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cnts.godpeople.com/s/5%EB%B6%84%ED%81%90%ED%8B%B0?bar=true?&cNo=45679 ☜크릭후 5분큐티 누르시면 전체보실수 있습니다. |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QUht0rUTP1dylG0V-84wKAnWOoMRKd
[11월 15일] 성숙한 성도의 삶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eDqFBgIOIqk?si=TjLaN5qPWcMHaxHd
11월 15일
성숙한 성도의 삶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 요한복음 21장 21,22절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려운 교훈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교훈을 완강하게 거절합니다.
섣부른 도움이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즉, 섣부른 도움이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합니다.
어떤 사람이 고통 당하는 것을 볼 때 당신은 말합니다.
"그 사람이 고통을 받아서는 안 돼. 내가 그 사람이 고통 받지 않도록 도와야곘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허락된 일을 막으려고 당신의 손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만일 당신이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다면 절대로 그 상태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가 영적 침체의 이유를 발견하십시오.
아마도 당신은 당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했기 때문에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안을 할 권리가 없으면서도 제안했고, 충고할 권리가 없으면서도 충고했던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해야 할 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당신을 직접 깨닫게 하실 때입니다.
그때 성령은 당신을 통해 그 사람을 충고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할 일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분별의 지혜가 당신에게 임해서 당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의식적인 세계의 한계 내에서 살아갑니다.
의식적으로 섬기고,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미성숙한 것이며 아직 실제의 삶이 아닙니다.
성숙한 삶은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어린아이 같은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면 그분께 쓰임받고 있다는 의식마저 들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로 쓰임받고 있다고 '의식'한다면, 아직 도달해야 할 단계가 많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 도달하면 자신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시는지에 대한 모든 의식이 사라집니다.
성도는 의식적으로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성령님
의(義)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죄를 미워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거부해야 하며,
선한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악한 길을 떠나야 한다.
이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의심하며 두려워하는 자들은 다가오는 지옥과
현재의 혹독한 징계에서 벗어나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단짝친구/기도
기도와 선교는 둘 다
하나님이 창안하신 것이다.
기도와 선교는 단짝 친구이다.
기도는 선교를 부추기고 그것을 성공으로 이끌며,
선교는 기도에 크게 의존한다. 《기도해야 산다》
기다려라/독서
하나님께서 때로 "기다려라" 라고 대답하신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받기에 아직 적합하지가 않아서
(씨름하는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지연시키실 수가 있다는 말이다. 무릎 꿇는 그리스도인, 무명의 그리스도인(앨버트 리처드슨)
주님께순종/내려놓음
사탕 통 속에 손을 넣고 한 움큼 쥔 뒤
손을 빼려고 안간힘 쓰던 나 자신을 돌아보니
너무나 부끄럽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 순종하기 원한다.
[11월 14일]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srj3sIYPqeg?si=BsMB4mO4qpCrzC_a
11월 14일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십시오!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 창세기 24장 27절
하나님과 깊게 하나가 되면 주님께 나를 어떻게 인도해달라고 끊임없이 간구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거룩하게 되었다는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이며 자녀라면 불순종을 원하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순종할 것입니다.
불순종을 하면 직감적인 갈등이 생깁니다.
영적 세계에서 이 직감적인 갈등은 성령의 경고입니다.
성령께서 이러한 경고를 주시면 당장 멈추고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성령으로 거듭난 후에도 주님께 이렇게 저렇게 나를 인도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경건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 나를 인도하사."
만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사람이라면 지난 날을 돌아볼 때 우리에게 놀라운 섭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 특별한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그러나 모든 상세한 일들속에서 하나님을 보려면 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절대로 우연하게 발생하는 일들이라고 해서 하나님과 무관한 것으로 보지 마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 당신의 신념에 비정상적으로 전념하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나는 절대로 그것만은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이, 당신이 성도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주님은 일관성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변함없는 일관성을 유지하셨습니다.
성도의 단 한 가지 일관성은 원칙이 아니라 신령한 생명입니다.
신령한 생명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발견할 것입니다.
주님께 충성된 영혼이 되는 것보다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광신자가 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충성할 때 놀라울 정도로 우리를 낮추는 일들, 특히 우리의 종교적 자만을 낮추시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365성령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들이 경영하는 교회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학 졸업장은 있지만 성령 충만하지 못한 목회자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없듯이….
우리를 통해서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본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이것이 성령님이다
기도365
오늘날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가증스러운 행위에 대해‘탄식하며 우는 자’,
곧 시온의 멸망을 근심하는 이들이 너무나 적다.
이런 상황에 대해‘두세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기도해야 산다》
독서큐티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은 창피함이나 거북함, 자기 의식, 또는 긴장이 없으셨다.
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닮고 싶은 예수, 조이 도우슨
365내려놓음
내려놓음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내려놓느냐 내려놓지 못하느냐의 문제임을 알기에,
아무리 작은 삶이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생이지만
하나님께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사용하심을 알게 되었다.
[11월 13일] 믿음과 체험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BynNkLrXHH4?si=dNDARfrqnA32Zsud
11월 13일
믿음과 체험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 갈라디아서 2장 20절
기분과 싸워 이겨서 자신을 주 예수님께 완전히 드려야 합니다.
보잘것없는 사소한 체험에서 나와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십시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말하는지 생각해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비참하고 형편없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이러저러한 체험을 해보지 못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무엇을 요청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바치십니다.
말로 다할 수 없이 순결하고 완벽하게 고침 받은 존재로, 철저하게 의롭고 조금도 흠 없는 존재로 우리를 하나님께 바치십니다.
주 예수님에 대해 분명하고 사모하는 믿음을 가지고 든든히 서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내 희생이 어떠하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까?
