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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주천면 판운교에서 본 평창강(서강)
평창강은 홍천강과 더불어 지역 이름을 쓰는 대표적인 강이다.
강 이름은 특정 지역의 지명을 잘 쓰지 않지만( 강물이 흐르면서 도,시.군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다른지역으로 넘어 가는 물길에 먼저 발원해서 흘러 지났다고 해서 지역이름을 붙일 수 없는 노릇이다)
홍천강은 모든 물길이 홍천에서 흘러와서 붙인 이름이고
이곳 평창강 역시 100km이상 평창땅을 지나며 흐르고, 영월군 주천면부터 남항강과 만나는곳까지 45km정도 영월땅으로
흐르기 때문에 평창강이라 이름 붙은 것으로 보인다.
강가에 자리잡은 영월 화석 박물관에 잠시들러 구경하고 나오기로 한다.
어떻게 보면 비도 오고하니...비 피할곳 잠시 구경삼아 시간보내는것도 좋으리라
입장료 5천원 이며 1층과 2층으로 구성되어 오래전 화석이 잘 정리되어 있는곳이다.
화석중 거대한 공룡 뽀다구만 생각하고 들어 갔지만
눈에 들어오는건은 별똥별과 암모나이트 화석 두가지만 눈에 들어온다.
암모나트 팽달이와 비슷하게 생겨서 더욱 정감가고 이녀석만 사진 찍어 본다.
아크테릭스와 거부기
이녀석들도 눈에 들어오고...2층 가운데 값비싼 별똥별(22억)도 있었고
그외 많은 종류의 화석이 있었지만
팽달이가 가장 좋았음
화석 박물관을 나와 장충 마을로 가는길에
강건너 아름드리 느티나무 속으로 무다리 마을이 눈에 들어 온다.
지나온길
이곳에서 강 건널 수 있는 소나무로 만든 섶다리가 있었지만
장마철에 떠내려가고 다리가 없다.
그래서 강건너 마을 이름이 무다리란 이름을 가진 동네가 자리한다.
*.비만 오면 섶다리가 떠내려가서 다리가 없다는 뜻의 無다리
인천에서 오신 관광객분들
장충 약수물 한사발 하고 가시려는듯...관광버스 한대에서 계속 몰려들어 물 한모금 마실여유가 없고
강건너 배거리산의 일부가 안개비 속으로 흐리게 보인다.
시멘트 임도길로 진행
평창강길 149km 중에서 가장 좋은곳이 이제부터 시작이 된다.
장충마을에서 본 배거리산
장충마을은 충주 고씨 집성촌이였으나 지금은 외지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벌초하러 오신 忠州高氏(충주고씨)분
가을 추석되기전까지 벌초를 몇번이나 하러 오신다고
잠시 서서 이곳 마을의 유래와 인근 마을까지 유래에 들어 본다.
지나온 장충 마을과 배거리산
배거리산은
오래전 세상이 물로 가득 찼을때 산정상 부분에 배한척 겨우 댈 정도의 자리만 남았다고 해서
배거리산이라 부른다.(배가 산정상에 걸리다 이런뜻)
배거리 산 반대편에 자리하는 달래산
짜잘한 산에 가려 안보이지만 보이는 산넘어 달래산이 있음
달래산은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때 다래 한개 정도만 남고 모두 잠겼다고해서 붙은 이름
배거리산의 모습이 멋지지만 산정상 남쪽은 채석장이였기에 흉물스럽게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거대한 피라미드 처럼 보인다.
매운교 다리건너 한반도면 매운리
구름이 가득하다고 붙은 이름
한반도면 광전리로 가는 짜잘한 고개에서 본 지나온 강가
장마철이 끝나고 나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을곳으로 보인다.
백덕지맥 56km 광탄 고개마루
백덕지맥
평창 서쪽 지맥길 태기산 남쪽에서 시작되어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에서 맥을 다하는 56km의 산줄기이다.
영월군 한반도면
자그마한 동네지만 이름도 당당한 한반도 면이다.
이곳 매밀 국수집에서 한그릇 시켜놓고 기다리니
땀 냄새 때문에 다른 손님들께 완전 민폐
얼른 달라고 해서 입으로 반, 코로 반들어 갈 정도로 먹고 나온다.
이곳에서 강가로는 더이상 진행이 어려워 백덕지맥길의 방울재로 넘어 간다.
