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산(254m)과 전월산(260m)
(충남 연기군 남면)
충남 연기군 남면 중심부에 위치한 원수산은 금북정맥의 정기를 이어받은 명산으로 일명 부모산, 형제산, 문필봉이라고 부른다.
원수산은 고려 충렬왕17년(1291년) 몽고 합단적이 원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원의 관군에 쫓겨 남하하여 고려를 침범해 오므로 왕이 구원병을 원나라에 청하니 원나라의 세조 황제가 평장사 설도간 으로 하여금 보병과 마병 1만 3천을 거느리고 와서 돕게 하고 왕이 만호 인후로 하여 중익에, 한희유를 좌익에, 김흔을 우익에 지명하여 3군을 거느리고 원나라 군사와 함께 야반에 주둔지를 출발하여 새벽에 정화산 서면 쌍전리 위천 아래에서 싸워 크게 이기고 공주 웅진까지 추적하니 땅에 깔린 시체가 30여리까지 연하였으며 베인 머리와 노획한 병기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이 전투를 연기대첩이라고 하며 세속에서 이때부터 군사주둔지를 원수산이라고 부른다. 원수산은 행정수도가 들어서면 청와대가 들어앉을 산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그 꿈은 좌절되고 행정중심 복합도시가 되었지만 언젠가는 산 이름대로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충남 연기군 금남면의 금강가에 위치한 금남초등학교에선 나지막한 산과 금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행정중심 복합도시 부지가 잘 보인다. 부채꼴 모양으로 낮은 산들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중앙에 이등변삼각형 같은 뾰족한 원수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서울의 북악산과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이채롭다. 원수산을 보좌하는 좌청룡과 우백호는 전월산과 성래봉(175m)이 맡았다.
원수산을 중심으로 전월산과 성래봉으로 둘러싸인 앞쪽으로는 남면의 곡창지인 500정보의 널찍한 장남평야가 펼쳐진다. 원수산 남쪽에는 성재산 토성과 금강 물이 맑게 흐르고 동쪽으로는 전월산과 서쪽에 국사봉이 우뚝 솟아 있고 북쪽은 당산성과 미호천이 감싸주고 있으며 남북으로 연결된 4차선의 1번 국도가 놓여있다.
원수산의 모산은 금북정맥상의 국사봉(402.7m)이다. 국사봉에서 약 13Km를 뻗어나온 산줄기가 도로가 지나가는 재에 이른다. 도로에서 계속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는 서서히 고도가 높아져 약 3Km 거리에다 연기군과 공주시의 경계인 국사봉(213.7m)을 빚어 놓는다.
국사봉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행정수도의 진산으로 정해져 국사봉 아래엔 청와대가 들어앉을 예정이었다. 국수봉 밑자락은 포근한 산들로 둘러싸여 풍수로 따지면 평안과 평화가 깃들어 있다는 평가가 있다. 조선의 명장 김종서 장군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이 국사봉에서 11Km를 더 뻗어나간 산줄기가 원수산을 들어올린다. 원수산의 산줄기는 전월산을 빚어놓고 금강에다 여맥들을 가라앉힌다.
양화리 은행나무(충청남도 기념물 157호)에서 전월산 오름이 시작된다.(9:05) 양화리 은행나무는 암 수 두 그루이며 수령이 600년이 넘는다. 고려말 탐라(제주도) 정벌에 최영 장군과 함께 공을 세우고 공조전서를 지낸 임난수 장군(1342-1407)이 멸망한 고려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심은 것이다. 나라의 큰 변이 생길때마다 울었다는 이 나무는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은행나무 옆에는 임난수 장군의 은거지인 숭모각이 자리잡고 있다. 양화리 은행나무에서 마을 길을 따라 10분 정도 나아가 전월산 산길 길목에 닿는다.(9:15) 고스락 830m, 며느리바위 540m라고 쓴 팻말이 서있다. 이리저리 제 멋대로 운치있게 휘어진 소나무 숲길로 2분쯤 오르다가 오른쪽(동쪽)으로 꺾어 산을 오른다. 제법 가파른 길로 3분쯤 올라서니 시야가 트이는 능선이다. 이어 전망대 역할을 하는 바위가 연달아 나오더니 슬픈 전설을 간직한 며느리 바위에 닿는다.(9:27)