그분은 나를 지옥과 파멸로부터 구원해주셨는데 어떻게 내 희생에 대해 따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기도회나 책 속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분이요, 우리를 그분의 발 앞에 죽은 자같이 만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체험이 아니라 체험을 주신 분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만을 향한 우리의 완전한 헌신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믿음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없으며 주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실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만을 향한 절대적인 강한 확신 가운데 세워져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불신앙을 향한 성령의 엄격한 독촉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두려움은 악한 것이며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람이 의심과 두려움으로 고통을 받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그 무엇도 억제할 수 없는 승리의 믿음을 온전한 찬양 가운데 드러냅니다.
성령님365
각각의 개 교회는
그리스도의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유기적(有機的) 부분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와 온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온몸의 지체들이며,
또한 성령님과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분리되지 않는다. 「보혜사」
기도365
냉소주의자는 기도할 수 없다.
기도는 거인처럼 거대한 마음과
가장 신성한 박애 정신에서 비롯한다.
큰마음의 소유자, 곧 모든 사람을 생각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충만한 사람만이
진실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기도해야 산다》
독서
우리의 모든 삶은
우리의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은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데 있습니다.
골방에서 만나는 하나님, 앤드류 머레이
내려놓음
내려놓음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내려놓느냐 내려놓지 못하느냐의 문제임을 알기에,
아무리 작은 삶이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생이지만
하나님께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사용하심을 알게 되었다.
[11월 12일] 거듭남 이후의 변화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ht2Y_bIDipQ?si=crXujGkDL7HvURh4
11월 12일
거듭남 이후의 변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장 17절
당신은 자신의 영혼 구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구원의 체험이란 당신의 실제 삶에서 모든 것이 정말로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과거에 사물을 보던 대로 보지 않습니다.
당신의 소망은 새롭게 되었으며 옛것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구원 체험의 진실성에 대한 시금석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치관을 변화시켰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옛것들을 추구하면서 위로부터 났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거듭났다면 성령은 그 변화를 당신의 실제 삶과 생각 가운데 나타내실 것이며, 위기가 찾아왔을 때 당신은 당신 안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로 인해 가장 놀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그 변화를 이루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이 온전하고 놀라운 변화가 바로 당신이 구원받은 영혼이라는 증거입니다.
나의 구원과 성화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예를 들어, 나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빛 가운데 설 수 있습니까?
아니면 손을 저으며 당황스러워합니까?
성령에 의해 내 안에 이루어진 구원은 나를 완전히 자유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심같이 내가 빛 가운데 행하는 한, 주님께서는 내게 책망할 것을 보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주의 생명이 내 의식뿐 아니라 내 의식보다 더 깊은 곳까지 모든 곳에 두루 영향을 주며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365 성령님
하나님은 오직 성령님을 통하여 이루신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영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장차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만이 계실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교회에 다시 모셔야 한다.
「보혜사」
365기도
기도의적용과 유익은 개인에게 미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선한 영향력은
모든 곳에 두루 미친다.
기도는 범사에 인간을 복되게 하며,
긴급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도움을 주고,
고난이 닥칠 때마다 위로를 준다. 《기도해야 산다》
독서큐티
라오디게아교회의 교인들은
사실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지만
나는 부자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고 말했다.
혹시 지금 당신도 라오디게아교회의 교인들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간절한 매달림, 토미 테니
내려놓음
내려놓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길 문턱에서도
하나님의 뜻만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만을 따르셨다.
나에게도 예수님의 내려놓음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서려 있어야 참그리스도인일 텐데….
[11월 11일]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sjIS7rCxGhw?si=bg9-YdhsyjdbP6fG
11월 11일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네 아들... 이삭을 데리고
- 창세기 22장 2절
하나님의 명령은 '지금'이지 '나중'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논쟁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당장 하지는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지 않으려고 여러 핑계를 찾기 위해 애씁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정상에 오르는 것은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희생은 현실 속에서 드려지기 전에 나의 의지 안에 먼저 드려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세기22장3절)
아브라함의 이 놀라운 단순함!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그는 가족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의논하고 싶어할 때 주의하십시오.
가족은 당신의 동정심이나 통찰력 등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바탕을 두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하나님의 경쟁 상대가 되거나 방해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희생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희생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희생 제사를 언제나 경계하십시오.
나의 희생은 질병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달콤한 잔을 주시면 은혜로 마시고 쓴 잔을 주시면 주님과 함께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의 섭리 가운데 어려운 시간을 허락하시면 받아들이고 견디십시오.
절대로 스스로 순교 장면을 연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혹한 시련을 선택하셨으며 아브라함은 아무런 항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내하며 지나갔습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해 섣부른 판단을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판단하기 전에 그 시련을 다 통과하십시오.
그 시련 가운데서 당신은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목적이 그분의 목적과 하나가 될 때까지 최상의 목적을 위해 일하십니다.
성령님365일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즉 우리가 그분을 ‘크신 하나님’으로 보느냐
아니면 ‘작은 하나님’으로 보느냐에 따라
예배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한 가지 무서운 질병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너무 스스럼없이 대한다는 것이다.
「홀리스피리트」
기도365일
영적동정심,
곧 거듭난 마음에 존재하는 동정심은
그리스도의 속성을 닮은 것이기에
더 넓고 더 깊을 뿐 아니라 기도를 통해 표현된다.
동정심은 맹목적이 아니다. 《기도해야 산다》
독서큐티
방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를 받은 후 '삶의 변화'입니다.
이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그분께 당신의 삶의 주도권을 내드리세요.
내드리는 만큼 성령님께서 지혜와 권세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성령님, 손기철
내려놓음
하나님께서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발버둥치려 했던 순간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참 행복 되시는 하나님 앞에
자유하기 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11월 10일] 하나님과의 일치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O_ixD1UAnK4?si=MeEmWFrWzQeEKeeB
11월 10일
하나님과의 일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
- 데살로니가전서 3장 2절
거룩하게 된 이후에는 당신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령에 의해 당신의 목적이 아닌 주님의 목적을 위해 당신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을 구원하신 것처럼, 지금은 온 세계를 향한 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당신을 사용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나를 이러저러한 일로 부르셨다"라고 하며 당신 자신을 위한 위대한 일을 구한다면, 당신은 당신을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장애물을 놓는 것입니다.
