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이 교리적인 내용이었다면, 4~6장은 교훈적인 내용입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1 그러므로 주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언제나 겸손함과 온유함을 지니십시오.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면서, 오래 참으십시오.
3 여러분은,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4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한 희망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5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유의 아버지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라며 만물의 통일성을 강조합니다. 인류 뿐 아니라 만물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신답니다.
하나님이 만유의 아버지라는 신앙고백, 만유 위에 계신다는 신앙고백, 만유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신앙고백은 기독교 전통 뿐 아니라 유대교 전통에서도 계속 이어져온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만유 안에 계신다는 것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전통적 신앙고백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 안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초월하여 계신다는 것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적 신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베소서의 저자는 하나님이 만물 안에도 계신다고 말합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만물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다른 종교 전통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신관입니다.
동양의 고등종교들은 대부분 만물 안에서 만물과 함께 하는 신관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저자가 하나님을 기독교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만유 안에 계시는 분으로 믿고 고백하는 다른 이웃종교들도 만날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고백이라면, 그의 신관과 신앙관은 여전히 배타적인 속성도 갖고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원시 기독교를 넘어 현대 신학자들이 고백하는 궁극적 실재와 맞닿는 성숙한 신관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중에서 11~12절을 보겠습니다.
11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회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12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에베소서 기록 당시에 사도, 예언자, 복음 전도자, 목회자, 교사, 이렇게 다섯 가지의 교회 직분이 확립된 것처럼 느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초대교회에 보편적으로 확립된 교회 직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서의 저자가 살던 시대와 지역에서 시행되었던 교회 일꾼들의 기능의 차이를 설명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당연히 본문이 말하는 목회자도 지금의 목사와는 다릅니다. 교인들을 돌봐주는 일을 하는 분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기초 교리를 가르쳐주는 교사도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예언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구약의 예언자와는 다른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된 직분은, 사도행전에 의하면, 일세기 중반에는 사도와 보조사역자가 있었고, 교회의 어른이라는 뜻의 장로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2세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목회서신에도 감독과 장로가 언급되어 있고, 집사 또는 부제로 번역할 수 있는 영어의 deacon 이라는 직분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과 장로는 역할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뚜렷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4세기에 가서야 주교, 장로, 사제, 부제, 이렇게 4개의 직분이 서열상으로 확립된 것 같지만, 그 이전의 교회 직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직분은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가 모두 다르고, 개신교의 경우에도 장로교, 감리교 등 교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며, 여자 목사와 장로를 인정하는 곳도 있고 인정하지 않는 곳도 있는 등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21~24절을 보겠습니다.
21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게서 듣고, 또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22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24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예수 안에 있는 진리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고 예수님과도 하나가 되었으니 그에 걸맞게 거룩한 성도다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25~32절을 보겠습니다.
25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26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27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28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하십시오.
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십시오.
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성령 안에서 여러분은 구속의 날을 대비해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친절히 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앞의 본문에 기록된 거룩한 성도답게 사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지침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런 본문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 훌륭한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