방울재 삼거리에서 한반도 마을 방향으로
한반도교를 건너며
선암마을을 뒤로하고 도로따라 한반도 지형 전망대 주차장으로 와서 한반도 지형을 닮은곳으로 진행
대한민국을 닮은 지형도 구경 하려는 나들이객이 엄청 많다.
백덕지맥 날머리가 저곳이다.
인증 담고
북쌍1리 마을에서 제방둑 따라가면 길이 끊어져 더이상 강가로는 진행이 어렵고
영월군 남면 연당 마을로 가는 도로따라 가야한다.
비 그치고 나니 후덥지근 하고 더워서 도로따라 걷기도 불편하다.
산속이라면 바람이라도 간혹 불어 올텐데 그늘없는 곳에서 그늘 찾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도로따라 올라오니 짜잘한 고갯 마루를 지나고 영월군 남면 연당이란 동네를 지나는데 동네 입구 초입에 슈퍼가 있지만
주인장은 어딜가셨는지 문은 굳게 닫혀있고 연당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봐도 식당도 안보이고 슈퍼도 안보인다.
연당교에서 본 서강 모습
강따라 왔으면 앞에 보이는 산을 지나야 하는데 여름에 저곳으로 갔다가는 고생할것 같아 결국 돌아오게 된다.
장마철이 아니라면 물한번 건너면 될것을...
연당교 지나서 북쌍 삼거리에서 강가로는 길이 없어 못가고 짜잘한 고갯 마루를 지나 본 문곡면의 시루산
이길은 조선 6대조 왕인 단종께서 유배길로 청령포가 가실때 지나던길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단종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길은 한번 가면 두번 다시 못올길이란걸 알면서 걸었을까
나랏일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어린 정순왕후는 살아있을까?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부디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만나리라... 이 생각하며 걸었을것 같다
계유정난(癸酉精難)때 단종의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은 권람.신숙주.한명회 등과함께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 황보인 그리고 동생인 안평대군등 단종 측근 새력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단종의 유배길은 다음과 같다.
창덕궁-화양정-광나루-여주-이포나루-어수정-원주-어음정-군등치-배일치재-옥녀봉-청령포
앞은 옥녀봉
조선 6대조 왕이셨던 단종께서 유배길로 이길을 지날때 앞의 옥녀봉을 두고 부인인 정순왕를 닮았다고 했던 산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산인 옥녀봉
살아 있으면 꼭 찾으러 가겠노라 그렇게 헤어진 길이...
마지막이 되는길이다.
옥녀봉을 뒤로하고 잠수교로 와보니 물이 너무많아 건널 형편은 못되고
반대편으로 가 보고 건너기로 했지만 선돌 바위에서 더이상 길은 없어져
하는수 없이 31번 도로따라 소나기재로 향한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에 숨쉬는것 마져도 힘들고
향기로운 땀냄새 때문에 날파리는 끝도없이 눈앞으로 달려드니 잡아도 잡아도 끝도 없다.
나무잎으로 흔들다가 내 스스로 지쳐 니맘대로 하라며 포기
선돌
몇번 와본곳이지만 언제나 이곳에 서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선돌바위 사이로 흘러가는 강물은 단종의 넋이 살아있는 청령포로 향하는 물길이다.
선돌 유래
선돌 구경하고 다시 도로따라 진행하며 단종 임금이 계시는 정릉으로 발걸음을 빨리해본다.
장릉
조선왕조 제6대 임금인 단종 대왕의 능이다.
세조2년(1456년) 6월 집현전 학사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이 상왕(단종)복위사건으로 참형을
당하였으며 다음해 6월21일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그 다음날 영월 청령포로 유배 되었으며 그곳에서
2개월간 기거하시던중 홍수로 인하여 관풍현으로 옮기셨다.
세조3년 여섯째 삼촌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책이 발각 되면서 노산군은 폐서인이 되었고, 그해 10월 24일 사사(賜死)되었
는데 그때 춘추(春秋) 17세였다.
단종의 유해가 동강으로 흘렀을때 영월호장 엄흥도가"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것은 달게 받겠다"는 충정으로
옥체를 수습하여 이곳에 밀장(密藏)하였다.
장릉의 유래
단종비각
영조 9년에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건립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朝鮮國端宗大王莊陵)이라는 글이 음각 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단종 대왕(端宗大王)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정자각
제향을 올릴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시는곳
장판옥(藏版屋)
정조15년에 건립한것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바친 충신위(忠臣位)32인
조사위(朝士位)186인, 환자군노(宦者軍奴)44인 여인위(女人位) 6인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신곳
잠시 묵념 드리고
엄흥도 정여각
이 비각은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영조 2년에 세운것이다.