인격이든 야망이든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한, 당신의 관심과 하나님의 관심이 일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나를 사용하시도록 할 때 하나님의 관심이 당신의 것과 일치가 될 것입니다.
이후로 당신의 행로는 주님께 속한 것이므로 당신은 당신의 가는 길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삶의 목표는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위대한 계획이 있으며 그분은 그 입장에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주께서 내게 원하시는 모든 것은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주님, 이 상황은 내게 너무나 큰 마음의 고통을 줍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문제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기를 멈출 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방해를 받지 않으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바를 위해 나를 사로잡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낮추실 수도 있고 높이실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단지 내게 주님 자신과 주의 선하심을 향해 확실한 믿음만을 원하십니다.
자기연민은 사탄적인 것입니다.
자기연민에 빠지면 이 세상을 향한 주님의 목적을 위해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 안에 또 다른 나의 세상을 구축한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 세상에서 나를 나오게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의 세상에서 나가면 위험에 처해질까봐 두려워 떨기 때문입니다.
365일 성령님
하나님께 능력을 받지 못한 교회는
친목회, 향우회, 동창회, 테니스 클럽 및 기타 자질구레한 것들을
중심으로 모이는 단체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교회는
이런 단체들이 주지 못하는 것을 세상에 줄 수 있다.
「보혜사」
365일 기도
기도를 배제하는 믿음의 기준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
기도를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지 않는 기준은 고려 할 가치가 전혀 없다.
기도는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근본위치를 차지하고있다. 《기도해야 산다》
독서큐티
참된 사랑에 대한 최고의 표현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닮고 싶은 예수, 조이 도우슨
내련놓음
환경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곳에 가 있느냐' 가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가' 이다.
[11월 9일]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EtZe0eN_yE8?si=Ooz6xlKAXweMDlhE
11월 9일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노라
- 골로새서 1장 24절
주님의 일꾼은 희생적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주님과 구속의 실체에 일치됨으로 주께서 그 일꾼을 통해 계속적으로 생명을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일꾼의 인격이 뛰어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일꾼의 삶의 요소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체가 다른 사람에게 임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역사 속에서의 주님의 삶과 죽음을 선포할 때 우리의 말씀은 희생적인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꼐서는 선포된 이 말씀을 주님의 구속의 바탕 위에 사용하셔서 다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새 창조를, 그 말씀을 듣는 자들 안에 행하십니다.
만일 예수님에 관한 계시 대신에 사람의 삶 속에 나타난 구속의 결과들을 선포하면, 그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새 생명이 아니라 세련된 영적 문화입니다.
이러한 선포는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이므로, 성령께서 그 메시지를 증거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때 오직 주님만이 그 진리를 듣는 영혼들 안에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인격은 참 대단하군! 아주 매력적이야!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역사할 기회를 얻겠습니까?
즉, 인간적 매력으로 사람을 끄는 것은 복음의 선포와는 무관하기 때무에 복음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자신의 인격으로 사람을 끌면, 그의 호소력은 그의 인격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과 하나가 되면 사람을 끄는 것은 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위험은 언제나 사람이 영광을 받으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높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65일 성령님
지성(知性)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기름부음도 갖춘 사람,
통찰력뿐만 아니라 영적 능력도 있는 사람, 이삼 백 명이 아니라
수천 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현재 막다른 골목에 처한 기독교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홀리스피리트」
365 기도
기도 골방은 거룩함을 촉진하고 진작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다.
거룩함은 기도 골방에서 발견된다.
성별은 거룩한 마음을 독려하며,
거룩한 마음은 반드시 기도를 동반한다. 《기도해야 산다》
독서큐티
의식적이고도 공개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을 배우고 간구하기 위해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골방에서 만나는 하나님, 앤드류 머레이
내려놓음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구하기로 했으면서도
내 속에서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붙잡으려는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내 삶, 아니 우리 가정 가운데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찬양드린다.
[11월 8일] 성령의 간구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AGc-S-zfAAc?si=CwZ7mGh8SXpi1ytt
11월 8일
성령의 간구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로마서 8장 26절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도의 힘을 얻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기도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거듭나 성령께서 거하시게 될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간구하십니다.
당신 안에 계신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의식하며 드리는 기도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기도를 찾기 위해서 당신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성령은 중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성전으로서 성도의 몸을 필요로 합니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 (고린도전서6장19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실 때 성전 안에서 장사하기 위한 여러 기구들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께서도 당신이 당신의 몸을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사고 파는 자들을 가차없이 쫓아내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마태복음21장13절)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인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주를 위해 우리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삶의 부분이 비록 우리 인격성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전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무의식적인 부분을 돌보시겠지만, 우리의 의식적인 삶의 영역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내게 필요한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계시지 않는 단체라면 나는 발도 들여놓기 싫다.
‘기독교’라고 불리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나는 기독교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 것,
즉 미지근한 것을 싫어하셨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기독교야말로 미지근한 것이 아니겠는가?
「보혜사」
교회 안에서 칭찬을 받을 만큼
훌륭한 일을 많이 행하면서도
성별의 삶과는 무관한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성별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기준이
다름 아닌 기도하는 삶이다. 《기도해야 산다》
내적인 배고픔이 서서히 솟구치면,
우리는 하나님께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위선적인 태도를 벗어버리기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정직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매달리기 바라신다.
간절한 매달림, 토미 테니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기쁨을 주시려고 하는데
나는 절망하고 있었고,
나에게 평안한 미래를 주시려고 하는데
나는 내가 욕심내는 것만 좇고 있었다.
