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단어로 entomophobia라는 어려운 말이 있습니다. insectphobia라는 말과 유사어이니 insect(곤충) + phobia(공포증)가 합쳐진 말입니다. 곤충공포증이란 뜻입니다.
도시의 역사는 우리나라나 잘사는 나라들이나 오래된 것은 비슷하나 개발도상국들의 도시모습은 근래들어 삭막하고 자연파괴형 극도의 인위적 환경으로 인구와 건물 집약형인데 반해, 잘 사는 국가들은 다운타운과 업타운의 철저한 구분을 통해 자연 속 주거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잘 사는 국가들은 도시나 도시주변에 살아도 전원과 같은 생활터전인 경우가 많고 그런 만큼 자연 속 생물들과의 조우도 빈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특정 곤충에 극도의 공포를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험을 통해 곤충공포증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곤충공포증 유발이 잦은 환경이니만큼 특정곤충 공포증을 표현하는 단어도 다양합니다. 벌이냐 개미냐 파리냐 거미냐 등에 따라 그 공포증를 나타내는 용어도 다양합니다. 단어라는 것이 주거, 생활, 식이환경 등에 맞춰 발전하기 마련이라서 자연과 밀접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문화를 이런 용어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시골생활은 곤충에 대한 공포증을 갖고있다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 영흥도 집에서 매일 눈뜨면 보게되는 대형거미는 곤충공포증이 별로 없는 저같은 사람에게도 적응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곤충도 매년 겨울을 겪기는 하지만 사실 버티고 버티는 것이지 인간의 따뜻한 환경을 경험한 곤충들은 자꾸 인간집으로 들어오고싶어 합니다.
얼마 전에는 겨울보내기를 위해 화분들을 실내로 들였더니 화분 하나에 집을 짓고있던 말벌들까지 덩달아 들어와 며칠을 같이 지냈습니다. 말벌이라 처음에는 좀 무섭고 다가올까봐 겁도 났지만 실내에서 며칠머문 말벌들이 애타게 밖에 나가려다가 기진맥진해져 버리니 제가 처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한마리가 과감하게 다가와 내 팔뚝에 침을 놓았지만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한거라 살짝 따끔한 정도일 뿐이었습니다.
도시에서 만났으면 비명이 터졌을 곤충들을 수시로 만나는 건 시골생활의 묘미이자 공포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곤충들도 있기 마련이라 서로 상쇄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름에 자주 만나게 되는 긴꼬리제비나비는 팔랑낼개짓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함 그 자체입니다.
포비아란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공포증이 불안 혐오 등의 뇌적 기피현상에서 심장건강에 무리를 주는 방향까지 발전하면 포비아가 됩니다. 포비아 현상이 무서운 것은 심장기능에 쇼킹한 타격을 주기 때문입니다. 태균이가 심부전증이라는 극단의 심장병 진단을 받고보니 세상판단이 잘 되지않는 우리 아이들이 자주 겪을 수 밖에 없는 공포증은 결국 심장기능을 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근데 우리 아이들의 공포증이 참으로 비사회적인 것은 우리 아이들은 곤충같은 것에 공포를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해충인데도 아무렇지않게 만지고 지켜보기도 해서 우리 아이들의 공포감이란 것이 뇌전반의 인지기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공포관장 영역인 편도체만 가동되는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편도체만 가동되는 공포는 사실 인간방식이 아닌 동물방식이라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는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무작정 공포를 갖는 것은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공포의 대상을 목격했을 때 인간의 뇌적 반응방식은 편도체(amygdala)를 거쳐 공포대상물에 대한 사회적 판단과 대처를 빠르게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자주 불안을 느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거부하는 발달장애 아이들은 편도체만 자극되서 정체파악할 새도 없이 무조건 공포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동물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자연 속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도 그 활동을 계속 해나가는 인간승리 스토리입니다. 곰이나 상어, 악어 등의 공격으로 인한 심한 부상을 입고도 그 동물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영역에 우리들 침범했기에 발생한 일이라는 진정한 자연법칙에 대한 인정태도는 이제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합니다.
영어 원제로는 The Shallows 국내에서는 언더워터로 번역된 영화가 있습니다. 서핑도중 암초를 만나 바다에 고립된 후 무차별적인 상어의 공격을 받으며 영화 내내 무시무시한 상어로부터의 생존게임이 펼쳐지는데요, 결말은 이 엄청난 공포상황에서 그녀는 살아남았고... 그리고 구조되어 세월이 흐른 후 그녀는 서핑보드를 잡고 그 바다를 다시 찾습니다.
포비아의 경험은 무서운 대상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심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데 있습니다. 그야말로 강심장을 만드는 것, 포비아의 경험이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집안에서 꿋꿋이 버티는 거미도 사랑스러워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