충신 엄흥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되어 관풍현에서 1457년 10월 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滅)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장릉을 구경하며 발길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어린 임금 단종을 생각하며 엄흥도라는 사람을 그려본다.
세조가 三族을 멸한다고 했지만 동강으로 떠내려가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며 엄흥도 집안의 선산에 고이 모셔두었다.
앞은 청령포이며 강가 가운데 절벽은 단종께서 궁궐이 있는 한양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다는 노산대 바위 절벽이다.
장릉에서 15분 거리에 청령포가 자리하니 유람선타고 청령포로 발길을 옮긴다.
강건너편에 도착하자 먼저 반기는건 굵은 자갈돌이 반기며
자갈돌을 지나자 다시 아름드리 소나무가 반기는데 먼발치로 단종께서 계셨다던 초라한 집 한채가 보인다.
청령포 국가 명승지 50호
조선왕조 제6대 임금인 단종께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처음으로 유배되었던 곳이다.
삼면이 깊은 강물이 흐르고 한곳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유배지로
적합하다.
단종은 1457년 6월 28일부터 이곳에서 두달간 유배생할을 하다가 그해 여름에 홍수로 정령포가 범람하여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현으로 옮겨 유배 생활을 한다.
1726년 영조 2년에 단종의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은 출입을 금하는 "금표비"를 세웠고 1763년 9월에는 영조가
친필로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地)라는 비문을 써서 단종이 살던 집터에 세우고 건립하였다.
2000년 4월에 단종이 기거하던 곳에 지금의 집을 복원 건립함
단묘재본부시유지비
읽어 보시고
인형 모형으로 전시된 단종과 하인
단종 인형
단종임금께서 죽음 직전에 지은시 보자면
"원통한 새 한마리 궁중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 잃은 그림자 푸른 산을 헤메누나.
밤마다 잠 청해도 잠들 길 없고 해마다 한을 끝내려 애를 써도 끝없는 한이로세.
울음소리 새벽산에 끊어지면 그믐달이 비추고 본 골짝에 토한 피가 흘러 꽃 붉게 떨어지는구나.
하늘은 귀먹어서 저 하소연 못 듣는데 어쩌다 서러운 이 몸의 귀만 홀로 밝았을고."
그리고 또다른 시
"달밝은밤 소쩍새 슬피우니
시름 못잊어 자규루에 기대었네
네울음 소리 듣기 괴롭구나
그소리 없으면 내시름도 없을것을
세상에 괴로운 사람에게 내 마음 전하노라
춘삼월 자규루엔 오르지도 마오"
국역 연려실 기술: 조선 후기 학자 이긍익이 쓴 조선시대 야사에는 단종 죽음에 대한 그날의 기록이 남아있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잇으니
나장이 시각이 늦어진다고 제촉하였다.
도사가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앞에 엎드려 있으니 단종께서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여기에 온 까닭을 물으니
도사가 대답을 못하였다.
통인 하나가 항상 단종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단종의 목에 걸고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 당기니 아홉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 하였다.
시녀와 시종들이 다투어 강에 몸을 던져 죽어서 강가에 시체가 가득하였고, 이날 뇌우가 크게 일어나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정순왕후는 궁궐에서 쫓겨난뒤 동대문 인근 지금의 숭인동 산기슭에 초가삼간을 짓고
따라나온 시녀의 동냥으로 살다가 이후로는 인근 아낙네의 적선으로 살았다
나중에는 염색 들이는 일을하며 근근히 연명 하면서도 죽을때까지 세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았으며
조석으로 인근 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무사를 기원했고 단종의 죽음을 알고 평생을 통곡하며 명복을 빌었다
정순왕후는 사뭇치는 그리움과 가슴깊이 한을 묻으며 82세까지 사셨다고 한다.
단종이 기거하던 바로옆에 시중들던 시녀들이 기거하던곳
청령포 관음송
천연기념물 349호로 지정
높이 30미터.가슴둘레 5미터
나무의 나이는 확실하지 않으나 단종 임금께서 유배생활을 할때 이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약 600년 정도로 추정한다.
이소나무를 관음송이라 부르는것은 이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 하여 볼관(觀) 들었다 하여 소리음(音)자를
써 관음송(觀音松)이라 부른다.
노산대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질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므로
노산대라고 부른다.