[11월 7일] 성령 대신에 나서지 마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iNTCQF8qqh4?si=0U6Ap0BNX8gaFdU5
11월 7일
성령 대신 나서지 마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로마서 8장 28절
성도의 삶에 발생하는 상황들은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것입니다.
성도의 삶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당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으로 인도하십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그 상황을 이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특정한 장소와 사람들과 환경 속으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당신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중보 기도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절대로 그 상황을 당신의 손으로 막으면서 "이 상황을 내 힘으로 해결해야겠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막아야 겠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중보 기도에 있어서 당신이 해야 할 부분은 중보 기도를 친히하는 수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허락하신 일반 상황들, 일반 사람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 안에 있는 성령께서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는 기회를 얻으십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주의 성도들과 함께 온 세상을 휩쓰시는 것입니다.
분명한 자세를 취하지 않음으로 또는 주를 위해 성령 대신에 일하려고 함으로 성령의 역사를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닙니까?
나는 중보 기도를 통해 내가 해야 할 부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처한 상황과 접하는 사람들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나는 내가 의식할 수 있는 삶의 부분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당신의 중보 기도와 나의 중보 기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중보 기도가 당신의 것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각 개인의 특별한 삶 가운데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이러한 중보 기도가 없다면 누군가 영적으로 기갈하게 될 것입니다.
365일 성령님
성령 충만한 신자들은 세상과 날카롭게 구별된다.
사실 제자들은 오순절 사건 이후 다른 세상을 보면서 살았다.
그들의 눈에는 다른 세계가 들어왔던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이 세상을 기독교로 회심시키려고 애쓴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을 세상 그대로 교회 안으로 들여온다는 것이다.
「보혜사」
기도365일
하나님은 거룩한 사람,
기도의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런데 오늘날의 지도자들 가운데서
기도의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오늘날 우리는 기도를
교회 직분자의 가장 훌륭한 덕목으로
여기지 않는다. 《기도해야 산다》
독서큐티
성령님이 주신 생각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온 게 아닙니다.
내 영 깊은 곳에서부터 마음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성령님, 손기철
내려놓음
내가 정말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내 눈에 완벽한 모습으로 예배하려고 했던
나의 욕심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내 힘과 생각과 능력으로 감당하려 했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함을 깨달았다.
[11월 6일]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CYFa2NjzH-0?si=v6h2q6sdIi_miSU3
11월 6일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한복음 11장 26절
마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이 계셨더라면 나사로를 치유하셨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었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을 더욱 친밀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미래에 성취되는 것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인도하여 그녀의 믿음을 인격적인 소유로 만드십니다.
그 후 서서히 그 믿음을 특별한 유업과 합치십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한복음11장27절)
주님께서 당신을 다루실 때도 이러한 면들이 있습니까?
당신이 주님과 인격적인 친밀함을 맺도록 주께서 가르치십니까?
주님께서 마침내 이 질문을 하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당신을 의심케 하는 시련들은 무엇입니까?
마르다처럼, 미래만을 향했던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처한 상황 속에서 당신을 사로잡는 말씀으로 인해 주님을 향한 인격적인 믿음으로 바뀌었습니까?
개인적인 문제가 발생해 개인적인 필요가 생길 때까지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믿는 것은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지성에 맡기면 지적인 것과 관련이 없는 모든 것을 버리게 됩니다.
인격적 믿음에 나 자신을 맡기면, 도덕적으로 타협하려는 것들을 거부하게 됩니다.
특별한 믿음 가운데 영적으로 나 자신을 주 예수님께 맡기는 것은 주님께만 통치를 받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때, 주님은 내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는 그때 믿음이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던가를 깨닫고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11월 5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합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zW7H9WPx8s8?si=9rIOkBCEUGfRS4vy
11월 5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합니까?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 베드로전서 4장 13절
당신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전혀 의미 없는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은 당신을 주님께 유익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당신은 어떤 일을 만나도 놀라지 않게 됩니다.
"오, 나는 이 사람을 대할 수 없어요!"
왜 할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셨는데,
당신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보통 사람들의 고난과 다릅니다.
주님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고난받는 그러한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이 되어 있어야, 주께서 우리를 다루시면서 무엇을 추구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회피해 왔습니다.
인간들의 쉬운 지름길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고통의 방법으로서 '길고 먼' 길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야망을 제거하셔도 괜찮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결심을 초자연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허락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인도하시는지 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러한 고통들을 허락하시는지 그 당시에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소간 오해 가운데 그 고난을 지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밝은 장소로 나아왔을 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고 계셨는데, 나는 몰랐을까!"
365일 성령님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말라.
신앙의 길이 편한 길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당신에게 영적 능력이나 신령한 열매가 없어도
당신의 등을 두드려주며
편안히 잠들 수 있게 해주는 교회를 좇아다니지 말라.
「홀리스피리트」
기도365일
인생의 모든 사건 가운데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그 위로가 얼마나 클까!
슬프고 상한 영혼이 불행 속에서
하나님의손길을발견한다면그안도감이얼마나클까!
슬픔에 싸인 마음이 기도로 가벼워진다면
그 얼마나 큰 위로일까! 《기도해야 산다》
독서큐티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의 응답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다.
그리고 참된 기도는 땅과 하늘에서 반드시 효력을 발휘한다. 무릎 꿇는 그리스도인, 무명의 그리스도인(앨버트 리처드슨)
내려놓음365일
광야의 생활은
정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훈련을 받는 데 제격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길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은
나에게 참 은혜가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고백은
바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11월 4일] 복음의 진리에 반응하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rbyjINpL_cY?si=xOeirOkE-PmmxjZ1
11월 4일
복음의 진리에 반응하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 야고보서 4장 8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에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책임은 각 개인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당신이 다른 사람 대신 반응할 수는 없습니다.
