었다. 그 스님 절이 오사카에 있었는데 청광사(靑光寺)라고 푸를 청(靑)자하고 빛 광(光)자라는 작은 절을 해서 거기서 사셨다.
우리가 거기다 걸망을 풀어놓고 여행을 다니는데 여행을 며칠 다니고 나서 그다음에 나는 그 스님과 범어 공부를 했다. 그 스님이 평생 일본서 유학하시면서 범서, 범어, 범자 이런 것을 많이 공부하셨다. 그런 공부가 우리나라에 없을 때였다. 그런 것이 없을 때였는데 그 스님이 평생 그것을 공부해서 한국에서는 불러주지도 않고, 일본에는 그런 데 대한 유능한 학자들도 많고 해서 어디에 교수로 그렇게 채용도 안되고 공부는 꽉 차 있고 그래서 설명을 하기에 내가 앉아서 들으니, 나는 항상 학인자세니까 귀가 솔깃했다. 재밌게 솔깃하게 들으니까 당신이 하신 말씀이 삭삭 스며드는지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재미있어가지고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렇게 내 공부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하면서 전부 있는 대로 족족 꺼내서 다 설명을 하고, 천수경에 있는 진언 거기 범서로 써있는 것을 다 배우고 설명 다 듣고 그다음에 능엄주 설명을 다 들었다.
그렇게 할 때 그 절에서 그 스님이 하고 나하고 둘이서 일어나면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 먹고, 그 자리에 앉아서 그저 줄기차게 공부하고 그다음에 또 점심때가 되면 스님이 나가더니 먹을 밥을 사왔다. 거기서 밥 해먹고 하면 시간이 가니까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까워서 간단하게 김밥 같은 종류를 사가지고 와서는 책상위에 얹어놓고 또 공부하는 것이다. 역시 공부하면서 먹고 먹으면서 공부하고 그렇게 해서 오후 3시 4시쯤까지 하고 또 그때 커피하고 빵 한 조각을 먹고 또 앉아서 하면 저녁 9시 10시가 되었다. 그런 세월을 며칠을 보냈다.
그러면서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그것을 수리 수리라고 하는 것이 길상 길상 묘길상 마하길상 그런 뜻이라. 내가 중노릇 10년에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그거 하나 이제사 알았다고 내가 그렇게 표현했을 정도로 우리가 천수경이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 진언이라든지 다라니라든지 주문이라든지 이런 것이 참 많은데 그 뜻을 모르고 그냥 외운다.
그 스님한테 우리가 평소에 외우고 있는 염불 속에 있는 모든 주문 다라니 진언을 다 공부를 했다. 또 범서도 공부했다. 범서 쓰는 법도 배우고 서점에 가서 범서 책도 사고 일본 사람들은 그때만 해도 벌써 범서로 사경을 하고 있었다. 범서로 된 반야심경도 있었다.
책이 무거운데 그런 것을 일일이 다 사서 잔뜩 해서 한달 남짓 둘이서 공부했다.
우리 방장 스님은 벌써 한국에 가버렸고, 나만 떨어져서 공부를 했다.
둘이 앉아서 그렇게 공부를 하니까 제일 죽이 맞고 공부가 제대로 되었다.
내가 앞서 말했듯이 화엄경을 한 열 명 이내 사람들이 딱 앉아서 서로 묻고 답하고 서로 묻고 답하고 밤이고 낮이고 이런 것 분별없이 우리가 그런 세월로 보내면서 화엄경을 공부하면 ‘정말 꿈같은 세월이겠다’ 하는 생각이 나서 말씀드리다 보니 내가 일본서 다라니 공부하던 기억이 나서 말씀을 드렸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벌써 7권 세계성취품까지 오늘 공부를 마쳤다.
오늘 책걸이를 잘 해야 되는데, 책걸이 할 일만 남았다.
이것으로써 오늘 오후 2시 공부는 마치겠다.
*
오신 분들, 여초스님, 2월 1일날 공부를 하고 싶어서 몸살을 할 정도인데 여기 또 오늘 뉴스를 보니까 5백명으로 불어났고 부산도 부산이 왠지 숫자가 많다. 그래서 2월 1일날 부득이 공부를 못하게 됐다. 저도 아쉽고 안타깝다.
“대선스님 2월 1일날 우리 공부해야 되는데 또 코로나가 더 성해서 일단 2월달도 쉬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3월달은 괜찮겠지요. 대선스님도 그렇게 아셨죠?”
여기까지 보겠다.
*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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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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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낱 먼지 속에 무수히 많은 부처님이 계시어 중생들의 마음 따라 널리 앞에 나타나
일체 세계바다에 다 두루 하시니 이와 같은 방편이 차별이 없네.
낱낱 먼지 속에 삼세의 부처님이 그 즐겨함을 따라 다 보게 하시니
체성(體性)은 옴도 없고 감도 없으되 원력(願力)을 쓴 까닭으로 세간에 두루 하였네.
깨달은 사람의 안목으로 보는 세계는 이렇게 다릅니다. 우리들의 안목도 어서 빨리 이와 같아지기를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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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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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