전월산 중턱에 위치한 이 바위는 여인이 뒤돌아보는 모습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소원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바위 옆에 와서 촛불을 켜놓고 치성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진다. 며느리바위에서 5분정도 더 올라가서 전월산 고스락을 밟는다.(9:32) 미호천이 금강에 합수 되는 지점이 잘 내려다보인다. 고스락에 용천(용샘)이 있는것이 특이하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고려 충신 임남수 장군이 상여암을 오르내릴때마다 이 샘물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원수산으로 이어진 북쪽 능선을 타고 3분을 나아가 가슴이 확 트이는 시원한 조망을 선사하는 상여암에 닿는다. 상여암의 조망은 그야말로 배행기를 타고 하늘 위에 떠있는 기분이다. 수려한 계룡산 산줄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금강과 어우러진 바둑판같은 장남평야가 평화롭게 내려다보인다. 상여암은 임남수 장군이 북쪽 고개를 쳐다보고 나라를 걱정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0분간 쉰 다음 상여암을 뒤로하고 나아가는 능선 길은 급경사의 내리막이었다. 조금 내려서니 외줄타기, 암벽 오르내리기 등 유격훈련 시설이 갖춰진 군부대 산악교장이 나타난다. 산을 수없이 넘나들었던 쏟살같이 앞서나간 백영준 회장(정암산악회장 3년역임)이 우리들을 기다린다. 매일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도솔산 4.5km를 1시간 이내에 완주한다니 그의 산행 실력을 알 만하다. 급경사 능선길이 끝나면서 능선은 유순해진다. 완만하고 널찍한 길로 나아가 차도가 지나가는 재에 이른다.(10:02)
눈 앞의 송전탑을 겨냥하여 원수산 오름이 시작된다. 능선 왼쪽의 뚜렷한 길로 산을 오른다. 능선 오른쪽에 담장이 나오면서 능선 길은 희미해진다. 잠시 거추장스러운 잡목을 피해가며 송전탑이 자리잡은 봉에 올라선다.(10:17) 이제 뚜렷해진 길로 잘록이 네거리 재로 내려선다. 정확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없어 능선 왼쪽에 나있는 급경사 길로 큰 능선에 오른 다음 3분쯤 더 올라가 원수산에 도착한다.(10:39) 고스락에서는 조망이 사방으로 막힘없이 터진다.
우산봉은 영락없는 우산의 모습이고 서쪽으로 무성산이 하늘금을 긋는다. 무성산 오른쪽으로 원수산의 모산 국사봉이 어림되고 왼쪽으로 공주시가지도 조금 눈에 들어온다. 북으로는 금성산, 운주산, 동림산이 조망되고 조치원읍이 샅샅이 내려다보인다. 10분쯤 조망을 즐긴후 성래봉으로 뻗어나간 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조금 내려오니 원수산 유래가 써있는 비석이 반긴다. 비석을 뒤로하고 2분쯤 진행하여 잘록이 재에 내려선다. 이어 오르막 능선으로 4분 정도 올라가 성래봉에 닿는다.(11:01) 소나무에 둘러싸인 성래봉은 잘 조성된 3기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고 쉬어가기에 알맞았다.
전망은 막힌 상태지만 나무 사이로 원수산 오르는 길이 잘보인다. 하산은 성래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탄다. 금방 나타난 잘록이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11:05) 산을 내려오니 좌우에 마을을 끼고 평탄한 산등길이 계속된다. 곧이어 잘생긴 소나무들이 나오면서(11:13)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11:15) 시멘트 도로로 10분쯤 걸어 차도에 이르고 다시 주차한 양화리 은행나무까지 10분쯤 걸어가 닿는다.(11:35)
산길
원점회귀코스(약 3시간 소요)
양화리은행나무-전월산-차도가 지나가는 재-송전탑 봉-성황당 재-
원수산-성래봉-마을-양화리 은행나무
원수산 원점회귀코스 (약 1시간 30분 소요)
월용동산-마을-성래봉-원수산-성황당 재-월용동산
전월산 원점회귀코스(약 1시간 10분 소요)
양화리은행나무-전월산-차도가지나가는 재-월용동산-양화리은행나무
참고사항-차도가 지나가는 재에서 원수산 큰 능선까지는 희미한 길이기 때문에 산행 경험이 많은 리더와 동행한다.
교통- 대중교통은 불편하니 자가운전 이용한다. 대전에서 조치원 가는 1번 국도 이용하여 금강 다리를 지나 종촌에서 우회전하여
편도 1차선 도로로 진입한다. 성남중고를 우측에 끼고 조금 진행하면 이정표 안내판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