각 사람의 의도적인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언제나 사람이 반응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복음에 대한 반응을 거절하는 마비 상태라면 그에게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기 전의 상태로 정확하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복음의 진리에 반응하면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성령에 의해 죄의 가책을 받은 사람 중에는 복음의 진리가 매우 어리석은 것처럼 생각되어 결국 복음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을 재촉하여 반응하면 그는 그 즉시 살게 됩니다.
남은 모든 삶은 살아 존재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참으로 사는 순간은 온 마음을 다해 반응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당신의 영혼에 임했을 때 그 진리에 반응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진리는 그냥 떠내려가게 됩니다.
반드시 외적으로 보이지는 않더라도 의지로 반응하십시오.
그 결단을 잉크와 피로 기록해 두십시오.
아무리 연약한 성도라도 그가 반응하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하게 되면서 자유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의 죄악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후퇴합니다.
다시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또 쓰러집니다.
더 이상 이러한 반복을 할 필요가 없을 때까지 되풀이합니다.
우리는 구속의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다시 깨끗해져야 하고 주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의 "오라"는 말씀은 주님과 "관계를 맺자"는 의미입니다.
"내게로 오라."
우리가 끝까지 버티면서 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 오는 자들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의 생명이 초자연적으로 그들에게 즉각 임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인 육체와 마귀는 그 힘을 잃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당신의 반응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반응이 당신을 하나님과 그분의 구속의 능력에 연결했기 때문입니다.
==========
11월4일
365성령님
하나님의 방주,
즉 ‘복음의 배’는 할 일 없이 대양을 떠도는 유령선이 아니다.
이 배에는 충성스러운 승무원들이 가득하다.
성령님의 바람이 이 배의 돛을 강력하게 밀고 계시고
이 배에 승선한 승객들은 해방자로서
거룩한 땅, 자유의 항구를 향해 여행한다. 「홀리스피리트」
감사는기도의 생명이다.
감사는 기도의 향기이자 음악이요,
시이자 면류관이다.
기도로 소원이 이루어지면
찬양과 감사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기도해야 산다》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의 삶을 그것에 맞게 설계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유익이다.
내가 닮고 싶은 예수, 조이 도우슨
무엇이든지 손에 쥐어주면 꽉 움켜쥐고
절대 놓으려 하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하나님이 더 좋은 것 주시려고
내려놓아라, 포기하라 말씀하시는데
꽉 움켜쥐고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11월 3일] 예수님의 종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tU3ijGIeWY8?si=uLwEl0OEhzTTluXr
11월 3일
예수님의 종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이 말씀은 나의 독립을 내 손으로 부수고 최상의 주 예수님께 순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도 나 대신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 년 365일 내내 이 자리까지 이끄시지만 강제로 하지는 않으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나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완전한 충성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내 안의 독자성이라는 껍질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자유함 가운데 나의 인격적 본성을 주님과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내 마음속에 갈등이 없습니다.
이것이 강한 성도를 만드는 비결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에 있어서 "나(예수님)를 인하여" 하는 충성의 참의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자아의 부서짐이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거짓 경건입니다.
내가 결정해야 하는 단 한 가지는 포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하겠습니까?
자아가 부서지든 상관하지 않겠습니까?
자아 실현을 버리는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면 그 즉시 초자연적인 하나됨의 실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증거가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실체입니다.
기독교의 열정은 마음을 다해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는 아직 성도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학생이 일 년에 한 명만 있어도 하나님의 '성경대학'이 존재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 대학은 조직 및 학문으로서의 가치로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대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사람들을 취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시도록 합니까?
아니면 당신이 원하는 미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11월 2일]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합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Qr2pT1BXdQU?si=aR7zQS9wzPjGY08r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11월 2일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합니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요한복음 14장 15절
주님은 절대로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주 강하게 말씀하시지만 절대로 강제로 시키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된 마음 가운데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는 제자도를 말씀하실 때마다 언제나 '만일'이란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누가복음9장23절)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자기 권리를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영원한 신분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서 주님께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비결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주께서는 엄중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14장26절)
절대로 이 말씀을 하신 주님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말씀을 해석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규율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신 것입니다.
만일 주님과 나의 관계가 사랑이라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행할 것입니다.
만일 주저한다면 이는 내게 주님외에 주님과 경쟁 상대인 다른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다른 대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그분께 순종할 수 있도록 돕지 않으시기 때문에 내가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주께 순종할 때 나는 영적 사명을 이루게 됩니다.
나의 개인적인 삶이 사소한 일들로 가득 차서 자질구레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상황들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면, 그 상황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창문들이 됩니다.
언젠가 하나님과 얼굴을 뵈올 때 나는 나의 순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았음으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이 한 영혼의 순종으로 나타나면 그곳에서는 언제나 창조가 발생합니다.
만일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면 하나님의 구속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순종의 행위 뒤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실체'(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
성령님365 숨겨진 다이너마이트 엡4:30
엡4장 25~32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성삼위(聖三位) 가운데 제3위(位)이신
성령님에 대한 교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고,
지금도 여전히 초래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리는 다이너마이트와 같기 때문이다.
성령론은 숨겨진 다이너마이트이다.
교회는 이 다이너마이트를 찾아 사용해야 한다. 「홀리스피리트
인정 기도365
겸손으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기도의 옷을 입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은 우리가 작기에 작다고 느끼고,
무가치하기에 무가치하다고 느끼며,
죄인이기에 스스로의 죄를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기도해야 산다》
하나님을 만날 기회 독서큐티
우리는 나름대로 틀을 정해놓았고,
하나님께서 그 틀 안에 임하시리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한 틀 밖으로 나타나실 때면,
우리는 영락없이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너무 쉽게 잃고 만다.