노산대에서 본 서강(편창강)
이곳에 서서 단종의 부인이셨던 정순 왕후를 얼마나 그렸을까
혹시라도 그님이 오시려나 매일 같이 올랐을 노산대
서강의 물은 흘러 흘러 님이 계시는 한양으로 갔으나 단종은 이곳 영월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 하게된다
청령포의 소나무들
금표비
단종께서 유배되셨던 이곳을 일반 백성들은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해 영조2년에 세운 비석이다.
읽어 보시고
단종께서 계셨던 유배지
이곳에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죽은 사육신과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생육신이 생각난다.
사육신(死六臣)성삼문 .박팽년,하위지.유응부.이개.유성원
생육신(生六臣)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상담수.남효은
단종은 죽어서도 외롭지 않을것 같지만
정인지,신숙주라는 인물은 세종대왕과 문종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세조에 붙은 사람이다.
신숙주는 단종의 부인이셨던 정순왕후를 자기집 노비로 달라고 세조에게 청을 한사람이다.
참 대단한 배짱의 신숙주가 아닐 수 없으며
정인지는 김종서의 첫째 며누리를 노비로 삼았던 인물이다.
*사육신 여섯분(성삼문.박팽년.유응부.하위지.이개,유성원는 모진 고문과 형벌을 받고 참혹하게 죽는다.
이때 가족 친지 70명이 함께 죽고 집안의 여자들은 모두 남의집 종이 된다.
단종의 유배길에 당시 금부도사였던 왕방연이 한때 섬기던 임금을 유배지에서 죽음을 보고 돌아오는길에
그의 쓸쓸한 마음을 담은 "천만리 머나먼길에 고은님"시 한편을 적어 본다.
-"천만리 머나먼길에 고운님과 이별하고
내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으니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면서 밤길 흘러가는 구나"-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앞으로 흐르는 강물
궁궐 안에서 살다가 밖으로 나와보니 여기가 어딘지 알길 없었을터
얼마나 쓸쓸했을까
눈물만 흘렸을 어린 왕을 생각하며 서강이 동강으로 흘러 가는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서강이 동강에 합류 하면서 이제 남한강으로 이름이 바뀐다.
강 반대편으로 걸어가던 지난 시간이 그립고
어전(御殿)으로 향하는 이 강은 단종의 비애(悲哀)가 가득한 강이기에 더욱 더 기억날것 같다.
역사가 묻어나는 평창강...
강 반대편은 팔괴리 마을이며 내년에 평창 서지맥 할때 가보기로 한다.
평창강 149km 사연이 있는 강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취해 못볼걸 보고 봐야할걸 못본건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 강이다.
이제 대구 집으로 가야할시간 영월 택시한대 불러놓고 망중한을 즐기며 기다리니 택시가 한대 앞에 선다
평창강 꼭 가보실분들은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영월군 화석 박물관 부터 동강과 만나는 곳까지 46km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후회없는 강길이 될것 같구요
이번 평창강 길에 도움주신 횡성의 하형호님 진심으로 감사인사 드립니다.
8월말 북한강을 끝으로 5대강(낙동강.한강.금강.섬진강.영산강)
14지류(남강.황강.금호강.밀양강.내성천.반변천.위천,보성강.달천.평창강.섬강.북한강.홍천강.소양강.)
3760km가 끝나게 된다.
첫댓글 비오는 아침 출근길 방장님의 정성어린 강행기로 시작해봅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강들은 대부분 슬픈 사연이 많이 안고 흐르는 강이죠
대표적으로 영월의 서강이 그렇구요.
단종의 비애가 담긴 서강 꼭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쏟아지는 장대빗속에 강행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반도 지형
장릉의 유래
단종 비각 영조9년 건립
장판옥 정조15년 건립
정여각 영조2년 건립
노산대 바위 절벽
청렴포
단묘재본부시유지비 등
단종임금께서 죽음 직전에 지은시
유래를 새기고 싯귀의 뜻을 헤아려 봅니다
비 그치고 반짝 더위는 많이 지치게 만들더군요
이제 얼마남지 않은 강이지만 그동안 많이 배웠고 앞으로 산행 하면서 모자라는 부분을 배워야 할듯 합니다.
단종의 비애가 있는 영월 꼭 한번 가보시기 바라며 더위 잘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
그 주 토요일 오전에 한반도 전망대에 있었는데.....
우연히 만날 수도 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나 봅니다.