간절한 매달림, 토미 테니
알 수 없는 평온 시23:1 내려놓음365
웹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내 마음에는 항상 2퍼센트가 부족했다.
그래서 그 2퍼센트를 채우기 위해
더 노력했다. 더 가지려 했다.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때로는 찾아왔다.
그러나 내려놓으니, 알 수 없는 평온이 찾아왔다.
[11월 1일] 나는 주님의 것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7rPan4k_BQk?si=wm94hO58T03ILoTP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11월 1일
나는 주님의 것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 고린도전서 6장 19절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 안에서 사귐을 가지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 속에 또 다른 세상'과 같은 사생활이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성도들의 사생활을 파괴하셔서 한편으로는 세상을 향한 통로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통로로 만드십니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라 복음의 교제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나와 관계가 없는 일들이 발생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나를 주님과 친교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주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맡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주님의 구속 사역에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물과 막힘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우리에게 하시는 일은 우리가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께서 주의 구속의 목적을 위해 일하시는 한, 내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왜 우리는 마음의 고통을 피하려고 합니까?
이러한 고통의 관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과의 친교의 길들을 열어놓으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고통의 관문에서 실패하고 쓰러집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향한 출발 지점에서 주저앉아 자기연민으로 죽어갑니다.
또한 소위 성도들의 동정심은 우리의 영적 죽음을 돕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의 못 박히신 손으로 우리를 불들며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60장1절)
만일 하나님께서 고통 받은 마음을 통해 주의 목적을 이 땅에 이루신다면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
365 성령님
하나님나라에서 무엇을 계속 간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에서 무엇을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길은
그것을 간직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홀리스피리트」
기도
기도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한
열정으로 활활 타올라야 한다.
열정 없는 기도는 빛이나 열을 잃은 태양과 같고
아름다움과 향기를 잃은 꽃과 같다.
하나님께 간절함이 있는 영혼은 열정적인 영혼이며,
기도는 그에게서 나오는 불꽃의 산물이다. 《기도해야산다》
독서큐티
성령세례는 기호에 따라 선택하는 신앙생활의 옵션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성령세례는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사항입니다.
고맙습니다 성령님, 손기철
내려놓음
나는 그저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볼 뿐이다.
그저 겸허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10월 31일] 오직 믿음으로 걷기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hoAFzfl8Y9g?si=6ppjeVWA9y4hMsHU
10월 31일
오직 믿음으로 걷기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 마태복음 17장 20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상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믿음의 초기 단계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에 의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성도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과 접촉하도록 하기 위해 종종 당신의 경험의 밑바닥을 흔들어놓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님의 축복만을 누리는 감상적인 삶을 살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 생활의 초기에는 약간의 태양이 내리쬐는 경험 속에서 그 안에 믿음이 있다는 느낌과 함께 얕고 뜨거운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때는 빛이 가득하고 달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걸을 수 있도록 가르치시기 위해 주님의 뚜렷한 축복들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 결과 당신이 오직 믿음으로 걷는 것을 배우면, 당신은 이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기쁨을 느꼈던 때와 스릴 넘치는 간증을 하던 때보다 훨씬 더 하나님께 귀중한 사람이 됩니다.
본질상 믿음은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믿음의 실제 시험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역사하는 믿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고립된 기간들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때 믿음의 시험을 일상적인 삶의 훈련과 혼동하지 마십시오.
사실 우리가 믿음의 시험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대부분이 모든 삶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일 때도 많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과 모순되는 불의하고 악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시더라도 여전히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 (욥기13장15절)
이것이 성경 전반에 걸쳐서 말하는 가장 고상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10월 30일] 상식과 믿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i85TDWPR1P4?si=8c9h7t4lVW6OMA-n
10월 30일
상식과 믿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 히브리서 11장 6절
상식과 상반되는 믿음은 광신입니다.
믿음에 상반되는 상식은 이성주의입니다.
믿음의 삶은 이 두 가지를 바른 관계로 인도합니다.
상식과 믿음은 같지 않습니다.
그 둘은 각각 자연 세계와 영적인 세계와 연결됩니다.
감정적 충동과 영감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은 상식이 아니라 계시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상식이 다다를 수 없는 곳까지 닿습니다.
믿음의 실체가 현실로 드러나려면 믿음은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8장28절)
하나님의 섭리의 연금술은 이상적인 믿음을 변화시켜서 현실적인 실체가 되게 합니다.
믿음은 언제나 인격적인 차원에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전반적인 목적은 이상적인 믿음이 주의 자녀들 안에서 실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식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진리를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실질적 경험 가운데 증거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최우선에 두는 놀랍도록 활동적인 원칙입니다.
"주님, 주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는데(마태복음6장33절), 제게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머릿속의 믿음을 인격적 소유로 바꾸려먼 '가끔'이 아니라 '항상'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해 상황을 조성하시고 우리를 그 속으로 밀어넣으십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속성은 믿음의 대상을 실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까지 그분은 단지 추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우리는 믿음을 통해 실제를 소유하게 도고 이때 믿음은 무한하게 됩니다.
믿음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사람의 전 인격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 다음 달 또는 내년을 생각하지 않고
당장 눈앞에 결과가 나타나야 성공으로 인정한다.
효과가 있으면 진리이고 효과가 없으면 거짓이라는
종교적 실용주의가 정통교리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판을 친다.
뿌리를 튼튼히 내린 교회는 절대 파괴되지 않지만,
뿌리가 마른 교회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다시 살릴 수 없다.
「이것이 성공이다」 성령님
겸손은 기도의 속성이자 특성이다.
빛이 태양의 속성이듯 겸손은 기도의 속성이다.
겸손이 없는 기도는 시작도 끝도 없고 그 존재도 없다.
배가 물 위를 항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듯이
기도는 겸손을 위해, 겸손은 기도를 위해 존재한다. 《기도해야 산다》
하나님은 우리와 만났을 때,
서로가 기쁨과 신섬함을 맛보기 원하신다.
그러나 의례적인 공식과 방정식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한다.
간절한 매달림, 토미 테니 독서큐니
헌신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보상이 된다.
즉, 우리의 헌신 그 자체가 우리의 보상인 것이다. 내려놓음큐티
[10월 29일] 대속의 의미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j5R4Hihal3A?si=vfSwU4Mf3LOioDcb
10월 29일 대속의 의미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해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5장 21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현대의 관점은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분이 동정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일치가 되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고 봅니다.
곧 주님은 죄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은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사라집니다.
주님의 죽음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주님의 순종의 결과이지 우리를 향한 동정심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실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순종이나 헌신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죽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버지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께서 세상의 죄를 지기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의 계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들에게만 해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대해 절대로 아버지를 보여주는 분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걸림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5장22-24절)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한복음14장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형벌에서 자유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고린도후서5장15절)는 것이고, 나는 주님의 죽으심과 일치가 됨으로써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주님 자신의 의를 부여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속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해 죄를 삼으신 것"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조성되도록 결단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역의 효력이 내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10월 28일] 믿음에 의한 칭의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4-T4gXHoZWE?si=foBk9pZnH1Bue6f[
10월 28일
믿음에 의한 칭의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 로마서 5장 10절
나는 믿음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회개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신 일을 깨달은 증표입니다.
신앙적 위험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를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 나의 순종과 거룩함이라고 오해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돌아가 주님께서 계시해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는 즉시, 예수 그리스도의 엄청난 속죄의 역사가 나를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이끕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초자연적인 기적에 의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설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나의 죄에 대해 내가 회개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오직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로 인해 의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모든 것을 꿰뚫는 빛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역사를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하시면, 나는 비록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알 수 없으나 내가 구원받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논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 죽음 위에 세워집니다.
우리는 주님의 속죄 때문에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우리 죄인들은 회개나 믿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신앙 경험보다 앞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의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칭의와 성화가 절대적으로 안전한 이유는 하나님 자신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칭의 및 성화를 이루어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속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것이 하나님의 기적에 의해 자연적인 것이 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이루신 일을 깨닫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19장30절)
[10월 27일] 선교사의 열정과 도전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aDPI8QFZa84?si=Ej0qV927JIyP2rJO
10월 27일
선교사의 열정과 도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태복음 28장 19,20절
예수 그리스도는 "가서 영혼을 구하라"고 말씀하지 않고-영혼 구원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역입니다-"가서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곧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당신 자신이 먼저 제자가 되지 않으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첫 번째 선교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은 악령들이 그들에게 순복하는 것을 보고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사역이 성공했다고 기뻐하지 말라. 가장 큰 기쁨은 너희들이 나와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단 한 가지 목적은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영혼을 향한 열정을 가진 자들 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열정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관점을 갖도록 사람들을 회심자로 만들겠다고 욕망에서 온 열정도 있습니다.
선교사에게 가장 큰 도전은, 사람이 구원받기 어렵다거나, 신앙을 버리는 자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가 어렵다거나, 무관심과 냉담이 너무 깊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마태복음9장28절)라고 주님은 계속 물으십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개인적 상황에 다 적용됩니다.
한 가지 위대한 도전은 "나는 나의 부활하신 주님을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내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너무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충분히 지혜롭습니까?
아니면 선교사를 향한 유일한 부르심 곧 예수 그리스도만을 무한하게 신뢰할 수밖에 없는 그 위대한 초자연적 자리를 포기하려고 합니까?
만일 내가 다른 수단을 취한다면 나는 주님에 의해 마련된 모든 수단들을 다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 (마태복음 28장 18,19절)
[10월 26일] 보냄 받은 자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46zktA-nS0?si=FFVuNoxLHxfJawWM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10월 26일
보냄 받은 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요한복음 20장 21절
예수님께서 아버지에 의해 보냄을 받은 것같이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선교사의 마음에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필요가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는 마음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어야지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의 영감을 앞세워 모든 것을 휩쓸어 자신의 성공을 이루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감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뒤에, 그 명령을 따르는 우리의 결단 뒤에 따라오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선교사의 이상은 주님께 충성하여 하나님 나라의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친밀함을 유지하는 일, 그분의 관점을 내 안에 유지하는 것을 가장 귀히 여기십시오.
선교 사역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희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향한 동정심이 예수님에 의해 보냄을 받은 의미를 완전하게 압도해버립니다.
그 필요가 너무 크고 조건들이 너무 복잡해서 모든 정신력이 흔들리고 쓰러집니다.
선교 사역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거나 교육을 시키거나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마태복음 28장 19절)
귀히 쓰임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애들을 돌아보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들은 얼마나 예리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하였던가!"
그러나 그들의 예리한 지혜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의 지혤르 칭찬하고 높이려 합니다.
귀히 쓰임받았던 이들은 어리석을 정도로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의 초자연적인 수단을 의지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에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에 공로를 돌려야 합니다.
[10월 25일] 하나님의 목적과 소명대로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xCKTEXI1J88?si=tWfElZ_pH5oqnepn
10월 25일
하나님의 목적과 소명대로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 고린도전서 9장 22절
그리스도인 일꾼은 하찮은 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고결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주께서 그들에게 주신 중요한 사명 때문에 예외적인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의 지성으로 이 중요한 사명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가슴으로 이 사명에 애착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쓸모없는 자로 밀려날 것입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뜻으로 주의 일꾼이 되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주님의 능하신 말씀이 그들에게 주어진 적이 없습니다.
바울의 온 마음과 생각과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위대한 사명에 사로잡혔으며 한순간도 그 초점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가장 중요하고 중심 되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언제나 직면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입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한복음 15장 16절)
당신의 신조에 위대한 이 말씀을 두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셨기에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굽히시고 깨뜨리시고 빚으십니다.