단종의 역사공부 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토요일 점심 무렵에 한반도 전망대에 올라 구경하고 장릉으로 향했는데 제가 조금만 서둘렀으면 뵐 수 있었겠습니다.
이번주 정맥 졸업때 뵙겠습니다
몇년전 결혼기념일 삼아 평창~영월~남한산성쪽으로 둘러왔는데
차로 다녀왔지만 눈에 익은곳이라 더 정감이 가는것 같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방장님!
영월 참좋죠.
아직까지 인심도 살아있고 깨끗한 자연과
맑은물 우리나라 강들중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곳 입니다.
글 감사 드리고 더운날 시원한 그늘 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방장님의 강행기따라 역사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요즘 맘먹고 책펴놓고 보려해도 다섯페이지넘길라치면 전화오고 손님오고 뭔일생기고 졸리고 핑계거리만 생기는데 그나마 방장님강행기는 끝까지 읽게되네요.
저도 언젠가는 한번 돌아보고 싶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글을 읽어 주시니 강행기 쓰는 기쁨이 배가 됩니다.
감사 드리고 더운날 어덯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그곳 체육관도 방학에 들어갈 날짜가 다 되어 가는듯 합니다.
운동 열심히 하시고 8월 내성천에서 기분 좋게 걸음 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익은 영월 섶다리 동네 지나셨네요.. 약수터도 그렇고..
한많은 역사 현장도 다녀오셨구요..
폭염속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영월 섶다리를 아시는 군요
장마철이라 모두 떠내려가고 텅빈 강가에 물소리만 요란합니다.
글 감사 드리고 언제나 응원 기쁘게 생각합니다.
평창 ~ 영월 기회닿으면 가봐야겠네요^^~
방장님^^ 수고많으셨습니다~
영월에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국내최고의 경치를 가진 강은 모두 영월에 있으니까요
더운날 건강하게 보내세요
예전 이광수의 단종애사를 읽었었는데 그후의 느낌, 안타까움과 처연함이 단종애사2를 보는듯 애절합니다.
강행기를 역사기행으로 엮어 그때의 시츄에이션을 세밀하게 묘사하셨으니 시대를 읽는 감각과 접근하는 논리가 예리합니다.
어느시절에도 의인이있어 암흑의 세상에 한줄기빛으로 밝게 빛납니다. 삼족을 멸하다는 엄명에도 비운의 임금을 밀장을 섬겼던 엄홍도라는 의인을 기억하며..
유려한 필치로 역사의 한 단면을 멋지게엮은 문장력 대단합니다.
* 방장님, 역사 인문학 강의하셔도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배방이죠
산과 강
완전 돌팔이는 아닐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래도 돌팔이를 벗어나지 못한 산꾼입니다.
많이 배워서 어느 멋진 산에 올라 손끝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저곳은 어디다고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언제나 응원 감사 드리고
이번주에 오실꺼요
좋은 곳이네요.
8월2쨰주 영월에 가면 청령포 가볼 생각이었는데
술마실 시간은 있어도 그런 시간은 있을런지...
곧 끝난다는 강행기.
담엔 뭘루?
청령포에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을 찾으실때는 술은 드시지 마시구요
마음으로 단종임금을 꼭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
강은 이제 3개 남았습니다.
천만리 머나먼길에 고운님과 이별하고
내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으니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면서 밤길 흘러가는 구나~
후기 즐감하고 갑니다^^* 청령포도 가고 싶고 백덕지맥 날머리도 가보고 싶네요 후기 즐감해 봅니다^^* 이번 6차 정맥졸업때 뵈어요~~
왕방연 시 슬프죠
권력이 뭔지... 사육신과 생육신을 생각하며 그분들의 충절을 느껴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변치 않은 산우의정을 오래도록 느끼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비가 내렸고..... 또 밤새 비가 예보되어 있어
가실 길... 걸음이 걱정되어
차라리 집에 오셔서 삼겹살에 막걸리를 권하며
넌지시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으니
되돌아 오는 회신문자 왈.....'죽어라 걷습니다......'
순간 저는 빵 터지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수고하셨구요.....
언젠가 그 길 제가 걸을 수 있기만을 기대해 봅니다.
제천에서 만나서 너무 고마웠구요.
하형호님 덕분에 강하나 재미나게 즐겁게 잘 걸음하고 왔습니다.
이번 섬강에서는 저녁에 횡성군을 지나며 형호님 댁에서 자고
새벽에 길을 나설까 생각을 했지만 비가와서 혹시라도 사고날까 걱정되어 연락을 못드렸습니다.
차후에 가게되면 꼭 연락드릴께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창강에 이런 슬픈 단종의 비애가 있는
곳이네요 청령포는 몆번 가본곳이고 선돌도
예전에 지나는길에 잠시 들렸던 곳 조망이
참 좋은곳이지요 비는많이 안맞으셨나?
고단한 발걸음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나라 강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영월에 포진하고 있구요
맑은 물은 내성천 그리고 아름다운 절벽은 영월과 영양군에 많이 있습니다.
글 감사드리고 이번주에 봐요
방장님, 덕분에 역사 공부 많이 합니다, 빗 사이로 막가니, 비는 안 맞고 다니시는거죠



ㅇㅅ 老 松
강이 세개 남았다,,, 그후에가 더 궁금하네요,,, 장마철이라 강행기 다니시기가 더 힘들덴데...
장마철에 건강 잘 챙기시고, 정맥 졸업에서 뵙어요,,, 화성이라는 먼
잘 계시죠
강줄기도 이제 3개만 남았는데 북한강을 마지막으로 졸업 같습니다.
같이 한구간 하실까요
언제나 건강하시는 모습만 상상 하고자 하오니 늘 건강 하십시요
이번주에 뵈요
평창강은 평창의 이름으로 영월을 흐르고 그 옛적 단종의 슬픔도 봤을 터인데...오늘도 말없이 흐르는군요.
단종의 유배길,
"창덕궁-화양정-광나루-여주-이포나루-어수정-원주-어음정-군등치-배일치재-옥녀봉-청령포" 몰랐던 역사입니다.
단종은 정순왕후와 생이별을 하게 되니... 그 이별한 곳이 지금의 영도교, 영원히 건너간 다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화양정의 이름은 단종이 돌아오길 바라는 이름(?)인 회행정回行亭으로 불리다가...단종이 사사된 후 다시 화양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금성대군이 사사된지 사흘뒤에 단종이 사사됩니다. 무엇이 혈족간에 이런 슬픔을 만드는지 그 어떤 명분으로도 부족하겠지요.
수고하셨습니다.
평창강과 영월의 청령포
이강은 님을 기다리는 단종의 마음이 담겨 있는 강이기에 더욱 슬픈 강인것 같습니다.
단종 임금께서 올랐던 노산대에서 보는 서강은 말없이 흘러 한양으로 가는강인데 단종 임금께서는 아셨을지...
조선역사에서 가장슬픈 단종의 비애를 또떠올리게 되는군요
조선500년동안 대표적 슬픈사건은 단종의 비애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인조와 뒤주에 갇혀죽은 사도세자가 아닐까합니다
사도세자는 죽어서 아들(정조대왕)로부터 섬김을 받았구요 인조는 사랑하는 아들 소현세자를 가슴에 묻어야했으니
미움을싸긴 했지만 그래도 자식인데 ~~ 아침부터 슬픈맘이 드네요 수고하신 강행기 잘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길위에 인문학을 하기가 그리 쉽지많은않죠 ? 욕봤어요
길위에서 보는 느낌이 모두 인문이겠죠
강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성숙해져 가는 느낌이 듭니다.
글 감사 드리며 경주가면 막걸리 한잔 사주시기 바랍니다.
권력 앞에선 부모도 형제도 조카도 없는 잔인함과 피의 역사을 보여 준 조선 왕조
이 나라에서 조선 왕조 500년은 후세들에겐 흑역사. 이순신과 같은 충신이 없어 천오백년경에 사라졌어야 할 왕조
왕과 사대부가 권력 잡고 양반과 상놈으로 나누어 호의호식하며 세상 흐름도 놓친 왕조
저는 평소 별로 좋케 보지 않고 있습니다.
글, 그림 그리고 음악 잘 보고 듣고 갑니다.
아우님 잘 계시죠
이쁜 따님은 잘 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거제에서 삶은 어떤지 진짜 궁금하네요
밤에도 기온은 34도를 가리키는데 더위를 못 참아 마트에 가서 시원한 캔맥주 2개에다 마른안주를 사와서 방장님의 밀린 강행기를 읽고 있습니다. 오늘은 더위를 견디다 견디다 인근의 실내수영장에 다녀왔고요. 내일은 어디 가까운 바다에 스쿠바다이빙이나 다녀올까나... 방장님이 발과 땀으로 쓰신 강행기를 저는 편하게 앉아서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