왜 주님께서 이 일을 하시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주님이 이 일을 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인데, 그것은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손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께서 우리를 심으신 그 반석 위에 다른 사람도 심을 수 있게 됩니다.
일꾼이 되겠다고 선택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의 소명을 주셨다면, 당신이 좌로나 우로 치우칠 경우 큰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소명이 임하면, 소명을 받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대하실 것입니다.
또한 소명을 받지 않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그러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다루실 것입니다.
그분의 방법으로 당신을 다루도록 하십시오.
10월24일 ] 그리스도인의 관심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oVnDmXKjUoU?si=Wkyk4e-25Mb9tGUX
10월 24일
그리스도인의 관심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고린도후서 2장 14절
하나님의 관심은 사역자가 최선을 다해 최상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최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이는 매일 모든 순간마다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유한한 것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외부의 어떤 힘도 그 관점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유지해야 하는 관점은, 우리는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이곳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군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전시장에 진열된 전시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알리기 위한 사명에 나의 삶이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이 외에 다른 관점들은 얼마나 사소합니까?
"나는 예수님을 위해 외롭게 홀로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주를 위해 마지막 요새를 지커야만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이미 승리자의 반열에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관계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승리 가운데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당신에게 실질적으로 역사하고 있습니까?
10월 23일
편견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https://youtu.be/wokdzOUthUE?si=DIua8LLSxlt_aNjG
10월 23일
편견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장 17절
주님은 절대로 우리의 편견을 장려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여 제거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특이한 편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대하듯이 자신을 다루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니은 엄하게 다른 사람들을 대하셔야 하지. 그러나 물론 주님께서는 나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아실 거야."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편견이 주님께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편견을 지지하는 대신에 오히려 의도적으로 제거해 나가십니다.
우리의 편견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맡기고 주께서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는 것은 귀한 영적 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 앞에 어떤 편견을 가져오든 별로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단 한 가지는, 우리의 무조건적인 항복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이전 옛 모습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는 때가 올 것입니다.
과거의 의식들도 사라지고 사물에 대한 과거의 태도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면 욕심도 없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이 주는 상처에 무감각할 수 있는 그러한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언제나 온유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생명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한 가지 방법은 옛사람이 사는 것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 단순하고 완전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보다는 오직 하나님 그분만을 원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다 거두어 가신다고 할지라도 주를 향한 당신의 믿음이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는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에 대해 염려하며 골치를 썩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 볼 수 없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우리는 현실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
10월 22일
성령의 증거하심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 로마서 8장 16절
https://youtu.be/wokdzOUthUE?si=0IS13rvbivJioyDL
10월 22일
성령의 증거하심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 로마서 8장 16절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흥정하려는 마음을 가지려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는 일을 수행하기 전에 증거를 원합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실까?"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완전히 주께 내려놓지 않는 한, 당신 자신이 주님의 증거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다 내려놓으면 하나님은 자기를 증거하십니다.
주님은 당장이라도 당신 안에 있는 그분의 속성을 증거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실체가 아닌 다른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감상적 감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구속에 근거해 당신을 내려놓고 주제넘게 따지지 않는 즉시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주십니다.
당신이 논리와 주장을 내려놓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이루신 일들을 증거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을 기다릭시게 했던 우리 자신의 무례함에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는지 알고 싶으면 주께서 구원하시도록 맡기든지 아니면 주께서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하십시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인용하지 말고, 마태복음 11장 28절을 시도해 보십시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주께로 오십시오.
만일 당신이 악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도하십시오.
성령은 주님의 구속을 증거하십니다.
성령은 다른 그 어떤 것도 증거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우리의 논리를 증거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연스러운 상식적 결정을 내린 후에 성령의 증거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자신의 속성 및 구속의 사역을 증거하실 뿐, 절대로 우리의 이성을 증거해주지 않으십니다.
만일 성령으로 우리의 이성을 증거하게 하려고 시도할 경우 당연히 어둠과 혼돈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어리석음을 내버리고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께서 성령의 증거를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주님의 구속을 증거하십니다.
성령은 다른 그 어떤 것도 증거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우리의 논리를 증거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연스러운 상식적 결정을 내린 후에 성령의 증거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자신의 속성 및 구속의 사역을 증거하실 뿐, 절대로 우리의 이성을 증거해주지 않으십니다.
만일 성령으로 우리의 이성을 증거하게 하려고 시도할 경우 당연히 어둠과 혼돈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어리석음을 내버리고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께서 성령의 증거를 주실 것입니다.
=====================
10월 21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 유다서 1장 20절
10월 21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 유다서 1장 20절
주님께는 충동적인 면이나 차가운 면이 없었습니다.
결코 당황하지 않으시는 침착한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우리의 기질에 따라 신앙을 개발해 나갑니다.
충동적인 행동은 거듭나지 않은 본성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의 삶의 발전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항상 충동적인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이 충동을 어떻게 저지하는지 주의하십시오.
성령의 저지는 곧바로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을 느끼게 하며, 그러면 우리는 즉시 자신을 변호하려고 합니다.
충동적인 행동은 어린아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성장한 어른에게는 재난을 가져옵니다.
충동적인 사람은 언제나 버릇이 없으며, 연단을 통해 지각을 갖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제자 훈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물 위를 걷는 것은 충동적인 담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마른 땅을 걷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기 위해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땅에서는 멀리 떨어진 채 주님을 따랐습니다.
위기를 겨뎌내는 데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인간 본성과 자긍심만으로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기에 자랑스럽게 위기를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매일 24시간을 성도로 살아가는 데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가 필요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시받는 존재지만 계속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데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위해 아주 예외적인 일들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깊게 뿌리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일들 속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곧 시장 거리에서 거룩해야 하고 일반적인 사람들 가운데서 거룩해야 합니다.
이는 5분 내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